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역개정판」 성경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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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예배라면~!

2006. 7. 30.

 

I.  우리말 성경의 번역과 개정 문제

II. 「개역한글판」 성경의 형성과정

  1. 「개역한글판」 성경

  2. 성경 개정의 필요성--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및 외래어 표기법의 변화

Ⅲ.  「개역한글판」 성경의 개정과 감수

  1. 개정 원칙

  2. 개정 감수 원칙

  3. 부수적 원칙(대표적인 것)

IV.     「개역개정판」 성경의 탄생

  1. 원문을 번역 수정한 곳

  2. 장애인 관련 어휘의 개정

  3. 그 밖에 수정한 곳

V. 결론:남은 과제

  1. 어휘와 음역 표기 통일의 문제

  2. “가라사대,” “할쌔,” “하신대” 등의 고어체 개정문제

  3. 단수와 복수의 문제

  4. 문장부호 사용 문제

  5. 고유명사의 음역(音譯) 문제

 

 

대한성서공회는 1997년에, 거의 한 세기 가까이 사용해오던 「개역한글판」 성경의 개정 작업을 마치고, 이듬해인 1988년에 이 성경을 「개역개정판」으로 출판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이번 개정의 배경과 필요성 및 의의를 검토하였다.

 

I. 우리말 성경의 번역과 개정 문제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기원 4세기까지는 신구약이 한 데 묶어진 확실한 성경이 없었다. 콘스탄틴 황제가 가이사랴의 학자 유세비우스(Eusebius)에게 헬라어 성경 사본들을 모아 온전한 성경을 편찬하도록 지시한 것은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이 일군(一群)의 성경은, 그 때 만든 것으로 알려진 50권의 사본 중 하나가 1859년 독일의 성서학자 티셴도르프(Constantine von Tischendorf)에 의해 시내산의 성 케더린 사원에서 발견되기까지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1611년 영국에서 출판된 최초의 공인 영역성서인『흠정영역성서』(AV, 또는 King James Version)는 화란 신학자 베자(Theodore de Beza)가 그 당시에 발견된 소수의 헬라어 사본들을 모아서 편집한 소위 “베자 헬라어 성경”을 텍스트로 하여 영역되었고, 루터의 독일어 성경은 영국의 개혁자 에라스무스(D. Erasmus)의 헬라어 성경이 텍스트로 사용되었다.

 

화란의 인쇄업자 엘제비어(Bonaventura, Abraham Elzevir) 형제는 1633년, 주로 베자의 헬라어 성경을 토대로 편찬한 자신들의 헬라어 성경 제2판을 출판하면서 서문에 이 성경을 “수용본문”(受容本文)이란 의미의 Textus Receptus라는 말을 사용하였고, 그것이 유래가 되어 오늘날 흔히 베자의 사본을 “텍스투스 리셉투스” 또는 후에 생긴 말인 “표준원문”이라고 칭한다. 그러나, 킹 제임스 성경은 1611년에 출판되었고, “텍스투스 리셉투스”란 말은 1633년에서야 사용되기 시작한 말이다.

 

성서 학자들은 비평판 헬라어 성경이 출판되기 시작한 17세기 이후에는, 새로 발견된 고대 사본에서 기존 헬라어 성경과 다른 내용을 발견할 경우 그것을 비평장치에 포함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시내산 사본을 비롯하여 근세와 현대에 발견된 고대 사본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수용본문” 만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고집하기도 한다. 이번에 개정에서는 원문을 대조해야 할 경우 최근의 비평판 성경을 텍스트로 사용하였다.

 

최초의 우리말 성경은, 문리역(文理譯), 흠정역(1611), 영어개역성경(1881/85) 및 헬라어 원문을 모두 참조하여 번역을 거쳐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1900년에 국한문 신약이 출판되고 1911년에 구약이 완성되어 성경전서가 출판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는 우리 한글이 아직 언문(諺文)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던 때였으므로 중국식 또는 일본식 표현들이 많이 섞여 있었으며, 세로로 조판되었으므로 읽기에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1993년을 기점으로 할 때『개역한글판』이 부분적으로 개정된지 30년이 지나 한글 문법과 외래어 표기법도 많이 변화되었으므로 옛 성경의 개정은 필수적이었다.

 

언어란 한 사회의 변화와 발전에 병행해서 부단히 변형 생성한다. “서책”이나 “두루마리”가 “책”으로, “저자”(거리)가 “시장”으로, “시장”이 다시 “수퍼마켓”으로 바꾸어졌으며,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져 나갈 것이다. 한 시대의 문화와 사회상을 기초로 삶의 애환과 가치를 담은 문학은 그 시대가 사용하는 고유한 언어로 보존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 하겠으나, 법률이나 생활 언어는 그것을 읽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당대(當代)의 언어로 기록되어야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성경은 목회자나 지식인 등 어떤 특별한 계층의 사람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 만인을 위한 책이므로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되어야한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옛 말은 현재 쓰이는 말로 고쳐야하고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은 문법을 따라 수정해야 한다. 일부 지식인이나 기성 계층의 옛정서나 취향에 따라서 옛 것에 얽매여 개정의 기회를 놓치면 결국은 성경은 잡을 수 있는 독자를 모두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개역개정판」 성경이 출시된 현재까지도 대부분의 한국 신자들이 사용하는 「개역한글판」 성경에는,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 “어디 계시뇨,” “갈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약대,” “심히,” “너더러” 등등의 옛 표현과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수정이 불가피 하였다.

 

“가라사대”는 “이르시되”로, “사람의 독처하는” 것은 “사람이 독처하는 것”으로, “어디 계시뇨”는 “어디 계시냐”로, “갈쌔”는 “갈새” 또는 “갈 때”로,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바”로, “약대”는 “낙타”로, “심히”는 “매우”로, “너더러”는 “너에게” 등등으로 수정하는 문제가 시급했다.

 

대한성서공회는 개정의 전제와 기준을 마련하고, “개역 개정 위원회”를 구성하여 1983년부터 1988년까지 개정작업을 완료하였으며, 대한성서공회 이사회는 “개역 개정 위원회”가 작업한 텍스트에 근거하여 각 교단에 개정 감수위원을 파송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이 요청에 의해 파송된 위원들로 “성경전서 개역한글판 개정 감수위원회”가 조직되기에 이르렀다.

