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글모음/살고 싶은 마을

격암(강국진) 2012. 11. 8. 13:14

제가 사는 일본의 와코시는 인구 8만명이 안되는 도시로 소학교라고 일본에서 부르는 초등학교가 8개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 8개 학교의 5학년들이 모여서 음악발표를 하는 음악회에 다녀왔습니다. 막내가 발표를 하기 때문입니다. 기술적인 것이야 제가 평할바도 아니고 좀더 나이든 학생이나 어른보다 일반적으로 못하겠지만 아이들 음악은 그래도 들어줄만 합니다. 아이들 특유의 천진함이 음악감상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음악을 듣다가 제 입에서는 이런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역시 아이들이 있어야돼. 아이들이 희망이야. 


아이들이  어른들의 희망인 이유는 종종 그렇게 생각되어지듯 그들이 자라서 좋은 세상 만들어 주기를 기대하거나 좀 더 개인적으로 자식들이 잘되서 어른들의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주기를 바래서만은 아닙니다. 그런 이유가 크고 작게 있겠지만 그보다는 지금 당장 당면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아이들이 어른의 희망인 이유는 어른들에게 인생에 있어서 뭐가 중요한지를 가르쳐주거나 잊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행동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그 어른이 다시 아이를 기른다는 이 수없이 오랬동안 반복되어진 생명의 순환의 가치는 오늘날 너무 사소한 것으로 생각되거나 파괴되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가 많은 것을 시작되게 만든다.


이런것 부터 시작해 봅시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는 종종 그 지역공동체의 구심점이 됩니다. 왜냐면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보편적이며 그래서 어른들이 자식들을 더 잘 키워보겠다고 이런 저런 일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다녀온 음악회 같은 것이 그렇습니다.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음악을 듣는 것이지만 그걸 통해서 사람들이 만나고 집단으로서의 활동이 이어지게 됩니다. 아이들이 통학길에 안전하게 다니게 하기 위해서 부모들이 모여서 공동으로 대책을 논의합니다. 그 이외에도 유해한 환경을 없애고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라는 것은 포유류의 기본적 감성으로서 바로 그 감정때문에 우리는 여러가지 일을, 정말 여러가지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주 작게 보자면 나 혼자 살면 내방이 그보다 더 어지러워도 그냥 그러려니 할 사람도 집에 아이가 있으면 위험한 물건이 바닥에 있지는 않은지 아이가 내가 게으른 모습을 보고 게으름을 배우지 않는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커지면 어른들은 아이들을 위해 좋은 세상을 꿈꾸게 됩니다. 자라나는 아이들만은 좋은 세상에 살게 해주겠다는 생각이 세상을 바꿔갑니다. 


또한 결국 아이가 있어야 지역경제가 활성화 됩니다. 노인만 있고 아이가 없는 지역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필요한게 훨씬 적습니다. 단순히 학원같은 것만이 아니라 아이가 있어야 외식산업도 발달하고 의류산업도 발달합니다. 맥도널드 같은 곳이 장난감을 주면서 아이를 유혹하는 이유는 아이가 결국 외식산업을 지배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아이를 걱정하기 때문에 이 세상은 복잡해 집니다. 내가 걱정하는 사람이 없다면 동네가 싸구려 술집으로 채워지고 더럽고 위험해져도 어른들은 그저 그려려니 할 뿐입니다. 


부모와 아이는 서로를 키운다. 


또하나 중요하면서도 잊혀지고 착각되어지고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것은 아이와 부모의 관계는 부모가 아이를 일방적으로 키우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이가 있음으로해서 부모는 어른 세대는 아이에게 뭘 가르쳐야 하는지, 여러가지 인생의 문제에 대해 뭐라고 답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이가 있음으로해서 어른들은 인생을 짧은 시야와 좁은 시야로 보는게 아니라 인생을 통째로 조망하고 세계를 통째로 조망하는 그런 시야로 보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아이는 어른을 키웁니다. 


