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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ento mortis(죽음을 기억하라)】【 Memento domini(주를 기억하라)】

엡 4:1-16 / 한 몸, 한 영(靈), 그리고 한 주(主) / 류호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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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설교들

2021. 11. 27.

 
 
"한 몸, 한 영(靈), 그리고 한 주(主)" 에베소서 4:1-16



[성경본문]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5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6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한글개역)



[설교전문]

여러 해 전이었습니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잡지 Punch의 편집장이 독자로부터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습니다:

"편집장님에게: 귀사의 잡지는 예전과 같지 않군요."

그러자 편집장은
다음과 같은 답신을 보냈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우리 잡지는 한번도 예전과 같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말을 합니다.

"교회가 예전과 같지 않다!"
고 말입니다.

- 만일 다음에 여러분이 그런 말을 듣게 된다면,
그분에게 이렇게 일러주십시오:

"교회는 예전과 같은 적이 없었습니다"
라고요.

­만일 다음에 어떤 분이 교회에 대해
매우 침울하고 조의를 표하는 어조로 말하는 것을 들으면,
그분에게 이렇게 일러주십시오:

"한번쯤 기독교회의 역사를 읽어 보시지요!"
라고요.

­다음에 어떤 분이 여러분에게
지나간 교회의 역사에 대해 매우 낭만적으로 말하면서

"그때가 좋았었는데…" 하고 말하는 것을 듣거든,
그에게 교회역사에 관한 책을 한두 권을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그분의 눈이 휘둥그레질 것입니다.

사실상 예전이 지금보다 더 낫지는 않았습니다.
예전이 지금보다 더 낫고 좋은 시절이었다는 생각은
황금시대(요순시대)에 대한 신화를 믿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17세기 청교도시대의 뉴잉글랜드 지방의 교회들은
오늘날의 교회들보다 영적으로 훨씬 살아있었습니다"고 말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교개혁시대의 교회들이
오늘날의 교회들보다 성령의 불길에 더욱 뜨거웠습니다"고 말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일세기 교회, 즉 초기교회는
지금의 교회의 모습들보다는 훨씬 더 원형적이고
순수한 교회의 모습을 지녔습니다"고 말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초기교회 교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따라 살았고, 성도들간에는 순수한 교제를 나누었으며,
함께 성만찬을 나누며 기도에 전념한 교인들 이었습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요순시대의 신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향수에 젖은 허구(虛構)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의 내막(內幕)을 아신다면
"여러분들은 놀라고 말 것입니다."

왜냐구요?
17세기의 청교도가 주류를 이루었던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은
여러 면에서 오늘날보다 그리 나은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청교도들이 미국 동북부 뉴잉글랜드 지역에 도착한지 몇 년이 안 되어서,
많은 설교자들은 회의주의와 이단사설(異端邪說),
심지어 마법 행위마저도 횡행하고 있다고 강하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1700년대 초엽,
미국 대각성 운동의 주창자며 지도자였던 요나단 에드워드 (Jonathan Edwards)는
미국이 신앙적으로 도산(倒産) 상태에 이르렀다는 진단을 했었습니다.

시대적으로 좀더 뒤로 돌아가 1611년의 영국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1611년이 어떤 해입니까?
영국 국왕 제임스(James)가 저 유명한 성경번역인 '흠정역'(欽定譯, Authorized Version; 황제에 의해 인정된 번역)을 반포하던 해가 아닙니까?

그런데 그때 영적으로 예민한 성도가 이렇게 그 시대를 평가하였습니다:

"소돔아, 우리의 죄들에 비교하면 너희의 죄들은 별 것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부패하였고, 그들의 길들은 굽었으며 모두 썩었다!"

좀더 뒤로 거슬러 올라가,
가장 영화롭고 찬란한 시대라고 찬사를 입고 있는 중세기를 보십시오.

한 프랑스 교회 감독이
1263년에 황제 루이 9세에게 쓴 보고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기독교는 황제의 영토 안에서 점점 썩어가고 있을 뿐 아니라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 어느 곳에서도, 그 누구도 교회로부터 출교(黜敎, excommunication)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 그렇다면 일세기 초대교회는 어떨까요?

어떤 분들은 말씀하기를,

"초대교회는 훨씬 성서적이었고,
신앙의 열정이 있어서 매우 순수했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고린도 교회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를 한번 읽어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고후 12:20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 가운데 다툼과 시기와
분을 터뜨림과 당파를 짓는 일과
중상함과 수군수군거리며 소문을 내는 일과
거만함과 무질서가 있을까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교회의 한심한 상태에 대해 비난하고 헐뜯을 때,
·사람들이 여러분들에게, "교회가 예전과 같지 않아!"라고 말할 때

여러분은 분명한 양심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그들에게 말씀하십시오:
·교회는 한번도 예전과 같은 적이 없었습니다!
·교회는 당신이 생각했던 예전과 같아 본 일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는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이상화된 교회의 모습'을 우리의 마음속에 만들었어 놓고
상상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는 아마 이렇게 믿어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교회가 일세기에 있었을 것이라고,
·아니면 중세기에 있었을 것이라고,
·아니면 종교개혁시대에 있었을 것이라고,
·아니면 청교도 시대의 뉴잉글랜드 지역에 있었을 것이라고.