 

이 위원회는 1994년부터 작업을 시작하여 1997년 7월에 157회의 작업을 끝으로 「개역개정판」 이라는 이름의 성경을 내놓게 되었다. 새 성경의 기초가 된  「개역한글판」 성경의 형성과정과 개정의 역사(歷史) 및 새로운 개정의 필요성을 검토하기로 한다.1)

 

II. 「개역한글판」 성경의 형성과정

 

1. 「개역한글판」 성경

 

흔히, “신약성경 낱권 번역시대”라고 일컫는 1882년부터 1911년 사이에는 누가복음 등의 쪽복음과 수많은 낱권이 번역 출판되었다.2) 

 

(1882년에는 로스와 한인 번역자들이 중국 심양에서 최초의 한글성경인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와 「예수셩교 요안복음젼서」가 출판되었으며,

 

1911년에는 최초의 구약성경인 「구약젼셔」와 「성경젼셔」가 출판되었다.

 

이 기간에 출판된 신약성경 낱권으로는, 「마가의 젼 복음셔언」(1887), 로스의 개정판 「누가복음젼」, 「보라달로마인셔」(1890), 「요한복음젼」(1891), 및 순수 국내역본인 「마태복음젼」(1892)과 「도전」(1892) 등이 있다. )

 

1900년에 국한문 신약이 출판되었고 1911년에는 구약이 완역되어서 1911년에는 「성경전서」가 출판되기에 이르렀다. 이 구역(舊譯)은 1938년에 개정하여 「셩경 개역」으로 출판되었고 1952년과 1956년에 다시 「성경전서 개역한글판」이라는 이름으로 개정 출판되었다.3) 

 

(1911년의 「구역」과 1938년의 「개역 성경」의 번역과 개정에는,

 

「영어 개역판 성경」(RV, 1882)의 저본이 되었던 그리스어 본문인 팔머(E. Palmer)의 옥스퍼드판 「그리스어 성경」(1881), 「텍스투스 레셉투스」 및 「흠정역」, 네슬(E. Mestle)의 「그리스어 본문」(1923년판, 14판), 긴즈버그(C. D. Ginsburg)의 「히브리어 구약성경」, 「영어 개역성경」, 「한문대표자역본」, 「미국표준역」, 및 「개역 일본어 신약전서」(1917, 1922) 등이 참고되었다. )

 

1911년에 출판된 「성경전서」 중 신약은 1900년에 출판된 내용을 개정한 부분이 많았으며,4) 1938년에 출판된 「셩경개역」은 여러 역본들을 널리 참고한 신구약 전체에 대한 폭넓은 개정작업의 결과였다.5)

 

이 기간 중에 시도된 신약 개정에 관하여 「대한성서공회사」는, “신약은 1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1904년, 1906년 두 차례의 개정을 거쳐 공인역으로 출간되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순화되고 통일된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다.6) 케이블(E. M. Cable)은 신약성경 개정작업의 필요성을 이렇게 피력하였다:

 

그러나 곧 성경의 임시역을 개정해야 할 필요가 분명해졌다. 서양사상이 들어오면서 언어의 급격한 성장과 변화, 그리고 점차 확대되어 가는 고고학 사본학의 지식이 성경의 의미와 해석을 새롭게 조명하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하여 기존 번역의 개역이 불가피 했다.... 일반적으로 신약보다는 구약을 개역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의견이었다. 신약은 이미 개정을 마쳤기 때문이었다.7)

 

1911년 9월에는 번역자회가 조직되었으나 번역 및 개정위원들이 자주 교체되는 이유 등으로 개정작업은 순조롭지 못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에 괄목할 만한 변화 두 가지가 있었으니; 그것은 첫째로, 신학과 원어를 공부한 한국인 학자들의 등장이요, 둘째는 개역된 성경을 담은 언어인 한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는 사실이다.8) 그 후, 1911년 게일이 구약 개정을 시작했으나 작업이 부진하자 1914년부터는 언드우드와 레널즈가 가세하였다. 1922년 9월에 게일(J. S. Gale)이 선교 본부에 보낸 연례보고서의 첫 부분은 이렇게 시작된다:

 

...성경 개역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과를 통해서 확신한 바는 어풍에 맞고 문법적인 한국어가 이 작업을 할 때 최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축자적이고 또 소위 학문적이라고 해도, 만약 한국인들이 짜증을 내고 던져 버린다면 그런 성경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축자적인 번역을 하고 싶은 우리의 소원은 순수하고 그 확신은 예수님의 몸에 박힌 못처럼 확고합니다. 그러나 만일 한국인들이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고 말한다면, 그것은 “몸자리 주리준제 사바하”라는 불교의 주문과 같이 아무 소용없을 것입니다.9)

 

게일의 이러한 노력은 1925년 12월에 「신역신구약전서」로 결실을 맺었으며, 이후 “개역자회”에서 1911년에 출판된 「성경전서」를 개정할 때는 게일의 신역(新譯)이 참고되기도 하였다. 밀러 선교사는 킬구르에게 보낸 사신(私信)에서 이 사실을 이렇게 적었다: “비록 구약개역 작업이 많이 진행되었으나, [게일이 번역한] 초고를 원본문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을 수정합니다.”10)

 

구약 개정작업은 1911년부터 1936년까지 25년이란 세월이 걸려서 완성되어서 같은 해에 「구약개역」이란 이름으로 출판되었고, 신약은 1926년에 개정을 시작하여 12년 만인 1937년에 완성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1911년의 「성경전서」, 즉 구역(舊譯)은 개정작업을 마친 이듬 해인 1938년에 「셩경 개역」이란 이름으로 출판되기에 이르렀다.

 

그 후 1952년에는 이것을 더 손질해서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따라서 표기를 고쳐 「성경전서 개역한글판」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하였다. 그 후에 이 성경은 약간 더 개정되어 1961년에는 「개역」 결정판으로 출판되었으니 이것이 오늘까지 「개역 성경」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애용하는 성경이다.

