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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대각성/예수님을 만난 사람-바울(행 2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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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대각성운동

2021. 11. 28.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가운데서 오늘은 바울을 놓고 우리 모두가 함께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특별히 이번에 예수를 갓 믿으신 분이나 또 아직 예수를 믿지 않으시지만 이 자리에 나와 계시는 분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순간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은혜 주시기를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극적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을 말할 때 바울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가 어떻게 예수를 믿었는가하는 것은 세번이나 성경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철저한 유대교 신자였습니다. 유대교의 신앙으로 완전무결하게 무장한 유대교 청년이었습니다. 30대 청년으로 유대교를 위해서는 생명이라도 바칠 각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유대교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가 올 것이라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야는 찬란한 왕자입니다. 이스라엘을 로마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영웅입니다. 그 메시야가 오기를 철저히 기다리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유대교에 몸을 담았던 바울은 그 당시에 나사렛 출신인 목수 한 사람을 놓고 이 사람이 메시야다 하고 떠드는 기독교를 볼 때 울분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되었길래 천한 동네 나사렛에서 태어나고 교육도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30이 되도록 목수일만 하던 젊은 청년 하나를 메시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 어떻게 그가 십자가에 죽었는데 삼일만에 살아날 수 있느냐? 하고 그는 자기 나름대로의 의분을 안고 자기 가슴에서 분함을 참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도가 지나쳐서 예수를 믿고 전하는 스데반을 쳐죽이는 주모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아서 예루살렘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닥치는 대로 끌어다가 감옥에다가 넣고 그 다음에 채찍질하며 그들을 핍박했습니다. 그 정도 했으면 될텐데 약간 미친 증세가 나타난 것이 사실입니다.

예루살렘에서 120마일이나 떨어진 다메섹 동네까지 도망가서 있는 신자들을 잡아서 끌어오기 위해서 그는 특별한 권한을 부여받아 그는 부하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약 일주일을 걸어서 가야하는 길입니다. 그 무더운 사막길을 걸어서 그는 다메섹까지 가는 도중입니다. 거의 그 마을에 도착할 시간이 가까운 어느날 12시쯤 갑자기 하늘에서 강한 빛이 바울을 둘려 비추며 에워쌌습니다. 강한 빛에 에워싸인 그는 사정없이 땅바닥에 거꾸러졌습니다. 정신을 잃을 정도입니다. 한참 멍하고 있다가 눈을 떠서 보니 자기 앞에 어떤 분이 서 계셨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주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물었습니다. 그는 그에게 놀라운 대답을 들었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니라”

얼마 동안 바울이 그 대답을 들은 후 정신 잃은 사람처럼 땅바닥에 얼굴을 대고 떨었는지 모릅니다. 나는 지금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죽이기 위해 가는 길이요, 결국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는 것은 금방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영광스럽게 부활한 예수님을 그가 앞에 뵙는 순간 오늘날까지 그가 무장하고 있던 사상, 철학, 신앙, 지식 등이 한 순간에 썩은 고목이 쓰러지듯이 와르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한참 얼굴을 땅바닥에 대고 있던 그가 “주여,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대답합니다.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거기서 네가 어떻게 해야할 것을 네게 가르쳐 주마.”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빛도 사라지고 예수님도 사라졌습니다. 너무나 강한 빛에 그의 눈이 노출이 되었기 때문에 맹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도 안보입니다. 캄캄합니다.

옆에 같이 가던 동행자들이 바울의 팔을 끌고 다메섹으로 갔습니다. 다메섹에 들어가서 골방에서 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그는 눈물 흘리며 가슴을 치고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모함을 탄식했습니다. 예수, 나사렛 예수, 그가 참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모르고 미친 개처럼 날뛰었던 자신이 얼마나 부끄럽고 후회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삼일 동안 잠도 자지 않고 회개했습니다.

