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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암(강국진) 2021. 10. 27. 17:30

21.10.27

기술은 문화와 합쳐져야 진정으로 큰 영향력을 가진다. 뿐만아니라 기술없는 문화는 결국 그 기술을 찾아낼 가능성이 크지만 문화없는 기술은 무의미하게 사장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더욱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은 오히려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예가 바로 조선의 한글과 금속활자였다. 그런 발명품들이 완전히 사장되고 당대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더라도 서구 문명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금속인쇄술과 서구의 알파벳보다 더욱 뛰어난 한글을 가지고도 조선은 일제에게 망하지 않았던가. 이는 존재하는 발명품이 최대한의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문화가 당시에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실 한 때 세계 최고의 도자기 기술도 가지고 있었다. 그걸로 일본은 큰 돈을 벌었고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조선은 망한 것이다. 

 

기술에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는 많다. 개인용 컴퓨터가 진정으로 세상을 바꾼 것은 그것이 컴퓨터 통신과 만났을 때였다. 그 이전에는 어쩌면 아주 고급의 장난감처럼 존재하던 피씨는 인터넷을 만나서 집집마다 없어서는 안되는 기계가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컴퓨터의 대중화에는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스마트폰을 매우 인기있게 만든 것은 메신저와 SNS로 사진을 주고 받으면서 소통하는 문화였다. 지금의 스마트폰에서 카메라가 가지는 비중을 보면 우리는 이것을 느낄 수 있다. 자동차도 그렇다. 자동차는 단순히 탈 것이 아니다. 차를 타고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교외에서 시간을 쉽게 보낼 수 있다는 레저 문화가 자동차의 대중화를 촉진시킨 것이다. 

 

이런 문화의 중요성은 사소한 일같고 누구나 아는 것같지만 사실 굉장히 자주 망각된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성공한 기술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 기술이나 그 기계만 있었다면 혹은 어떤 사업모델만 우리가 미리 알았더라면 우리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거라는 것이다. 우리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서구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우리는 교훈을 얻지 못한다. 기자들이나 정치가들은 흔히 우리는 왜 닌텐도 게임기를 못만드나라던가 우리는 왜 테슬라 전기차를 못만드나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도 진작에 윈도우 OS를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이고 우리도 netflix같은 OTT 서비스를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중요한 것은 문화고 소비자고 사람이다. 인터넷을 세계최초로 발명한 것은 미국이지만 세계최초로 인터넷 문화를 만든 것은 아마도 한국인들일 것이다. 그때문에 아주 오랜동안 한국에서 외국으로 가면 인터넷 사용환경의 차이가 아주 극심했다. 한국이 초고속인터넷을 쓸 때 미국은 전화기 모뎀 인터넷을 쓰고 있었고 유럽에 가면 그마저도 안되서 이메일도 못보내는 곳이 수두룩하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한국의 인터넷 환경은 지금도 전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편이다. 

 

이는 물론 인터넷 환경에 투자한 김대중 대통령의 치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다. 당시의 한국은 국민소득 만불정도에 지나지 않았는데 한국이 한 정도의 투자로 인터넷이 발전할 것같으면 선진국들이 그걸 못했겠는가. 결국 인터넷이라는 새 도구에 관심을 가진 한국인의 진취성 그리고 정보에 목말라 있을 수 밖에 없었던 당시 한국의 미디어 상황, 그리고 인터넷에 적합한 한글이라는 문자의 도움같은 여러가지 것들이 복합하여 인터넷 문화를 폭발적으로 발달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문화가 인터넷 사업의 발전을 도운 것이다. 반면에 외국에서는 그다지 큰 호응이 없었기에 기술이 있어도 한국처럼 빨리 발전하지 못한 것이다. 

 

성공한 기술이나 사업 모델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뻔한 결과를 만든다. 문화는 대중과 사회가 만들고 발전시키는 것인데 기술만 강조하면 우리는 우리의 관심을 특정 엔지니어나 기업가에 모으게 된다. 그래서 하나의 아이디어와 하나의 기술이면, 노벨상 수상자나 일론 머스크같은 기업가 한명이면 한국이 바뀔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첫째로 관련된 기술자나 과학자 혹은 기업가들에게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게 된다. 노벨상 수상의 철이면 대학에 찾아가서 한국 과학자들에게 우리는 왜 노벨상을 못받냐고 묻는 것은 무식한 짓이며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된다. 그게 당연한 질문이면 기자들은 왜 퓰리처 상을 못받고, 대기업 회장들은 왜 일론 머스크나 스티브 잡스가 못되나? 

 

게다가 이런 식의 사고방식과 압력은 우리로 하여금 다음번 기회를 또 놓치게 만들 것이다.  미국에서 피씨를 만들고 윈도우 OS를 만들었을 때 우리도 그렇게하자. 그게 다음번이다라는 생각에 빠져 있고 문화를 잊으면 사실 우리가 먼저 세계를 지배하는 메신저 프로그램이나 구글 같은 서비스나 SNS 서비스를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거하는 사람들을 죽이면서 원도우 만들자고 하는 일에만 집중하게 될 수 있다. 미국에서 IBM이 PC를 만들면 우리도 만들자고 우리의 빌 게이츠를 죽이고, 미국에서 윈도우 OS를 만들면 우리의 빌 게이츠를 키우자고 하면서 우리의 일론 머스크를 죽일 수 있다. 