예를 들어 동료나 주변사람들과의 경쟁에 미친듯이 몰두하는 어른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가 자신의 직장생활에 빠져있다보면 세상은 모두 적이고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빼앗기는 사람이 바보라고 끝없이 자신에게 말할 법합니다. 그러나 그런 어른이라고 할지라도 아이앞에 서서 그렇게 말하는 법은 없습니다. 


보다 정확히 말해 어른들은 아이앞에서 자신의 좁아져만 가는 경험의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배우게 됩니다. 나아가 바로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사회의 도덕적 윤리적 수준은 유지되는 것입니다. 만약 30살이 넘은 어른들만 세상에 존재하고 그들이 모두 불임이 되는 세상이 있다면 그 세계는 단숨에 지옥으로 변할 것입니다. 아이가 있기 때문에 세상은 지켜지고 있는 면이 있습니다. 세계어디를 가던 아이의 소중함에 대한 감정은 보편적입니다. 


어른은 아이를 가르칩니다. 뭘 가르칠 것인가. 바로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가르치고 아이들이 배우는 것을 보면서 어른은 아이들에게 배웁니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중에 가장 큰 것은 바로 인간은 매우 유년기가 길다는 사실입니다. 성년으로 자라나는데 수십년이 걸립니다. 어쩌면 인간이 유년기가 긴것은 아이가 자라나야할 시간이 필요한 때문도 있지만 어른을 키우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제가 보기에 인간은 통상 두번 탄생합니다. 인간은 아이로서 성장하고 다시 아이를 키우는 어른으로서 재탄생하여 다시 배우고 성장합니다. 이 성장과 재탄생의 순환이 없었다면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전혀 다른 문명을 발달시켜내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책임을 질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인간은 무언가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무언가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없을 때 인생은 의미를 잃고 특히 미래가 열려있지 않고 어느정도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어른의 경우 우울증을 동반한 무의미의 습격을 받게 됩니다. 이 세상 모두가 우리를 사랑한다고 해도 우리 스스로 나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행복할수 없습니다. 


내 아이이건 우리 지역의 새 세대이거나 우리 민족의 새로운 세대이건 어린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그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는 것은 어른들이 세상을 살아갈 의미를 제공해 주는 중요한 근원이 됩니다. 백년후에나 50년후에나 쓸모있을 나무심기를 한다는 것은 물론 후에 살아갈 세대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그런일을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일에 대해 의미를 느끼게 해주는 일입니다. 백년뒤의 아이가 지금의 어른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종교의 시작은 죽음이라고 합니다. 적어도 동양은 아이를 통해서 죽음이 주는 허무를 극복해 왔습니다. 우리의 삶은 미래 세대를 통해서 영원히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요즘 많은 노인들이 자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물론 생활고도 있을것입니다만 그 근원은 외로움과 자신의 존재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허무함에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역시 결국 어느정도는 아이와의 관계가 끊어진 어른이 겪는 문제입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초롱초롱한 아이의 눈망울을 느끼는 어른이라면 어지간해서는 외로움과 허무에 빠져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없어서는 안되는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강합니다. 쉽사리 죽지 않습니다. 


맺는 말


이렇게 아이들은 어른들의 희망입니다. 그들이 언젠가 미래에 좋은 세상 만들어주겠지가 아니라 당장 어른을 지켜주고 키워주고 삶에 의미를 주는 존재들입니다. 아이와 어른이라는 두개의 축으로 이뤄진 생의 순환은 인간을 동물이상으로 키워준, 인간존재의 소중한 핵심입니다.


그러나 그런 순환이 현대사회에서 망가지고 말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많은 어른들은 아이들을 그저 자기들이 키워주는 존재로만 생각하며 아이를 키우는 것을 하기 싫은 의무를 다하는 것, 일종의 적선을 하는 것처럼 느낍니다. 종종 가능하면 아이따위는 키우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가 제시하는 싸구려 욕망에 몸을 던지고 마치 천년 만년 영원히 그렇게 살 것처럼 생의 순환에서 자신을 끊어냅니다. 