드디어 아나니아라는 선지자가 왔을 때 그에게 세례를 받고 크리스챤이 되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령충만함을 주시고 그 눈에 비늘을 다 벗기시고 시력을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 바울이 기독교 역사상 유래 없는 선교사요, 신학자요, 성경 중에 13권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해 놓은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세계 교회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오늘날 서양에서 자녀를 낳으면 제일 많이 붙여주는 이름이 폴입니다. 바울이라는 뜻입니다. 얼마나 많은 남자애들이, 또 어른들이 폴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자랑스럽게 살고 있는지요. 세상에서 바울처럼 영광을 받은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바울처럼 극적으로 예수를 믿은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바울은 원래 다소라고 하는 대도시 출신입니다. 대학교가 있고요, 운동장이 있고요, 체육관이 있고 박물관이 있는 아주 큰 도시였습니다. 그 도시에서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자랐던 자기 자신을 퍽 큰 긍지로 삼고 있었던 것이 바울이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세상 처신에 대단히 밝은 사람이어서 그 당시로서는 하늘의 별따기와 다름없는 로마 시민권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얻었는지는 모르지만 부모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자녀로 태어나는 바울은 로마 시민으로 태어났습니다. 혈통은 유대인이요, 법적으로는 로마 시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로마 시민권 때문에 선교사로 일할 때에도 바울은 대단히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감옥에 잡혀갔을 때에는 로마 시민권 때문에 살아난 일이 한 두번이 아니고,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할 때는 로마 시민권 때문에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재판이 잘못 되었을 때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항소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그는 황제 앞에 섰습니다. 나중에 두 번째 수감되었을 때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만 죽을 때도 사람 대우를 받고 죽었습니다.

로마 시민에게는 칼로 목을 베는 것이 전부입니다. 깨끗하게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에 비하여 베드로는 로마 시민권이 없는 유대 식민지 사람이기 때문에 똑같이 예수 때문에 죽었지만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바울은 유대교에서 철저하게 가말리엘이라고 하는 위대한 스승 밑에서 배워서 철저하게 유대교로 무장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스데반이라고 하는 사람이 좀 과격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떠들고 다니니까 그걸 못 봐 가지고 그를 끌어다가 돌멩이로 쳐죽이는 데 주모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런 무모한 사람. 어떤 면에서는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는 완강한 사람인데 그가 예수 믿고 변화 받아 기가 막히게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구원받고 지금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요,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것입니다.

자, 바울이 예수 믿게 된 이 과정들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것이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진리입니다. 오늘 처음 나오신 분들이나, 이제 갓 믿으신 분들이나 오래 교회생활을 하신 분들이나 예외없이 두 가지 진리를 바울로부터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첫째로,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은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구원받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바울은 도덕적으로 난잡한 생활을 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의 생활은 깨끗했지만 기독교를 핍박하는 무서운 죄를 범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스데반과 같은 신실한 사람을 돌로 쳐죽이는 살인죄를 범했습니다. 무죄한 남녀를 감옥에다 집어넣고 채찍질한 무서운 죄를 범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고백한 말이 맞아요. 디모데전서 1:13에 자기를 놓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그는 이렇게 고백하고 나중에 결론적으로 말하기를 죄인 중에 두목이었다고 했습니다. 죄인 중에 괴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바울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이 볼 때 바울은 너무나 무서운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봐도 저 사람은 예수 안 믿을 거야. 세상 사람이 다 믿어도 바울은 못 믿어. 저런 사람이 어떻게 예수 믿겠나. 그렇죠. 우리가 볼 때에도 그 사람은 예수를 믿지 못할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바울을 그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종종 사람의 추측이나 상상을 뛰어넘는 일을 하십니다. 특별히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서 그런 일을 잘하십니다. 인간 사회에서도 용납할 수 없다는 흉악범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심으로 우리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십니다.

과거 우리 사회에서 초 일류급 흉악범이라고 기록되었고 우리 뇌리에서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을 열 여섯이나 죽인 김대두라는 사람이나, 금당 사건의 주범 박철웅이라는 사람이나 일가족을 도끼로 살해한 고재봉이라는 사람, 이미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그들이 얼마나 극악무도한 사람이었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세상을 떠난 지금에도 그들이 남겨놓은 희한한 흔적이 있습니다.