 

돌이켜 보면, 1933년 조선어학회가 제정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나오기까지 한글 성경이 한글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세종의 집현전(集賢殿)이 한글을 내놓은 이래, 조선 시대에는 “언문”(諺文)이란 이름으로 천대받아 오던 한글은 성경을 통하여 널리 사용됨으로써 공용어가 되는 결정적 전기를 맞이하였던 것이다.

 

방금 검토한 게일의 보고서에 의하면, 「구역」을 개정한 “개역자회” [개정위원회]가 정한 개정원칙에는 개정의 주된 목적이 성경의 한글화에 있음을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다. 한글 학자 최현배는 성경과 한글과의 긴밀한 관계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성경은,

 

1. 서양의 인명, 지명을 조선글로 옮겨 적기에 일정한 법을 세웠다.....

2. 조선말의 낱말을 규정하고, 그 맞춤법을 인정하였다.... 그뿐 아니라 그 낱말을 일정한 맞춤(철자)으로 적기로 하였다....

3. 행문에 있어서 ‘띄어쓰기’를 시작하여, 일정한 규칙을 세웠다.... 조선의 일반 대중이 남녀노소를 물론하고, 번역된 성경으로 말미암아 능히 영혼의 기갈을 풀 수 있었음도 오로지 이 낱말의 확립과 띄어쓰기의 시행에 의한 것이다.11)

 

지금까지의 검토에 의하면, 성경 개정은 원문과 관련된 문제나 번역상의 오류 때문이라기보다는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의 변화에 따르기 위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개정의 필요성과 관련하여, 1930년 일제 치하에서 제정된 한글 맞춤법 통일안부터 1987년의 개정안까지의 변화를 검토해 보기로 하겠다.

 

2. 성경 개정의 필요성--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및 외래어 표기법의 변화

 

일반적으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라는 표현 속에 우리말의 변화가 다 포함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표준어와 외래어 표기법 또한 맞춤법에 못지 않게 변화되어 왔다. 1930년 이래의 변화는 대략 다음과 같다:

 

(1) 조선어 학회의 철자법 통일안(1933), (2) 문교부의 맞춤법안(1979), (3) 한글학회의 한글 맞춤법(1980), (4) 학술원의 맞춤법 개정안(1984), (5) 국어연구소의 한글 맞춤법안(1987), 및 (6) 문교부--한글 맞춤법(고시본, 1988) 등 여섯 번에 걸친 개정이 있었으며; 표준어의 변화로는 (1) 조선어 학회가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1936), (2) 문교부의 표준말안(1979), (3) 학술원의 표준어 개정안(1984), (4) 국어연구소의 표준어 규정안(1987), (5) 문교부의 표준어 규정(고시본, 1988) 등 다섯 번에 걸친 개정이 있었다.

 

외래어 표기법 또한 1941년에 조선어학회가 발표한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으로부터 시작해서 1985년에 문교부가 발표한 외래어 표기법까지 무려 다섯 번에 걸친 변화가 있었다. 1940년에 일부만 수정된 개정안에 따르면 접미사 “-후”를 모두 “-추”로 바꾸어서 “갖후다,” “낮후다,” “맞후다”를 “갖추다,” “낮추다,” “맞추다”로 고쳤으며, 1987년과 그동안의 개정에 의하면 된소리로 나는 접미사의 규정을 바꾸었으며(일군→일꾼, 빛갈→빛깔), 불규칙 용언 중 어간의 끝 “ㅂ”이 “우”로 되는 것은 소리대로 적게 하였고(가까와→가까워, 괴로와→괴로워), 한자어에는 사이시옷을 붙이지 않도록 하였으며(잇과→이과(理科), 갓법→가법(加法), 수를 적을 때는 만 단위로 띄어 쓰도록 하였다(십 육만 칠천 팔백 구십 팔→십육만 칠천팔백구십팔).12)

 

그러나 성경은 여전히 “일군”으로 적혀 있으며(“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마9:37; “일군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눅10:17), 한자어의 사이시옷과 수를 적는 방식도 개정할 겨를이 없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개역한글판」은 1961년 이래, 구체적으로는 1956년 이래, 제대로 개정된 일이 없었으므로 처음 성경을 대하는 독자가 마태복음이나 창세기 1장을 펴든다면 언어의 시대적 간격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이번의 개정작업을 포함하여, 1911년에 「성경전서」가 출판된 이래 이어진 일련의 개정작업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원문이나 번역상의 문제점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 우리말의 구문과 맞춤법 및 표준어와 관련된 것이었으므로 문법과 표준어가 바뀔 때마다 수정 또는 개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번의 개정작업은 시기적으로나 필요성에 비추어 볼 때 유효 적절했다고 생각된다.

 

Ⅲ. 「개역한글판」 성경의 개정과 감수

1.

이번의 개정작업은 1993년에 열여덟개 교단에서 파송된 위원들로 구성된 “성경전서 개역한글판 개정감수위원회”가 구성됨으로서 제대로 시작되었다. 개정작업의 텍스트는 「개역한글판」 성경으로서 성서공회가 주로 1983년부터 1988년 사이에 작업해놓은 개정원고가 사용되었으며, 개정 감수 작업은 아래와 같은 포괄적 원칙에서 출발 하였다:

 

첫째로, 감수는 성서공회 이사회가 정한 원칙에 따른다.

 

둘째로, 개역성경이 사용한 원본을 존중하며, 오역이 분명한 것은 다시 번역하고, 한자를 포함하여 개역의 언어와 표현이 현대인에게 오해가 될 수 있는 내용은 수정한다. 내용을 수정 또는 다시 번역할 경우에는 최신판 헬라어 성경(Greek New Testament, United Bible Society 4판)을 참고한다.

셋째로, 개역성경의 운(韻)을 존중한다.

 

개역성경은 고어체로 쓰였고 오랫동안 제대로 개정하지 않아서 문법과 구문 및 표현에 어색한 곳은 많지만, 한시(漢詩)의 운율(韻律)을 따랐기 때문에 읽는 이들에게 마치 정형시를 읽는 듯한 “맛”을 준 것은 번역사에서도 찬연히 빛날만한 업적일 것이다. 개정판에서는 이 운을 깨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2.

1. 개정 원칙

 

“성경전서 개역한글판 개정 감수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개정 원칙”을 검토하고 이를 감수 작업에도 가감 없이 적용하기로 결정하였다:

 

1) 문법상 잘못된 것은 바로잡는다.