그렇게 될때 먼저 공동체가 무너집니다. 사회적 윤리가 무너집니다. 그리고 경제도 무너집니다. 어느 동네에 갔더니 거기에는 도서관과 좋은 찻집과 서점과 극장과 아동용 옷집이 있는데 그 옆동네에 갔더니 거기에는 여자 나오는 술집이나 퇴폐다방만 즐비하더라고 하면 어디가 죽어가는 마을인가는 분명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어른이 그 과정이 자기 스스로를 키우는 과정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그저 교육비만 내면 그걸로 내 할일, 내 의무는 다한것이다라는 식으로 생각할때 교육은 당연히 망가지고 어른들도 망가집니다. 어른들은 그저 좁디 좁은 자기의 계곡속으로 점점 더 깊숙히 빠져들어가서는 눈도 귀도 막힌 사람이 됩니다. 무엇보다 자기가 그런 줄도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어른은 아이라는 수호천사가 없이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생의 순환이 있어야 완전해 집니다. 


한국은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전세계 최저의 출산율입니다. 이왕에 있는 아이들에게도 뭘가르치는가를 보면 정말 열심히 뭐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더라라는 것에 대해 고민해보고 가르치고 있는것같지 않습니다. 많은 어른들은 티브이 광고에 나오는 말을 반복하거나 자신의 공포를 아이들에게 뒤집어 씌웁니다. 어린 학생이 나는 커서 결혼은 안할거라던가 나는 절대로 아이는 낳지 않을거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저는 슬픕니다. 그건 생명의 한종으로 말하면 멸종하는 종에게서 나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희망입니다. 그걸 잊지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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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거부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가 되는것은 당연합니다.
그것이 당연한거지. 여기에서 결혼을 하고 애를 낳는것은 당연한것이 아닙니다.
한국의 근본문제는 나없는 내인생이며 대륙과 소통하지 않고 돌산에 갇혀있을때는 그것조차 몰랐습니다.
그러나 인터넷과 여행의 발달로 진정한 파워를 맛본 지금은 그 상황이 달려졌습니다.
쉽게 말해서 한국산 누렁이와 독일산 세퍼트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겠는가의 문제입니다.
쿨해져야 합니다. 냉정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제가 취미로 하는 역도만 하더라도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한국식 음식가지고는 도저히 취미정도의 역도도 수행못합니다.
쓰러집니다.
한국은 자연환경의 특성상 풍토의 특성상 에너지가 없어도 너무 없습니다. 인정할것은 인정해야합니다.
이러한 곳에서 결혼을 장려하고 애를 낳기를 장려하는 모습도 웃깁니다.
다들 느끼지 않습니까
술만 들어가면 군시절 욕
술만 들어가면 회사욕
그거 왜하죠?
쓰레기도 그만큼 쓰레기가 없다는것을 아니까
나없는 내인생을 사는것을 아니까
그토록 밤새도록 술을 퍼마시며 자위하는것아닙니까
격암님께서 그러한 말을 하는것은 멸종단계의 종이 하는말 이라고 했는데
맞습니다. 그래서 그런말 하는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제 기억도 그렇지만 2살 3살배기때 한국 음식주면 고개를 젖고 먹지 않을려고 합니다.
어머니는 억지로 먹이죠.
이게 말이되는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즉 태어난 아이도 아는거에요.
여기가 에너지가 없는 쓰레기라고.
냉정하게 생각해야합니다.
이것은 비난이 아닙니다.
왜 대륙인들이 이 땅을 수천년동안 내버려뒀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야합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 결혼을 거부하는 사회
당연합니다.
살고자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이니까
누렁이보다는 세파트를 선택하고자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이니까.
글쎄요, 나름의 경험과 지식에서 말씀하시는 것이겠지만 제게는 너무 비약이 심하게 느껴져서 당황스럽군요. 음식에 에너지가 없다던가 이땅이 가치가 없어서 대륙인들에 의해 버려졌던 것이라던가 하는 이야기는 자기비하적으로 들립니다. 저는 한국이라는 공동체, 한국의 문화에 대해 아직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산적하지만 따지고 보면 세계에 이정도 희망이라도 품게해주는 나라도 별로 없다고 느끼며 그게 세계를 돌아본 저의 소감이기도 합니다.
30대 초반의 애독자입니다. 저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를 닮은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부모로서 해보는 경험이 특별한 경험이라는 격암님 말씀에도 수긍이 가네요.

