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退溪 李滉)선생 자명(自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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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2020. 10. 29.

 

 

계 이황(退溪 李滉)선생 자명(自銘)

 

퇴계 이황(1502년 1월 3일) 경상도 예안현 온계리에서 태어났다.

 진보이씨 21세 때 허씨와 결혼 28세때 진사시험에 합격 49세의 끝날 무렵 용기를 내어

 풍기군수 자리를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원대한 학문과 인격완성의 꿈을 꾸면서 

58새 때 2월 어느 날 청년 율곡 이이가 계상서당으로 찾아와 3일 동안 도학에 관하여

토론 도학을 공부했다.

70세(1570) 1월 8일 아침 “분재 매화에 물을 주라”명하고 눈을 감으셨다. 

 

퇴계 께서 스스로 지은 묘비 시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에 자명(自銘)을 커다란

바위 세계 놓았다.

 

 

퇴계선생 자명(自銘)

 

생이대치(生而大癡)--태어나서는 크게 어리석었고

장이다질(壯而多疾)--장성해서는 병도 많았네.

 

중하기학(中何嗜學)--중년에는 어찌 학문을 좋아했으며

만하도(晩何叨爵)--만년에 어찌 벼슬을 탐하였던고.

 

학구유막(學求猶邈)--학문은 구할수록 오히려 멀어지고

작사유영(爵辭愈嬰)--벼슬은 마다해도 더욱 더 얽어매네.

 

진행지겁(進行之跲)--벼슬길에 나가서는 잘못 있었고

퇴장지정(退藏之貞)--물러나서 갈무리는 곧게 하였네.

 

심참국은(深慙國恩)--나라의 은혜에 매우 부끄럽고

단외성언(亶畏聖言)--성현의 말씀이 참으로 두려워라.

 

유산억억(有山嶷嶷)--산은 높고 높이 솟아있고

유수원원(有水源源)--물은 끊임없이 흐르누나. 

 

파사초복(婆裟初服)--벼슬살이 벗어나 한가로우니

탈략중산(脫略衆訕)--뭇 사람 비방에서 벗어났구나.

 

아회이조(我懷伊阻)--나의 뜻이 이렇게 막히니

아패수완(我佩誰玩)--나의 학문 그 누가 즐기리.

 

아사고인(我思古人)--내가 옛 사람을 생각하니

실획아심(實獲我心)--실로 내 마음과 같구나.

 

영지내세(寧知來世)--어찌 알리오 다음 세상이

불획금혜(不獲今兮)--지금의 내 마음을 알지 못하리라고.

 

우중유락(憂中有樂)--근심 속에 즐거움이 있고

락중유우(樂中有憂)--즐거움 속에 근심이 있네.

 

승화귀진(乘化歸盡)--조화를 타고 돌아가니

부하구혜(復何求兮)--다시 무엇을 구하리오.

 

 

 

명(碑銘)은 거의 대부분 남이 지어주는 것인데 퇴계 선생처럼 자작하는 경우도 드물게 있다. 

이 ‘시로 쓴 자서전’은 퇴계집에는 물론이고 김성일(金誠一)의 학봉집(鶴峰集)

이정형(李庭馨)의 동각잡기(東閣雜記), 권벌(權橃)의 해동잡록(海東雜錄),

이익(李瀷)의 해동악부(海東樂府) 등에 실려 널리 전한다.

 

 자찬(自撰)은 자기 자신을 누구보다도 잘 알 수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나태하지 않도록 좌우명(座右銘)을 걸어 놓고 채찍질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

 

2020년 10월 30일 

 조 헌 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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