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남북통일

잠용(潛蓉) 2021. 9. 23. 05:25

[랭면과 철조망 ⑪] 평양에서 최상류층 삶…“통일에 무심한 한국 떠나 미국행 결심”
‘김정은 금고지기’ 아버지와 北 탈출한 이현승씨
시사저널ㅣ1664호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승인 2021.09.05 14:00

“좋은 글을 쓰십니다.” 
탈북민 이현승씨(36)가 미국에서 SNS를 통해 시사저널 ‘랭면과 철조망’ 기획을 응원해 왔다. 이씨 가족은 2014년 10월 탈북해 잠시 대한민국에 체류하다가 미 워싱턴DC에 정착했다. 북한 최상류층 가족의 탈북이었지만, 지금까지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이 한국에 1년여간 머물 때 안전상 이유로 은둔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2016년 3월 도미한 뒤 시작한 공개 활동도 미국 내에 국한됐다. 국내 언론에서 이씨와 접촉하고, 그의 이야기를 자세히 소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씨의 아버지 이정호씨는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 간부 출신이다. 노동당 39호실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통치자금을 관리하는 핵심 중 핵심 기구다. ‘최고 존엄’의 경제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인사가 현직 신분으로 탈북했으니, 북한 입장에선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탈북 초기 북한 당국으로부터 신변의 위협을 받았다고 이씨는 털어놨다. 

▲ 이현승씨 ⓒ이현승 제공

 

국내 언론 최초로 전하는 이현승씨 이야기  
지금은 괜찮을까. 이씨 가족은 미국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외 행보를 펼치는 대신 정중동(靜中動)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씨에게 근황을 묻자 “미국 정부나 싱크탱크, 비정부기구(NGO) 등에 북한 관련 자문을 해주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버지 이정호씨도 비슷한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들 부자(父子)의 전문 분야는 단연 북한 경제다. 탈북하기 전에는 이씨도 아버지처럼 엘리트 무역일꾼의 길을 걷고 있었다. 

북한 원산에서 태어난 이씨는 세 살 때 평양으로 이사했다. 아버지가 노동당 39호실에 들어가 30여 년을 근무하는 동안 이씨 가족은 그야말로 ‘상위 1%’의 삶을 삶았다. 여느 북한 엘리트 계층처럼 ‘토대’(집안 내력)가 화려하지는 않았다. 이씨는 “평범한 집안이어서 할아버지 ‘빽’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며 “아버지 스스로 노력해 북한 정권에서 인정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정호씨는 39호실 재직 중 ‘노력영웅’ 칭호까지 얻었다. 노력영웅은 북한 당국이 비(非)군사·민간 영역에서 공을 세운 인사들에게 부여하는 최고의 영예다.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고 이씨는 금성학원, 평양외국어학원, 평양외국어대학 등 북한 일류 교육기관에서 공부했다. 대학 입학 전 3년3개월간 조선인민군에서 복무하기도 했다. 평양외국어학원 출신은 군 복무를 면제받을 수 있는데도 자원입대한 것이었다. 평양외국어대학 재학 중엔 중국 다롄에 있는 동북재경대학으로 유학, 국제무역과 경제를 전공했다. 이씨의 여동생 서현씨는 금성학원, 평양외국어학원을 거쳐 김일성종합대학 외국어문학부에 입학했다. 이후 오빠처럼 동북재경대 유학길에 올라 금융을 공부했다. 

2011년 대학 졸업 후 동북재경대 석사 과정을 밟던 이씨는 북·중 무역 실무에도 참여하며 커리어 기초를 탄탄히 쌓아나갔다. 이씨의 중국 유학 시절, 아버지 이정호씨가 39호실 산하 다롄 주재 대흥총회사 지사장으로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씨는 “북한에 계속 있었다면 아마 김정은 정권을 위해 일하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미 국무부 청사를 방문한 이현승·이서현씨 남매 /ⓒ이현승 제공


‘평해튼’의 삶… 엘리트 무역일꾼 코스 밟아 
이씨 남매는 탈북 직후 미국 워싱턴포스트(WP)를 통해 북한에서의 풍족했던 삶을 소개한 적이 있다. 이씨는 평양 주민들 사이에서 유니클로, 자라, H&M 같은 글로벌 SPA 브랜드가 인기라고 했다. 동생 서현씨는 평양의 고급 피트니스클럽 트렌드를 소개했다. WP는 북한에 최상위 부유층이 있으며, 이들은 수도 평양에서 마치 뉴욕 맨해튼과 같은 삶을 누려 이들이 사는 세계를 ‘평해튼(Pyonghattan)’이라 부를 만하다고 보도했다. 

평해튼 부유층의 전형이 바로 이씨 가족이었다. 국유기업 운영이나 투자유치 등을 담당하는 노동당 고위 간부들은 대부분 비공식 경제활동으로 부를 축적한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이 간부 일가를 통해 평해튼 전체로 돈다. 평양 출신의 한 탈북민은 “사회주의 북한에서 웬 사유재산이냐고 의문을 표한다면 북한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평양과 해외를 넘나들며 개인사업을 벌이는 사람이 차고 넘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많이 변했기 때문에 사실상 내부는 자본주의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덧붙였다. 
  