하지만 이 나이까지 대강 한국사회에서 소위 범생이 코스로 낙오되지 않고 살아온 제가 애를 갖지 않기로 느낀 바가 있습니다. 물려받은 재산이나 부모의 배경이 없는 이상 기업들은 사람을 쓰고버리는 자원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상황이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내 자식이 특출하지 않은 평범한 아이일 때 지옥도의 아귀다툼을 벌이지 않으면 평생 존재 자체가 거부당하거나 하등취급 당할까봐 버둥거리며 살아야할 모습이 뻔히 보이니까요.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캐치 프레이즈가 참 와닿더군요. 근로자들의 금전적인 면과 여가시간 모두를 착취하는 지금의 노동관행과 대기업 위주의 경제생태계 구조에서는 노동력밖에 팔게 없는 이는 가족이나 친구와의 정서적인 풍요로움도 깊이있는 성찰도 대도시가 아닌 다양한 형태의 생활도 어려우니까요.

물론 일본처럼 우리나라도 거품이 꺼지면서 물신주의가 거치고 소박하고 좀 더 개인을 존중하게 되겠지만 일본보다 더 괜찮은 모습이 되지 못할 것 같네요.

말씀대로 서구사회의 200년 동안의 성장을 50년만에 단축해서 하다보니 세대간에 인식의 격차가 너무 심합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한국사회의 방향이 제가 생각하는 나아가야 하는 방향과 너무 다른데 참람되기는 하지만 그들은 숫자가 너무 많고 또 앞으로도 오래 살텐데 민주사회에서 누가 나서더라도 급격한 변화를 바라는 건 무리라고 봅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에 성공한 이후의 폭주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겪고나서야 박살이 난 것처럼 우리나라도 그런 경험이 있기 전에는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네요. 그리고 인구구조적으로도 소국에 불과하고 이미 통일과 서비스산업으로의 혁신의 기회였던 기회를 잃어버린 지금 노동자들을 채찍질해가며 중국의 무서운 추격을 따돌리기는 우리나라 제조업 제품들은 철학이 없어서 쉽지 않을 것 같고요.

그나마 제 세대는 부모님들의 헌신과 윗 세대들의 피땀으로 이룬 번영의 과실을 맛봤지만 뻔히 쇠락하는 나라의 부담만 많은 세대가 되라고 자식을 낳고 싶지 않네요. 홍콩은 아시아의 관문이고 매력적인 도시이지만 그곳의 출산률은 세계 최저더군요. 내륙으로부터 끊임없이 유입되는 닭장에서 사는 저임금노동자로 인해 화려하게 유지되고 있죠. 그래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이주노동자에 대해서 더 개방할 것을 요구하는 상황인 것을 보면 그런 미래를 꿈꾸나 봅니다.

하지만 사람을 쓰다버리는 자원으로 취급하는 이런 사회는 도태되서 멸종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도저히 지속가능한 사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우선 제가 위에서 쓴 글은 일반론입니다. 개인의 선택과는 다른문제죠. 예를 들어 아침마다 산책하거나 역기를 드는 일이 몸에 좋은 일이 일반론적으로 맞다고 해도 어떤 특정개인에게 있어서 반드시 그 일반론이 옳아야할 이유는 없지요. 그사람의 사정이란게 있으니까요. 결국 일반론은 무시하지 말아야하지만 자신이 선택하고 살아야 하지요. 그래서 아이의 소중함을 말했지만 나는 결혼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사람들의 선택이 반드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그의 입장에서 그의 선택을 한것이겠지요.

