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격암(강국진) 2021. 4. 16. 13:33

공평하게 하자는 말처럼 세상에 흔한 말이 없지만 이 세상에 이 말처럼 어렵고 불가능한 것도 없다. 공평하다라는 것은 애초에 어떤 게임의 법칙을 전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박하나가 만원이고 배 3개가 또 만원이라면 배와 수박을 교환하는 것은 공평하고 공정한 것이 된다. 농구를 한다면 정해진 규격의 공을 써야 하고 양팀이 같은 수의 팀원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공평하고 공정한 것이다. 바둑을 둔다면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한 개의 돌만 놓아야 한다. 

 

그런데 예로 든 이런 게임들은 분명한 경계와 규칙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게임의 시작과 끝이 분명하고 모든 규칙들이 알려져 있으며 누가 그 게임에 참여하는가가 분명하다. 그래서 심판이 갑자기 농구공을 잡고는 한 쪽 골대에 슛을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며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건 분명히 불공정한 일로 여겨지고 그 게임은 무효가 된다. 

 

그런데 현실은 이런 게임들과 어느 정도 비슷할 수 있을 뿐 정확히 같지 않고 대개는 엄청나게 다르다. 다시 말해 그 시작과 끝이 불분명하고 규칙이 뭔지 알 수 없으며 누가 이 게임에 참여하는지도 불확실하다. 그래서 나는 공정한게 뭔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고 위험하다. 그 사람은 이 세상이 이러저러하다는 집착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대개 그 집착은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와 별로 다르지 않고 온 세상을 자기 손끝으로 움직이겠다는 전체주의적 냉혈한을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가족이라는 집단안에서는 자연히 어떤 규칙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부모는 물론 아이들도 각자 자기의 역할을 어느 정도 이해하며 뭐가 허용되는지 뭐가 그렇지 않은지를 대개는 판단할 수 있다. 이것은 가족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임인데 그 규칙에 따라 우리는 누가 공정하지 않은지를 판단한다. 예를 들어 약속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므로 약속을 어긴 아이는 벌을 받아도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부모도 약속을 지켜야 하는데 예를 들어 용돈을 준다던가 생일선물로 뭔가를 주기로 했다면 그런 약속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가정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아이는 부모에게 공경심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부모가 끝없이 폭력과 폭언을 휘두르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각자는 자기의 일이 있다. 돈을 벌어오고 먹을 것을 챙기는 것은 대개 부모의 의무다. 그리고 학업에 집중해야 하는 것은 대개 아이의 의무다. 그 의무를 다 하는 것도 규칙의 일부다. 

 

그런데 이 가족게임은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바둑이나 농구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바둑이나 농구의 규칙은 훨씬 간단할 뿐만 아니라 변하지 않고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가족게임의 규칙은 집집마다 좀 다를 뿐만 아니라 같은 집에서도 같을 수가 없다. 시간에 따라 변한다. 이렇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이 변하기 때문이다. 부부도 나이가 들지만 무엇보다 아이가 자란다. 아이가 2살 때 있었던 규칙이 12살때도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다. 2살짜리 아이가 그릇을 깬다면 어른은 아이가 다칠 것을 걱정하지만 12살짜리가 그렇게 한다면 그 아이는 아마 꾸중을 들을 것이다.  어른들은 나이가 다르면 다른 것을 아이에게 기대하기 때문이다. 바뀌는 것은 물론 나이뿐만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사를 간다거나 해서 가족을 둘러싼 사회환경이 달라질 수 있고 그 가족이 더 가난해 지거나 훨씬 더 부유해질지도 모른다. 아이도 진학을 하겠지만 부모의 직장에서의 상황이 달라져서 부모는 다른 생활방식을 택해야 할 수 있다. 보다 극적인 예는 부모가 이혼을 하거나 가정폭력에 대해서 사회가 개입하는 경우다. 그러면 단단해 보이고 변할 것같지 않던 게임은 전혀 달라지게 된다. 

