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글쓰기/책 이야기

격암(강국진) 2021. 9. 15. 02:54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를 읽었다. 데우스는 신을 말하며 하라리는 이 책에서 호모 사피엔스는 멸종하고 우리 중 일부만이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 호모 데우스가 되는 미래를 이야기한다. 

 

 

 

 

인간이란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할까? 우리가 인간이하라던가 인간을 넘어 신이 된다는 날이 온다고 말하려면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할 필요가 있다. 인본주의가 상식이 된 오늘날 우리는 인간은 이성이나 언어적 능력을 가졌기에 우리가 동물 이상이라고 말하는 것에 익숙하다. 이런 말에 따르면 인간이란 이성을 가지고 언어적 능력을 가진 존재를 말한다. 그렇기에 인간은 동물과는 다른 존재가 되어서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 우리는 인간보다 훨씬 무거운 코끼리나 훨씬 귀여운 개에게는 재산권이나 투표권을 허용하지 않고 오직 인간만이 답을 안다고 생각해 인간에게만 그것을 허용한다. 

 

반면에 온갖 티비 프로그램이며 책에서 심리학자들이나 경제학자들이 인간의 마음을 연구한 결과를 쏟아내는 것이 오늘날이기도 하다. 행동경제학으로 노벨상을 받은 카네만같은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마음은 모순에 차있고 합리적이지 않다. 인간은 속기 쉽고 무의식의 지배를 받으며 특히 통계적인 일을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21세기에도 인간의 DNA는 수만년전에 수렵채집인이었던 때와 그다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초원을 작은 무리의 동료들과 떠돌 때와 그리 다르지 않은 현대인의 유전자는 21세기의 문명이 만들어 낸 사회적 환경이 낯설다. 그때는 핵폭탄이 없었고 주식도 없었으며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면 수십억명이 그걸 듣지도 않았다. 슈퍼에 먹을 것이 산처럼 쌓여있지도 않았다. 그때 만들어진 인간의 원초적 감정이 현대사회에서 제대로 작동할리가 없다. 

 

우리가 이런 말을 들으면 이제 우리는 그런 허잡하고 한계가 분명한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가 금방 등장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인간이 만든 도구가 인간 이상의 능력을 가지는 일에 우리는 익숙하다. 우리는 계산기만큼 빨리 계산하지 못하고, 자동차 만큼 빨리 달리지 못하며 비행기처럼 하늘을 날지도 못한다. 그렇게 보면 인류의 역사는 온갖 도구들이 발명되어질 때마다 슈퍼인간을 만들어왔던 일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다. 돌칼을 만들어 냈을 때 인간은 거대한 어금니를 가진 동물처럼 변했고, 불을 쓰게 되었을 때 인간은 추위를 이기고 다른 동물을 쫒고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다른 어떤 무엇보다 인간을 강하게 만든 것은 기록하는 문자를 만든 일이었다. 기록을 통해 특히 문자를 통해 인간의 기억력은 엄청나게 증대했고 대제국을 만들어 지구를 정복할 정도로 복잡하게 언어를 발달시켰다. 

 

하라리는 7만년전에 인지대혁명이라는 것이 있었음에 틀림없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본래 다른 동물과는 달리 추상적인 관념이나 서로간의 관계에 대한 가상의 허구를 만들고 그것을 믿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인간은 동물과는 달라졌다. 인지혁명은 1만 5천년전의 농업혁명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다시 5천년전의 문자와 돈의 발명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17세기의 과학혁명으로 역사는 이어져서 인간은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으로 보는 인본주의를 믿게 되었다. 

 

본래 인간은 스스로를 동물과 그리 다르게 보지 않았는데 이러한 애니미즘의 단계에서 세상은 모두 인간과 그리 다르지 않은 존재다. 사실 서구와는 달리 동양은 윤회를 하면 인간이 벌레나 동물로 태어나기도 한다고 믿었다. 즉 모든 세상의 존재와 인간이 서로 뒤섞이는 존재라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사회적 능력이 분명히 인간무리가 동물무리와 다르다는 것을 거듭 느끼게 해줌에 따라 인간은 스스로 신을 만들고 인간은 신에 의해 특별하게 만들어진 존재라고 믿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도 한걸음 더 나아가게 되자 이제 인간은 신도 죽었다고 선언하고 인간이야 말로 귀하고 이 우주의 비밀을 알고 있는 존재라고 부르짓는 종교를 가지게 되었다. 인본주의 혹은 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이 종교에 따르면 진리는 우리 개인들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마음을 차분히 하고 자기를 탐구하면 그 마음이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준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인간이 귀하고 평등하다고 말하고 투표에 의해 지도자를 뽑고 오직 인간만이 재산권이나 투표권을 가지도록 한다. 오늘날 인종차별이나 여성차별이 사회적 금기가 되는 것은 그들이 모두 인간이라는 사실때문이다. 인간은 모두 성스럽고 귀하며 자유로워야 한다. 

