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격암(강국진) 2021. 3. 19. 09:39

요즘 한국을 말할 때면 빼놓지 않고 언급하게 되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노인들의 높은 자살률과 낮은 출산률이죠. 이 두가지 사실은 물론 그 자체로 충분히 심각한 것입니다만 한국을 한국답게 만드는 것이 뭔가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더욱 의미심장해 보이는 사실들이기도 합니다. 

 

한국을 한국 답게 만드는 것이 그럼 뭘까요? 저는 한국을 가장 한국 답게 만들어왔던 것은 바로 효의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효의 문화야 말로 한국을 지배해 온 강력한 이데올로기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 인간답다라던가 좋다라고 말할 때 그 말은 그 사람이 자식을 아끼는 사람이거나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이라는 뜻일 가능성이 컸었습니다. 적어도 최근까지는 말입니다. 

 

그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뭔지를 알아 내는 한가지 중요한 방법은 바로 드라마의 주제를 살피는 겁니다. 한국 드라마에는 영원히 반복되어온 주제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조부모, 부모, 손자손녀로 이어지는 가족을 그리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그냥 드라마 주제가 엄마라고만 말해도 사람들이 울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 엄마가 세상을 다 불태운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부모에게는 차마 덤빌 수 없다는 금기가 계속 반복되는 것이 한국 드라마이고 특히 막장드라마들이 이렇죠. 이 방면의 좋은 예는 바로 드라마 대장금입니다. 대장금의 주인공 장금이는 그야말로 죽은 부모에 대한 미안함때문에 평생을 피나는 노력을 하면서 삽니다.  

 

어린이쪽은 그럼 어떨까요? 어린이라는 주제는 어느 나라에서나 반칙같은 것이지만 한국은 가족윤리, 효의 윤리와 얽혀서 정말 반칙중의 반칙인 요소입니다. 한국에서는 어린 아이를 울리거나 버리는 일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얼마전에 나왔던 승리호는 이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습니다. 인생에 희망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갑자기 목숨을 던질만큼 적극적으로 변하는 기적은 한국 영화에서는 바로 종종 어린 자식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 영황에서 어른들은 아이에게 구원받고 생의 목적을 얻고는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한국 문화를 간단히 요약하는 한가지 방식은 바로 어린 아이보기에 부끄러워서 열심히 사는 부모와 나이들어 늙어버린 부모를 보며 가슴아파하는 자식들이 서로를 격려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아이를 위해 살고 아이는 부모를 공경하고 책임지는 것이야 말로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기초적인 윤리입니다. 한국은 너무나 가난했던 해방이후의 가난 속에서도 지독한 교육열로 뛰어난 인력을 많이 만들어 냈습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자식을 학원에 보내기 위해서라면 파출부나 식당종업원일을 하는 것도 부끄럽지 않고 과로와 갑질에 시달리며 살아도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참아야 하고, 참을 수 있다는 윤리가 한국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을 해도 자식을 위한 것이라면 부끄럽지 않은 겁니다. 삶의 목적이 똑바로 선다는 뜻에서 이건 아이에게 구원받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한국인들은 한국 문화에 매몰된 나머지 어느 나라나 이건 마찬가지가 아니냐고 하지만 제가 보기엔 한국 같은 나라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국만이 지독한 가난을 탈출하여 선진국이 된 나라가 된 겁니다. 다른 모든 요소가 똑같았다고 해도 그것없이 한국이 성공할 수 있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저는 이 글을 높은 노인 자살율과 낮은 출산율을 말하면서 시작했을까요? 제가 말한 것과 이 사실들을 조합하면 하나의 그림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바로 깨어진 가족이죠. 버림받고 외로운 노인들과 더이상 아이를 만들고 가족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 청년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한국 답게 만들던 어떤 문화가 이토록 큰 도전을 받는다는 말은 어떤 의미로 한국이 지금 정체성 위기에 빠져 있다는 뜻입니다. 한국은 불과 반세기가 조금 넘는 시간동안에 너무 변했습니다. 가족을 위해 살고 죽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냥 각자 삽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족 이야기만 하면 지긋지긋하다고까지 말합니다. 

 

이게 왜 이렇게 되었을까에 대해서는 정말 많은 말을 할 수 있을 것같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아파트의 구조가 지역사회를 파괴하고 가족 문화를 파괴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아파트는 사생활이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여러 세대가 같이 살 수 있는 집이 아닙니다. 그래서 가족관계도 파괴합니다. 누구도 집에 들어오기 싫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이 다 바깥으로 떠돌아다니다가 잠만 자는 것이 아파트입니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닙니다. 그렇기는 커녕 시작도 안되는 거죠. 저는 생각나는대로 몇가지 예를 들 수 있을 뿐입니다. 한국의 빠른 발전자체가 지역사회를 파괴하고 가족을 파괴한 것도 있습니다. 극심한 변화속에서 모든 공동체가 깨어지고 가족이란 굴레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돈이나 보내고 받는 일밖에는 없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러기 아빠, 기러기 엄마죠. 성공해야 하니까, 변하는 세상을 따라가야 하니까라는 이유로 가족인데 돈보내는 기계같이 변한 사례입니다. 사실 지방에서 땅팔아 자식 교육시키고 서울로 보낸 후에도 온갖 후원을 계속했던 노인 세대의 일을 현대에서 더 큰 스케일로 하고 있는 것이 그들입니다. 그 노인 세대는 지금 자살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분들은 한국의 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가족해체에 희생당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지 않고 지금도 미얀마처럼 산다면 상황은 그들에게는 좀 달랐을 수도 있으니까요. 

