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ierang

🍃<폭설 한담>🍃

▪️지난 월요일 9시경, 크르와상, 넛트(캐슈, 호도, 피스타치오), 사과 반쪽과 커피 두 잔으로 아침 잘 먹고 TV앞에 앉았는데, 갑자기 전기가 나갔어요.  밖에는 밤새 내리는 눈이 여전히 부슬부슬 오고, 거의 30cm 가량 쌓여 있었지요.  곧 들어 오겠지,  예사롭게 여겼는데...

전기는 금방 돌아오지 않았어요.  결과부터 얘기하면, 이틀하고도 6시간만에야 전기가 들어왔답니다.  문제는 히팅도, 쿡킹도, 물도 전기에 의존하는 우리 집에서는 이게 완전 비상사태인 것을 깨닫는 경험이었어요.  특히 온도가 16도(섭씨 영하 9도)까지 내려간 강추위였으니.

▪️  Day 1: 첫 날은 전기가 곧 들어올 것이라 생각하고 별 걱정없었어요.  블루스타를 꺼내어 찻물도 덥히고, 냉장고의 밥도 끓여 먹었지요.  남편은 김치찌개 끓인다 나섰어요.  냉동칸의 돼지고기와  신 김치를 주었더니 스팸도 달라하여 그것마저 넣고 부대찌개 비슷한 걸 끓여냈어요.  남편은 '요리가 별 것 아니군' 하며, '캠핑온 것 같다'고 룰루랄라의 표정까지 보였어요.  (요즘, 은퇴한 한국 동창들과 카톡방에서 놀며, 한 친구가 '야, 찌개 끓이기 별 거 아냐, 김치에 물, 고기 넣고 끓이면 되더만!'이라 했다고 부쩍 관심을 보이던 중.  아마도 마눌과 24시간 지내며 삼식이가 될 까 남편들도 신경쓰이는 모양?)

그 날 밤은 오리털 조끼에 기모바지 입고 이불 위에 담요를 덮으니 제법 따뜻하게 잘 수 있었어요.  아, 이래서 에스키모들도 잘 사는구나, 했죠.

▪️Day 2: 눈은 그쳤고, 기온은 떨어진 채, 집은 어제보다 훨씬 추웠어요.  밥이 없어 오트밀을 끓여 김치, 밑반찬과 먹으니 맛이 괜찮았어요.  오늘은 전기 들어오겠지, 서로 위로 겸 희망의 말을 건네며 살짝 생존모드로 들어갔어요.  오랫동안 쓰지 않던 벽난로에 장작을 때니 훈기가 제법 만족스러웠구요.  고양이도 불 앞에 자리잡았어요.  장작 하나가 4-5시간 타고 거의 완전 연소되어 재도 별로 없었어요.  역시 가공된 장작이 좋긴 하네요.👍

한국의 동생에게 이 사진 보냈더니, 추운게 아니라  '낭만 모드네'라 했고, 나도 그런 줄 알았어요.  

근데 이 날 밤에 자다가...너무 추워서 새벽에 깼어요!  남편도 추워서 못 자겠다며 장작을 새로 넣고 있었어요.  기분이 어제와는 다르네요.  장작의 불꽃만 바라보니, 인터넷, TV도 그립고!  첫 날은 '그래, 이게 사는 거지'하며 아날로그 삶을 동경하던 남편도 기가 좀 죽은 듯, 미국의 인프라에 대해 비난을 던지기도 하더군요.

▪️Day 3: 와, 진짜 춥네요.  실내온도 48도(섭씨 9도)인데 이리 춥나.  오늘 아침은 핸폰 충전할 겸 차를 몰고 나가 뜨듯한 것 사 먹읍시다, 이러고 나갔는데, 이게 뭐람!  우선 집 근처 길의 나무가 쓰러져 한쪽을 막아 길이 외길이 되었더군요.  키 큰 소나무, 향나무들이  젖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 하고 드러눕거나 가지가 찢어져 무참한 광경이었죠.  그런 까닭에 전기줄이 곳곳에 끊어졌겠고, 이 동네의 60% 가구가 정전을 당했던 것.

월마트, 수퍼마켓, 칙필레, 맥도날드...몽땅  문을 닫았어요.  작은 식당들은 말할 것도 없겠구나!  이제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지요.  이 상태로 며칠 더 갈 수도 있겠네.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오며, 오늘 밤은 어제처럼 잘 수가 없다고, 고양이 받아주는 모텔로 가자고 얘기하며, 집에 와서 오트밀로 아침을 먹었어요.

이 날 오후 3시경, 남편은 핸폰 충전도 할 겸 밖에 나가 보고 오겠다며 차를 몰고 나갔어요.  근데, 갑자기 여러 소음이 함께 나더니, 전기가 들어왔어요!!!  야호!  남편에게 전화하여 "전기 들어왔어~" 하니, "알어!  바로 집 근처에 전기회사 트럭이 서 있길래 물었더니 전기 연결됐다구!"

이렇게 고난의 54시간은 끝났답니다.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기분이 좋아진 나는 남편에게, "이게 사는 거야~~"  



▪️후기 1: 전기가 나가면 현대문명이 암흑시대로 가는데 별로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을 깨달았어요.  히팅, 쿠킹, 인터넷 다 끊기고, 먹는 일, 불 때는 일에 엄청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하니!  당분간 울 남편의 현대문명 비판은 잠잠하겠군요.

  후기 2:  주변의 지인네는 4일만에 전기가 들어왔답니다.  아이구, 그런 줄 알았으면 울 집으로 오시라 했을 걸, 했더니, 옷을 많이 껴입어서 지낼만 했더라고, 헐!  원래 이 분은 긍정의 화신이긴 해요.

  후기 3:  눈오던 날 쿵, 쿵, 쿵 소리가 나서 옆 집 남자가 사슴사냥하러 총 쏘는 줄 알고 욕했기에, 죄송.^^  다~~~~~나무 쓰러지는 소리였어요.

우리 집 뒷마당에 키 큰 소나무 5그루가 넘어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