오늘날의 교회는 과거의 교회와
너무도 똑같은 동일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말해서,

­부패의 징조가 사방에서 터져 나오고
­논쟁과 다툼으로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교회는 끊이지 않는 활력을 지속적으로 소유해왔습니다.

­비록 조각나고 깨어졌다 하더라도

·교회는 우리의 마음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를 지니고 있습니다.

­많은 도덕적 문제들로 얼룩져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비도덕적인 사회 속에서 도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남자와 여자들을 배출하였습니다.

­분파와 파당으로 일그러지고, 이단에 의해 상처를 많이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항상 '일치의 환상'을 격려하고 꿈꿔왔습니다.

모든 세기에 걸쳐 교회는 썩고 부패하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세기에 걸쳐 교회는 죽지 않는 활력과
꺼지지 않는 생동력을 소유해왔으며
지옥의 문들이 교회를 대항하여 이기지 못했던 것입니다.

왜 그럴까?
무슨 이유로?

교회는 모든 육신의 길로 떨어져 버리지 않은 것일까?
왜 교회는 죽기를 거절하였는가?
무슨 힘으로 교회는 생존하여왔는가?

대답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로 하여금 교회 되게끔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존속시키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존재하게 하시기 때문에 존재"하는
"기관"입니다.

그렇다면 왜?
왜 하나님께서 교회가 존재하기를 원하시는가?

하나님이 교회가 있기를 원하시는 이유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며,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살고 계신 곳이기 때문이며,
·교회는 그리스도가 보여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형태로, 교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십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선포(설교)를 통하여
이 세상에게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교회의 행위들을 통하여
이 세상을 축복합니다.

2000년 전,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보아라, 세상 끝날 까지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 약속을 지켜오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약속을 지키신 것이
교회의 비밀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께서 내가 너희와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약속 때문에

교회가
그 수많은 내면적인 약점과 부패,
외부적인 역경과 난관 속에서도 생존하여 온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약속이
교회의 비밀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약속 때문에
교회는 이 땅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교회가 너무도 인간적인 모임이지만,
교회는 지옥의 문들이 결코 이길 수 없는
신적(神的) 생명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한가지 계획(경륜)을
가지고 계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경륜이며 어떤 계획입니까?

·때가 가득 차게 되는 하나님의 경륜,
·모든 것들이 그 목적을 이루게 되는 하나님의 웅대한 계획,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하나님의 계획,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을 모두를 하나로 묶는 계획 말입니다.

에베소서 1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가 우주를 하나로 묶는
중심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 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4에서 바울은,
'한 몸'과 '한 영'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렇다면…

·이 한 영이 이 한 몸 안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이
교회라는 몸 안에서 무엇을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까?

이 한 몸 안에 있는 이 한 영은
'일치'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획일성(劃一性)이 아니라 일치성(一致性)이며,
일률성(一律性)이 아니라 통일성(統一性)입니다.

교회의 몸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은
다양성을 통하여 통일성을 창조하시고 계십니다.

교회의 통일성을
다음과 같은 은유로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교회를
사람의 '손'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서로 다른 교단들을
'손가락'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분명히 손가락들은
서로 떨어져 있습니다.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각 손가락들은
객체의 손가락 보다 더 큰 것(손)으로 자라 나왔고,
또 그것에 속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손목에 있는 힘이 생명의 피를 각 손가락에 공급합니다.
한 몸인 교회, 즉 몸이신 그리스도의 생명의 피가

·감리교회에게도,
·오순절교회에게도,
·성결교회에게도,
·장로교회에게도 전달되는 것입니다.

­단체 성격상 비록 나누어져 있어도,
그들을 하나로 묶는 것들은
그들을 여럿으로 분리하는 것들보다
훨씬 크고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그들의 맥박과 혈관 속에 줄기차게 흘러
그들을 하나로 묶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것들을 하나로 통일하십니다.

바로 그런 그리스도께서
교회 속에 거주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처럼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이처럼
그리스도의 한 몸에 속해 있는 지체들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한 몸의 지체가 된 여러분과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선물들(恩賜, charismas)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선물들을 사용하여

교회의 통일성을,
교회의 하나됨을

사방에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서로 다른 은사들을 받은 것 같습니다.

·우리 안에는 매우
다정다감한 성격을 소유하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잘 보살피고
그들의 말을 잘 들어줍니다.

