프랜시스 쉐퍼-개혁적 복음주의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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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신앙 연구가들/프란시스 쉐퍼

2011.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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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절 개혁적 복음주의 신학 (신동식)


쉐퍼가 말하고 있는 복음주의적이라는 말은 20,30년대에 영국에서 사용한 말로서 메이첸과 그의 다른 동지들이 미합중국에서 뜻했던 바 그것, 즉, 여러 형태와 정도를 지닌 자유주의 신학에 반대하는 “성경을 믿는 기독교”를 뜻했다.1940년대 중엽에 이르러서는 복음주의라는 말이 미합중국에서 보편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특히 여기서의 복음주의라는 말은 성경을 믿되 스스로를 삶의 전체 영역으로부터 단절시킴이 없이 하고, 기독교를 사회, 정치, 문화의 현실적 필요성에 효과적으로 접촉하게 하도록 시도 한다는 함축성과 더불어 쓰였다. 또한 이 말은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인도하되 아울러 그 문화 안에서 소금과 빛이 되도록 한다는 함축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

[프란시스 쉐퍼, 위기에 찬 복음주의 윤두혁역, [서울:생명의 말씀사 1987]pp.107]

이렇듯 쉐퍼가 복음주의라고 말하고 있는 이 관점은 그가 복음주의 분수령이라 할 수 있는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 모든 사람을 말하고 있는 점에서 일반적인 광의의 복음주의는 아닌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쉐퍼의 신학은 개혁적 복음주의라 할 수 있다.

이런 사상의 열매는 그의 신학 수업과 교단 분열의 역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웨스터 민스터와 훼이스 신학교의 신학은 철저한 개혁주의 신학이었다. 그의 변증적인 모습을 보면 은사인 반틸의 영향을 받았음을 볼 수 있다. 물론 그 둘 사이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전제”사상, [쉐퍼는 이것을 세계관이라 부른다.] 그리고 인식론과 인간의 타락에 대하여 많은 부분에서 일치점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윌리암 에드가 “반틸과 쉐퍼” 김종철,박진숙역 프랜시스 쉐퍼읽기 성인경엮음 [서울 :예영커뮤니케이션 1996] pp.198-204 ]

또한 그가 비록 구 프린스톤 신학의 문제점을 논하고 있지만 그의 신학적 스승이었던 메이첸의 영향아래 있었다는 사실은 그로 하여금 전통적 개혁신학을 가지게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쉐퍼의 신학의 영향과 형성은 개혁주의 신학 특히 신칼빈주의[화란] 신학에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신칼빈주의자들의 문화 세계관운동 그리고 하나님의 영역주권 사상은 쉐퍼가 말하고자 하는 신학과 동일하다. 그렇다고 쉐퍼의 신학의 근본이 신칼빈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쉐퍼는 구 프린스톤 신학이나 화란신학의 잘못을 지적하기를 그것을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지만 거기에는 성경의 진리를 이론적인 영역에 제한시키는 경향이나 어떤 비현실적인 관점이 담겨있다고 비판하기 때문이다. 또한 종교개혁 역시 비판하기를 종교개혁 역시 지적인것과 영적인 것을 구분하는 약점이 있다고 말하면서 옳은 교리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안따까움이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쉐퍼는 역동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옳은 교리에 대해서는 긍정하고 자유주의나 카톨릭 교리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부정을 표시하면서 그 다음에 성령과 영적 교제를 하고 순간 순간 인도하시는 그리스도께 우리 삶을 맡겨야만 한다고 하였다.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1][레인 T.데니스,Letters of Francis A. Schaeffer 고뇌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홍치모역,(서울:기독지혜사1986]pp.73 ]

