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글모음/국가란 무엇인가

격암(강국진) 2022. 5. 19. 04:45

22.5.19

한때 우리는 지구가 무한하다고 여겼다. 반세기전만해도 세계는 그저 정복하고 개척해야 할 곳이었다. 우리는 자원과 환경을 무한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약속은 그저 성장이었다. 즉 우리가 가진 문제는 바로 성장에 의해 해결된다는 것이며 그로 인해 우리는 풍족한 삶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위 아메리카 드림이라는 것이 이런 꿈을 대표한다. 세상에는 물질이 넘치고 개인적으로는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원하는 미래였다. 

 

그런데 인구가 너무나 늘어나서 자원과 환경문제가 심각해지고 지구가 좁아지게 되자 이 꿈은 반드시 수정되어져야 할 필요가 생겼다. 이제 성장의 꿈은 끝났다. 우리는 무조건 더 풍족한 삶을 추구하는게 아니라 더 효율적인 삶을 추구해야 한다. 과거의 꿈이 산업화였다면 지금의 꿈은 정보화다. 즉 과거에는 무자비하게 자원을 소모하는 공장을 더 많이 더 크게 짓는 것만이 발전이고 미래 비전이었다면 지금은 정보를 빠르게 취득하고 분석하여 각각의 개인들에게 필요한 것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제공해 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미래 비전이다. 이것이 몇년전부터 유행했던 소위 4차산업혁명이라는 말의 핵심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원과 공간을 덜 소비하면서도 더 많이 만족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할 때 우리의 자원문제, 환경문제는 우리가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을 때까지 심각해 질 것이다. 

 

비효율적인 사회가 성장의 한계에 도달하면 더 효율적인 사회로 대체되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속에서 계속 일어나 온 일이며 다만 새로운 시대에는 다른 규모와 다른 방식으로 일어날 뿐이다. 예를 들어 봉건국가가 등장한다던가 공화국이 세워진다던가 하는 일들이 과거에도 있었다. 돌아보면 그런 변화는 언제나 기술적 발전의 결과였고 새로운 교육을 요구했으며 낡은 질서속에서 성장의 한계가 만들어졌기에 새로운 질서가 등장한 것이었다. 일단 새로운 질서가 낡은 질서를 대체하게 되면 그 초기에는 사회는 빠르게 성장한다. 그러다가 그 질서속에서 성장의 한계가 등장하게 되면 다시 세상은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봉건국가가 사라지고 공화국이 들어서게 된 것을 생각해 보자. 오늘날에는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국가에서 정치적 지도자는 민주적인 방식으로 선출된다. 실질적 독재국가에서 조차 그 형식을 보면 정치적 지도자는 과거의 봉건국가에서처럼 그저 왕이나 황제의 자손이므로 국가를 다스릴 권리를 하늘로부터 부여받았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지는 않는다. 그들은 표면적으로는 어디까지나 국민들의 지지에 의해 정부를 운영하고 있을 뿐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이는 사회가 너무 크고 복잡해졌으며 너무 빨리 움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앙에서 정보를 독점적으로 수집하고 판단했을 때 일처리가 너무 비합리적이 되고 그걸 책임질 수가 없다. 몇백년전이나 천년전에는 요즘 기준으로보면 세상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농사꾼은 부모님이 하던대로 농사를 짓고 빵굽는 일을 하는 사람은 부모님이 하던대로 빵을 만들었다. 타고난 귀족들은 하는 일은 주로 사교인데 사회적 자원을 독점한 귀족들의 평화가 바로 사회적 안정을 이룩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대에는 누가 누구와 혼인을 하고 친분을 맺는가가 사회를 움직였다.

 

하지만 철도가 깔리고 상업이 발전하는 사회에서는 몇십년이면 세상이 크게 바뀌며 도로와 인터넷이 깔린 요즘은 몇년만에도 세상이 바뀌는 느낌이다. 이런 세상에서 그저 누군가의 아들로 태어났을 뿐인 중앙의 누군가가 느릿하게 이러니 저러니 하면서 자기가 익숙한 질서를 강요하면 모순이 누적되고 사회적 성장은 한계에 도달한다. 그건 마치 세상이 이미 과학의 시대가 되었는데 공자맹자만 읽으면서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려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배워야 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움직여야 한다. 게임의 법칙은 계속 바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 지도자를 선출하고, 근대적 학교를 세워서 사람들을 교육한다. 도로를 깔고, 전화를 개설한다. 신문을 만들고 티비로 정보를 퍼뜨린다. 이렇게 하는 나라와 이렇게 하지 않는 나라의 성장속력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낡은 봉건 질서에 머물렀던 나라들은 금새 미개한 국가가 되고 때로 망했다. 모두가 변화하는 시대에는 그저 몇십년만 보수적으로 살면 다른 나라에게 한없이 뒤쳐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근대의 세계사다. 