 

그런데 문명의 발달로 등장한 인본주의, 지난 3백년간 세상의 상식이었다는 이 종교는 이제 문명의 발달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있다. 하라리가 이 책에서 말하는 것중에서 가장 강조하는 메세지가 바로 이 인본주의가 기독교나 어떤 형이상학적 체계처럼 하나의 이데올로기이고 종교이며 그것이 데이터교라는 새로운 종교로, 새로운 믿음으로 교체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가 10장에서 말하는 또다른 대안인 기술 인본주의는 스스로도 대안으로 여기지 않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사실 과학기술에 빠져지내는 사람들은 이런 소식에 이미 익숙하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인본주의는 워낙 위대한 것이고 당연한 것이므로 이 점을 간단히 말하는 것은 현대의 금기를 어기는 일이고 중세의 유럽인에게 신은 없다라고 단순히 선언해 버리는 어리석은 일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학자로서 하라리는 인류역사에 300년보다 오랜 믿음이 사라진 일은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시대적 금기를 어긴 사람이 순교자가 되는 일도 많았고 공산주의나 나치주의자들이 만든 비극들도 누구보다도 잘 기억하는 하라리는 인본주의의 종말을 말한다는 것이 지극히 민감한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방대한 자료를 내밀고 인간을 초극하는 존재가 등장하는 것이 왜 자연스러운 일이고 가까운 미래에 등장할 일인가를 아주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때문인지 이 책이 만약 데이터교의 전도서였다면 불만족스러운 데가 있다. 이는 마치 신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말하며 과학적 증명을 한참 늘어놓고 마지막에 신은 여러분을 창조하셨고 사랑하십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신을 믿지 않는 과학자처럼 말하는 것이다. 이건 비겁한 신자의 태도다. 제대로된 신자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바로 첫 마디에 신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라고 말하고 그 신에 집중하여 모든 일을 이야기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하라리는 책을 거꾸로 써야 했을 것이다. 책의 맨 마지막에  데이터교를 부실하게 소개하고 유기체는 알고리듬이고 생명체는 데이터처리과정이다라고 말하고서 서둘러 책을 마치는 게 아니라 말이다. 게다가 그는 이 중요한 말에 대해서 그저 요즘 학계에서는 이것이 이미 상식이며 주류입니다라고 말하고 넘어가 버릴 뿐이다. 그는 무신론과학자인척 하는 기독교인처럼, 인본주의자처럼 말한다. 인간은 본래 추상적 관념을 믿는 능력을 가져서 동물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였고 유전자의 변이에 의해 본질적으로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특별한 존재라고 말하는 인본주의자의 전형적인 어법이다. 

 

그럼 다시 물어보자.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생명체이고 유기체이다. 그리고 생명과 유기체의 가장 큰 특성은 그것이 존재를 유지하고 번성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이미 사라졌다. 자기를 유지할 수 없는 생명체나 유기적 조직은 당연히 이미 사라져서 마치 물위에 잠시 만들어졌다가 이름도 없이 사라지는 물의 형태와도 같다. 

 

우리는 물질주의에 익숙하다. 그래서 관념적이고 관계적인 것은 주관적이며 허구이며 잘 사라지고 오직 물질만이 안정적으로 존재하며 정체성을 가진다고 생각하고는 한다. 이때문에 인간을 유전자와 동일시하거나 자기 자신을 자신의 몸과 동일시 하며 자아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할 때 그런 특성을 가진 물질이나 기관을 찾는다. 우리가 오늘날 제일 먼저 버려야 하는 것이 이것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파도가 존재한다는 것은 파도가 물이라는 뜻이 아니다. 한국이 존재한다는 것은 한국이 한국인이라는 뜻이 아니다. 생명이 존재한다는 것은 생명이 그것을 구성하는 물질이라는 뜻이 아니다. 파도는 물에 생기는 현상이고 물로 만들어진 시스템이며 원한다면 알고리듬이다. 우리는 한국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하지만 우리 몸의 물질이 교체되듯이 한국을 구성하는 한국인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교체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존재를 증명해 보겠다면서 한국인 하나를 잡고 아무리 뒤져봐도 거기에 한국은 없다. 한국은 물질이 아니다. 한국은 특별한 인간도 아니다. 

