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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풍역 맛집 신풍파전닭갈비]오빠의 첫사랑과 닭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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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맛

2019. 2. 9.



신풍역 1번 출구에서 오십보쯤 걷노라면 좁은 골목 사이 신풍 파전닭갈비가 있다.

낡고 오래된 주택가 사이, 특별할 것 없는 이 골목에는 저녁 6시가 넘어서면 몇미터씩 긴 줄이 늘어지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한다.

모두 닭갈비와 파전에 한잔 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 곳을 아주 오래부터 봐왔기 때문에 특별히 맛집이라는 생각보단 그냥 동네 식당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가끔 타지 사람들에게 신풍역 얘길 하면 "아~ 거기 닭갈비 맛집 있는데 아냐?"라고 하는걸 보면 꽤나 잘하는 집인가 싶기도 했다.




[이 집의 밑반찬이다. 동치미, 채소피클, 김치. 상당히 달착지근한데, 닭갈비와의 궁합은 괜찮다.]


내가 이 곳을 처음 가게 된건 스무살 쯤,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갓 몇개월 되었을 때다.

당시에 가산동에서 일하는 사촌오빠는 나, 그리고 당시에 방학중이라 서울에서 학원을 다니던 또 다른 대학생 사촌오빠를 불러 내어 소주한잔 사주겠노라 했다.

마땅히 만날 곳이 없어 선택한 장소는 신풍역이었고, 특별히 갈 만한 곳이 없어 우연히 들어간 식당이 이 곳이었다.

오빠는 닭갈비 2인분과 녹두전을 주문했는데, 당시에도 1인분에 5500원이라는 가격은 참 저렴하게 느껴졌다.

장정 셋이 갈비 2인분과 전 한장에 배가 통통해졌고, 오빠는 이 집이 꽤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현재는 1인분 1만원으로 가격이 꽤 올랐다.]



이 곳을 두 번째 방문했을 때에도 오빠와 함께였는데, 오빠는 지난번 방문 이후 채 한달도 되지 않아 우리를 다시 이 곳으로 불렀다.

"지난번에 갔던 닭갈비집 기억나지? 나 그집 닭갈비가 너무 먹고싶어. 오늘밤 7시까지 거기서 만나자. 오빠는 여자친구랑 같이 나갈거야. 인사시켜줄게"

7시쯤 가게 앞에서 기다리는데, 저쪽 신풍역 1번 출구에서 오빠와 오빠옆에 작고 귀여운 언니가 같이 걸어왔다.

오빠가 멀리서 나를 보며 아는체 하니까, 언니는 오빠를 재촉하며 동생이 기다리니 빨리 뛰자고 오빠의 소매무새를 잡아 당겼다.

약속 시간 7시에서 겨우 몇분 지났음에도, 늦어서 미안하다며,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며 연신 미안한 기색을 하던 그 언니는 오빠랑 벌써 6년째 사귀고 있다고 했고, 오빠가 첫사랑이라고도 했다.

"이 집은 닭갈비가 맛있어. 닭갈비랑 녹두전도 먹고. 도토리묵도 먹어보자. 다른 것도 먹을래?"

오빠는 이 집을 한번 와본 솜씨로 이것저것 나서서 주문했고, 지난번엔 주문하지 않았던 도토리묵도 특별히 추가했다.




[닭갈비 2인분의 모습. 미리 70%정도 익혀 나오는데 조금 더 익혀 먹어야 진한 맛이 난다.]



[조금씩 끓고 있는 닭갈비. 쌀떡부터 건져 먹으면 된다.]



"맛있다. 닭갈비도 맛있고, 동치미랑 김치도 맛있고, 부침개도 맛있어"

"정말 맛있지? 도토리묵은 별로야? 너 도토리묵 좋아하잖아."

"도토리묵도 당근 맛있어. 묵은 그저 그런데 양념이 기가 막히게 맛있어."

오빠는 계속해서 여자친구인 언니의 안위를 살폈고, 나는 그런 오빠 모습이 조금 낯설기도, 좋기도 했다.








"오빠. 언니랑 결혼해? 왜 갑자기 나를 소개시켜줘?"

"당연히 때되면 해야지. 언제 식구될지 모르니까 언니한테 잘해~~"

"어머, 내가 동생한테 잘해야지요."

언니는 바보같은 오빠를 참 싹싹하게 챙겼고, 어린 나에게도 참 좋은 사람으로 느껴졌다.

술한잔도 못한다더니 오늘은 기분이 좋아 한잔 해야겠다며 소주 두잔을 마시고는 얼굴이 신호등마냥 벌개진 언니는

오늘 너무 기분이 좋다며 호기롭게 식사값까지 계산했다.





[이집은 닭갈비를 먹은 뒤 볶아 먹는 볶음밥이 맛있다. 양념까지 모두 핥아먹고 싶더라도 볶음밥을 위해 조금 남기도록 하자.]


그로부터 몇년 뒤, 결혼한다던 오빠가 데려온 여자는 닭갈비집에서 조우한 언니와 다른 사람이었고

어른들의 입방아 사이에서 주워들은 바에 따르면, 예전 언니와 헤어지고는 다른 여자를 만나 반대하는 결혼을 한다고 했다.

나는 닭갈비집에서 만난 언니를 다신 볼 수 없게 되었고,

오빠는 결혼 후 밤낮으로 병간호를 하며 순탄치 않은 삶을 살다가 어린 조카 하나와 둘이 남게 되었다.







이제는 다시 정착해 잘 살고 있는 오빠는 아주 가끔 술에 취해 내게 전활 하곤 한다.

"잘 지내니? 내가 사는게 바빠서 너한테 연락도 자주 못하고 오빠 노릇도 못하지만 나는 늘 널 생각하는거 알지?

미안하다. 힘내자. 이쁜 우리 동생 화이팅하자."

"오빠 그집 기억나지? 신풍역 닭갈비집~ 거기 요즘에도 장사 엄청 잘된다? 가격도 많이 올랐어.

도토리묵이 맛있었는데, 도토리묵은 없어졌어. 예전엔 메뉴가 다섯개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수십가지가 되었어.

언제 날잡고 다 먹어야지"

"그래? 거기 정말 가고 싶은데. 가야 하는데. 사는게 바빠 쉽지가 않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왁자한 술집 골목 소리를 뒤로 한 오빠 목소리에는 늘 조금 슬픈 떨림이 섞여 있다.

첫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 마음에 더 오래 품는다고 했던가.

나는 늘 오빠의 첫 사랑처럼 사라져버린 이 곳에서의 따뜻한 추억들이 왠지 더 아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