사형수로 복역하는 동안 목이 타는 사람이 찬물을 들이키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꿀꺽꿀꺽 들이마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사랑에 감격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했습니다. 눈물로 철저하게 회개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감옥 안에서 수백 명을 전도해서 예수 믿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드디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 자기들 때문에 숨진 사람들에게 사죄하고 예수님이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셨음을 고백하고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인간으로 보면 도대체 이해가 안가요.

지옥을 가도 제일 밑바닥에 가야 할 그런 것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느냐고요. 우리가 생각하면 어이가 없어요. 왜 하나님이 그런 식으로 하시나. 그런데 보세요. 사람들은 흔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기보다 악한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거부반응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자기 같은 사람이라야 구원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거꾸로 뒤집어 놓습니다. 오히려 구원 얻을 수 있다는 사람은 옆으로 밀어 제치고 “나 같은 놈이 어떻게 구원받느냐, 나 같은 놈이 어떻게 예수를 믿어 하늘 나라에 갈 수 있느냐” 하는 사람들을 끌어다가 하나님이 구원시키십니다. 예수님이 계실 동안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21:31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이로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 바리새인들보다 너희 서기관들보다도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리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과 똑같이 주님은 일하십니다. 그 당시 랍비와 바리새인들은 안 믿었어요. 그런데 세리와 창기들은 믿었습니다. 세상에서 사람 취급 안하는 세리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았어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과 같은 살인자를 하나님이 구원시킵니다.

바울과 같이 기독교를 핍박하는 자를 하나님이 구원시키십니다. 사람들이 볼 때 저 사람은 도무지 가능성이 없다고 낙인이 찍힌 사람이 예수 믿고 변화되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분입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몹시 핍박하는 식구들을 부정정적으로 보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오히려 빨리 구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예수 믿는 것 좋지. 빨리 교회에 가” 하면서 엿가락 늘어지듯 늘어지는 사람이 더 어려워요. 차라리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집안이 요란하고 너 죽고 나 죽자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빨리 믿어요.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형제 자매들 가운데서 한 가지 꼭 기억하세요. 하나님은 여러분이 얼마나 악하냐를 묻지 않으세요. 하나님에게는 살인한 사람이나 남을 미워한 사람이나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얼마나 악하냐를 따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도 무궁무진한 사랑으로 누구든지 포용하기를 원합니다. 인간이 포용하지 못한 사람을 하나님이 포용합니다. 사람이 용서하지 못한 사람 하나님이 용서합니다. 사람이 무시하고 복음 전하지 않은 사람을 하나님이 바울처럼 직접 찾아가셔서 예수 믿게 하십니다.

그 놀라운 하나님이 지금 이 자리에 계십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은 그 누구의 죄라도 깨끗하게 씻어주고 새옷을 입혀줄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주님 그렇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아무리 악한 죄인이라도 하나님은 구원하십니다. 믿습니까?

바울을 보고 우리는 이것을 배웁니다.

또 하나 두 번째로 하나님이 구원하시려고 할 때는 인간은 거부하지 못한다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하려고 마음먹고 구원하려고 하실 때 인간은 절대 거부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바울은 예수를 믿으려고 하는 생각을 조금도 갖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 믿으라는 사람을 만났다면 아마 그냥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만큼 예수 믿는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다메섹 도상에서 그를 거꾸러뜨리시고 강제로 끌어들였습니다. 바울은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자의로 믿었나요? 아니요! 타의로 믿었습니다. 믿고 싶어 믿었나요? 아니요! 믿게 해서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구원해서 그의 자녀로 삼으실 때 바울이 거절할 수 있었습니까? 그렇게 완벽한 유대신앙으로, 그렇게 완벽한 헬라철학으로 무장한 바울이었지만 하나님이 그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려 할 때 노우 - 하고 거부할 수 있었습니까? 거부하지 못했어요.

길바닥에 거꾸러졌고 “주여, 뉘시나이까?” 하고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하고 완전히 주의 손에 붙들린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원하지도 않는 사람을 강제로 예수 믿게 할 능력을 가리켜 절대적인 주권이라고 합니다. 로마서 9:15에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롬 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