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격암(강국진) 2021. 11. 12. 23:12

우리는 훌륭한 사람에 대해 많은 교육을 받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근면하며, 공부를 열심히 하고, 약속을 잘 지키고 등등 여러가지 좋은 특징에 대해 들으며 저렇게 사는 것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사실 교육받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나에게 도움을 주고 그것이 고맙다면 나는 '아 나도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즉 경험에 의해서 우리는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을 이해하게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이해는 조금만 곰곰히 생각하면 도전에 부딪히게 된다. 히틀러 같은 사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그가 나쁜 인간으로 여겨진다라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불안감을 느끼게 만든다. 즉 세상이 객관적인 하나로 이뤄져 있지 않다고 할 때 좋은 사람이나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유한한 테두리 안에서만 정의 되고 논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좋은 아들이라던가 좋은 남편이 된다고 하는 것이 실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 되거나 누군가에게는 지독한 사람이 되는 것일 때도 있지 않은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이와같은 면을 잘 보여준다. 거기에 나오는 부자집 가족은 그들 자신의 눈으로 보면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거짓으로 그들의 집에 잠입해 들어와 이득을 챙기는 가난한 사람들이 나쁜 인간으로 생각될 요소는 아주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부자 사장이 칼에 찔려 죽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좋은 사람이 나쁜 사람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부자인 사장은 자기의 관점에서는 좋은 사람이지만 결국 어떤 시스템과 경계를 수호하는 사람이며 그 안에서만 좋은 사람이다. 그는 그 테두리 바깥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사실상 그들이 선을 넘어 자신의 세계로 들어오는 것을 거부함으로서 자기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고 있다. 그건 마치 천재 축구선수가 계속 축구만 하자고 말하는 것과 같다. 만약 게임이 바뀌어 스타크래프트를 한다거나 낚시를 한다거나 미적분 풀기를 한다면 천재 축구선수는 이번에는 낙오자가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그는 축구만 하려고 한다. 그걸 넘어서 세상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건 언뜻 보면 당연한 권리같지만 결국 자기 합리화이고 기득권 지키기이다. 즉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까지만 보고 그 너머의 세계는 보지 않은 채 자신은 관대하고 착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만 여기며 사는 것이다. 

 

전통적 가족질서속에서 누군가는 단지 늦게 태어났다거나 남자가 아니라거나 장자가 아니라거나 직계가 아니라 사위라는 이유로 부모가 아니라 자식이라는 이유로 어떤 역할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질서 안에서 즉 그런 게임안에서 누군가는 관대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기에 유리한 입장에 서는데  누군가는 아무리 해도 항상 신세만 지는 사람, 갚을 빚만 쌓여 있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그 가족질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가해자는 종종 스스로를 피해자로 여긴다. 

 

이런 문제는 부부 사이에서도 일어나고 회사에서도 일어난다. 학교에서 일어나고 국가적 차원에서도 일어난다. 우리는 모두 어떤 게임을 하고 있고 그 게임속에서 관대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기 쉬운 자리에 있는 사람은 적어도 대부분 그 게임바깥을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 독재게임속에서 왕처럼 살고있는 독재자는 스스로를 압제자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위해 희생하고 고통받는 사람으로 여기며 훌륭한 사람으로 살아간다. 우리는 대부분 그런 독재자를 못마땅해 하지만 어떤 의미로는 대부분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좋은 사람일까? 주변의 평판이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어떤 조폭 두목이 조폭이라는 게임속에서는 훌륭한 사람일 수 있지만 바깥의 관점에서 보면 폭력과 범죄로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결국 그들을 도구로 삼아 이익을 챙기는 나쁜 사람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처럼 주변 사람들의 평판이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누구나 칭찬하는 남편이나 아내란 그렇다면 가장 바보거나 가장 나쁜 사람일 수도 있을까? 그럴 수 있다. 한국 사람의 절반가까이가 지지하는 정치인이라도 정치적인 적대 집단에서 보면 천하에서 가장 나쁜 놈으로 보이는 것이 가능하다. 하나의 종교집단 안에서는 너무나 존경받는 신앙인이라도 그 집단 바깥에서 보면 사이비 종교의 교주로 세상에 이보다 나쁜 사람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경우는 흔하다. 

 

