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격암(강국진) 2021. 4. 13. 11:35

최근 김제동과 서장훈이 강연에서 한 말들을 비교하는 기사가 있었다. 김제동은 즐기는 자를 노력하는 자가 이기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고 서장훈은 그런 말은 다 뻥이며 인생은 전쟁이라고 말하고 있었기에 표면적으로 두 개의 조언은 극명히 갈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댓글에서는 김제동의 말은 듣기만 좋지 사실 서장훈이 하는 말이 옳다고 하는 의견이 더 많아 보이지만 과연 누가 옳을까? 이도 저도 아니면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옳을까?

 

물론 모든 말은 미리 의도한 문맥을 벗어나면 엉터리가 된다. 유명한 예가 바로 성경에도 하나님이 없다고 써져있다는 말인데 어디인지는 잊었으나 성경에는 도둑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없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도둑의 마음속을 빼면 성경에도 하나님이 없다는 말이 있다는 주장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예만 봐도 의미를 따지는 것에 있어서 문맥이라는 것이 얼마나 긴밀하게 관련을 가지는가를 알 수 있다. 

 

인생은 즐기는 거라는 김제동과 인생은 전쟁이라는 서장훈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리는 김제동은 그저 즐기면서 행복하게 살아왔고 서장훈은 피나는 노력끝에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는 결론을 내리기 쉽다. 그런데 고통은 객관적이지 않기 때문에 두 사람의 노력과 고통을 비교하는 것은 제한적 의미만 있는 것이지만 과연 그럴까?

 

우연히도 1974년 동갑인 이 두 사람중에서 서장훈은 그 큰 키를 포함하는 재능으로 10대때부터 이미 주목받고 일찌감치 인기와 돈을 차지한 인생을 살았다. 물론 노력도 많이 했지만 말이다. 누구의 인생에 고통이 없으랴만은 적어도 가난과 무시라는 측면을 생각하면 서장훈은 자기가 가난했던 시절이나 무시당했던 시절을 기억도 못할 것이다. 아버지도 국내대기업의 이사를 역임했다고 하고 유명 운동선수가 모두 서장훈처럼 돈을 많이 가지게 된 것은 아닌데 나름 재태크에도 성공한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이게 서장훈이 말한 전쟁같은 인생이다. 나는 결코 서장훈의 노력을 폄하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이게 서장훈의 인생이라는 것이다. 

 

김제동은 5녀1남의 집안에서 막내로 태어났는데 태어난지 백일만에 아버지가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당연히 집은 매우 가난했다. 김제동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누나들은 학업을 포기하고 공장에서 일을 했던 그런 집안이었다. 그는 2년제 전문대학교인 계명전문대학의 관광학과를 매우 저조한 성적을 받으며 무려 11년만에 졸업했다. 이는 그가 딴 일에 신경쓴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는 20살이 되던 때 군대를 갔고 거기서 사람들을 웃기는 재능을 발견하고 문선대로 들어갔다. 그 이후 레크레이션 강사, 장내 아나운서, 행사 MC같은 것을 하다가 윤도현의 콘서트 진행을 하게 되었고 이를 연줄로 해서 윤도연의 러브레터 보조진행자로 방송인의 길을 걷는다. 이때가 그가 30살쯤 되었을 때이다. 이게 김제동의 즐기는 인생이었다. 

 

그렇다면 한번 질문해 보자. 우리의 인생은 김제동과 서장훈 어느 쪽의 인생에 더 가까운가? 내 생각에 답은 대개는 둘 다 아니요다. 정신차려야 한다. 김제동과 서장훈은 둘 다 피나는 노력을 하고 험한 일도 겪었겠지만 사실 매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서 사회적으로 크게 그리고 비교적 일찍 성공한 인생들이다. 서장훈에 비하면 김제동은 험한 길을 걸었다고 하는 쪽이 더 공평할 것이다. 서장훈이 이미 하늘에 뜬 별이었을 때 김제동은 대구에서나 이름이 좀 있는 진행자였고 전문대에 이름만 걸쳐 있는 프리랜서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둘 다 30대가 시작될 무렵에는 고생만 하는 인생과는 거리가 이미 멀었다. 

