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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암(강국진) 2017. 3. 14. 20:10

막장드라마란 어떤 드라마인가? 어떤 사람들은 등장인물들이 윤리적으로 엉망인 행동을 하는 드라마를 가르켜서 막장드라마라고 부른다.  또는 사람의 머리란 거기가 거기라서인지 많은 한국 드라마에서 계속 반복되는 특징들이 있다. 기억상실이라던가 출생의 비밀이라던가 신분의 차이가 있는 사람들이 만나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그것인데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반복하는 식상한 드라마를 애매하게 가르켜서 막장드라마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같다. 


그러나 막장드라마가 윤리적으로 엉망인 행동을 하는 드라마인 것도 맞고 또 식상한 이야기들을 계속 반복하는 드라마인 것도 대개 맞지만 사실 막장드라마를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잘 못된 것이다. 윤리적으로 엉망인 행동을 하고 식상한 아이디어가 반복되면서도 훌룡한 작품은 있을 수 있다. 어떤 드라마가 막장 드라마가 되는 근원적 이유는 그런 것들이 아니다. 어떤 드라마가 막장드라마가 되는 이유는 그 드라마가 보여주는 세상속에서는 한가지 특정한 규칙이나 가치가 절대적인 것으로 등장해서 종국에는 그 하나의 규칙을 지키기 위해 다른 모든 윤리적 규칙과 가치가 모두 무시되기 때문이다. 즉 윤리적 사고방식내지 가치관이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것이 어떤 드라마를 진정한 막장으로 만든다. 


한국 드라마에서 말하는 그 단 하나의 가치란 종종 혈연을 말한다. 그러니까 드라마는 흔히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어떤 사람이 등장해서는 내가 자식을 위해서는 못할 게 없어라고 외치면서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 범죄적 행위때문에 그 드라마속의 세계는 한정없이 어두워진다. 그런데 내 자식을 위해서라면 못할게 없다라고 외치는 그 사람은 수없는 사람들의 불행을 보면서도, 심지어 자기 자식조차 불행해 지는 것을 보면서도 내가 자식을 위해서는 못할 게 없다고 말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고 고집을 부린다. 대개의 경우 드라마는 이 악의 축이 되는 사람이 죽거나 회개를 하면서 끝이 나는데 어떤 때는 죽어가면서도 나는 그렇게 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죽는다. 즉 자신이 절대로 삼는 그 윤리적 원칙인 '내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한다'라는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설사 반성을 한다고 해도 '적당히 했어야 했는데 정도에서' 멈추곤한다. 아래에서 더 말하겠지만 이것도 나름의 문제가 있다. 


이런 분위기가 깔려 있는 드라마에서는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내 말은 범죄적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도 혈연의 중요성을 상당히 강하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출생의 비밀같은 것이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 줄리가 없지만 그 세계안에서는 거의 언제나 사는 방식을 완전히 뒤집을 이유가 된다. 내가 누구 자식이라는 것이 내 인생을 거의 완벽히 결정하는 느낌이랄까. 비슷하게 어디서 초라하고 소박하게 살던 사람이 알고보니 회장님 손자라고 하면 갑자기 그 사람이 회사에 와서 사장이 된다. 그리고 그 드라마속의 사람들은 이것을 마치 정의가 이룩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나중에 모든 범죄가 들어나도 혈연으로 이어진 자식은  범죄자를 너무 쉽게 용서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결국 혈연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박정희 세계의 핵심에는 반공이 있다. 반공정신은 한국 전쟁의 트라우마가 시작시켰지만 박정희 정권에 의해서 고의적으로 심화되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악몽처럼 현실의 대한민국을 막장드라마로 만들었다. 하나의 드라마가 막장드라마가 되는 구조가 현실에서 정확히 그대로 무한반복되어온 것이다. 


박정희를 추모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은 반공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나머지 다른 모든 가치를 망각해 버린다. 그들은 급기야 법이건 윤리건 혹은 최소한의 인간적 감수성이건 반공을 위해서라면 모든지 희생해도 용서된다고 믿게 된다. 그것은 코페르니쿠스적 가치전도인데 대한민국을 위해서 반공이 있는 게 아니라 반공을 위해서 대한민국이 있다고 해야 할 정도의 맹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반공을 위해서라는 이유를 대면 대한민국에 어떤 깊은 상처를 주는 행위라고 해도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 되는 것이다. 한명의 간첩을 잡기 위해서라면 설사 백명의 무고한 사람이 간첩으로 처벌받아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희생이 된다. 간첩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나를 공격하는 사람은 분명 북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므로 빨갱이고 종북임이 틀림없다. 우리는 열심히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언론을 통제하며 기업을 협박해야 한다. 나는 그래도 된다. 왜냐면 나는 종북을 때려잡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설사 헌법이라고 할지라도 나를 막는다면 그것은 헌법이 종북이기 때문이다. 