 

이렇게 말하면 가족의 규칙같은 것은 존재할 수가 없는 것같지만 그래도 우리는 규칙이 필요하고 대개는 서로에게 그 규칙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만약 정말 아무 규칙과 기준이 없다면 우리는 공평하다는 말을 전혀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는 사람들이 모여서 살 수가 없다. 하다못해 가장의 명령에 절대복종한다는 가부장적 규칙이라도 있는 것이 진정으로 아무 규칙도 없는 것보다는 좋다. 그러므로 우리는 규칙을 정하고 그것을 지키면서 가족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가족게임을 농구나 바둑같이 고정되어 있는 게임과 똑같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 캔음료가 나온다. 그것이 자판기 게임의 법칙이다. 만약 돈을 넣었는데도 캔이 나오지 않으면 우리는 분노하고 항의하게된다. 이건 매우 불공정하다고만 생각한다. 왜냐면 자판기게임의 규칙상 그것은 분명히 불공정하기 때문이다. 

 

이걸 가족안에서 생각하면 나는 모든 걸 다 해줬는데 왜 아이가 이정도 밖에 성적이 안나오냐고 항의하는 식이 된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반에서 1등했는데 왜 부모는 나에게 내가 원하는 걸 안해주냐고 항의하는 식이 된다. 나는 내 몫을 했으니 가족의 다른 멤버도 자기 몫을 해야 한다. 그것이 공평한 것이다. 나는 내 몫의 의무라는 코인을 집어넣었으니 보상이라는 캔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애초에 정당한 자기몫의 일이란 누가 정하는 것인가? 나는 공부를 하니 밥하기와 설거지는 본래 부모 몫이라는 생각은 옳은 것인가? 

 

모든 사회적 집단에서는 비슷한 문제가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만났을 때 공평한게 뭔지는 절대 확실하지 않다. 두 사람이 만났는데 한 사람은 축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미식축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싸움이 날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그런 바보같은 실수를 우리가 왜 하냐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이런 실수는 아주 아주 보편적이라 사실상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아주 기계적이고 단순한 게임의 법칙을 도입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는 평등하고 뭐든지 똑같은 책임을 진다는 식의 규칙을 도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게임은 그 규칙이 명백한 만큼 생각만큼 의미가 없다. 현실성이 없고 효용성이 없다. 우리는 대개 훨씬 더 복잡한 사회게임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친구게임이나 연인게임을 생각해 보자. 친구란 서로에게 어느 정도의 책임을 져야 하고 어느 정도까지 상대방에게 간섭할 수 있는 것일까? 연인이라면 어떤가? 친구란 무엇이고 연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정말 우리는 평등하고 똑같이 책임을 진다같은 단순한 말로 답해질 수 있는가? 여러분도 친구를 가져본 적이 있고 연애를 해본 적이 있으며 어쩌면 결혼도 해봤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자신의 경험을 다시 돌이켜 보라. 수십년 친구나 수십년 결혼관계에 있는 사람도 친구나 배우자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정확히 같은 의견을 가지지 못한다. 

 

뭐가 이렇게 복잡하냐면서 친구는 이거고 배우자는 이거라고 단순명쾌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남의 아픔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규칙을 그냥 보편적이며 당연한거라고 주장하면서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앞에서 말한 바보같은 실수를 크게 저지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상대방의 결혼게임이 전혀 다른 거라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므로 적어도 상대방의 기준으로는 지금 매우 불공평하고 불공정한 일을 마구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제 국가라는 무대로 펼쳐지는 국가게임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1인 1표의 투표권같은 기본적인 규칙을 알고 있다. 하지만 국가란 무엇인가같은 질문은 주권은 국민에게 나오며 국민은 평등하고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진다같은 단순한 게임규칙으로 답해 질 수 없다. 적어도 정말 국민평등같은 것이 어느 정도 지켜지는 고도의 발달된 국가라면 말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시민들이 투표권을 가지고 정치적으로 원하는 것이 있으면 여자는 여자대로 노동자는 노동자대로 기업가는 기업가대로 각자의 원하는 것을 자유로히 추구하면 모든 것이 순조로히 흘러가는 그런 게임인가? 그건 마치 우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저 두 사람이 평등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정도의 것으로는 아무 것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실제로는 우리는 정교한 문화가 필요하고 그걸 계속 수정해야 하며 국가의 기본을 이루는 사회적 인프라도 있어야 한다. 국가라는 게임은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게임이며 택배나 수도물공급같은 그것의 아주 작은 부분만 봐도 이미 너무 복잡하다. 