 

물질주의적 관점에서 자아를 찾으면 우리는 우리의 몸안을 뒤지고 우리의 뇌안을 뒤지게 된다. 그러다가 모든 신경세포들이 물리적 법칙을 따르며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자유의지나 자아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자유의지나 자아는 분명 허구일지도 모른다. 그런 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그런게 없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증명했다고 믿는 것은 이 세상에는 한국도 없고, 돈도 없고, 파도도 없고 생명도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다만 아직 생명이 뭔지, 존재한다는 것이 뭔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생명이 물질이 아니고 파도처럼 현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면서 다시 한번 생명이나 유기체가 존재를 유지하고 번성하기 위해 뭘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자. 이 세상은 열적 요동같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자기를 유지하기 위해 생명체가 해야 할 일은 주변을 감지하고 미래를 예측해서 그런 불확실성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일이다. 예를 들어 뜨거운 물이 부어졌는데 그 자리를 계속 유지하는 세포는 죽을 것이다. 온도변화를 감지하고 적당한 온도를 가진 환경쪽으로 자기를 옮겨가는 세포만이 살아남는다. 

 

다시 말해 데이터를 취득하고 그것을 잘 처리하는 녀석만이 환경적 변화에, 세상의 불확실성속에서 살아남는다. 생명체는 그래서 자기 환경의 거울이다. 외부 환경의 정보를 가지고 자기의 내부세계를 만들어야 살아남는다. 그 정보가 방대하면 그 생명은 더 넓은 지역에서 살아남을 힘을 가질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변화가 거의 없는 환경에서가 아니라면 죽어서 사라지게 된다. 그 정보가 방대하면 그 내부세계도 방대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그 내부세계가 작을 것이다. 나무는 눈이 없고 뇌가 없다. 하지만 걸어다니고 이동하는 인간은 눈도 있고 뇌도 있다. 이동한다는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더 큰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해 주변환경으로부터 더 많은 데이터를 더 빨리 습득하고 처리하고 저장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생명이 알고리듬이며 데이터처리과정이라는 말의 뜻이다. 생명은 물질이 아니고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세상의 정보를 가지고 내부세계를 만든다. 

 

그런데 인간은 도구를 만들어 거기에도 정보를 축적했다. 집이란 주거 문화에 대한 정보를 저장하는 도구다. 도끼는 나무를 자르는 방법을 저장하는 도구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이 중요한 정보들을 단순히 자기 내부에만 가지지 않고 자기 환경속에 기록했다. 이것은 환경을 자기의 일부로 만드는 자기 확장이다. 그리고 그 기록능력이 획기적으로 늘어난 때가 있었다. 하나는 문자를 사용하게 된 때였고 또 하나는 수학을 통해 세상에 대한 관찰 데이터를 법칙으로 압축하여 표현하게 된 때였다. 전자의 사건이 문명의 탄생이고 후자의 사건이 바로 과학혁명이며 이 두개의 사건은 모두 데이터를 저장하고 보존하는 능력을 크게 늘렸다. 이는 인간의 내부 세계도 엄청나게 크게 확장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있다. 생명이 물질이 아니라면 인간은 물질이 아니다. 당신도 물질이 아니다. 그럼 당신은 뭔가? 우리는 인간이 도구를 소유한다거나, 인간이 의식이나 이성을 소유한다는 식의 사고를 조심해야 한다. 베토벤의 음악과 베토벤의 음악이 적힌 악보가 다른 것이듯 인간은 물질이 아니고 질서고 정보다. 이 말은 사회적 필요에 의해 대충 말할 필요가 있겠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다른 양의 정보를 가진 존재는 다른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인간이 아니다. 선사시대의 호모 사피엔스와 21세기 호모 사피엔스를 모두 인간이라고 부를 때 우리는 우리가 어떤 문맥에서 이 둘이 같다고 말하는지 조심해야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은 잠깐 멈추고 세상을 둘러보라. 뭐가 보이는가? 무엇을 보든 무엇을 느끼든 그 세상은 여러분의 외부세계가 아니다. 여러분의 내부세계다. 여러분의 뇌가 정보들을 조합해서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세계는 그냥 주어진게 아니라 만들어 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 진 세계에 여러분은 자기 자신이 존재하고 그 자신이 아닌 것은 외부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꿈을 꿀 때 거기에 나오는 모든 물건들이며 사람들이 사실은 다 우리 스스로가 만든 것인데도 그 꿈에 나오는 자기 자신만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세계는 만들어졌다. 그리고 물론 여러분도 만들어졌다. 이성을 가지고 윤리의식을 가지며 언어능력을 가진 당신이라는 사람은 만들어 진 것이다. 역사적으로 말하면 당신은 주로 문자의 발달같은 도구의 발달덕분에 수집되어진 데이터를 통해 만들어졌고, 태어난 이후에 주로 후천적으로 많은 데이터들을 압축한 추상적 관념들이 주입되어져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인이 말하는 인간다운 인간이란 모두 사이보그다. 나는 이걸 강조하기 위해서 자연인과 사이보그 1이라는 말을 쓰곤 한다. 