2) 어휘의 선택이 잘못된 것은 바로잡는다.

3) 개역 당시 어휘의 선택이 현재 그 의미가 바뀌어 오해가 있을 경우 현대 어휘로 고친다. 과거에는 통용되었으나 현재에는 잘 쓰이지 않거나 어려운 말은 쉬운 말로 바꾸어 쓴다.

4) 제3인칭 대명사 ‘저’와 ‘저희’는 각각 ‘그’와 ‘그들’로 고친다.

5) 사투리는 표준말로 바로잡는다.

6) 준말은 그 원말로 바꾼다.

7) 수치감이나 혐오감을 유발시키는 말은 다른 말로 대치한다.

8) 명사나 대명사에서 의미 전달에 꼭 필요한 경우 소유격과 복수형을 분명히 밝힌다.

9) 개역의 본문이 오역임이 확실한 것은 바른 번역으로 고친다.

 

2. 개정 감수 원칙

 

개역 개정 감수위원회는 개정위원회가 세운 원칙을 감수에 적용하기로 하고, 여기에 몇 가지 감수원칙을 추가했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감수 원칙은 성서공회 이사회가 제시한 개정 원칙에 준한다.

2) 개정 원칙은 개역이 사용한 원본을 존중하며, 오역이 분명한 것은 시정하고, 한자어를 포함하여 개역의 언어와 표현이 현대인들에게 오해될 염려가 있는 것은 수정한다. 특히, 가능한한 개역의 운율(韻律)을 그대로 유지한다.

3) 원문대조가 필요할 시는 GNT와 UBS 4판을 사용한다(재확인).

4) 회의와 작업은 회원 과반수 이상의 출석으로 하며, 개정안의 선택은 종다수로 하되 위원 세 사람 이상의 반대가 있을 경우에는 개정안을 채택하지 않고 본래의 개역 본문을 채택한다.

5) 작업방식은 마태복음 1장부터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읽고 제기된 문제들을 하나하나 심의한다.13)

이와 같은 원칙을 합의하는 데는 개정위원회나 개정 감수위원회 간에 아무런 의견 차이가 없었다. 작업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아래와 같은 부수적 사항을 합의하기도 하였다:

 

3. 부수적 원칙(대표적인 것)

 

1) 개역 본문의 주(註)는 모두 그대로 둔다.

2) 준말은 본디말로 환원하되 특별한 경우는 예외로 한다.

3) “발등상”은 그대로 둔다.

4) 개정에서 “빵”으로 고친 것을 “떡”으로 환원한다.

5) “구원을 얻는다”는 “구원을 받는다”로 통일한다.

6) “표적”을 “표징”으로 고쳤으나 다시 “표적”으로 환원한다.

7) “-러라,” “-로라”는 각각 “-라,” “-더라”로 통일한다.

8) 애굽 등 고유명사에 대한 한글 표기는 개정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원칙을 가지고 개정하는 데도 선택적 어려움이 많았다. “약대”를 “낙타”로, “아비”와 “어미”를 “아버지”와 “어머니”로 고치는 것은 쉬운 일이었으나; “의원”을 “의사”로 고쳐야 하느냐 그냥 두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하는 데는 많은 토론이 필요했다. 개정이 어려운 옛말을 현대인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바꾸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으나, 그렇다고해서 “백부장”을 “중대장”으로, “천부장”을 “대대장”과 같은 현대어로 고칠 수는 없을 것이다. 성경의 번역과 개정에는 언어와 문법에 대한 지식 뿐 아니라, 두 언어권의 문화적 갈등에 대한 통찰력이 필요했다. 결국, “의사”는 현대의학이 발달한 뒤에 생긴 말이므로 출애굽이나 1세기 팔레스틴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의원”으로 그냥 두는 것이 옳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IV. 「개역개정판」 성경의 탄생

 

이와 같은 일관된 노력과 작업의 결과로 1998년에 드디어 「개역개정판」 성경이 출판되었다. 이번의 개정작업은 어디까지나 개정(改正)일 뿐, 개역(改譯)이 아니었기 때문에 개정 감수위원들이 모두 원문에 매달려서 일일이 번역문과 원문을 대조하지는 않았다. 단지 오역이 분명한 것이나 성경을 읽으면서 문맥상 걸리는 대목, 또는 작업과정에서 발견된 문제점 만을 원문에 비추어 검토하고 수정하였다. 이 결과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개역성경에는 문체나 한자어 또는 고어(古語) 이외에도, 의외로 번역상 원문과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어서 오해의 소지를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새로운 성경이 개역한글판 성경과 달라진 점, 즉 개정된 곳은 다음의 예와 같다:

 

1. 원문을 번역 수정한 곳

 

1) 구약성경에서--창세기 중심

(1) “하나님의 신”은 “하나님의 영”으로(1:2)

(2) “어두움”은 “어둠”으로(1:4),

(3) “빛이 있으라 하시매”는 “빛이 있으라 하시니”로(1:3),

(4) “칭하시니라”는 “부르시니라”로(1:8),

(5)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로(1:12),

(6) “큰 물고기와”는 “바다 짐승들과”로(1:21),

(7) “육축”은 “가축”으로(1:24),

(8)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는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창2:7)로.

(9) 형상과 모양(창5:1)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셨다고한 기록이 창세기 1장 26, 27절 이외에도 5장 1절과 9장 6절에 나타나는데, 이 두 곳의 원문이 각각 다르다. 창세기 1장 26절과 5장 3절에는 “형상”과 “모양” 이 두 단어가 나란히 사용되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1:26). “아담이 일백 삼십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5:3). 형상은 “첼렘,” 모양은 “데무트”이다. 그런데 창세기 5장 1절에서는 원문이 “데무트”인데 “형상”이라고 번역되어 있어서 원문대로 “모양”으로 바로잡았다. 5장 3절의 “형상 곧 모양”이라는 교차적 표현이나, 또는 히브리적 댓구법(對句法)의 관점에서 볼 때 형상이나 모양은 결국 같은 내용에 대한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되지만 원문에 따라 수정하였다.