·어떤 분들은 행사들이 있으면
기구를 잘 조직하여 진행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음악적 재질이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손님접대 은사를 받은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머리가 명석하고 총명한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직관력이 있고 영적으로 깨어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각 사람들은 이러한 은사들을 활용하여
교회를 하나로 묶는 일체성이 보여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언제까지입니까?

우리가 궁극적인 일치성에 이를 때까지,
곧 사도 바울이 엡 4:13에서

"그리스도의 충만"이라고 부르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은사들을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교회를 믿습니다.
우리는 교회가 하나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는 오직 하나의 몸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노력을 다 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듯이, 우리는
"평화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됨을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고 어느 곳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나눠지고 갈라지는 분파를 극복하고,
자신의 교회를 향하신 그리스도의 뜻이신
'하나됨'을 세상에 보여주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하나됨'은 복음의 일부분입니다.
·'하나됨'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이루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됨'은 교회가 이 세상을 향해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됨'은 교회가 이 세상을 향해 들려주는 외침입니다.

무엇이라 외칩니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다는 사실을
당신들이 믿지 못한다면, 우리를 보시오.

·우리가 꿈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이 되면, 우리를 보시오.

­우리는 미래에 있게 될 '하나됨'을 미리 보여주는 시사회입니다.

­우리는 한 분 성령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우리는 한 분 주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장차 어느 날 온 세상은
우리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하나됨을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통일을 이루게 될 날이 도래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가운데
어떤 분들은 이렇게 질문하실 지도 모릅니다:

·좀더 중앙 집중화된 교단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뜻입니까?

·통합, 합동, 고신, 대신, 한신 측이니 하는 여러 개의 장로교단들을
하나로 묶는 단일 통합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구세군, 침례교, 루터교 등을 포괄하는
전세계적인 교회를 만들어 가야한다는 뜻입니까?

·마치 미국의 국방부인 펜타곤과 같은 엄청난 규모의 교단 본부를 두고
전세계에 있는 교회들을 중앙 집중화시켜 움직여 가야 한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결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하고,
교회들 역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통일을 이루어야한다는 뜻은,

우리는 현재 교단과 교단을,
교회와 교회를 가로질러 놓여 있는 분단선 너머로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되었다는 것을
아름답고 다양하게 표현해야한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교회가
쪼개지고 분열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에게 일치를 가져올 어떤 인위적인 타개책이나
처방전을 고안해 내라고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한 일은 그들에게
그들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라는 촉구였습니다(4:1).

계속해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온전하게 겸손하고 온유하시오.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받아들이고 용납하시오.
모든 노력을 다해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시오"(4:2-3).

우리가 시작해야할 출발점이 여기입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요 주님도 하나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그는 모든 것들의 아버지이다.
모든 것들 위에 계시고 모든 것들을 통일하시고
모든 것들 가운데 계신다."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과 교단들이 점점 그 한 분 주님께로 가까이 나아갈 때,
그들은 자신들이 서로에게 가까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 때, 그들은 더 이상 그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벽들과 담들에 대해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위대한 종교개혁운동이 아니겠습니까?

·겸허한 마음으로 성경을 새롭게 귀담아 듣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지금 무슨 일을 하시고 계시는가를 생각해 보는
새로운 갈망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교회와 교인들은 서구인들처럼
점차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에 물들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개인주의라는 벌레에 물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룹으로서보다는
개인으로서 우리자신들에 대해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에 대해 이야기 할 때도
교회로서보다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 각 개인의 구원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벌어지는 개인적인 거래로 이해하려 듭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 말할 때도 매우 개인적인 측면에서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늘에 갈 수 있는지 아닌지에 더욱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는 내세에 우리가 무엇을 기대하고 얻을 것인가에 대해 알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관심은, 천국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우리의 가족이나 친구들을 알아 볼 수 있을까 등과 같은 질문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 보면, 초점은 전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초점은 개인의 죽음의 순간에 놓여 있지 않습니다.
·초점은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귀환의 순간에 놓여 있습니다.

모든 것들을 하나로 묶으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경륜이 온전히 수행되는 순간 말입니다.

여러분 중,
"교회는 예전과 같지 않아!"라고 말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에 대해 나는,
"교회는 한번도 예전과 같은 적이 없습니다!"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 역시,
"맞아, 그것은 사실이야.
교회는 그런 방식으로 그대로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지금 부패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교회는 지금 갈라지고 나뉘어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교회는 지금 성(性)을 차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교회는 지금 인종을 차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게 남아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교회가 그렇게 남아 있지 않을 이유가 있다면,
교회 속에 있는 생명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교회 안에 "살고 계신 것"입니다.

"교회의 생명"은
교회 안에 살고 계신 "그분의 생명"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교회 안에 살고 계신 것은
나와 여러분이 모든 면에서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까지 자라가기 위함"입니다.


"ONE BODY, ONE SPIRIT, ONE LORD" (Ephesians 4:1-16)
Dr. Daniel Hojoon Ryou, Pastor
Jusarang Presbyterian Church
Aug. 31,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