우리는 흔히 이런 경우 무지가 문제라고 답을 내린다. 즉 객관적인 훌륭함이란 존재하는 것인데 아직 계몽되지 못하고 지식이 없고, 심지어 거짓에 속은 사람들이 있어서 잘못된 사람들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봉건왕조에 대한 충성심을 가진 사람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정보에 의해서 공화국을 믿는 사람으로 개조될 수 있으며 혹은 그 반대가 가능하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물론 과학과 사이비 종교가 다르듯이 그렇다고 해서 모든 믿음이 동등한 것은 아니다. 어떤 믿음은 깊고 넓으며 튼튼해서 많은 사실과 고민의 검증을 받는다. 반면에 어떤 믿음은 아주 작고 연약하며 거의 검증없이 집착에 의해서 유지된다. 그래서 그 작은 믿음은 많은 고통을 그 소유자에게 준다. 집안 재산을 전부 팔아서 교단에 바쳐도 결국 소원은 이뤄지지 않고 문제만 커지지 않는가. 그걸 보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이 도와준다고 해도 그 사람은 그 도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마치 도움을 준 사람을 배신하고 다시 사이비 교주에게 돌아가는 신도처럼 그들은 다음번 파국으로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에 이르거나 아예 죽기 전까지는 다시 그 옛날의 믿음을 따듯하고 그리운 것으로 여기며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오히려 도움을 준 이교도를 원망하게 되기 쉽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친절하고, 성실하고, 공부를 열심히하고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은 좋은 사람인가?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다. 독재자에게 장학금을 받고서 그래도 나에게 독재자는 은인이고 그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세상에 해를 끼치는 이야기는 세상에 흔하다. 정작 그 독재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 어렵지 않게 은혜를 베풀 수 있는데 말이다. 다시 말해 나에게는 큰 도움이었어도 그 독재자가 자기 인생을 걸고 나를 도와준 것도 아니다. 이런 점을 지적하는 것은 배은망덕한 행동같지만 이런 점을 완전히 무시하면 세상은 그저 은혜와 은혜갚음으로 돌아가는 큰 부자와 귀족들의 세상이 되고 만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하고 싶은 게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훌륭한 사람이란 누구인가? 종종 그렇듯이 나도 답이 알고 싶어서 이 글을 썼다. 그리고 이만큼 생각을 정리해 본 결과 나는 한가지를 제외하면 그런 것따위 무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아이 게임인 딱지치기를 잘하면 딱지치기의 세계에서는 영웅이 될 것이다. 존경도 받을 것이다. 그런데 평생 딱지치기만 하다가 죽는다고 해보자. 그 어린 아이의 세계에서는 벗어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기에 그런 의미없는 삶도 없다. 딱지치기는 잘해서 뭘하며 딱지치기 잘한다고 칭찬을 받아서 뭐한다는 말인가. 칭찬 좀 받는다고 그런 세계에 빠져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는 것인가? 

 

타인의 칭찬이란 기분 좋은 것이지만 사실 대부분의 경우 타인의 평가는 무의미하다. 누군가는 우리를 그들의 근거에 의해서 칭찬하거나 비판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삶이 좁쌀처럼 작다는 것은 둘째치고 그들은 사실 자기 삶을 사는데 바빠서 당신을 진지하게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가족이나 직장동료처럼 당신과 긴밀하게 얽혀 있는 사람들조차도 자신의 입장에서 평가할 뿐이다. 가난한 사람의 백만원은 목숨같을 수 있지만 일론 머스크 같은 부자에게 백만원은 돈도 아니다. 하지만 그 돈을 받는 사람에게는 이 백만원이든 저 백만원이든 같은 백만원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평가는 비슷해 진다. 이런 문제때문에 누군가의 사소한 일이 누군가의 삶을 파괴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그들은 타인의 삶같은 건 모른다. 관심이 없다. 부자들이나 유명인은 외로워진다. 그들은 많은 찬사를 받지만 그 이상으로 타인의 칭찬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거듭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부분 스스로도 자기가 축구선수인지 수학자인지 잘 모른다. 자기 삶에 대해서 명확한 그림이 있는 사람도 드물고 그런 사람들도 대부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삶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 간다. 그러니 내가 훌륭하다면 그게 무슨 뜻일까? 훌륭한 축구선수? 훌륭한 수학자? 나도 잘 모르니 타인들은 더욱 알 수가 없다. 그나마 그것에 답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 뿐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아예 답하려고 시도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습관처럼 주어진 역할을 하면서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거나 적어도 너무 나쁜 사람이 되지는 않으려고 할 뿐이다. 주어진 테두리를 벗어나볼 생각도 없이 로보트처럼 산다. 그런 건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 아니라 좋은 로보트나 나쁜 로보트다. 

 

그래서 나는 훌륭한 사람에게 오직 하나의 조항만 남기고 싶다. 그것은 그가 자기가 누구인지를 고민하고 탐구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고민하는 일은 피곤한 일이고 때로 욕을 먹을 수도 있는 일이다. 왜 평범하게 살지 않냐는 욕을 먹는다. 하지만 고민도 없이 착한 학생처럼 교칙을 잘 지키는 사람을 훌륭한 사람으로 부르고 싶지는 않다. 그런 사람은 게임에 나오는 프로그램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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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사람의 정의
1. 자신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믿는 사람
2. 남들이 훌륭하다고 말하는 사람
3. 역사에 훌륭한 사람이라고 기록된 사람
4. 하늘이 훌륭하다고 인정하는 사람
오늘도 생각의 명치를 때리는 것 같은 격암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본문 중 '그래서 나는 훌룡한 사람에게 오직 하나의 조항만 남기고 싶다. 그것은 그가 자기가 누구인지를 고민하고 탐구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은 제가 두고두고 되새겨야 할 것 같은 문장이네요. 요즘에 많이 회자가 되는 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 과 인간의 차이는 '결국 자기가 누구인지를 고민하고 탐구하는 일을 할 수 있는가?' 의 여부로도 갈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가을이 끝나가려고 하네요. 글쓴분께서 늘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훌룡이 아니라 훌륭으로 쓰셔야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장자는 포정해우 이야기를 통해 살과 뼈의 결(세상의 순리)을 따라 칼질(주체적, 자율적 행위)을 하면 쉽게 고기를 썰 수 있고 칼도 닳지 않는다고 했지요. 세상을 알고 자기 자신을 알아 주관과 객관이 서로 자유롭게 넘나드는 상태가 되면, 딱지치기를 열심히 하되 딱지치기에 메이지 않고, 축구도 재미있게 즐기되 온 세상이 축구장이라고 착각하지 않을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요.
고쳤습니다. 평생 훌룡으로 썼군요. 지적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