막장드라마의 완결은 드라마 안에서가 아니라 드라마 바깥에서 이뤄진다.  앞에서 말한 혈연에 근거한 막장드라마로 돌아가보자. 우리가 그 드라마가 너무 답답하며 그 드라마에 나오는 악역이 매우 답답했다고 하자. 그런데도 우리가 여기서 그럼 혈연이 안 중요하다는 말인가라고 질문하는 것에 그칠 때가 진짜 중요한 순간이다. 그 순간 막장드라마는 스크린 바깥으로 튀어나온다. 당신은 그 스크린 안의 막장드라마에 포섭되고 만다. 혈연이 중요하다고 믿거나 혹은 안중요하다고 믿거나 혹은 그 중간의 어디 중도적 위치에 있겠다고 생각해도 모두 그렇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 답이 뭘까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혈연과는 다른 질문을 던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혈연은 중요한 것인가하는 질문에 대한 최종적인 답이 아니라 이 세상에는 그 질문말고도 물어야 할 가치있는 질문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던지지 않은 질문이 있다. 우리가 지금 가진 질문의 답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또 우리는 한가지 질문에 대해 확고하고 최종적인 답을 얻고서 그 다음에 인생을 살기 시작하거나 다음 질문을 던지게 되지 않는다. 다차원적으로 세상을 본다고 해도 우리는 혈연이 중요한가 아닌가 하는 질문의 최종적 답을 알게 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는 혈연이라는 게 뭔지를 더 풍부하게 이해하게 된다. 삶이란 이렇게 계속 오래된 질문을 새롭게 던지는 것의 연속일 뿐이다. 


만약 박정희를 추종하는 누군가에게 내가 반공이 전부는 아니라고 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들은 십중팔구 나를 종북이라고 부르거나 그럼 당신은 공산주의를 찬성하는가라고 물을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그들은 반공이냐 아니냐하는 질문에만 빠져있다. 그래서 모든 것이 그에 관한 것이며 세상에는 반공주의자와 빨갱이 혹은 종북주의자 두가지 종류의 사람만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수 많은 사람들을 종북으로 부름으로써 사람들을 아주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종북이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들이 광화문을 채울 정도로 많다고 믿는 사람들은 세계에서 그들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반공을 외치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종북이라고 불러서 우리는 뭘 얻게 되었나. 우리가 잘살게 되었나? 경제든 외교든 문화든 교육이든 한국은 다 사면초가의 상태다. 그들이 장악한 한국은 마치 앞밖에 못보는 짐승처럼 행동했다. 우리는 어느새 몇조의 손실이 났다는 뉴스에 둔감해졌고 몇백명이 죽었다고 하는데도 그런가 하는 식으로 반응하는데 익숙해 졌다.  인간성이 파괴된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의 차이는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의 모습을 보면 안다. 단순히 폭력이 문제가 아니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인간이라면 당연한 감수성이 없다. 세월호 피해자들의 부모들에게 폭언과 폭력을 행하는 것이 이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을 끝내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세상을 풍요롭게 보는 법을 다수의 사람들이 익히는 것밖에는 없다. 그렇지 못할 때는 설사 지금의 막장드라마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다수가 된다고 해도 우리는 또다른 막장드라마를 보게 될 것이다. 


촛불집회를 하는 사람들 중에도 결국 폭력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진보를 말하는 사람 중에도 가만히 보면 결국 진보쪽에 서 있을 뿐 진보진영의 박정희에 지나지 않거나 그런 사람을 지지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들도 어떤 하나의 가치와 아이디어에 몰두한다. 온 세상의 문제를 그저 단 한 수에 해결할 수 있다는 사람은 진보건 보수건 어디나 넘쳐난다. 


나는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쓰레기를 줍고 줄을 서는 시민이 우리의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어떤 윤리적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그들은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인간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간이 어때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결국은 감동시켜서 다른 사람들에게 아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구나 하고 생각하게 해주는 사람이 있기에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오직 스스로 생각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만이 희망이다. 그들만이 이 막장드라마를 끝장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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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댓글을 남기는 편은 아니지만, 막장 드라마를 워낙 싫어해서 그런지 몇 번이나 곱씹어 보게 되어서 남깁니다.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어떤 드라마가 막장드라마가 되는 이유는 그 드라마가 보여주는 세상속에서는 한가지 특정한 규칙이나 가치가 절대적인 것으로 등장해서 종국에는 그 하나의 규칙을 지키기 위해 다른 모든 윤리적 규칙과 가치가 모두 무시되기 때문이다."
티비 막장 드라마는 저도 못봅니다.
군 시절 시간 때우기위해 억지로 본 이후에 본적이 없습니다.
김수현식 막장 드라마는 시청 그 자체로 고문이죠.
그 이유로 저는 티비 자체를 안봅니다.
4년마다 올림픽 기초 종목만 봅니다.
요즘은 아이맥이 있어서 티비자체가 전혀 불필요하죠.
소감 감사합니다. 막장드라마 현실에서건 방송에서건 그만 좀 나왔으면 하는데 말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민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회사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박씨같은 경우가 너무 많이 보이다 보니
놀랍지도 않습니다

그저 박씨가 위에 있으니 더 잘 드러나는구나 이 생각뿐

그냥 박씨가 자기네들 사는 모습과 너무 흡사하다 보니 사람들이 더 그런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하나하나 지켜나가야겠죠

그것외에는 인생에 있어서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겠죠.

그렇죠. 역지 사지가 안되는 것이 문제의 대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 다른사이트에서 격암님 글을 보고 눈팅만 하였는데.. (죄송합니다 ㅎㅎ;)
이번 글에는 저도 많은 소회가 있어 답글을 남기네요.

사회가 점점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것 같습니다.
"내가 옳아, 아니면 넌 그릇된거고 (이분법적 사고)"
"내가 제일 소중해, 날 건드리니 아예 쫓아낸다 (세계 최강대국의 VIP)"

'역지사지'

남의 감정과 의견을 경청하고, 나에게 대입해보고
서로를 이해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역지사지의 대화 자체가 안되는 사람들이 지금 삼성동에 많은건 문제)

상생하고 공존할 수 있는 세계가 되기를
지도자들이 잘 이끌어주었으면..


아슬아슬하기는 하고 언제나 문제가 없는 때는 오지 않겠지만 과거는 과거로 남게 될거라고 믿습니다. 누가 현재이고 미래인지 누가 과거인지는 명백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