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애청곡

잠용(潛蓉) 2021. 5. 9. 10:16

 

"看羊錄" (간양록 1980)
辛奉承 작사/ 趙容弼 작곡/ 노래 趙容弼
(1980년 MBC-TV 일일연속극 '간양록' 주제가)

(사진/ 睡隱 姜沆先生 墓)

 

異國 땅 三更이면
밤마다 찬 서리고
어버이 한숨 쉬는
새벽 달일세.

 

마음은 바람 따라
故鄕으로 가는데
先塋 뒷山의 雜草는
누가 뜯으리?

 

허야 허야 허야 허야
허어 야 허어 허~
허야 허야 허야 허야
허야~ 허어 허~

 

피눈물로 한 줄 한 줄
看羊錄을 적으니
님 그린 뜻 바다 되어
하늘에 닿을세라

 

허야 허야 허야 허야
허어 야 허어 허~
허야 허야 허야 허야
허야~ 허어 허~

 

허야 허야 허야 허야
허어 야 허어 허~
허야 허야 허야 허야
허야~ 허어 허~

 

허야 허야 허야 허야
허어 야 허어 허~

 

(조용필 - 간양록)

 

(주현미 간양록 원곡:조용필)

 

(조용필- 간양록)

 

(조용필 - 한오백년, 간양록 1993)

 

(간양록 看羊錄_Ganyangnok - 조용필)

 

(조용필 세종문화회관 콘서트 / 魂의 소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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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봉승(辛奉承, 1933년 5월 23일 ~ 2016년 4월 19일)은 대한민국의 소설가, 시인, 역사가, 문학평론가, 극작가, 영화감독, 영화 기획가, 영화 각본가, 대중음악 작사가, 수필가, 대학 교수, 문학 교육가이다. 본관은 영월(寧越)이고 호(號)는 초당(艸堂), 취영(翠影), 한월당(閑月堂)이며 강원도 명주 출생이다.

학력​과 주요경력​/ 강원도 강릉고등농림학교(前 강릉사범학교) 졸업,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중퇴,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문학석사, 1957년 시인 첫등단, 1960년 문학평론가 등단, 1963년 소설가 등단, 1963년 영화 《두고 온 산하》로 시나리오 작가 데뷔, 1963년 영화 《사랑은 주는 것》으로 영화 각색가 데뷔, 964년 가수 최희준의 《월급봉투》라는 곡을 작사하여 대중음악 작사가 데뷔, 1970년 영화 《Expo 70 동경 작전》을 각본, 이 영화로 영화 기획가 데뷔, 1970년 영화 《해변의 정사》를 각본, 이 영화로 영화감독 데뷔, 1971년 극작가 등단, 1973년 수필가 등단.

 

강항(姜沆: 1567-1618) : 본관은 진주. 자는 태초(太初), 호는 수은(睡隱)·사숙재(私淑齋). 전남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유봉 마을에서 태어났다.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1593년 전주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교서관정 자·가주서·교서관박사를 거쳐 96년 공조좌랑에 이어 형조좌랑이 되었다. 97년 휴가로 고향에 머물던 중 정유재란이 일어나 군량미 수송임무를 수행했고 고향에서 김상준(金尙寯)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나 영광이 함락 당하여 가족과 함께 해로를 통해 탈출하려다가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압송, 오쓰성[大津城]에 유폐되었다. 이곳에서 일본의 승려 요시히도[好仁]와 교류하며 그로부터 일본의 역사·지리·관제 등을 알아내어 《적중견문록(賊中見聞錄)》에 수록, 몰래 본국으로 보내기도 했다. 98년 교토의 후시미성[伏見城]으로 이송되어 이곳에서 후지와라 세이카[藤原醒窩]·아카마쓰 히로미치[赤松廣通] 등 4년여의 억류생활을 하였는데, 일본 막부의 귀화요청을 조선 선비답게 단호히 거절하고 두 제자의 도움을 받아 1600년 가족과 함께 귀국하였고 1602년 대구교수(大邱敎授), 1608년 순천교수(順天敎授)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향리에서 독서와 후학 양성에만 전념했다. 일본 억류 중 사서오경의 화훈본(和訓本) 간행에 참여, 그 발문을 썼고, <곡례전경(曲禮全經)> <소학> <근사록(近思錄)> 등 16종의 글을 수록한 《강항휘초(姜沆彙抄)》를 남겨 일본의 내각문고에 소장되어 있으며, 《역대명의전략(歷代名醫傳略)》의 서문을 썼다. 그림에도 뛰어나 인물화와 송화(松畵)에 특기가 있었다. 영광의 용계사(龍溪祠)· 내산서원(內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운제록(雲堤錄)》 《강감회요(綱鑑會要)》 《좌씨정화(左氏精華)》 《간양록(看羊錄)》 《문선찬주(文選纂註)》 《수은집(睡隱集)》등이 있다.

 

간양록(看羊錄) : 정유재란 때 일본에 잡혀갔던 강항이 일본에서 견문한 풍속·지리·군사 정세 등을 기록한 책으로 목판본 1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규장각도서이다. ‘간양(看羊)’은 흉노에 포로로 잡혀갔던 소무(蘇武)의 충절을 뜻하는 말로, 본래의 제목은 죄인이라는 뜻에서 《건거록(巾車錄)》이라 하였으나, 1656년(효종 7) 책이 간행될 때 제자들이 강항의 애국충절을 기린다는 의미에서 간양으로 고쳤다. 3년 동안 지내면서 보고 듣고 겪은 일본의 지리·풍토·인문·병비(兵備) 등과 도요토미[豊臣秀吉]의 조선 침략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또한 포로가 되었을 때부터 귀국하였을 때까지의 일기를 <섭란사적(涉亂事蹟)>이라 하여 권말에 첨부하였다. 강항을 배향한 내산서원(內山書院)은 영광군 불갑면 쌍운리 산 22-4에 있다.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팔작지붕의 형식이다. 내산서원 입구의 정렬문은 강항이 52세를 일기로 타계하여 이곳 산기슭에 묻히자, 식음을 전폐하고 그의 뒤를 따른 부인 함평이씨에게 내려진 열녀문이다. 강항은 정유재란 때 고향 영광에서 의병을 일으켜 이 충무공 진영으로 가던 중 왜군에게 붙잡히게 되며, 이후 일본 대판으로 끌려가 포로 생활을 하다 선조 32년에 석방되어 귀국. 조정에선 그에게 벼슬을 주어 중용하려 했으나, 스스로를 적군에게 포로가 됐던 죄인이라며 극구 사양한 채 저술 작업 및 학문 연구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강항이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두고 온 조국을 생각하며 읊조린 시 한편이다. 간양록 (看羊錄)에 기록 되어있는 시(詩)로 조용필의 노래 "간양록"의 원시이다. 

 

봄은 동녘에서 오는가, 한많은 봄이로세.
바람아, 너는 서녘으로 갔느냐, 맘만 들떠 바쁘이.

세벽단, 어버이 한숨실은 새벽달일세.
밤길도 더듬더듬 헤매신다.

촉대로 새운 밤을 그 누가 알랴. 그 누가 알랴,
아침 햇빛에 복받치는 내 설움을!

글방 옛터에 피고 진들 누가 알리
선영 뒷산에 잡초는 누가 뜯고.

삼한의 피를 받아 굵어진 이 뼈
어찌타 짐승 놈들과 섞일 수가 있으랴!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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