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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사형수가 넘쳐났던 세종 시대의 감옥… 성군의 치세에 무슨 일이? 경향신문ㅣ2022.01.18 05:00 수정 : 2022.01.20 13:49 ▲ 1997년 발굴된 경주 옥사 모습. 원형 담장과 남녀 옥사가 구분되었다. /이은석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장 제공 ‘3m 가량의 높은 담장에 남녀가 구분되어 있는 옥사….’ 얼마 전에 조선시대 감옥을 주제로 한 논문이 발표됐다. 이은석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장이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펴내는 학술지( 54호 4권)에 발표한 논문(‘조선시대 지방 옥 구조에 관한 고찰’)이다. 발굴유적과 고지도를 비교분석한 논문인데, 그중 감옥의 형태가 원형이고, 남녀 옥사가 구분된 구조라는 것이 필자의 눈길이 쏠렸다. 우선 ‘원형감옥’ 이야기를 해보자. ▲ 지금까지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일제는 왜 조선임금의 탯줄까지 집단 이주시켰나? 경향신문ㅣ2022.01.04 05:00 수정 : 2022.01.05 09:39 ▲ 2003년 도굴 때문에 세인의 이목이 집중된 대구 광해군 태실에서 출토된 광해군의 태지석과 태항아리. 태항아리는 왕실의 왕자나 왕녀가 태어났을 때 태(胎)를 담은 항아리를 말한다. 그 주인공의 이름, 생년월일을 기록한 태지석을 함께 묻었다. /문화재청 제공 조선왕릉은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2009년 왕과 왕비 무덤 44기 중 40기가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왜 4기는 빠졌을까. 제릉(태조 이성계의 정비 신의왕후릉)과 후릉(2대 정종과 정안왕후릉)은 북한 땅에 있으니 뭐 그렇다치자. 연산군(1494~1506)과 광해군(1608~1623)의..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궁궐 현판, 명필 임금도 쓸 수 없었던 이유… ‘잘난체 말라’는 뜻 경향신문ㅣ2021.12.21 05:00 수정 : 2021.12.21 10:01 ▲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있었던 제1대와 7대 조선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1852~1919)와 미나미 지로(南次郞·1874~1955)의 현판. 데라우치의 것은 1914년 도쿄(東京)에서 열린 대정동경대박람회에 마련된 ‘조선관(朝鮮館)’이다. ‘관(館)’자의 오른쪽 변인 ‘관(官)’ 대신 ‘환(宦)’으로 대체했다. 미나미의 것은 1938년 덕수궁 안에 마련한 ‘이왕가미술관(李王家美術館) 현판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얼마전 국립중앙박물관이 수장고에 간직한 현판 110점을 조사한 보고서를 펴냈다. 언론에는 문화재청이 경..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바둑 잘 두는 신라공주가 중국의 기성 '마랑'을 만났다면… 경향신문ㅣ2021.12.07 05:00 수정 : 2021.12.07 09:39 ▲ 황남대총 남분에서 확인된 ‘마랑’명 칠기. 발굴(1973~75년)된지 50년 가까이 정체를 몰랐다가 최근 ‘마랑’이 중국 서진 시대에 중국 바둑계의 최고수로 추앙받은 기성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서 이 칠기는 ‘마랑’의 사인을 새긴 바둑통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은석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장 제공 황남대총은 신라의 왕과 왕비, 왕·귀족이 묻혀있는 경주 대릉원에서도 초대형 고분에 속한다. 표주박 모양으로 조성된 이 고분은 내물(356~402) 혹은 눌지마립간(417~457) 부부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남분이 왕(마립간), 북분이 왕비..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가야연맹의 '큰형님'이 따로 있었나?… 1인자 꿈꾸는 아라가야 경향신문ㅣ2021.11.23 05:00 수정 : 2021.11.23 09:45 ▲ 2019년 함안 말이산 고분군 45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의 복원 모습. 