 

(10) “뻐터”는 “엉긴 젖”으로(18:8),

(11) 방언과 구음과 언어(창10:20, 11:1)

10장 20절의 “방언”(라숀)과 11장 1절의 “구음”(싸파)은 의미상 “언어”로 통일하였고, 11장 1절의 “언어”(다바르)는 “말”로 수정하였다. 11장 1절의 “싸파”와 “다바르”는 의미의 차이라기보다는 댓구적으로 사용된 것같이 보인다.

 

(12) 정오 즈음에--날이 뜨거울 때에(창18:1)

“케홈 하욤”의 문자적 의미는 “그날 더울 떄”이므로, “정오 즈음에”로 번역된 개역의 본문은 의미상의 해석에 가깝다고 판단하고 원문에 따라, “날이 뜨거울 때에”로 수정하였다. 같은 이유로 다음과 같은 곳들이 수정되었다:

“기한이 이를 때”를 “내년 이맘 때”로(18:10)

“거리”를 “길”로(19:2)

“그 사람들이”를 “두 천사가”로(19:10)

 

(13) 떨기나무를 관목덤불(21:15)

(14) 염소의 좋은 새끼를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로(창27:9)

(15) 음부와 스올(창42:38)

(16) “계자(季子)를 잃으리라”-->“막내 아들을 잃으리라”(수6:26)

구약성경의 “음부”는 모두 히브리 원어의 발음 “스올”로 수정하였고, 신약성경에서도 대부분 “하데스”로 수정하였다.

 

2) 신약성경에서-- 마태복음 중심

(1) 마태복음 1장 1절

   (개역)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

   (개정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2) 1장 18절

   (개역)   …요셉과 정혼하고

   (개정판) …요셉과 약혼하고

(3) 1장 20절

   (개역)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개정판)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4) 1장 21절

   (개역)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개정판)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5) 1장 22절

   (개역)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개정판)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6) 2장 1절

   동방박사”는 동방의 “점성가들”이라는 난하주로 처리하였다.

(7) 2장 2절

   (개역)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 계시뇨

   (개정판)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8) 5장 28절

   (개역)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자마다”

   (개정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자마다”

원문에서 “본다”는 동사 “불레포”에는 차서(次序)의 의미가 전혀 없고, 단지 “나쁜 욕망을 가지고 여자를 보면”이란 의미인데 반해서, 개역의 문체에는 시간이나 순서가 중요한 것처럼 오해 될 소지가 있다.

(9) 6장 34절

   (개역)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개정판)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이것은 예수께서 산상수훈 가운데서 말씀하신 매우 의미 깊은 구절이다. 예수께서는 25절부터 무리들에게 세상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염려한다고 해서 우리의 키를 한 치라도 더 키울 수 있겠느냐고 하시고,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꽃이 염려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기르신다는 말씀을 하셨다.

 

예수께서는 먹는 것과 입는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며, 신자들이 구할 것은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 뿐이라고 결론지으시면서, “그러므로” “내일 일은 …”하고 말씀을 끝맺으셨다. 이 구절은 문맥상으로 볼 때도 염려를 내일로 미루라는 뜻이 아니라 염려하지 말라는 의미가 분명하다. 예수께서는 공중의 새나 들의 백합화가 오늘의 염려를 내일로 미루기 때문에 지적하신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아무 염려도 하지 않기 때문에 지적하신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원문의 의미는, “내일 일은 내일이 제 스스로[헤아우태스] 염려하게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 염려도 하지 말라는 의미로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의 이와 같은 표현은 산상수훈이 끝난 다음 장(章)인 마태복음 8장에서도 나타난다. 12절부터는 예수께서 베드로의 장모의 집을 방문해서 열병을 포함해서 나병환자와 백부장의 종의 병과 각색 병을 고쳐주신 이야기가 기록 되었다.

 

이 때 그 모든 광경을 목격한 서기관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겠다고 나섰고 예수를 따르던 사람(제자) 중의 하나는 자기 아버지의 장사(葬事)를 치른 후에 주를 따르도록 허락해 달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희는 나를 따르라”(22절)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8장 22절의 구문과 재귀대명사(再歸代名詞)는 6장 34절의 것과 꼭 같으며 단지 여기서는 복수형인 “헤아우톤”이 사용되었을 뿐이다. 바로 이와같은 이유로, 6:34절은,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라고 수정되었다.

 

2. 장애인 관련 어휘의 개정

 

성경에는, 신약과 구약을 망라해서, 문둥이, 소경, 난쟁이, 곱사등이, 벙어리, 귀머거리, 절뚝발이(절름발이), 불구자, 앉은뱅이, 병신 등 장애인과 관련된 어휘들이 많이 사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어미, 아비 등 존속을 낮추는 호칭; 세리, 창기, 점쟁이, 산파 등 직업 또는 그 종사자들을 비하(卑下)하는 듯한 어휘; 계집, 자식, 염병 등의 일반적인 비하 언어; 및 동방박사(점성가), 선지자(발람의 경우, 제사장), 복술가(점쟁이) 등 필요 이상으로 격상된 듯한 어휘 또한 적지 않게 사용되었다.

 

개역성경 개정 감수 위원회에서는 장애인 관련 어휘를 수정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원칙을 세웠다:

첫째로, 성경이 기록되던 시대의 특수한 상황과 당시의 언어를 존중한다.

계시가 전달되던 시대와 우리 시대 사이에는 환경과 언어 풍습의 차이 뿐 아니라, 어떤 직업이나 인물, 또는 사건을 판단하는 시각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혐오스러운 어휘 외에는 가급적 고치지 않는다.

둘째로, 의도적 비하(卑下)는 그냥 둔다

 

셋째 원칙: 호칭과 직업, 직제에는 상호관계의 원칙이 존중되어야 한다.

호칭의 경우는, 문명 사회일수록 그 사용이 더욱 복잡해서, 언제 어디서 누구 앞에서나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절대적인 호칭보다는 시간과 장소와 대상에 따라서 바뀌는 상대적인 것이 많다.