 

하라리는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 대충 말했다. 그는 모든 것의 인터넷이라는 IOT를 말했지만 데이터는 단순히 많이만 있다고 의미가 있는게 아니다. 그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문자가 없을 때 인간이 기억할 수 있는 이상의 경험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요즘 인공지능이 발달하는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문자와 수학에 이어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처리하고 압축하는 능력을 다시 한번 크게 확장할 예정이고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세상은 이미 종이와 펜으로만 돌아갈 수가 없다. 

 

세상이 만들어진 것이고 여러분도 만들어 진 것일 때 다시 말해 인간이 데이터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일 때 인간이라는 말은 다시 한번 애매해 지게 된다. 그것이 호모 사피엔스의 DNA를 말하는 것이라면 그건 자연인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도서관에 인간의 언어로 축적한 정보가 만들어 낸 존재를 말하는 것이라면 사이보그 1이다. 그리고 이제 디지털 기술은 어마어마한 정보를 쌓아올릴 것이다. 이렇게 해서 등장할 사이보그2와 사이보그 1의 관계는 사이보그 1과 침팬지나 야만인의 관계와 비슷하다. 우리는 인본주의내지 자유주의라는 종교를 믿으며 그걸 사회적 규칙으로 해서 살아가지만 사이보그2의 사회는 어떤 게임의 법칙을 가질지 불확실하다. 

 

 

역사는 끝나지 않았고 우리는 아직도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정보혁명은 이미 진행중이기 때문에 이로 인한 모순은 누적되고 있고 그것은 책으로 영화로 드라마로 만들어져 표현된다. 그런 예중의 하나는 2019년에 발표된 조커다. 배트맨 이야기의 악당 조커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 영화는 비논리적이고 폭력적이며 불친절한 세상을 그 기본으로 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세상, 조커가 악당이 되는 세상은 몇몇 예외적인 사람들과 예외적인 인간적 교감의 순간을 보여주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예외일 뿐 인간은 약하고 악하고 불안감에 가득차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행복하고 친절하며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꿈을 위해서 충실하게 살아가는 인간은 티비속에나 있는 존재들로 마치 인간이 아닌 것같다. 말하자면 그리스 신화속의 신이나 슈퍼 히어로 이야기의 슈퍼 히어로같달까. 어느 쪽이 그럼 진짜 인간일까? 약하고 배신하는 존재들? 아니면 정말 드물고 거의 신처럼 보이는 그 존재들? 이것은 혹시 이미 사이보그 1과 사이보그 2의 충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불길한 세상을 그리는 영화는 그야말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왕따를 묘사하는 영화도 대부분 세상을 이렇게 묘사하고 치안이 훨씬 안전한 한국도 그런 세상을 그리지만 미국 영화에서는 너무 흔하기 때문에 거의 세상이 본래 이렇다는 광범위한 확신이 존재한다고 느낄 정도다. 말하자면 세상은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가 현실인 곳이다. 소수의 인간이 있지만 대다수의 인간은 이미 좀비로서 감수성이 없고 이성이 없어 보인다. 어떻게 말하면 인간이 좀비이고 좀비가 아닌 인간은 인간이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불러야 할 존재처럼도 보인다. 사이보그 2에게 사이보그 1은 생명없는, 이미 죽은 좀비처럼 보일 것이며 그들이 만들어 갈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격이 불충분하게 보일 수 있다. 그들이 좀비를 치료할 치료제가 만들기 불가능하다고 믿는다면 말이다. 