 

이 과정을 볼 때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 사회적 인프라와 교육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철도가 없고 도로가 없고 배가 없는 나라는 그런 것이 있는 나라를 이길 수가 없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설사 마술처럼 어느 나라에 완벽한 사회적 인프라가 들어서고 심지어 헌법같은 것도 멋지게 만들어 둔다고 해도 그 나라의 사람들이 공화정에 어울리는 교육을 받고 바뀌지 못할 때 그 나라는 제대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자원은 인간이다. 민주적 제도가 있다고 해도 민주적 시민이 없다면 민주국가는 유지될 수 없다. 그들은 자유로이 스스로를 망치고 민주적으로 다시 봉건국가로 돌아가고자 할 것이다. 어쩌면 다시 가난하고 수렵채집이나 하던 때로 돌아가려고 할 지도 모른다. 

 

이와 관련하여 생각해 볼 것이 바로 출산률이다. 한국의 출산률이 낮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분명 걱정할 문제다. 하지만 이 출산률의 문제를 단순히 인구만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은 도움이 안된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그저 사람이 아니다. 더 발전된 사회에서 요구하는 시민은 더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단순히 누가 되든 사람이면 된다면 한국 시민권을 줄테니 한국에 와서 살라고하면 살 사람이 세상에는 무한정이다. 중국 사람중에서 천만명만 와도 인구문제는 없을 것이다. 

 

왜 출산률이 낮은가? 왜 무작정 이민을 받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이 안되는가? 다시 말하지만 그건 더 발전된 사회는 더 많은 돈을 들여서 키운 사람들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 사회에서 적응하고 기여하고 살기가 어렵다. 그러니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아이 하나만 키우려고 해도 거기에 들어가는 돈과 에너지와 시간이 너무 엄청나서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냥 낳기만 하면 잘 자라고 나중에 의지가 되는 훌룡한 가족, 훌룡한 시민이 될 것같으면 다섯이건 열이건 낳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이런 걸 외면하고 그냥 결혼장려, 출산장려같은 걸 하면 출산률이 올라가지도 않을 뿐더러 설혹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도 그 아이들은 나중에 사회적인 짐이 되기 쉽상이다. 당연한 거지만 낳기만 하면 되는게 아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말한 것들을 기억하면서 미래를 볼 필요가 있다. 봉건사회가 민주공화정이 되는 변화는 역사의 종말일까? 지금의 교육은 이제 영원한 진리이며 미래의 시민들도 영원히 그런 교육을 받아야 할까? 그럴리가 없다. 더 효율적인 사회의 출현은 불가피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새로운 사회적 인프라와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다. 새로운 인간이 없이는 새로운 사회가 없고 더 효율적인 삶도 없다.

 

우리가 아이를 키우기 힘든 세상에 살고 있다는 말은 뒤집어 말하면 이미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가 왔다는 것을 암시한다. 새로운 시대가 오면 교육은 매우매우 비싸진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진 새시대는 아직 분명히 자리잡지 못했고 낡은 시대는 여전하므로 혼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조선시대 말엽에 아직도 유교교육의 가치를 믿지만 서양교육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시대의 아이들은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야 그걸 다 제대로 배울 수 있었겠는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시행착오도 겪어야 할 뿐만 아니라 배울 것도 너무 많고 정작 그걸 제대로 가르쳐 줄 곳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말하자면 지금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며 생각했을 때 이제 우리 앞에는 세가지의 미래가 있다. 첫번째 미래는 이상적이다. 그것은 우리의 유일한 진짜 희망인 교육과 계몽이 열어가는 미래다.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많은 자원을 그것들에 투자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 우리 사회는 바로 그 자원을 결국 헛되게 낭비하게 될 것이다. 사실 이 미래말고 다른 미래들은 무시무시하다.

 

요즘은 세상이 한 인간의 평균수명보다도 더 짧은 시간안에 아주 크게 바뀐다. 우리는 50년이나 30년뒤는 커녕 10년뒤도 잘 예측할 수가 없다. 아주 좋은 예가 전기차 회사 테슬라다. 2022년 현재 세계를 뒤흔드는 이 전기차 회사는 불과 10년전만 해도 들어본 사람도 거의 없는 회사였다. 5년전만 해도 전기차는 시기상조라고 난리피우는 사람들이 세계에 가득했다. 지금 테슬라의 주가총액은 현대자동차의 20배쯤 하고 일론 머스크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이게 10여년간 일어난 일이다. 