 

애초에 모순되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교육을 한 것도 문제입니다. 한국이 성공했던 것은 한국인이 한국인이었기 때문이지만 우리가 배운 교육은 거의 다가 서구적인 것이었습니다. 지금 중장년층을 이루는 베이비붐세대는 자기 노후 따위 따지지 않고 손자 손녀 키워주고 김치를 비롯한 반찬을 해다 바치는 부모를 가졌지만 청년시절에는 프랜즈같은 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삶을 배우고 자기는 절대로 같은 일을 자기 자식에게는 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말하자면 자기 부모에게 김치 얻어오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자신은 설혹 자식이 있어도 같은 일을 할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달까요. 이건 모순이죠. 결국 지속가능하지 않은 삶인 겁니다.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자기를 잃어왔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정체성 위기입니다. 물론 정체성이란 변하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겁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것은 그저 자연스러운 변화였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까지 긍정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정체성은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주고 살아갈 방향을 제시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삶이고 바람직한 삶인지를 가르쳐 주죠. 효의 문화는 우리에게 어린이, 청장년 그리고 노인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가르쳐주는 나름 일관성있는 삶의 문화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거의 무너져가는 지금의 우리는 뭘가지고 있습니까? 정체성의 변화라면 사람들이 삶의 목적이나 의미에 대해 보다 자연스러운 답이 있어야 합니다. 효의 문화가 뭔가 다른 지속가능한 가치관으로 대체되어졌어야 합니다. 돈을 많이 벌자는 것도, 엄청난 소비를 해보자는 것도 나름의 답은 될 수 있지만 그런 것은 지속가능한 답도 아니고 그다지 신통한 답도 아니라는 것은 수 많은 사람들이 증언하고 있는 바입니다. 물론 우리는 돈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돈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럼 뭘할 겁니까? 비싼 생선회먹고 비싼 자동차 몰고, 골프치러 다니는 것이 인생의 의미입니까? 돈이 없는 사람은 없는대로 돈이 있는 사람은 있는 사람대로 목적이 없는 삶에 고통받는 일이 한국에 늘어갑니다. 종교시설이 이렇게 번창하는 것은 그때문일겁니다. 

 

지금 이 목적이 없는 삶의 문제, 좋은 사람이 뭔지 모르게 된 세상의 문제가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돈이 많은 부자나라의 국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응답하라 1988같은 것을 보면서 좁은 골목길에 내놓은 평상에 모여앉아서 잡담하는 동네아줌마들을 그리워하고 부러워 합니다. 저때는 이웃이 이웃같았고 저런식으로라면 그대로 늙어죽을 수도 있을 것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지금의 자기삶은 왠지 지속가능하지 않고 여전히 미래를 위해 참고만 있는 것 같은 겁니다. 그러다 어느 날 질문에 부딪힙니다. 나는 좋은 사람일까? 나는 뭘 위해 지금 참고 있는 것일까? 나는 하고 싶은게 있기는 한가? 나는 이제 더이상 젊지도 않은데? 

 

글이 공허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저 개인을 돌아보며 이 글을 마칠까 합니다. 즉 그렇다면 저는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하고 저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저의 정체성은 뭘까요? 저는 다른 무엇보다 저를 공부하는 사람으로 파악합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일도 하고 가사일도 돕지만 공부하고 글쓰는 일이야 말로 저에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뭘 공부하는가? 저에겐 오래된 질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답을 찾고 싶어서 젊어서 부터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블로그를 해왔습니다.  이 블로그는 제가 오래전부터 지어온 집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그 공부는 그다지 돈이 드는 일이 아니라서 큰 돈이 없어도 계속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저에게 있어서 생산적인 삶과 좋은 사람이란 공부에 진전이 있는 삶이며 공부를 꾸준히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 공부가 저 개인의 공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뭔가가 나오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 공간에서 위안이나 도움을 받는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래서 참 기쁩니다.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닙니다. 저는 한국 사람이라선지 효의 문화를 저의 중요한 정체성의 일부로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저의 가족들과 함께 잘 사는 것이 저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우선은 양가의 부모님들이 조금이라도 덜 불편한 노후를 보내시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저는 효자가 되고 싶습니다. 나를 따라다니다 보니 아무래도 나에게 휘둘리게 되는 아내의 삶이 견딜만한 것이 되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저는 좋은 남편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아이들이 비교적 덜 아프게 즐거운 자기 삶을 찾아가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저는 좋은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공부와 가족, 대단한 결론은 아닙니다만 이런 것들이 제 삶의 의미를 구성하는 것들이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언젠가 누군가가 저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공부를 하고 책을 읽어서 더 행복해졌냐고. 저는 확실히 더 행복해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는 것에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럽게 생각하며 오늘도 나를 지키기 위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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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한 아파트 그만좀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죠. 하지만 엄청 지었기 때문에 이제는 사람에게 집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아파트에 맞춰살아야 할 나라가 되었습니다. 적어도 대도시는 말이죠.
오늘도 생각의 물꼬를 티워주는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잘 읽었습니다.
소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네 소감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