고층건물과 상업시설이 즐비하고, 소비활동도 활발한 모습에 혹자는 북한 경제가 일면 나아졌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속 빈 강정이란 반론도 있다. 이정호씨도 2017년 미 국무부가 운영하는 매체 미국의 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평해튼 현상’에 관해 “북한 주민들이 지난 20여 년간 국가에 의존하지 않은 채 자생적으로 삶의 터전을 만들고, 외화벌이를 하는 기관·기업·상점이 우후죽순처럼 늘었다”면서 “이런 가운데 광물 수출 활성화에 따른 외화 유입이 건설 부문 투자와 부유층 소비 활성화로 이어졌다”고 해석했다. 그는 “북한은 이렇게 경제가 (순리대로) 돌아가는데도 여전히 사유재산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건설 투자 등도 단지 최고지도자의 업적을 쌓기 위해 총동원하는 식”이라며 “정권의 리더십이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보기 힘들고, 대북 제재로 광물 수출이란 변수가 사라지면 상황은 순식간에 악화할 수 있다”고 예견했다. 

실제로 이정호씨는 3년 뒤 VOA 인터뷰를 통해 2017년 채택된 유엔(UN) 대북 제재로 광물·섬유·수산물 수출이 막혀 북한의 자금줄이 많이 차단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3년간의 대북 제재로 북한 경제는 ‘고난의 행군’(1990년대 최악의 식량난을 겪던 시절) 때보다 더욱 악화했다”며 “제재 영향으로 돈이 고갈돼 평양 주민들의 소비가 대폭 줄었고, 소비 감소에도 상품이 없어 물가는 몇 배 급증했다”고 말했다. 

불안한 북한 경제처럼 이씨 가족의 평탄한 삶도 사상누각에 불과했다. 2013년 11월 중순 이씨는 비즈니스를 위해 다롄에서 평양으로 출장 간 당일 장수길 노동당 행정부 부부장의 체포 사실을 전해 듣게 됐다. 장 부부장은 아버지의 지인이었다. 장 부부장의 사위와 이씨도 친구 사이였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더 큰 비보가 이씨를 주저앉혔다. 장 부부장과 같은 부 이용하 제1부부장이 공개 처형당했다는 소식이었다. 노동당 행정부장은 김 위원장의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처형된 두 사람은 김 위원장 눈 밖에 난 장 부위원장의 핵심 측근으로 분류됐다. 

▲ 테드 버드 미 하원의원(왼쪽)과 인터뷰하는 이현승씨 /ⓒ이현승 제공

 

김정은 집권 초기 ‘피의 숙청’ 계기로 탈북 
장 부부장의 사위인 친구도 결국 연좌제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고 이씨는 전했다. 이씨는 “한동안 ‘반역자’로 지목된 간부들과 그 가족이 숙청됐다는 소식을 매일같이 들어야 했다”며 “다롄에서 함께 대학을 다닌 다른 친구의 할아버지는 김 위원장 고모이자 장 부위원장 부인인 김경희 노동당 경공업부장 측근이었단 죄목을 받아 경공업부 간부 20여 명과 함께 잔혹하게 처형됐고, 3대(代)에 걸친 일가족이 악명 높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다”고 했다. 그는 “주변인들이 누군가의 가족이란 이유로 죽임을 당하거나 평생 수용소에 갇히는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며 “북한 엘리트 계층 대부분이 김 위원장 집권 후 친척과 친구를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당시 동생 서현씨도 동북재경대에서 유학하던 중 같은 북한 유학생 룸메이트가 국가보위성 요원들에게 체포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씨 가족은 가까스로 비극을 피해 갔으나, 생지옥 같은 현실을 버텨낼 힘이 더는 남아있지 않았다. 이씨는 “우리 가족도 반인륜적인 독재정권의 타깃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몸서리치게 끔찍했다”면서 “‘이 체제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사회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문한 끝에 가족 전체가 망명길에 올랐다”고 말했다. 