2]다만 그의 개혁주의 신학의 형성이 자연스럽게 신칼빈주의 영향을 받아드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신학은 이러한 영향아래 생성된 것은 사실이지만 성경적 전통을 믿는 이들과의 화합을 언제나 추구하였다. 그는 교단 분열시 앞장에 서있었지만 나중에 그는 아쉬워하였다.] 쉐퍼는 가시적인 교회의 순결성을 위하여 기구의 분리가 올 때에라도 교회의 표지를 상실하면 추잡한 모습만을 보여 준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탄원하노니 그런 순간이 만약에 오거나 실제로 오거든 오히려 여러분은 세상 앞에 나가 진정한 그리스도인 가운데서 주목할 만한 사랑을 내 보일 어떤 길을 찾기 바란다. 추잡한 당파로 갈라진다면 세상은 추잡성만 보게 될 것이다. 세상은 외면하고 말 것이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추잡한 것을 보면 여러분의 아들딸들을 몇 명이라도 잃게 될 것이다. 만일 여러분의 자녀들이 여러분의 친구들에게 대해 거친 욕지거리를 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그들은 부모된 여러분을 떠날 것이다. 그런즉 여러분은 가시적 교회의 사랑을 보여주고 또 그 교회의 순결성은 두 원리를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로 실천해 보인다는 것을 잊음으로 인해서 여러분의 자녀들을 버리거나 기타 다른 사람들을 멀리 떨어지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프란시스 쉐퍼, 오늘날의 교회의 사명 권혁봉역,[서울:생명의 말씀사1991]pp.90]


이러한 관점에 있어서 쉐퍼는 개혁주의 사상을 가진 복음주의자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쉐퍼는 그의 신학적 교의를 분명히 하여 근래의 실존주의 신학인 칼바르트를 중심으로한 신정통주의 신학을 자유주의신학이라 배척하였다.]ibid.,pp.21-29. 쉐퍼는 칼바르트는 그의 임종시까지 계속 고등비평이론을 용납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한다고 하였다. 바르트에게 있어서 성경은많은 오류가 있었다고 했다. 칼바르트와 그의 추종자들에게는 성경의 진술이 역사적으로는 허위일 수 있으나 종교적으로는 진실하다고 한다.칼바르트의 기본 입장은 성경은 그 속에 여러 가지 종류외 과오가 있음은 물론이지만 그것이 문제시되지 않으니 단지 성경만 믿기만 하라는 것이다.칼바르트는 그의 교의학Ⅱ에서 인식론에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실존주의자라고 명백히 밝혔다. 이렇듯 칼바르트를 위시한 실존주의 신학은 신자유주의로서 그들은 타락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인간이 어떻게 이런 죄악된 길에 돌아오게 되었느냐는 성경의 설명을 폐지하면서도 인간은 잔인한 존재라는 실제주의는 굳게 잡으려고 노력한다.그는 성경의 역사성을 부인하면서도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결과를 고수하려고 한다.그들에게는 에덴동산이 실제로 역사적으로 존재하였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이러한 교리는 예수님의 신성의 문제,삼위일체간의 구별문제,인간과 그리스도간의 구별문제,멸망자와 구원자와의 사이에도 명백한 구별이 없게 되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쉐퍼의 관점은 명백하였다.
그는 복음주의 신학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세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하였다.

“첫째는 역사적 기독교의 완전한 교리적 입장이 명확하게 견지되지않으면 안된다. 둘째,온갖 정직한 질문에 대하여 정직하게 해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셋째,역사적 기독교가 뛰어난 변증법이나 심리적 통합점 이상의 것이라는 사실을 가리키기 위하여, 이 20세기에도 하나님이 실제하고 있다는 것을 개인적,또는 공동적으로 과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프란시스 쉐퍼, The God Who is There 기독교와 현대사상 홍치모역, [서울:성광문화사 1992]pp .263]


그의 신학은 1930년대의 자유주의의 물결을 방어하였던 위대한 사상가겸 학자들인 벤자민 워필드,제임스 오르,그리피드 토마스,캠벨 몰간,그레샴 메이첸등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개혁적 복음주의이다. 이러한 쉐퍼의 신학적 배경은 그의 사회 개혁운동에 대한 배경에서 더욱 자세히 살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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