 

나는 최근에 한국의 낮은 출산률을 지적하면서 한국의 미래가 어둡다고 말하는 사람을 여러번 만났다. 하지만 그들은 요즘 젊은이들이 엄청난 에너지와 돈을 교육에 쏟으며 그러고도 취직이 어렵고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은 무시한다. 즉 이미 경쟁이 사람이 죽어나갈 정도로 크고 인간 하나를 키우는데 드는 에너지가 너무 엄청난데도 더 많은 인간만 출산하면 한국의 미래가 밝아진다고 말하는 것이다. 경쟁을 더 높이자는 것이다. 이것은 시대착오적인 진단이 아닐까? 그들이 사이보그 1에 머물러 있기에 시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라리는 현대 뇌과학은 우리가 단일한 하나의 자아를 가졌다는 신화도 깨버렸다고 말한다. 이 말은 뒤집어 말하면 사이보그 2가 반드시 한 명의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건 법인이나 국가처럼 어떤 조직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한국 바깥에 있다는 이유로 벌어지는 온갖 비인간적인 참사를 무시하는 것은 이미 우리가 집단적 사이보그 2로서 사이보그 1들을 무시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프칸이나 소말리아 사람을 어떻게 다 구할 수 있겠는가. 아프리카 사람들을 어떻게 다 구할 수 있겠는가. 국가 내부에서도 빈부격차가 너무 벌어지면 미국처럼 마치 그들을 포기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미국의 빈민들은 어떻게 봐도 황야나 도시의 구석을 헤매는 수렵채집인들처럼 보인다. 

 

하라리는 과학과 인문학의 차이가 과학은 외부의 실제 즉 객관적 실제에 집중하지만 인문학은 상호주관적 실재에 더 집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상호주관적 실재란 단단한 허구이며 형이상학이고 자본주의나 자유주의처럼 우리가 믿는 종교다. 단단하지만 그것이 허구이기 때문에 우리가 인문학책을 읽을 때 얻어야 하는 것은 주로 체험이다. 지식이 아니다. 믿음이 바뀌거나 믿음을 건드리는 것은 개종이다. 개종을 하면서 아무 느낌이 없을 수가 없다. 만약 어떤 인문학책이 당신에게 아무런 감정적 느낌을 주지 못하고, 내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한다면 그 책을 읽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자각하지 못했던 자신의 믿음을 검증하지도 그것을 대체하지도 못했다. 그런 인문학적 지식은 아무 쓸데가 없으며 종종 해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좋은 인문학책은 자기성찰적이고 내적인 것이어야 한다. 

 

과학은 외부적이고 객관적이다. 그런데 우리가 과학적 지식만 실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우리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데이터를 모두 버리게 된다. 과학적 지식을 부정해서는 안되지만 물리학만 가지고 여러분의 삶에서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여러분에게 보이는 것은 모두 내부세계이며 그것은 객관적 데이터뿐만 아니라 주관적 데이터로 이뤄져있다. 그 내부세계는 구멍이 숭숭 뚫려있을 것이다. 그래서는 여러분은 너무 많은 것들을 보지 못할 것이다.

 

하라리가 상호주관적 실재라고 말하는 것은 과학의 눈으로만 보는 사람에게는 무의미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 강렬하게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이 책의 메세지중의 하나는 인간이야 말로 물질이나 과학적 실재가 아니라 상호주관적 실재라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여러 지식과 체험을 뒤섞어서 내부세계를 만드는 생명체들이다. 객관적 과학에 눈이 멀어서 자기 내부에 존재하는 상호주관적 실재들을 보지 못하거나 그것이 객관적 실체라고 착각하면 우리의 세계는 위태롭고 붕괴하기 쉬워진다. 자기의 개인적 경험, 개인적 데이터를 처리할 수 없어진다. 

 

이 책은 미래에 대한 공상을 소개하고, 신기한 과학실험이나 기술을 소개하는 책일까? 그렇게만 읽는다면 그것은 이 책을 인문학책으로 읽는데 실패한 것이 된다. 그래서는 안된다.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고 과학기술책으로만 보자면 역사학자에게 그걸 꼭 배워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이 책을 읽고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어떤 내부세계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누구와 연결되고 있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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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상념에 빠지게 하는 글입니다.

"우리는 모두 여러 지식과 체험을 뒤섞어서 내부세계를 만드는 생명체들이다."라는 구절을 읽다보니

인생의 의미는 찾아지거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그게 제일 중요한 말이죠. 그걸 뭐라고 부르던 미래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가 미래의 삶을 결정할테니까요.
오늘 블로그 포스팅 잘보고 갑니다~ 항상 행복하십시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한국의 출산율은 그냥 낮은 수준이 아니라 독보적인 전세계 꼴찌인걸로 아는데 격암님 말씀처럼 사이보그 2의 시대가 오면 해결될지도 모르겠네요.
가짜박사 이후로 나타난 개그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XX한테 계속 속는 격암님도 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가짜박사 XX도 닉네임 여러 개 썼지만 왜 닉네임이 가짜박사였을까?
격암님의 박사 학위가 가짜 또는 무늬만 박사라는 소리였을까?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