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글쓰기/영화 드라마 다큐

격암(강국진) 2022. 5. 9. 08:22

22.5.9

넷플릭스 드라마 안나라 수마나라를 보았다. 이 드라마를 스포일러는 최대한 자제하면서 소개하고 보고 생각난 것을 써둘까 한다. 먼저 약간 소개를 하자면 이 드라마는 본래 같은 이름의 웹튠을 원작으로 한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뮤지컬의 형식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로 내게는 그런 형식의 참신성과 전체적 메세지가 이 드라마의 반복되는 주제인 마술과 잘 어울린다는 점이 눈에 띄는 점으로 남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드라마는 볼만한 편이었고 특히 연극이나 뮤지컬류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더 그러하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본격적 뮤지컬이라기에는 음악과 춤의 힘이 좀 약하다. 드라마가 시작될 때 나오는 음악이 가장 인상깊었고 나머지 노래들은 좀 양도 힘도 약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온 킹이나 레미제라블같은 걸 기대하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래도 어려운 새로운 시도를 잘해냈다고 생각한다. 이걸 보고 있자니 뮤지컬이 아니라 춘향전같은 판소리 계열로 드라마를 만들면 어떻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리지널 형식이라면 그게 한국의 오리지널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뮤지컬도 좋다. 노래 잘하는 사람이 많은 한국에서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이 나오면 좋겠다. 

 

 

스포일러를 피하다 보니 소개를 위한 글로 쓸 수 있는 건 이정도가 다다. 그리고 조금 그 주제에 대해 말해보면서 이 소개의 글을 마치겠다. 그 주제를 나 나름대로 표현해 보자면 그건 마술이란 무엇인가하는 것이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마술사는 마술을 하기전에 사람들에게 당신은 마술을 믿습니까라고 말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물론 모두 마술이 세상에 어디있냐는 말을 한다. 마술은 트릭이고 속임수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 글의 주제가 마술이란 무엇인가라고 표현될 수 있냐면 어떤 의미로 진짜 마술이라고 할만한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마술이라고 부른다면 마술은 속임수가 아니라 진짜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과학자로서 말하는데 허공에서 토끼를 꺼내는 일이 트릭이 아니라 진짜 일 수 있다. 이 마술이 진짜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는 한가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보고 있지 않다. 

 

이 말에 대해 너무 쉽게 그거야 당연하지. 사람이 어떻게 모든 걸 봐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무지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뭘 모르는지 아는 무지이고 또 하나는 우리가 뭘 모르는지 모르는 무지이다. 사람들은 흔히 앞쪽의 무지에 대해 생각하면서 자신이 뭘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대개 훨씬 더 심각한 것은 뒷쪽의 것이다. 모르는 것은 그냥 모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선입견, 어떤 이론, 어떤 법칙, 어떤 가치관을 머리속에 가지고 있다. 그것은 대개 학교나 부모같은 주변사람에 의해 반복해서 주입되어진 것으로 패러다임이라고도 불릴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을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특정한 인과법칙에 따라 생겨나는 일로 이해한다. 예를 들어 세상을 스포츠로 보는 사람은 세상일을 경기처럼 볼 것이고 세상을 연극으로 보는 사람은 세상일을 주인공과 조연들의 연기로 볼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우리가 쉽게 그 규칙을 알 수 있는 어떤 간단한 형식의 것을 통해 세상일이란 그런 게임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그것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어느새 우리가 인생게임의 규칙을 알고 있다고 확신 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게임에서 뭐가 중요한 건지, 어떤 일이 가능한 건지를 그것을 바탕으로 판단하게 된다. 온라인 게임이라면 아이템을 빨리 얻거나 레벨업을 하는게 중요하고, 축구라면 골결정력을 가진 스타 선수를 가지는게 중요하고, 권투라면 체중조절과 강력한 펀치를 가지는게 중요하다는 식이다. 

 

그런데 우리가 가정하는 이 인생게임의 규칙들이 너무 당연해 보이면 우리는 차차 우리가 어떤 규칙을 믿는다는 사실도 잊게 된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불편한 일이 있어도 어떤 일이 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어도 그걸 보지 못하게 된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유명한 이야기중의 하나는 미운 오리 새끼다. 이 이야기는 오리 새끼들 사이에서 자라나는 백조 새끼에 대한 것이다. 사실은 백조새끼인데도 자신이 오리가 아닐리가 없다고 믿는 미운 오리새끼는 그런 생각에 맞춰서 자신을 해석하게 된다. 자신이 오리라는 생각이 틀려있다는 생각 조차도 없기 때문에 자신은 그저 함량미달의 오리로만 생각되는 것이다. 그리고 오리에게 중요한 것만을 볼 뿐 백조에게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건 정말 그저 백조새끼의 문제일 뿐일까? 우리는 정말 자기가 누구인지 알고 있을까? 

 

우리가 어떤 생각의 틀에 갇혀 있으면 우리는 체험도 무시하게 되고 매일 보는 것도 무시하게 된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매일 아침마다 집앞을 나서며 청소하는 분들을 볼지 모른다. 하지만 그 분들이 당신의 삶에 어떤 중요성을 가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혹은 여러분들이 앞으로 그런 일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다면 여러분들은 그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그렇게 되면 그 분들은 물론 사람이지만 어떤 의미로 스위치를 누르면 물건을 주는 기계와 같은 존재가 된다. 그냥 존재할 뿐이다. 그 분들은 돈받고 그런 일을 하는 분들이다. 그게 힘든지, 어떻게 하면 그런 사람이 되는지, 앞으로도 계속 그걸 할건지 같은 것은 중요한 질문이 아니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다. 청소하는 분들뿐만 아니라 정치가 같은 사람도 여러분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면 비슷한 취급을 받을 것이다.