 

성경에 사용된 “어미,” “아비” 등의 어휘는 대부분 “어머니”와 “아버지”로 개정했지만 모두 다 개정할 수는 없었다. 예를 들어, 요셉이 그의 부친 야곱과 함께 바로왕 앞에 나갔을 때, 왕의 신하는 야곱을 바로왕에게 소개하면서 “요셉의 아비 야곱”이라고 하였고, 요셉도 “나의 아비와 형들과 …”라고 말했다(창47:1). 원문에는 하나의 동일한 단어가 사용된 경우라고 할지라도 번역어는 그 사회의 문화와 문맥에 따라 아버지, 부친, 또는 아비로 각각 다르게 번역 될 수 있는 것이다. 개정된 장애인 관련 어휘는 다음과 같다:

 

(1) 귀머거리와 벙어리-->“못 듣는 사람,” “말 못하는 사람”으로

그 중 시편 58:4의 경우에는 비하의 원칙에 의해 “귀머거리”로 남겨두었고, 이사야 56:10 “그 파숫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짖지 못하며 …” 에도 벙어리를 남겨 두었다(둘째 원칙).

 

(2) 문둥병과 문둥이->“나병”(癩病), “나병환자”

소경->맹인

난쟁이->키 못자란 사람

곱사등이->등 굽은 사람(자)

절뚝발이->다리 저는 사람(자)

불구자->장애인

앉은뱅이->못 걷는(서는) 사람

병신->몸 불편한 사람(자)

 

앉은뱅이는 “못 서는 사람”으로 풀어썼으나 왜 못 서는지 그 뜻이 분명하지 않은 것 같고; 누가복음 14:13,21의 병신(anaperous)은 “몸 불편한 자”로 고쳤으나 오히려 “불구자들”이나 “장애인들”이라는 의미가 더 큰 것같아 보이기도 한다. “소경”의 경우 유관기관에서는 “시각장애인” 표기를 원하였으나 “맹인”으로 개정하였다(첫째, 둘째 원칙).

 

3. 그 밖에 수정한 곳

 

낮이 열 두시가 아니냐--> 낮이 열 두 시간이 아니냐(요11:9)

아직 아무 사람도 타보지 못한--> 아직 아무도 타보지 못한(막11:2)

의의 흉배(胸背)를 붙이고--> 의의 호심경(護心鏡)을 붙이고(엡6:14)

그 안에 등대(燈臺)와--> 그 안에 등잔대와(히9:2)

훤화(喧譁)하는 무리를 보시고-->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마9:23)

귀먹고 어눌(語訥)한 자--> 귀먹고 말더듬는 자(막7:32)

두려워하여 은휘(隱諱)하더니-->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요19:38)

폄론(貶論)하고도 유위부족(猶爲不足)하여 -->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요삼10).

 

이 성경은 이런 원칙에 따라 1995년 9월까지 신약성경 감수작업을 마치고 1995년에, 성서공회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신약성경: 개역개정판』이라는 이름으로 신약이 출판되고; 1997년에 구약이 완성되어 이듬해인 1998년에는 「개역개정판」 성경 전서가 출판 되었다. 같은 표현이 거듭 수정된 것을 포함해서 신약 성경에만 12,823 곳이 수정되었고, 구약에서는 59,889 곳이 수정되었다.

 

V. 결론:남은 과제14)

 

1. 어휘와 음역 표기 통일의 문제

 

사무엘하 17장 27절 이하의, “길르앗 사람 바실래”라는 이름은 지금까지 발간된 네 종류의 성경, 즉 「개역한글판 세로쓰기」와 「간이국한문」, 「공동번역」, 「표준새번역」 중에서 「공동번역」이 “바르질래”로, 「표준새번역」이 “바르실래”로 통일하였지만 「개역 성경」에는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15)

 

하나의 고유명사가 여러 종류의 우리말로 번역된 예는 매우 많다. 여기에는 번역자의 주의력이 부족했던 경우, 각 책마다 번역자가 달랐던 경우,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어휘가 풍부하지 못하여 우리말로 옮길 경우 우리 말의 다양한 개념에 따라 각각 다르게 번역 할 수밖에 없었던 경우 등을 상상할 수 있다. 창세기 1장 1절과 2절의 경우는, 오랫동안 사용해 온 언어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에 개정위원들 자신이 개정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으나, 사실은 성경을 읽는 이들에게 오해를 낳게 하는 구문이다.

 

1절의 “천지”에서 “지”(地)와 2절의 “땅”이 꼭같은 하아레츠(ץראה)인데 “지”와 “땅”으로 각각 다르게 번역하였으므로, 읽는 이들 중에는 2절의 “땅”이 1절의 “천지”와 무관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고 번역하고, 2절은, “그런데 그 땅은 형체가 없고 텅 비어 있었으며…”로 번역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개역 성경」에 “족장,” “방백,” “도백,” “두목,” “총독,” “지사,” “고관” 등으로 번역된 שׁאר, תחפ, מעט-לעב, מירשׂה 등이 서로 섞여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제한된 시간으로는 모두 바로잡을 수 없었다. 한 예로 느혜미야 12장 40절과 13장 11절에 “민장”이라고 번역된 מינגסה이 에스라 9장2절에는 “두목”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이번의 개정에서는 에스라서의 “두목”만을 “고관”으로 개정하였다.  결국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서 사용된 언어조차 통일성 있게 개정하지 못한 것 같다. 앞으로의 개정에서는 통일이나 비교를 필요로 하는 개념이나 언어들은 목록을 만들어서 관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2. “가라사대,” “할쌔,” “하신대” 등의 고어체 개정문제

 

「개역 개정판」에서 우리말 교정의 경우, “가라사대”를 “이르시되”로, “가로되”를 “이르되”로 “갈쌔,” “할쌔” 등은 “갈새,” “할새”로 수정하는데 그쳤다. “가라사대”는 “말씀하시되”로 “갈쌔”는 “갈 때,” “가실 때,” “가시니” “가시므로” 등 시제와 구문에 알맞는 현대어로 고치지 못한 점이 아쉽다. “하신대”라는 표현 역시, “하시니,” “하시므로,” “하실 때,” “하셨기 때문에” 등 구체적 표현으로 수정되지 못하였다.