보존처리 과정에서 금동관의 부품임을 확인했다.백제·신라처럼 관테와 세움장식 등을 따로 제작하지 않았다. 하나의 동판에 그림을 그린 뒤 장식 모양에 따라 뚫어서 조각하는 기법(투조)을 썼다. 금공품 연구자인 이한상 대전대 교수가 출토된 금동관편을 토대로 복원했다. 봉황 두 마리가 마주 보고 있는 아라가야 특유의 독창적인 디자인이다. “마치 쌍둥이 같네요.” 얼마전 가야연맹체 중에서도 아라가야의 중심지인 경남 함안 말이산 75호분에서 발견된 중국제 청자가 필자의 눈길을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신라 금관은 왜 순금이 아니라 19~21K일까…발굴 100년 맞아 분석해보니 경향신문ㅣ2021.11.09 05:00 수정 : 2021.11.09 16:34 ▲ 일제강점기인 1921년 사상 처음으로 발견된 금관총 금관(왼쪽)과 1973년 국내 조사단이 학술발굴한 천마총 금관(오른쪽)의 부위별 금함유량. 순금(99%·24K)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82~85%(19~20K)정도의 금함유량을 나타났다. 강도를 높이려고 은을 섞은 것으로 보인다. 금의 함유량은 분위별로 차이가 있었다. /신용비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 학예연구사 제공 올해는 한국고고학사에서 기념비적인 유적과 유물이 출토된지 50년과 100년 되는 해다. 먼저 1971년 공주 송산리에서 “내가 무령왕이요”하고 손들고 나타난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전두환이 보러온다고 소란 떤 신라고분, 그곳엔 고구려벽화가 있었다 경향신문ㅣ2021.10.26 05:00 수정 : 2021.10.26 09:53 ▲ 1985년 1월29일 당시 대구대 이명식 교수가 경북 영주 순흥에서 발견한 읍내리 벽화분의 그림(모사도). 제작연도를 알 수 있는 명문 7자와 인물상(역사상) 등 다양한 그림이 보였다. /대구대박물관 제공 1960년대부터 대구 경북 지역 골동품상 사이에서 심상치않은 소문이 돌았다. “(영주) 순흥면의 어느 곳에 벽화고분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소문을 허투루 듣지않은 이가 있었다. 당시 진홍섭 이화여대 박물관장이었다. 틈나는대로 순흥 지역을 답사하던 진관장은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에 따라 도굴 구덩이가 있는 무덤을 들어가 벽화의 유무..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돌아오지 못한 1500년 전 부부총 금동관… 왜 한일협정서 빠졌나? 경향신문ㅣ2021.10.12 05:00 수정 : 2021.10.12 10:12 ▲ 1920년 11월 경남 양산 부부총에서 출토된 금동관(왼쪽). 1921년 9월 경주 금관총에서 우연히 발견된 금관(오른쪽)보다 10개월 먼저 나왔다. 형태나 제작기법이 쌍둥이라 할만큼 흡사하다. 부부총 금동관은 남성 피장자가 머리에 쓴 그대로 출토되었다. 따라서 조각난채 분해되어 출토된 금관총 금관을 조립할 때 이 부부총 금동관을 옆에 두고 조금씩 조금씩 맞춰갔다고 한다. /양신시립박물관 제공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금관이 출토된지 꼭 100년 되는 해다. 때는 바야흐로 1921년 9월이었다. 경주 노서리에서 주막집 증축을 위한 터파..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무령왕 부부 위로 황금 꽃비가 내렸습니다… 왕릉 속 2715개 연꽃·원형장식의 비밀 경향신문ㅣ2021.09.28 05:00 수정 : 2021.09.28 13:54 ▲ 무령왕릉 안에서 확인된 황금 연꽃 모양의 장식. 금함유량은 93.4~94.1%(큰 것)과 98.8~99.5%(작은 것)로 순금(24K)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금 연꽃 668점, 은연꽃 137점 등 805점의 연꽃 장식이 수습됐다. /국립공주박물관 제공 ‘무령왕릉에 연꽃비가 내렸습니다.’ 무령왕릉 발굴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를까. 발굴 50주년을 맞아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무령왕릉 발굴 50주년-1971~2021)을 찾은 필자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선 출토된 묘지석에 따라 삼국시대 고분 가운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