 

저들은 다 스타이고 재능이 뛰어났으며 재수도 좋았으니 모든 걸 공짜로 얻었다거나 그들에게 배울게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조언이 자기 과시이고 착각이라는 것도 아니다. 이 둘은 모두 진심으로 자기에게 소중했던 조언을 해주려고 하는 것이다. 게다가 인생이란 사실 비교하기 나름이다. 저들은 우리들중의 많은 사람을 부러워해야 하는 불쌍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을 폄하해서 저 뛰어난 사람과 자기 인생을 비교하고 열등감을 느끼라고 하는것이 아니다. 

 

나는 다만 문맥없이 인생을 즐기는 것이라던가 인생은 전쟁이라고 하는 표현에 빠져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인생은 전쟁이고 피나는 노력을 했다는 서장훈은 사실 머리도 좋아서 공부도 잘했다고 한다. 언변이 좋으니 지금 방송인으로도 크게 성공했다. 참으로 풍부한 재능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가 모든 일에 만능의 재능을 가진 인간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자신이 재능없는 일을 하면서 전쟁을 치뤘어도 그게 참을 만한 전쟁이었을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속에서 최선을 다했을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존중해야 하지만 그의 성공은 어느 정도 이재용이 피나는 노력을 해서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와도 비슷한 데가 있는거 아닐까? 

 

인생은 즐기는 것이라는 김제동도 노력없이 부지런함없이 그자리에 갔을까? 뻔한 이야기다. 세상에 그정도의 돈과 명예가 있는 자리에 있으면서 노력도 없이 자기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는 행운아는 없다. 자꾸 주제와 상관없는 이재용을 거론해 미안하지만 이재용도 피나는 노력을 했다라고 주장하면 그건 분명 사실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3류대학을 다니던 김제동은 인생은 즐기는 것이라는 인생관이 없었으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생의 맛은 쓰디쓰니 자기에게 있는 작은 행복을 소중히 여기며 언젠가는 자기에게 올 기회를 기다리며 건강하게 살아가려는 마음가짐을 다져야했을 것이다. 절망하고 남을 원망하며 사는 사람은 건강하지 못해서 결국은 자기를 스스로 망치기 쉽다. 게다가 그는 사람들을 웃기는 것이 특기다. 희극인이나 진행자가 노력을 안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을 치루듯이 산다는 마음가짐으로 진행자를 하면 관객들이 김제동에게 호응을 해주었을까? 그는 한때 힐링캠프라는 프로그램에서 진행을 했었다. 그는 대개 사람들에게 치유를 주는 일을 했던 사람이다. 

 

그들은 엄청난 재능을 타고났고 게다가 복권을 맞은 사람들이다. 노력은 꼭 필요하지만 모든 재능있는자가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특히 사회적으로 유명세를 얻는다는 걸 기준으로 성공을 측정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그들의 조언을 마치 성인의 말씀이나 인류의 고전에 나오는 진리처럼 너무 깊게 들을 필요는 없다. 고전의 말이 오랜동안 깊은 울림을 가지는 것은 보는 폭과 깊이가 남다르기 때문인데 제 아무리 성공한 사람이라고 해도 누구나 그런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장훈과 김제동은 모두 훌룡한 사람들이지만 역시 기본적으로 농구를 잘하는 사람이고 남을 잘 웃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흔한 말이지만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모든 사람이 처한 환경과 입장이 다르다는 뜻이다. 모두가 다른 교차로에 서있는데 수원에 있는 사람도 대구에 있는 사람도 서울로 가려면 우회전을 해야 한다는 조언을 받아서는 곤란하다. 대화는 상대가 있어야 한다. 김제동이 자신의 메세지를 주고 싶었던 사람과 서장훈이 자신의 메세지를 주고 싶었던 사람은 서로 다르다. 