 

청소년에 한정해서 말하면 이런 것들이 그들의 꿈을 제한하게 된다. 다시 말해 커서 정치가가 될 생각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에게 정치가는 보이지 않는다. 정치가라는 단어를 알고 있고 세상에서 정치가라는 사람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도 그들에게 정치가는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알아도 내가 커서 그나라에 가서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하나도 없으면 미국이란 마치 동화책에 나오는 네버랜드와 비슷한 이미지를 가질 뿐이다.

 

그렇다면 진짜 마술이란 무엇인가. 바로 이 생각의 틀을 교체하는 것이다. 대개 더 작은 세계에 살던 사람이 더 큰 세계에 눈을 뜨게 하는 것이다. 누구나 이런 것을 어느 정도 경험한다. 요즘은 유치원이나 초등학생도 미래에 희망하는 직업을 따질 때 월급을 따진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어릴적에는 누구나 아주 작은 세상에 갇혀 있다. 그 세계에서는 밥과 돈은 그냥 부모가 저절로 주는 것이고 부모라는 존재도 자연법칙처럼 본래 당연히 있는 사람이며 무한한 힘을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부모이외의 바깥 것은 별 관심도 없이 존재한다. 그 세계는 나이가 들면서 깨어지고 더 많은 것들이 존재하는 세계가 그것을 대체하게 된다. 

 

그리고 그럴 때 우리는 순간적이지만 마치 이제까지 우리가 속았던 것같은 느낌을 받는다.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다. 어른들은 언제나 초밥을 먹는 걸 봤지만 자신은 안먹어본 사람이 그걸 먹어봤더니 참맛있다고 할 때도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고, 집에는 책이 잔뜩 쌓여있었지만 별 관심이 없어서 보질 않았는데 어느날 읽어봤더니 완전 새로운 즐거움을 주더라고 해도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다. 

 

그런데 많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치는 동시에 뭔가를 숨기려고 한다. 자유가 뭔지 모르는 사람은 자유를 요구할 수도 없는 법이다. 그러니까 아이들의 꿈을 자신들이 좋아하는 걸로 만들기 위해 어떤 가짜 세상을 만들고 그걸 아이들에게 주입한다. 그렇게 되면 아이는 그 세계안에서 자유롭게 꿈을 꿔도 이미 어른들에게 검렬된 꿈을 꾸는게 된다. 물론 대부분의 어른들은 이걸 좋은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하지만 이 과정이 비극이 되는 경우는 너무나 많다.

 

특히 인생은 잔인한 경쟁이며 돈이나 학벌이 전부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렇다. 그들이 경쟁에 지면 죽어라라고 말한다고 해도 그들 스스로는 어쩌면 그건 그저 표현일 뿐일 수 있다. 그런데 그걸 듣는 아이들은 그걸 100% 진짜로 믿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대개 어른들이 가지는 어떤 편향된 가치관은 세대를 지나면서 오히려 더 극단적으로 변할 수 있다. 어른들은 이것 저것 다 해보고 나는 결론이 났다고 생각할테지만 아이들은 아무 것도 경험해 보지 못한 채 어른들의 결론을 그저 하나의 데이터로 기억으로 받아들이는게 아니라 바꿀 수 없는 법칙으로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그들이 자라고 숨쉬고 꿈꿀 수 있는 큰 세상을 물려주지 못하는 어른들은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어른들이 그렇게 한다. 그들은 그들의 일상에 너무 지쳐서 이미 너무나 좁은 세상을 가지게 되었고 심지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세계가 점점 더 작아지는 경향도 있다. 그런데 그들은 그걸 모른다. 자기를 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이건 어른이건 자신의 세계를 허물려고 하는 사람은 위협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좀 더 밝고 자유로운 아이들을 자연히 억압하게 된다. 스스로를 망치려고 할 뿐만 아니라 나도 망치려고 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들은 좀 더 크고 자유로운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도박중독자같이 비정상적인 인간들인데 불행히도 자신이 정상이며 자신이 만나는 자유로운 영혼들이 미친거라고 믿는다. 이건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불행히도 작은 세상에 갇힌 아이들은 보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어른을 만나도 대개 그들을 위협으로 느끼고 심지어 괴짜나 미친거라고 느낀다. 자신이 정상이라고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나라 수마나라는 이런 일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이해한 상태에서 누군가가 우리에게 여러분은 마술을 믿습니까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렇다고 말해야 한다. 허공에서 꺼집어 내어지는 토끼는 속임수가 아닐 수 있다. 사실은 우리가 보지 못한 토끼가 세상에는 무한히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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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나의 선입관/몇번의 경험을 무슨 법칙처럼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은거 같습니다. 부득이 한면도 있지만 지나치면 흔한말로 '꼰대'가 되더군요. 격암님 말대로 자신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은듯 합니다.
미친 사람을 세상이 만든다라는 대사가 마음에 와닿는 드라마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