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애청곡

잠용(潛蓉) 2016. 9. 26. 07:41

 

 

'江南 달' (落花流水 1927)

金曙汀 작사/ 金曙汀 작곡/ 노래 李貞淑

(무성영화 '낙화유수' 주제곡) 

 

< 1 >

江南 달이 밝아서 님의 놀든 곳
구름 속에 의 얼굴 가리워졌네
不忘草 핀 언덕에 외로히 서서
물에 뜬 이 한 밤을 홀로 새우나?

 

< 2 >

멀고 먼 님의 나라 차마 그리워
寂寞한 가람 가에 물새가 우네
오날밤도 쓸쓸히 달은 지노니
사랑의 그늘 속에 재워나 주오.

 

< 3 >

江南의 달이 지면 외로운 身勢
浮萍의 잎사귀에 버레가 우네
찰하리 이 몸이 잠들리로다
님이 절로 오시어서 깨울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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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江南) : 중국에서 양쯔강(揚子江) 남쪽 지방을 말한다.

물론 서울 강남지역은 아닐 것이다. 흔히 문학에서는 먼 남쪽나라를

지칭하기도 한다. '강남 갔던 제비' 처럼. 시대적으로 살펴보면

일제의 탄압을 피해 북만주로 떠난 이민자들에게 강남이란

두만강 남쪽에 두고온 그리운 고향 조선(朝鮮)이 아니었을까?    

* 저 : 화자가 상대방에게 앞에서 언급한 사람을 낮추어 가리키는 말.

'그'와 같은 뜻. 성경에서 자주 사용된다.
* 불망초(不忘草) : 물망초와 같은 말.

* 가람 : 강의 옛말. 가사지의 한자 伽藍은 절, 사찰이란 뜻. 誤記인 듯하다. 

 


 

<
이정숙 낙화유수 [1927, 강남달, 유성기로 듣는 노래]

 


'강남달' - 신카나리아 노래

 



최초의 영화 주제가 '강남달' 

(최초로 발매된 창작가요) 
 
김서정 작사, 김영환 작곡, 이정숙 노래
1927년 무성영화 낙화유수 주제가
1929년 3월 음반발매

이노래는 1927년에 무성영화 "낙화유수"가 상영되던 단성사 극장 무대아래서 이정숙이 직접 부른 주제가로 1929년에 유성기 음반으로 취입되어 발매되었다. "강남의 달밤"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8.15 이후에는 "강남달"로 알려져 1960년대에 신카나리아 등 여러명의 가수가 LP음반으로 취입하였다.

 

↑ 이정숙 - 낙화유수(일명 "강남의 달")


1929년에 나온 음반의 음질은 1936년 이후의 음반과 많은 차이가 있다.
1920년대의 음반 취입시설과 기술적인 부족으로 음질이 떨어지고 음악반주 또한 피아노, 바이올린, 트럼펫, 트럼본, 아코디온 등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악단이다. 이정숙이 부른 "낙화유수"가 이러한 음반에 속한다.

 

↑ 1927년 10월 6일 단성사에서 개봉한 "낙화유수"
주연 : 복혜숙, 이원용, 장일성, 정산석 

 

1930년에 빅터레코드에서 "낙화유수"를 리바이벌 했는데 인기배우 이면서 노래 잘하기로 유명한 김연실이 불렀다. 김연실은 6.25전 월북하여 80대의 노인으로 현재 평양에 생존하고 있으며 최은희가 납북되어서 김연실과 상면하였다. 무성영화 "낙화유수"는 단성사에서 흥행에 성공을 거두어 1940년에 실시한 유성영화와 무성영화의 10대 영화선정행사에서 무성영화편의 10대 영화에 선정된 작품이다.

 

연출은 나운규와 함께 활동하던 이구영감독이고 여주인공은 1960년초에 사망한 복혜숙이 맡았다. 진주기생과 화가의 사랑이 비운의 러브스토리로 끝을 맺는 멜로물의 영화로 영화 촬영 중에는 복혜숙이 깊은 개울물에 빠져 진짜 낙화유수가 될뻔 하였다. 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장면을 촬영하는 도중 물속에 잠겨 떠내려 가는 것을 가까스로 구조하였다.

 

↑ 복혜숙(30년대와 60년대)

 

물깊이도 조사하지 않고 진행하던 초창기의 영화제작의 한 단면이었다. 청량리 일대가 촬영장소였는데 당시의 그곳은 울창한 숲과 큰 개울이 많았었는데 추측으로는 제기동의 용두천이나 중랑천으로 짐작된다. 주제가를 부른 이정숙은 전문적인 가수가 아니고 중앙보육학교(중앙대학교 전신)에서 홍난파에게 음악공부를 한 소녀로 "낙화유수" 영화감독 이구영의 동생이기도 하다.

 

1926년의 무성영화 아리랑의 여주인공인 신일선의 회고록에 의하면 이정숙은 단성사에서 아리랑을 상영할때에도 아리랑을 노래하였다고 회고하고 있다. 이정숙은 최초로 동요음악을 유성기 음반으로 취입하여 전국적인 동요보급확산에 일조를 한 인물로, 유명한 "오빠생각" "퐁당퐁당" "고드름" "봄편지" 등을 1927년 부터 1932년 사이에 많이 취입하였다. 이정숙이 취입한 유성기 음반 중 현재 남아있어 들어볼 수 있는 동요는 홍난파 작곡으로 "가을밤" "기러기" "봄편지" "고드름" "오빠생각" 등 10여 곡이 있다.

 

↑ 1929. 3 조선일보 / 콜럼비아 레코드사 "낙화유수" 음반광고 

 

↑ 이정숙과 김영환

 

작곡가 김영환의 행적은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지 않은 베일에 가린 연예인물중의 한사람이다. 무성영화시대의 일류변사로서 극장관객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고 인력거로 장안의 권번가를 누비고 다녔다. 무성영화 시대에는 영화내용보다 변사의 인기에 의하여 극장의 관객 숫자가 죄우되던 변사의 영향력이 막강할 때 였다. 진주권번 기생의 아들로 알려진 김영환은 1924년에 무성영화 "장화홍련전"을 감독하였고, 변사활동 중에도 1928년 "세걸인(세동무)", 1929년 "약혼", 1931년 "연애광상곡"을 감독하는 등 다재다능성을 보였다.

 

하늘을 치솟던 인기도 1935년에 발성영화가 출현하면서 무성영화는 사양길에 접어들고 변사들 또한 대중들로 부터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물 쓰듯 돈을 쓰고 화려한 생활을 하던 김영환은 시에론레코드에서 가끔 유행가, 만담, 넌센스를 만들거나 레코드를 직접 취입하기도 하였으나 마약으로 방황과 좌절의 시간을 보내다 끝내 마약중독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김영환 변사의 음성은 1930년초에 유성기 음반으로 취입한 것이 남아있는데 내용은 무성영화 중에서 일부를 간추린 음반으로 구성되어있다. 남아있는 음반은 무성영화 "젊은이의 노래" "부활" "세동무" "심청전" "풍운아" "동도" 등 몇편이 있으며 여배우들과 함게 취입한 만담, 넌센스 등도 있다. <이근태 가요사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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