 

세상에는 이미 좋은 말은 차고 넘친다. 도서관에 가면 잔뜩 있다. 그런데 불행히 우리는 유명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같은 말을 해도 김제동이 하고 서장훈이 하면 좀 더 진지하게 듣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그들은 좋은 메세지를 전달해 달라고 요청받는다. 방송국이 그렇게 하라고 하고 여러 단체가 그런 일을 부탁한다. 이건 좋은 일이다. 그들의 선행을 폄하하고 그들의 인생을 폄하할 필요는 없다. 다만 모든 일이 그렇듯 거기에도 한계가 있다. 이들의 메세지가 비교당한다는 기사를 본 김에 생각나는 것을 몇자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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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글은 그것이 발화 (혹은 소비) 될 때의 맥락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라는 이야기가 계속 생각나네요. 오늘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죠. 그런 말입니다. 문구 하나에 매달릴 일은 아닌 거죠.
글 잘 보았습니다.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떠한지를 판단하는게 중요하겠군요.

그리고 글과는 상관없지만,
혹시 네이버 블로그 중에 '빈치 노트' 라고 아시나요?
관찰, 생각법, 소통 등 다양한 주제의 글이 올라오는데
격암님도 보시면 도움 되실 것 같아 추천드립니다...

오늘 하루도 건승하세요~
네 그렇습니다. 소개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주인장은 아니지만, 가끔 황당한 요청들이 보여서 한마디 해보자면
(물론 악의가 아닌, 선의로 하는 요청인 건 충분히 알겠으나)
주인장께서는 불멸의 책, 노벨상 수상자, 뇌, AI 등에 대해 논하실 정도인데
그 수준 미만의 글 또는 영상들은 도대체 왜 추천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상당한 실례 아닙니까?

아무개처럼 블로그 홈페이지 대문짝 광고를 보고 들어온 사람이 아니라
구글에서 과학 관련 검색을 하다가 들어온 사람인데
도대체 대문짝에 어떤 글들이 걸려 있나 일부러 찾아 봤더니 대부분 헛/개소리들에 불과하군요
뭐? 올해? 이달? 대표? 가소롭네요
시답잖은 베스트셀러나 읽는 게 낫겠군요
좋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오랜만에 댓글 남깁니다:-) 항상 그렇듯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무언가 절대적인 존재나 옳음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결국 떨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자기의 본능이나 감정에 따라 직업, 사랑을 바꾸는 것을 비판하거나 어리석다고 할 수 없고 저 또한 오히려 그것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보다는...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한 분야에서 꾸준하게 일가를 이뤄가는 사람들, 열정적인 사랑은 사라졌지만 일상 속에서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향성이 더 맞는 것은 아닌가 하고요... 저는 신을 믿지 않지만 기독교인 친구는 제가 하는 생각들이 매우 기독교적이라고도 말하더라구요. 정말 그런 게 존재하는 걸까요 아니면 제가 그냥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인 걸까요? 정답이 없다는 말이 참 편안하면서도 자기 위안은 아닐까 하고 혼란스러울 때가 있네요.
정답이 없다는 말도 문맥이 필요하죠. 다른 말에는 일관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은 허공에 뜬 성과 같은 것이지만 나름의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말이 곧 자기를 지키고 한 길을 걷는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죠. 정답이 없다는 말이 오늘과 내일간에 아무 관련도 없이 부평초처럼 떠돈다는 말은 아닐 겁니다.
오랜만에 방문했는데, 평소 고민하고 있는 생각이었어요.
너무 마음 편하게 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열심히' 살지않으면 불안해요. 모순적이지만 적당히 불행해야 행복하다는 느낌이요. 결국 생각과 마음이 허할때 여길 방문하게 되네요. 스스로와 대화를 좀 해봐야겠군요.
그렇죠. 그냥 생각을 하는게 아니라 왜 이런 생각이 떠올랐을까 하고 자기와 대화를 하는게 좋다고 봅니다. 산책과 글쓰기가 그럴 땐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