 

이러한 사실은 심각한 사회 문제를 예고한다. 평균적으로 말했을 때 낡은 세대는 문화적으로 새로운 시대에 뒤질 수 밖에 없다. 이 문화적 지체현상은 과거에도 있었고 적어도 그 상당부분은 그냥 낡은 세대가 늙어죽고 새로운 세대가 그들을 교체해서 해소되었다. 그리고 그때는 세상이 그런 리듬으로 바뀌고 있었다. 하지만 만약 어떤 교육도 지구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을 충분히 빨리 계몽할 수 없는데 지구적 문제가 그보다 빠르게 심각해 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패러다임의 교체를 이뤄낼 것인가? 예를 들어 중국의 민주주의가 정말 제대로된 민주주의까지 빠르게 발전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때 그 사회가 세계전체에 거대한 경제적 군사적 위협이 된다면 지구상의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해야할까? 

 

이 문제는 교육적으로 문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하고 일정부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문화적 파워가 소중한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전세계인들에게 퍼뜨리는 능력이 문화적 파워이기 때문이다. 가장 희망적인 미래는 이 문화적 파워가 세계인의 대다수를 바꿔서 새롭게 바뀐 미래에서 모두가 행복하게 다시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첫번째 미래다. 

 

하지만 문화적 방법, 교육적 방법이 실패할 수도 있다. 적어도 완전히 성공하지 못할 수 있으며 솔직히 이렇게 될 가능성은 굉장히 크다. 서구 문화가 세계를 휩쓸었지만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고 새롭게 민주국가가 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라는 말은 설사 이것이 과장이 들어있는 말이라고 해도 의미심장한 말이다. 문화적 이식은 그렇게 쉽지 않다. 그토록 대단하던 미국 문화도 그렇다. 우리는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하겠지만 희망대로 될거라고만 믿을 수는 없다. 

 

이럴 때 있을 수 있는 미래는 두가지다. 하나는 새로운 미래의 문화를 포용한 작은 문화집단이 성장해서 세계를 리드하게 되는 것이다. 이 일은 과거에 서구 문화가 세계를 정복하면서 이미 일어난 적이 있다. 한때 해가지지않는 나라라고 불렸던 영국을 보라. 그 나라는 정말 작은 나라다. 그런데 그 나라가 세계의 패권국이었다. 포르투갈이니 네덜란드니 하는 나라도 그랬지만 나라 크기나 인구로 보면 정말 어떻게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유럽의 나라들은 작았다. 하지만 그들은 새로운 문화를 성장시키고 그것을 독점했다. 그래서 그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만약 문화 지체 현상이 세계적인 수준에서 크게 벌어지게 된다면 비슷한 일은 다시 생길 수 있다. 그러니까 한쪽 나라는 산업혁명으로 철도깔고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가운데 다른 나라는 공자왈맹자왈만 하면서 낡은 기술만 잡고 사는 것이다. 21세기에 그런 일이 생길까 싶겠지만 사실 빈부격차는 과거보다 지금이 더 크다. 그리고 앞에서 테슬라의 예를 들었지만 변화의 속도도 다르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있었던 이래 불과 1-2백년이 지나서 세계가 서구의 것이 되었다면 지금은 그게 얼마나 걸릴까? 50년? 25년? 10년? 

 

요즘같이 정보가 흐르는 시대에 남에게 뒤쳐지는게 뻔히 보이는데 그렇게 살 사람이 어디있겠냐고 할지 모른다. 무슨 소리. 그런 사람은 세상에 넘치게 많다. 아주 많은 사람들은 혁신을 회피하고 그저 보수적으로 살려고 한다. 그래서 21세기에 전쟁을 일으키는 러시아가 있는가 하면 투표도 안하고 정권을 유지하는 중국정권같은 곳도 있다. 중국같은 나라는 문맹문제도 언제 해결할지 모른다. 왜 세계가 한국을 기적적인 예로 볼까? 한국은 70년정도에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에서 선진국으로 변했는데 사실 70년전과 별로 다르지 않게 사는 나라가 더 많다. 아직도 먹을 물이나 기아문제 해결이 지구촌의 중대한 문제다. 요즘은 세상이 더 빨리 변하는데 이제 10년 20년 30년 뒤가 되면 차이가 어느 정도가 날까? 