두번째는 희망에 대한 것입니다만 지식과 논리에 의해 미래를 본 사람은 반드시 절망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즉 이러저러하므로 결국 끝에 가면 망한다라고 결론이 나온다는 거지요. 예를 들어 우리는 결국 장기적으로 보면 죽고 없어지니까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한국의 현실도 한국의 있을 법한 미래도 별로 그리 아름답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예측에 의해 그게 아름답게 나온다거나 혹은 추악하게 나온다거나 하는 이유로 우리가 희망을 가지거나 절망해야 하는 것은 아닌것같습니다. 저라고 그런 전망에 기뻐하거나 절망하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사실 그 예측들은 다 틀립니다. 어떤 단편적 예측이 설사 맞아들어간다고 해도 내부를 보면 그저 우연일 뿐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모르죠. 우리는 항상 미래를 모르는 불확실성과 함께 삽니다.

아이의 문제로 말해보자면 내가 아이를 낳으면 이러저러하게 힘들고 이러저러한 기쁨이 있을 것이며 장래에 그 아이는 이러저러하게 살게 되고 나는 그와 관련해 이러저러하게 삶의 변화를 겪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혼도 아이를 가지는 문제도 혹은 그 이외의 모든 인생의 선택과 방향틀기도 그 결단의 순간이 되면 그런 생각했던거는 다 잊고 그저 그냥 내키니까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계산해봐야 소용없습니다. 나를 믿고 내 감이 이끄는데로 사는 거지요. 잘되던 못되던.

님이 나는 아이를 낳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옳은 판단일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매우 불합리해 보일지 몰라도 더 많은 희망을 가진때문인지 다른 선택을 합니다. 그것이 틀렸다고 말할수는 없습니다. 미래는 결정된 것이 아니니까요. 한국사회의 미래가 무조건 밝다고만 말하지는 않습니다만 틀렸다고 단정하는 것도 바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직 싸우고 있으니까요.
격암님 긴 말씀 감사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일반론을 이야기해주신 건데 제가 과민하게 받아들였네요. 저도 이런 희망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좀더 좋은 세상을 만들면 그만큼 희망이 늘어나겠지요.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은 작지만 그래도 살아가다보면 변화가 생길 희망은 항상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부모이다 보니 관심있게 보았습니다 ^^
격암님의 시선은 항상 신선해서 머릿속에 산들바람이 부는 느낌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읽고 흔적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정말 동감합니다.
예전에 격암님 자서전에서 봤던 기억이 나는데,
저역시 아이는 선택의 갈림길을 만나게해준 고마운 부모와 같은 존재입니다.

정말 인생은 알수없습니다.
많은 여자들을 만나보고나서 나는 아마 결혼을 못할거같다고 마음을 비우고 있는데, 우연히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된것도 그렇고,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될지 고민되서 육아서를 읽다가, 예전에 묻어버렸던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질문들을 다시하게된것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선택의 갈림길이 있을거라는 것을 부정하고, 인생을 너무 빨리 단정지어 버리기도하고, 선택의 갈림길을 만나게되도, 그순간이 선택의 갈림길인지도 모르고, 기존의 살아오던 방식대로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은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무지에 의한 자만심일 수도 있겠고, 예나 지금이나 먹고사는 문제에 항상 전전긍긍할 수 밖에 없도록, 성공신화에 목매달 수 밖에 없도록 몰아가는 서민들의 불안한 환경 탓일 수도 있겠고, 자라면서 받았던 수많은 상처의 기억때문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가난,독재라는 무거운 멍에를 부모세대가 등에지고 한걸음한걸음씩 나아갔듯이,
저희세대 또한 물질만능주의, 냉소주의,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을 등에지고 한걸음한걸음 나아가다보면,
아이세대에 가서는 조금이나마 더 나은 문화, 환경이 만들어질거라고 믿습니다.



그렇죠. 우리가 뭔가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적어도 대부분 오만입니다. 자기 서있는 자리에서 잘 선택하고 사는 것에 집중하기도 힘든 것이 삶이지요. 그러니까 뭘 꼭해야 한다거나 꼭하지 말아야 한다고 너무 확신하는 것은 대개 좋지 않은 것같습니다.
옙 아이들이 희망인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아요. 동물을 보더라도 새끼 때는 다 귀여운데 이 역시 새끼를 귀엽게 느끼게 하는 회로가 포유류 뇌 안에 프로그래밍되어있는 거 같아요.