 

이런 게임에서 공평하다는 게 뭘까? 어떤 의미에서는 아무 것도 공평하지 않다. 남자는 군대에 가고 여자는 군대에 가지 않는다. 이건 당연히 불공평하다. 하지만 여자가 군대에 간다고 그게 공평한 것도 아니다. 모든 남자가 군대에 가는 것은 왜 공평한가? 사실 BTS 같은 사람들이 전성기때 군대에 가는 것이 어느 정도의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하면 모든 남자가 같은 기간동안 군대에 가는 것이 공평할 수가 없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키가 2미터인 사람과 1미터인 사람에게 같은 옷을 주고 공평하다고 말하지는 않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고 BTS가 군대 안가는 것이 공평한 것도 아니다.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는 공평함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착각도 많다. 공평이란 아름다운 사회적 법칙을 찾는 것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다. 법률을 누더기로 만들면서 복잡하게 해서 그 공평에 도달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공평이란 사실 우리들 마음속에만 있는 것이다. 현실은 언제나 불공평하다. 그런데도 세상이 그럭저럭 흘러가는 것은 한가지 이상의 이유가 있지만 그중의 중요한 한가지는 사람들이 서로를 둘러보고 챙기기 때문이다. 

 

아이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아빠는 생활비를 벌어오는 것이 가족게임의 규칙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서로를 동전을 넣으면 캔을 내놓게 되어 있는 자판기처럼 바라봐서는 곤란하다. 그게 공평하다는 생각에 너무 빠져서는 안된다. 아이는 공부를 안할 수도 있다. 아빠는 생활비를 벌지 않을 수도 있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야할 부모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을 수도 있다. 

 

모두가 이건 내 권리라면서 나는 내 의무를 다했으니 캔을 내놓으라고 외치는 사회가 정상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예를 들어 결혼생활이란 사실 서로가 다 억울한 것이다. 자상한 사람들은 그나마 조금 덜하지만 그래봐야 우리는 서로를 정말로 다 알 수가 없다. 남편보고 일찍 오라고 해서 일찍 왔다고 할 때 그 남편이 뭘 포기하고 왔는지 아내는 다 알 수가 없다. 아내보고 이번 주말에는 친구를 초대하자고 할 때 아내가 정말 뭘 희생하고 있는지를 남편은 다 알 수가 없다. 그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결혼생활이란 그래서 아내와 남편이 각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공평한 관계가 되도록 여러가지 규칙을 정하고 그걸 실천해서 굴러가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것이 필요하고 그런 노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기본적인 것은 불공평하지만 설사 배우자라고 해도 내 사정을 다 알 수는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서로를 챙기는 마음이 있으니까 결혼이 굴러가는 것이다. 불공평하지만 오히려 거꾸로 감사한 마음으로 사니까 결혼이 굴러가는 것이다. 공평한 관계? 도대체 뭐가 공평하다는 것인가. 따지기 시작하면 다 억울하다. 

 

결혼만 그런게 아니다. 우리는 공평을 추구해야 한다. 하지만 공평이란 말은 사실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이며 추상적 관념이고 도구다. 그 말을 쓰면서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서로가 서로를 챙겨주고 관심을 두자는 말일 뿐이다. 굶는 사람은 없는지 너무 아픈 사람, 너무 재수없고 소외된 사람은 없는지 신경쓰자는 말이다. 이미 그렇게 살 수 있다면 공평이건 불공평이건 신경 쓸 것이 없다. 그게 뭔지 아무도 모르니까, 그건 도구일 뿐이니까. 부모 자식간의 관계도 공평함이 필요하지만 한편으로 부자관계가 공평하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헛소리이기도 하다.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그렇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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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공정/공평이 화두 였었고 지금도 화두인데..
생각의 Baseline 이 되는 지점을 글로 잘 짚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소감 감사합니다. 제 글은 저도 읽습니다만 아무래도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으면 더 보람이 느껴지지요.
선의로 포장된 길은 지옥으로 통한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그렇죠. 악덕사장들이 자주 하는 말이 나 아니면 이 직원들 다 굶는다는 거죠. 그러니까 착취를 하는게 아니라 선행을 베풀고 있다는 것이니 오히려 자기가 불공평하게 양보하고 있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