 

지금도 인공지능, 전기차, OTT 사업들이 화제다. 그런데 그런 걸 다루는 기사들을 보면 내가 위에서 말한 오류를 계속 저지르고 있다. 사람 귀한 줄 모르고 사실 기업가나 과학자나 엔지니어 귀한 줄 모른다. 과학은 천재 과학자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과학은 과학 문화가 만드는 것이다. 기술도 마찬가지고 사업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자꾸 이미 성공한 한명의 천재, 하나의 기술, 하나의 사업 모델에만 집중하면 할 수록 우리는 창의성을 잃게 되고 다음번 혁신을 놓치게 될 것이다. 

 

넷플릭스가 한류로 큰 돈을 벌어서 배가 아프다는 기사는 말이 안된다. 그건 메신저 프로그램 만들어봐야 윈도우 OS를 만든 마이크로 소프트가 부자될 뿐이니 윈도우 OS 쓰지말고 빨리 국산 OS 만들어 쓰자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넷플릭스같은 OTT 서비스를 만들 수 있었을까? 지금은 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나 투자하면 미국 OTT 시장에서 한국 OTT가 1등을 하게 되나? 다행히 우리에게 한류를 만들어 낼 컨텐츠 문화가 있으니 있는 거라도 먼저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을까?

 

넷플릭스가 한국을 이용해서 부자가 되면 어떤가. 우리도 부자가 되면 되지. 내가 보기엔 한국에 넷플릭스같은 OTT가 없다는 사실보다 더 큰 문제는 아마도 넷플릭스를 비롯한 외국 OTT가 바꿔놓을 컨텐츠 제작환경의 변화에 한국이 적응하는 일일 것이다. 컨텐츠가 범세계적으로 배급되는 구조에서는 제작비가 전혀 다르다. 그런데 한국 방송사나 한국의 군소 OTT 사업체가 그만큼씩 돈을 낼 의향이 있는가? 예전이면 몰라도 이미 넷플릭스가 세계를 뒤덮은 지금으로는 아마 삼성정도의 덩치가 덤비지 않으면 넷플릭스와 경쟁이 안될 것이다. 괜히 욕심내서 밀고당기기를 잘못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나 가르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좌절할 것은 없다. 언제부터 있던 OTT 서비스인가. 요즘은 흐름이 빨리 바뀐다. 또 얼마지나지 않아 새로운 사업이 나올 것이다. 중요한 건 창의성이고 문화고 진취성이다. 답을 어느 정도 아는 길이라도 그걸 제일 빨리 갈 수 있는 사회는 반드시 기술을 제일 먼저 만든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테슬라가 부럽다. 현기차가 테슬라를 이겼으면 싶다. 하지만 단순히 테슬라와 현기차가 겨룬다면 나는 현기차가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즉 지금의 게임의 방식으로는 게임이 안된다. 게임이 바뀌어야 약간의 희망이라도 있다.

 

게임이 바뀐다는 게 뭘까? 테슬라는 자율운전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하지만 우리는 자동차를 만드는 대신 길을 개조할 수있다. 센서로 뒤덮힌 길이라면 지금의 기술로도 완전자율주행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즉 인간과 AI의 공조, 사회와 AI의 공조다.  AI보고 모든 돌발상황을 다 해결하는 똑똑함을 가지라고 주문하는대신에 대처하기 쉬운 단순한 환경을 제공하고 그 안에서 대신 운전하라고 하면 훨씬 쉽다. 그러나 물론 이것은 사회적 진취성과 개혁정신을 요구한다. 이런게 문화고 이런 걸 현실화 제일 잘 시킬 수 있는 것이 한국인이다. 한국의 지하철을 그대로 들어서 중국에 가져다 놓으면 그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한국의 무인 가게를 그렇게 해도 마찬가지다. 기술이 모든 걸 해결하는게 아니다. 문화가 더 많이 한다.

 

전기차는 테슬라가 1등일 수 있지만 전기차 문화는 한국이 1등일 수도 있다. 우리가 깊이 고민해야 하는 것은 더 좋은 전기차를 만드는 것 이상으로 전기차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전기차를 이렇게도 쓸 수 있다니 놀랐다는 말이 나오게 해야 한다. 전기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걸 더 잘쓸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잘하는 것이 한국 사람들이다. 전기차시대에 차박이 크게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면 오토캠핑장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 전기차 충전 문화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스마트폰이 단순히 전화기가 아니듯이 전기차가 단순히 자동차가 아니라 훨씬 더 많은 것을 해결하는 사회가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걸 테슬라가 할 수는 없다. 이런 걸 하는 것이 문화다. 스마트폰은 미국보다 늦게 만들었지만 한국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미국보다 높다. 그리고 미국은 잔여백신을 메신저 프로그램에서 찾아서 맞는 한국을 보고 놀란다. 이건 물론 기술이다. 하지만 그 기술의 배후에는 문화가 있다. 

 

OTT는 대단한 사업이다. 하지만 문화사업은 그보다 더 크다. 한국이 문화적으로 세계의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넷플릭스같은 통로를 통해 한류가 더 퍼지게 되고 전세계의 사람들이 한국 문화를 매력으로 여기게 되면 한국도 미래의 페이스북을 가지고 미래의 구글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른다. 꼭 그렇게 되리라는 법은 없지만 세계인들이 한류에 빠져 한국 물건 사다가 너도 나도 한국사람들처럼 카카오톡을 쓰게 된다고 생각해 보라. 영화나 드라마만 세계 배급수준으로 가는게 아니다. 한국 시스템 전체가 세계 배급수준으로 갈 수 있다. 

 

그러니까 제발 하지 마라.

1, 이미 성공한 기술이나 사업모델 늘어놓으며 우리도 제 2의 뭐뭐뭐 키우자는 말 그만하자. 

2, 사람을 소중히 여겨라, 문화를 소중히 여겨라. 창의력 죽이는 압력 좀 그만 만들자. 미래는 우리가 아직 모르는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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