봉사활동 중 굳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걸 택한 이유 역시 나이드신 어르신들을 도울 수도 있지만 아이들의 경우에서 제 개인적으로는 더욱 희망을 느끼게 되고 뭐 하나라도 더 해주고픈 마음이 들어서일 거예요.

물론 이제는 제 자식한테 베풀라는 주변의 요청 및 독촉 등이 있지만 뭐... 결혼은 혼자 하나요 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 안 하고 아이 안 낳겠다는 생각을 간간히 할 때 잘못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제 행동을 전체에 확대적용시켰을 때 모두가 아이들 낳지 않으면 곧 인간역사가 끝나기 때문이죠. 이는 전쟁 났을 때 누구나 도망가면 나라가 없어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체에 적용시켰을 때 옳은 일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적용되면 모든 케이스들이 같을 수는 없으니 개인의 사정을 고려해야겠구요.

사람이 성장하는데 있어서 책임질 사람이 생기는 것만큼 좋은 건 없는 것 같아요. 물론 부모가 아이를 온전히 책임질 수는 없겠죠. 아이 옆 수많은 사람들이 아이한테 작고 큰 영향을 줍니다. 제 주변에 있는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좋은 환경에서 컸으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좋은 일도 하시니 그런 님을 알아보는 짝도 만나시게 되겠죠. 말할것도 없이 연애나 결혼을 포함해서 모든 일은 잘해야 좋은 것이지 잘못하면 인생이 고달퍼집니다. 결혼은 특히 그렇죠. 좋은 사람 만나게 되시길 바랍니다.
生에 의무감이니 책임감이니 하는 감정을 무의식적으로라도 가져야 하는 걸까요?
인간으로 태어난이상 본능이니까 어쩔 수 없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자면 격암님 말씀에 공감이 되지만, 과연 인간이라는 개체 유지를 위해서 우리는 그러해야 할까요? 오히려 어떤 문제로 인해 발생하게 된 출산율 저하가 아직 인간으로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우주적인 생의 매커니즘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지구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꼭 '인간만'이어야할까요? 멸종한다라는 것은 과연 좋지 않은 현상인가? 라는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구라는 행성에 어떤 개체의 적정 수의 유지를 추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뭔가 좀 이상하다라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최근 몇 십 년간 과거에 비해 폭팔적인 인구증가로 인해 지구 생태계에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그로인해 인간이 많은 해악을 끼쳐 온 것이 밝혀졌습니다.

인간으로서 아이를 보고 희망을 느끼고 더 나은 삶, 긴 생을 유지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겠으나, 혹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아간다것이 꼭 희망이 없고 절망적으로 볼 문제인가라는 생각에 또 다른 접근을 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지구에서 멸종해간 수많은 종들과 또 나타난 종, 또 나타나고 있는 종, 혹은 나타날 종. 이들이 모두 함께 어우러져 지구에서 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구라는 행성은 좁고 환경또한 그리 쾌적한 조건(영원이라는 개념에 반해)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설혹, 먼 훗날 사회적이든 개인적이든 환경적이든 출산율 저하 문제로 인해 인간이 멸종의 순간에 가까워졌다고 해도 그리 슬퍼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출산율 저하를 왜 자꾸 민족주의적인 문제로 접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만들어낸 '자연스럽다'라는 말이 그런 뜻은 아닐런지? 그런 식으로 보자면 과연 인간만의 영원한 생의 순환이 옳은 것인가? 과도한 이기심은 아닌지 의심됩니다. 과거 인간이 없었든 지구가 더 평화로웠던 건 아니었는지....
글쎄요. 제가 쓴 글에서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중요하다고 썼지만 말씀드렸다시피 그건 일반론이고 꼭 자기 아이가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세대에 대한 사랑도 좋고 꼭 어린 세대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도 되겠죠. 일반론과 개인적 결단의 관계에 대해 여기서 또 길게 쓰고 싶지는 않지만 분명 입장차이는 있습니다.