 

소수문화가 다수를 압도하는 미래는 결국 크게 보면 교육과 문화사업이 실패한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이런 미래는 가장 최악의 것은 아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낡은 질서를 원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기 때문에 그 낡은 질서가 새 질서를 압살해 버릴 수도 있다. 새로운 것이라고 해서 항상 그것이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로마제국의 멸망이후 찾아온 중세암흑기를 생각해 보라. 크게 팽창한 문명이 돌파구를 찾지 못할 때 그것은 그냥 붕괴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새로운 시대를 열 새로운 기술이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못해서 일 수도 있고 기술이 있어도 그 기술을 사용할 인간을 교육하는데 실패해서 그럴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야만인들의 습격으로 미래의 문명인들은 멸망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세계화는 후퇴하고 시장이라는 것은 국지화되며 세계는 오랜동안 아수라장일 것이다. 지금 지구상에 인간이 이렇게 많은 것은 뒤집어 말하면 그 시장이 대단히 효율적으로 식량을 생산했기 때문이다. 낡은 질서는 사라졌는데 새 질서가 설 수 없다면 남는 것은 지옥같은 경기후퇴일 수밖에 없다. 전쟁도 있을 수 있고, 기후문제도 통제불능으로 가게 되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 있다. 사실 지난 몇년간의 코로나 사태는 우리에게 이런 미래가 어떤것인지 보여준다. 코로나로 세상이 멈춰서자 연료소비는 줄었다. 공기도 맑아졌다. 인간의 비극은 지구에게는 치료제였다. 

 

상온핵융합같은 꿈의 기술이 인류를 구원해 줄 수 있을까? 우선 이런 기술은 현실화되기 어렵기에 꿈의 기술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런 기술은 인류에게 더 큰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 원숭이가 소달구지를 타고 있을 때보다 제트기 조정석위에 있을 때 더 큰 사고가 난다. 사람이 바뀌지 않았는데 더 강력한 무기와 기술이 있으면 천국이 올까? 

 

수렵채집활동을 하며 사는 부시맨같은 사람들을 도시로 데려와서 직장생활을 하며 살게 하는 일은 당연히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지금의 세계에서는 이 어려운 일이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부시맨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 세계가 앞으로 달려가는데 그냥 서있으면 금방 우리는 부시맨같은 처지가 된다. 지금 한국에서도 스마트폰을 못써서 도시의 부시맨이 된 노인들이 넘쳐난다. 그들은 은행에도 못가고 대중교통도 잘 못쓰고 심지어 배달도 잘 못시키며 쇼핑도 못한다. 보이스피싱 범죄의 대상이나 될 뿐이다. 그들에게 젊은 가족이 있어도 그렇고 한국 사회에 살아도 그런데 세계에 넘쳐나는 오지에서 아직도 시대의 변화를 모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시맨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중국은 부자나라지만 그 나라 인구의 몇퍼센트가 부시맨일까? 미얀마, 우크라이나, 러시아, 인도네시아같은 나라들에는 얼마나 많은 부시맨들이 있을까? 그들은 그들이 살던대로 살고 공부하던대로 대학에 가서 공부하면 미래에도 직장이 있을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정말 그럴까? 요즘 시대에는 미얀마의 미친 군부독재자같은 인간이 1-20년만 나라를 뒤로가게하면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 현대의 부시맨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은 그들이고 우리는 우리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 현대다. 지구가 좁다. 러시아에서 핵미사일이라도 쏘면 그런가 하고 있을 수도 없다. 중국에서 제2의 코로나를 마구 퍼뜨리면 국경을 닫아버릴 수도 없다. 브라질에서 아마존 밀림을 다 밀어버리면 남의 땅이니 그런가 할 수도 없다. 미세먼지로 인한 공기오염이나 미세플라스틱으로 인한 수자원의 오염은 공상과학속의 미래가 아니라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미래를 가지게 될까? 첫번째면 좋을 것이다. 두번째 미래가 된다고 해도 한국이 그 첨단 문화 그룹에 들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그것도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세번째 미래의 가능성도 그렇게 작지 않다. 사이비 종교나 무속신앙이 정치판을 뒤흔드는 일은 전세계 어디서나 있다. 그걸 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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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깊은 통찰이 잘 배어나오는 좋은 글감사합니다.
저는 "전체 인류의 지성의 합"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류는 그래도 계속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현재도 여전히 진행중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나는 인류의 역사에서 흘러가는 점이라고 봅니다.
나는 없겠지만 과연 미래의 인류는 어떤 분포을 가지게 될 지
참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 판단또한 후생의 다른 누군가가 해주겠죠.


답이 늦었습니다. 소감감사합니다. 사실 요즘 세상 흘러가는 것이 그다지 좋아보이지만은 않지만 우리의 고정관념을 넘을 새로운 시대가 오는 징조라고 희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