 

3. 단수와 복수의 문제

 

서양 언어의 경우는 성서언어와 마찬가지로 명사의 수가 명확하며 명사의 수는 동사에까지 영향을 미치지만 한글의 경우는 동사의 수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뿐 아니라, 문장 속에 그 자체의 수가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수를 드러내는 것보다 그것을 나타내지 않고 암시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경우도 많다. 대개의 경우 우리말은 명사의 수를 함축적으로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시나 경구(警句)의 경우에는 굳이 그것을 나타낼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다. 「개역 성경」 시편 1편은 원문에 따라 무리 없이 잘 개정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단수 명사를 복수로 개정한 예로 검토해 보겠다:

 

1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2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3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6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

 

이 곳을, 원문에 따라 복수명사를 직역하면, 1-2절의 경우, “악인의 꾀”와 “죄인의 길”이 각각 “악인들의 꾀”와 “죄인들의 길”이 되고, 3절의 경우, “오만한 자의 자리”가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가 되며, 6절의 경우,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이 “의인들의 길”과 “악인들의 길”로 각각 고쳐지게 된다. 개정의 주요 원칙 중 하나가 원문을 직역한다는 것이었으므로 그 원칙에 따라 이 구절을 복수로 개정하였으나, 악인, 죄인, 복있는 사람, 인간, 신자, 죄수 등의 명사는 그 자체의 단복수 표시보다 문장 자체의 구조적 특징이 그것을 암시하고 있으며, 이런 명사들은 집합명사로 간주해도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말은 “다,” “모두,” “함께” 등의 부사가 명사의 복수를 대신할 경우가 많고, 때로는 “모두,” “다”가 수량이 아닌 정도를 나타낼 경우가 많음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 한 예로 히브리어의 콜(לכ)과 헬라어의 파스(πας)와 판토스(παντως)를 모두 복수로 처리해 버린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부사가 보통명사와 함께 사용될 때는 복수를 매기는 역할을 하지만 추상명사와 함께 사용될 때는 “수”가 아닌 “정도”를 나타내어야 할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번의 개정에서는 미쳐 이 문제를 하나하나 검토할 시간적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우리 성경에는 (1)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2) “모든 진리 가운데로,” 또는 (3) “모든 기쁨으로” 등등의 표현이 너무 많다. 여기서, (1)의 경우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2)의 경우는, “깊은 진리 가운데로,” (3)은, “큰 기쁨으로” 번역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서양언어에서도 물질명사, 추상명사, 고유명사는 복수형을 만들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의 개정에서는, 이러한 문제와, 아울러, 관용구처럼 잘 알려지고 암송되는 구절의 수(數) 개정은 필요성의 차원에서 한 번 더 생각해야 할 것 같다.

 

4. 문장부호 사용 문제

 

이번 「개역 개정판」에서 성경의 주제에 따라 작은 제목을 넣은 것과 가로쓰기를 시도한 것이 자랑이라면, 문장에서 각종 문장부호를 사용하지 못한 것이 미진했던 점이다. 세로쓰기에서는 문장부호가 별로 의미가 없을 수 있으나, 가로쓰기에서는 문장부호는 이미 문장의 일부이므로 중판(重版) 또는 다음 세대의 개정 때는 반드시 보완되어야 할 것 같다.

 

5. 고유명사의 음역(音譯) 문제

 

이번 개정의 큰 원칙이 원문 속의 고유명사는 그 표기를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경이 독자와 더욱 친숙한 책이 되기 위해서는 부분적이라고 할지라도 이 부분의 연구와 개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발음을 마소라 본문에 따르든지 「칠십인역」에 따르든지, 혹은 「영어성경(KJV)」에 따르든지 통일은 필요하다. 인명과 지명이 아닌 보통명사의 경우에도 재고되어야 할 것들이 많은 것 같다. 그 중, 교리와 관계되는 문제 몇 가지를 연구과제로 제안하는 바이다.

 

1) 게헨나(γεένα)와 지옥(地獄)

“게헨나”는 신약성경에만 12회 사용된 말로서 야고보서 이외에는 모두 공관복음에만 사용되었다.16) (신약성경에서 “게헨나”가 사용된 곳[“지옥”으로 잘못 번역된 곳]은 마태복음 5:22,29,30; 10:28; 19:9 23:15,33; 마가복음 9:44,46,47; 누가복음 12:5이며 공관복음 이외에 사용된 곳은 야고보서 3:6이다.)

 

“게헨나”는 히브리 지명 와디 에르-라바비(Wadi er-Rababi, 왕하 26:3, 렘 7:32), 즉 게힌놈(Ge-Hinnom)을 가리키는 헬라어로서 칠십인역과 필로와 조세푸스의 저술에는 “무저갱,”(無抵坑) 또는 “심연”(深淵)이라는 의미의 타르타로스(ταρτάρος)를 사용하고 있다.17) 

(TDNT, s.v. “γεενα.” 이곳은 유다 왕 아하스가 인간 희생제를 드리던 곳이다(왕하 16:3-4; 21:16; 대하 28:3). 예레미야는 이 곳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날이 이르면 이곳을 도벳이라 하거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칭하지 아니하고 살육의 골짜기라 칭하리니 매장할 자리가 없도록 도벳에 장사함을 인함이니라.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을 쫓을 자가 없을 것이라”(렘 7:32-33). 이러한 인간 희생제가 가장 성행했던 시기는 므낫새와 암몬 왕 때였으며 B.C. 626년에 요시야 왕이 금지하였다(왕하 23:10).

 

이곳은 예루살렘의 모든 쓰레기와 시체를 버리던 곳이었으므로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막 9:48) 곳이었다. )

 

이것은 예루살렘 동남쪽에 위치한 “도벳의 골짜기”로서 인간 희생제를 하고 시체를 버리던 장소를 의미하는 어휘인데, 영어흠정역은 하데스(ἁδης)와 함께 이것을 “Hell”로 번역하였고, 「개역」의 전신(前身)인 「성경전서」는 이것을 “지옥”이라고 옮겼다.

 

동양에서의 “지옥”은 불교적 내세관에서 나온 표현이며 이것은 성경의 “게헨나”와는 의미가 매우 다르다. 불교의 교리서에는 여덟 종류의 지옥이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 중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것은 아비(阿鼻) 지옥과 규환(叫喚) 지옥으로서 아비 지옥은 몸의 가죽을 벗겨서 그 벗긴 가죽으로 오랏줄을 만들어 온 몸을 묶고 활활 타는 불수레에 싣고 다닌다는 지옥이며, 규환지 옥은 사람을 끓는 가마솥과 벌겋게 단 쇠집 속에 가두어 두니 그 고통이 너무 심하여 천지가 떠나가도록 울부짖는다는 지옥이다.