의무감이나 책임감에 대한 이야기는 한두마디 쓰고 싶습니다만. 이것도 이 단어들에 어떤 의미를 가져다 붙이냐의 문제입니다만 사랑과 관심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자면 결국 피붙이 아이가 아니더라도 물론 어떤 종류의 사랑과 관심과 책임감도 다 중요하고 좋은 것이지요. 궁극적으로 우리는 우주 모든 것에 대해 관심과 책임감을 느껴야 할터이지만 지금 이순간 무엇에 대한 책임감으로 살아가는가에 대한 것은 아무래도 개인차원에서 각자 접근할 문제이기는 합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쉽사리 우주로 날아가고 지구 모든 생명이나 인류애로 비약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됩니다. 다만 너무 비약하지 않는게 좋을 것입니다. 일단은 자기 주변부터 정말 자기가 알고 있는 것부터 제대로 보고 있는가를 생각하면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적당한 관심을 두루 기울인 끝에 시선을 넓힌 것인지 아니면 서둘러 비약한 것인지는 자기가 판단해야 할 일지만 말입니다. 세상을 구하기 전에 일단 자기 자신과 자기 주변의 한두 사람부터 구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시베리아 벌판에서 뛰어놀던 늑대가 동물원에 갇히면 애낳기를 거부하는 상황과 현재의 한국의 상황이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의 삶은 진정적으로 생각하면 힘든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파워를 발현할 공간과 시간이 절대적으로 없는것이 문제입니다.
싸우는 삶이 아닌 노예의 삶이기 때문에 힘든것입니다.
역도는 하고 싶은데 역도할 공간과 시간이 없는것이 문제라는 소리입니다.
역도를 수행할 음식의 파워가 부족한것이 문제입니다.
역도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저도 어릴적에는 이 문제가 비단 한국이 경제적으로 힘들기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경제적으로만 해결되면 이 모든문제가 다 풀릴줄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희망이 없기때문에 그런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게 본질이 아닙니다.
한국인 자체의 인종자체가 누렁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동물이고 동물일뿐입니다.
그저 동물보다 지적으로 뛰어나게 진화된 동물일뿐입니다. 동물의 부분집합니다.
저는 한국의 사람뿐아니라 모든 생물체를 관찰한 결과 다 누렁이와 세파트 사이의 선택이라는것을 알았습니다.
저 대륙과 가로막혀 약질 유전자가 전파되어 온곳이 여기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세파트와 똥을 먹는 누렁이 가운데 뭐를 선택하겠습니까?
세파트를 선택하는것은 동물의 본능입니다. 인간이라고 예외이겠습니까
파워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에 대한 자존감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싸우고 살지 않는 삶이 되었습니다.
싸우지 않으니 삶이 재미가 없습니다.
그저 술이나 퍼먹고 여자나 주무르고 타워팰리스나 가서 처 사는게 목표입니다.
개인이 없습니다.
개인이 없는데 뭐가 되겠습니까?
출산을 거부하고 결혼을 거부하는것은 파워에 대한 동경때문입니다.
그토록 독일차를 선호하는것과 누렁이와 세파트중에 세파트를 선택하는것이 뭐가 다릅니까?
서울대에 쌓아져있는 그 두꺼운 수학책을 선택하는것과 누렁이와 세파트중에 세파트를 선택하는게 뭐가 다르죠?
그게 단지 육이오 때문이고 다까끼 마사오때문이고 국민소득 만불때문입니까?
대륙과 단절되어 돌산으로 쌓여진 에너지제로의 땅떄문입니다.
사람은 잘못없습니다.
환경과 토질이 문제입니다.
저는 대륙에서 싸움을 피해 한반도 돌산에 숨어든 약질 종자의 후손이 한국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비관적인것이 아니라 사실 그 자체입니다.
인간도 동물이기때문에
인간은 신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녀생각님이 나름대로 생각을 쌓아오신 것은 알겠지만 저와는 생각이 너무 다르시군요. 이런 믿음의 문제는 자기를 점검하고 자기를 허물고 열어 재칠 결단을 하는가 마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에 더이상은 제가 언급하는게 의미가 없다고 여겨집니다. 그저 그녀생각님의 생각은 알겠습니다라고 밖에는 할말이 떠오르지 않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