첫 번째 질문은 북한 정권을 등지는 동시에 해소됐다. 안타깝게도 두 번째 질문에 대한 해답을 한국에서 찾을 순 없었다. 이씨는 “중국에 7년여간 체류하면서 한국 뉴스나 영화·드라마 등을 많이 봤기에 한국 사회를 모르진 않는다고 생각했다”며 “실제로 와보니 다소 차이가 있었다. 한국은 북한의 변화나 남북 통일을 향한 의지가 없는 듯 느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북한을 돕기 위해선 먼저 미국과 협력해야겠다는 생각에 한국을 떠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국 일각에서 제기된 억측들도 이씨 가족의 마음을 돌려세웠다. 대표적인 게 아버지 이정호씨의 횡령설(說)이었다. 이정호씨가 중국에서 북한 당국의 자금 1000만 달러 이상을 횡령해 탈북했다는 의혹이다. 이씨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일부 한국 언론 혹은 탈북민들이 북한 고위층의 탈북 시 온갖 추측과 왜곡으로 명예를 훼손하고는 아무 사과도 해명도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는 “우리 가족이 북한 당국 자금을 들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한국 정부가 잘 알고 있다”면서 “횡령한 게 맞다면 북한 정권이 가만히 있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 이현승씨의 아버지인 이정호씨 /ⓒ미국의소리(VOA) 방송 유튜브

 

“탈북 후 제기된 각종 억측에 마음고생” 
한국발(發) 루머는 미국에 정착해서까지 따라왔다. 이씨는 “우리 가족이 미국에서 호화롭게 산다는 소문도 맞지 않다. 식구들 모두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잘 모르는 이야기를 고위층 탈북민과 엮어 ‘아니면 말고’식 추측을 내뱉는 것은 진실한 탈북 동기를 폄하하는 옳지 못한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의 미국 생활에 대해 이씨는 “그동안 몰랐고 새로 배워야 할 게 무궁무진하다”며 “미국에서 더 공부하며 북한 주민들과 한민족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폐쇄된 사회에 갇힌 북한 주민들이 가장 소원하는 것은 자유”라며 “그들에게 목숨보다 소중한 자유를 안겨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씨는 미국 정부, 정치인 등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시도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어야 북한 엘리트들이 자신의 나라를 변화시킬 꿈을 꾸게 된다”면서 “지금 그들(북한 엘리트들)에게는 비전이 없다. ‘더 좋은 삶이 기다린다’는 깨달음을 주면 북한의 변화를 충분히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부디 한국도 북한의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 관심을 가져 달라고 이씨는 호소했다. 이씨는 “한국이 역사를 잊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 특히 젊은층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제공하는 삶을 공기처럼 느껴서인지 소중함을 잘 모른다”며 “바로 위(북한)에 확실한 실례(實例)가 있지 않나. 북한 사람들이 수십 년간 통제되고 억압받고 죽는 과정을 보고도 배우지 않고 외면한다면 자유는 결코 지켜질 수 없다”고 말했다.  

“노동당 39호실은 김정은의 ‘개인 대기업’”
통치자금 관리·무역 등 北 정권 유지 핵심 역할 이현승씨의 아버지 이정호씨가 2017년 미 VOA 인터뷰에서 증언한 바에 따르면, 북한 노동당 39호실은 40년 넘게 북한 정권 유지를 위한 핵심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정호씨는 “국가 최고지도자(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통치자금을 관리하고 외화벌이 생산과 무역을 지도하는 게 39호실의 직능”이라며 “39호실의 직속상관은 최고지도자이며, 밑에서 수십만 명이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당 39호실을 처음 만든 사람은 김 위원장의 아버지 고(故)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다. 1974년 후계자로 지목되고 나서 당내 비밀기관으로 설립했다.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하려면 돈이 넉넉히 필요하겠다는 판단에서다. 이후 39호실은 합법과 불법을 넘나들며 김정일 위원장 통치자금을 조달했다. 

이정호씨는 “1990년대 초반까지 39호실 산하 대흥총국에서 마약을 생산하고 수출하기도 했다”면서 “이제는 마약을 비롯해 가짜담배, 위조화폐 등을 39호실이 취급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노동당의 이미지가 손상되는 등 소탐대실할 수 있기 때문에 불법 경제활동을 통제한 것”이라며 “다만 그런 사업(불법 경제활동)은 다른 단위들에서 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했다. 39호실은 중앙기관들과 각 도·시·군별 조직체를 갖췄다. 중앙기관에는 대성은행, 대성총국, 금강총국, 대흥총국, 대외건설총국, 모란지도국, 선봉지도국, 대경지도국, 유경지도국, 낙원지도국 등이 있다. 39호실 중앙기관 책임자들은 규모에 따라 장관급 또는 차관급 대우를 받는다. 

이정호씨는 중앙기관 중 하나인 대흥총국에서 선박무역회사 사장, 무역관리국장, 중국 다롄 주재 대흥총회사 지사장 등을 맡았다. 2007년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이정호씨를 국방위 소속 금강경제개발총회사 이사장에 임명하기도 했다. 이정호씨는 “앞서 내가 홍콩 회사 투자를 유치했고, 회사 설립과 발전에 관한 제안을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고해 해당 사업이 시작됐다”고 회상했다. 이현승씨는 아버지가 30여 년간 근무했던 북한 노동당 39호실을 ‘김정일·김정은 위원장의 개인 대기업집단’이라고 표현했다. 이씨는 “39호실은 정부 기관이면서 (자본주의 체제로 치면) 대기업 같은 역할을 한다”며 “사기업이 없는 북한에서 경제의 절반 이상을 이끌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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