 

따라서 이 지옥은, 예수께서, “……형제를……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2)고 하셨을 때의 지옥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 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6:29-30)고 말씀 하실 때의 지옥과는 다른 것이었다. 따라서 “지옥”이라고 번역된 공관복음의 열한 곳과 야고보서 3장 6절은 원문을 음역하여 “게헨나”로 표기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외의 어휘로, 퓌르(πυρ)는 마태복음 25장 41절에는 “불”로, 계시록 14장 10절, 19장 20절, 20장 10절 등에는 “불,” “[유황] 불,” 또는 “불과 [유황 못]”으로 번역되어 있어 문제될 것이 없으나; 타르타로스(ταρταρος)는 베드로후서 2장 4절에서 “지옥”으로 잘못 번역되었다. 이것은 계시록 20장 1, 3절에서 “무저갱”으로 번역된 아뷔소스(αβυσσος)와 함께 “무저갱”으로 번역되어야 하고; 퓔라케(φυλακή, 마 14:10; 25:36,39; 행 5:19,22)는 “감옥” 또는 “장소”로 번역되어야 할 것 같다. 또 하데스(ἁδης, 마 11:23; 16:18; 행 2:27; 계 1:18; 20:13,14)는 대부분 “음부”(陰府)로 번역되어 있으나 구약의 “음부”를 “스올”로 옮긴 데 따라 다음 개정 때는 “하데스”로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2) 드라콘(δρακὼν)과 용(龍)

성경이 “용”이라고 번역한 “드라콘”은 요한계시록 20장 1절에 의하면, “[용을 잡으니 곧〕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에덴동산의 뱀이며, 마귀라고 불리우는 사탄을 “용”이라고 번역한 것 역시 “게헨나”를 “지옥”으로 옮긴 것처럼 그 언어가 가진 개념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지 못한 번역어 같다. 왜냐하면 용은 실제로 존재하는 동물이 아니라 상상 속의 동물인 반면에; 성경의 “용”은 실제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사분의 일에 해당하는 약 15억의 인구가 상(祥)스럽게 생각하는 행운의 상징인 “용”을 굳이 사탄의 이름과 동일시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실재로, 계시록의 “드라콘”이 동양인의 상상 속에 있는 “용”은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이 말 역시 원문의 발음을 따라 “드라콘”으로 표기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3) 밥티스마(βαπτισμα)와 세례(洗禮)

개역개정판 성경에는, “세례”에 “[헬라어], 또는 침례” 라는 난하주를 만들었다. 초기 한글 성경에서는, 원어의 “밮티스마”를 번역하면서, 1882년 존 로스(John Ross)와 서상윤(徐相崙)이 심양에서 출판한 한국 최초의 번역판인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와 그 이듬 해인 1883년에 로스가 번역한 「조선어 신약성서」(Corean New Testament)에는 “밥팀네”(Baptism)로 번역되었고, 그 후 1894년에 이 수정이 일본에서 번역한 「신약마가복음셔언해」에는 “세례”와 “밥테슈마”를 함께 사용했고(倂記), 1919년에 출판된 펜윅의 「신약전셔」에는 “침례”라고 표기되었다. 그러나 이 이후의 한글 성경에는 모두 “세례”로 표기되었다.

1986년에는 성서공회는 “침례”로 인쇄된 소위 「침례교성경」을 출판하기 시작하였고, 9년 간의 번역작업 끝에 1993년에 출판된 「표준새번역」에는 “세례”에 난하주를 달아서 “또는 침례”로, “세례 요한”은 “또는 침례자 요한”이라고 하였다.

 

이번에는, 한국 교회가 가장 널리 사용하고 있는 개역성경을 개정하면서 난하주 처리를 해서 원어상으로 “침수례”의 뜻이 있음을 표기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영어를 사용하는 지역에서는 “밮티스마”로 통일되어 있으나 유독 한문권인 한국, 중국, 일본에서만 각 교파가 베푸는 이 의식의 양식(樣式)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머리나 가슴에 물을 뿌리는 세례(洗禮, aspersion, sprinkling)와 머리에 물을 붓는 관수례(灌水禮, affusion)와 수세자가 물에 잠기는 침수례(浸水禮, immersion)가 “이 의식”을 대표하는 세 가지 형태일 것이다. 그런데 각 교파는 그들이 선택한 이 의식의 “방법”을 각각 고유한 명칭으로 사용할 것을 고집한다. 한국에서는 그것이 세례와 침례로 대표된다.

 

그러나, 이 의식의 고유한 명칭은 자기 교파가 집행하는 의식의 방법이나 형태와 상관없이 모든 교파의 모든 신자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아마 헬라어나 영어의 발음을 따라 “밥티스마” 또는 “뱁티즘”이 온당할 것 같다. “밥티스마”를 베푸는 형식(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세례, 침수례, 관수례라고 대답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세계의 온갖 성경이 “뱁티즘”과 “밥티스마”를 채택하고 있는데 동양의 세 나라가 이 어휘의 통일성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결코 의식 집행 방법의 옳고 그름이나 교의(敎義)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 선택의 문제이다.

 

쉬운 우리말을 두고 어려운 음역을 사용할 경우 신자들이 사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되지만, 아브라함, 느부갓네살, 아하수에로, 아닥사스다 같은 이름들도 거부감 없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다음의 개정에서는 “게헨나”는 교리적인 면에서, “드라콘”은 문화적인 면에서, “밥티스마”는 원론적인 면에서 원어의 발음을 음역(音譯)하는 문제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까지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개역한글판」 성경은 우리의 문법과 외래어 표기법 및 철자법의 수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 정확한 번역과 적절한 어휘 선택과 뛰어난 운(韻)으로 인해 백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만인의 사랑을 받아 왔다. 이제 「개역개정판」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성경이 만인의 사랑을 받는 성경이 되기를 기원한다. (도한호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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