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1~2013

Jay Kim 2012. 1. 25. 09:47

 

컨설팅 비즈니스

 

제가 컨설팅 비즈니스를 시작한지도 벌써 1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하였을 때에는 컨설팅이라는 단어 자체도 낯설었을 뿐 아니라 고객들 조차도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였습니다. 다행히 한 두 고객을 가까스로 비즈니스로 연결을 하는데 성공하였다 하더라도 이번에는 컨설팅 보수를 받아내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당시에는 내용물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번듯한 컨설팅 결과물이 무엇인가 하드웨어적인 물건이 나오기를 기대하였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몇 장 되지 않는 컨설팅 결과 리포트나 제안서로는 성에 찰 턱이 없었습니다. 그 때의 반응은 당신이 한 게 뭐가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뭔가 그럴 듯 한 눈에 보이는 물건을 기대하였던 고객들은 컨설팅의 결과가 보여주는 귀중한 정보와 제안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리포트의 분량이 적다던가, 고작 종이 몇 장 써내려고 컨설팅을 한다고 요란을 떨었느냐고 불평하기 일쑤였습니다. 제가 작성한 컨설팅 보고서는 길어야 A4 용지 20장 전후이고, 아무리 길어도 30장을 넘어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컨설팅 수수료를 받아내기란 정말로 힘들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세상은 변하게 마련이라고 컨설팅이라는 단어가 한국 기업들에게 익숙해지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IMF 구제금융으로 인한 경제, 금융위기였습니다. 1997~ 1998년 들어서 겪게 된 우리나라의 경제위기- 특히 금융의 어려움은 금융 전문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던가, 그 당시 서울 시내 일류 호텔의 커피숍에는 미국에서 비행기 타고 태평양을 건너 왔다고 하는 자칭 금융 전문가들이 넘쳐 흘렀습니다. 저도 IMF 금융위기라는 시류 덕분에 국내 정부투자 대기업에 금융고문 계약을 하여 상근 고문으로 근무를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당시 제게 주어진 임무 가운데 하나가 하루에도 3~4 건씩 정부 기관, 국회, 언론기관, 심지어는 청와대를 빙자하고 들어오는 금융 관련 제안과 청탁을 검토하여 옥석을 가려내는 일이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 당시 제가 검토하였던 제안서는 100%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황당한 제안서 가운데 하나는 제임스 킴, 조나단 팍 등 영문 이름과 한국 성()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OOO O 이라는 재미교포 한 사람이 찾아 왔던 때입니다. 자신에 대한 소개 자료라면서 자신이 필리핀 정부에 제출하였다고 하는 수백 장짜리 두꺼운 국가 재정 관리 마스터 플랜 제안서를 들고 와서 읽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제안서를 읽어 보고 싶지도 않았고 또 한가하게 그런 제안서나 읽고 있을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간단히 물었습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보낸 제안서에 대하여 필리핀 정부가 당신에게 보낸 답장을 보여 줄 수 있습니까?”라고. 만약 그가 보낸 제안이 제대로 된 것이라면 필리핀 정부가 무언가 회신을 하였을 것이고 그렇지 않고 별 내용이 없는 것이라면 답장도 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경우는 후자일 것이라고 저는 추측하였고 저의 추측은 맞았습니다. 그 사람은 우물쭈물 답을 못하고 횡설수설 다른 이야기만 하였습니다. 그러고도 모자랐던지 한 술 더 떠서 자신은 영국의 런던 시장에서 특별한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는 다섯 손 가락 안에 꼽히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말한 라이선스는 채권을 시장 매도가(오퍼: offered price)에 팔고, 시장 매수가(비드; bid price)에 살 수 있는 라이선스라는 것이었습니다. 시장에서의 거래는 주식이나 채권을 팔 때에는 시장 매수가에 팔고, 살 때에는 시장 매도가에 사는 것이 정상입니다. 만약 반대로 시장 매도가에 팔고 시장 매수가에 살 수만 있다면 이는 대단한 수완이고 항상 이익을 보장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라이선스를 도대체 누가 당신에게 주었느냐고 그런 라이선스가 있으면 보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누가 라이선스를 발행하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곧 확인하여서 알려주겠다고 하였고 라이선스의 카피를 나중에 제게 보내 주겠다고 하였으나, 저는 그 날 단 한번 그 사람을 만난 이후로 다시는 그 사람을 만나보지 못 하였습니다. 당연히 그 사람은 그런 라이선스를 제게 보여 주지도 못 하였고, 보여 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라이선스는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IMF 구제 금융을 거치면서 컨설팅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나아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컨설팅을 빙자하여 말도 안 되는 일들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도 많아져서 한 편으로는 비즈니스 환경이 더 나빠지게 된 면도 없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아직도 컨설팅 비용을 아까워하는 기업 문화는 없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데에는 컨설팅 업계 사람들의 자질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런 예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수 년 전에 제가 어느 금융기관에서 근무를 마치고 다시 컨설팅 업무를 시작할 때였습니다. 제 주변의 예전 고객들에게 제가 다시 컨설팅 비즈니스로 돌아 왔음을 알리고 새로운 비즈니스 거리를 찾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당시 저의 고객 회사 가운데 한 곳에서 저를 급히 찾았습니다. 제가 다른 회사의 임직원으로 근무를 하고 있어서 제게 일을 맡기지 못하고 다른 컨설팅 업체에게 일을 맡겼었는데 그 컨설팅 보고서를 저에게 검토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보고서의 첫 페이지를 들추자 마자 고소를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 컨설팅 보고서의 첫 페이지 첫 문장은 이러했습니다. “OOOO이 앞으로의 나아갈 길은 한 마디로 국제화입니다.” 이 한 줄을 굵은 고딕체로 첫 페이지 맨 위에 커다랗게 써 놓고 그 다음에 이어서 컨설팅 결과에 대한 설명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보고서를 읽으면서 더 한심하였던 것은 그 보고서가 끝날 때까지 국제화라는 단어는 다시는 찾아 볼 수 없었고 왜 국제화를 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 또한 단 한 마디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부류의 컨설팅 업체들이 난무해 있으니 많은 고객들이 컨설팅을 맡기면서 그러니까 딱 한 마디로 요약하면 결론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쉽게, 자주 하는 것입니다. 컨설팅 결과를 딱 한 마디로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이 불행히도 제게는 없습니다. 여태까지 제가 하였던 컨설팅 업무는 딱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간단한 일들이 아니었습니다.

 

얼마 전 아는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간단한 내용을 물어보려고 하는데 답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내용인즉슨 아는 사람이 운영하는 회사가 돈을 빌리려고 하는데 미국 달러로 빌리는 것이 좋아 아니면 유로 통화로 빌리는 것이 좋아? 형한테 나중에 뭐라고 책임 추궁 하지 않을 테니까 그냥 간단히 답해줘.” 세상에 이런 황당할 데가무슨 비즈니스를 하고 재무 상황이 어떤 회사가 기간이 얼마나 되는 돈을 얼마나 큰 규모로 빌리고 상환 재원은 어떤 방법으로 마련하고, 또 그 회사의 재무 관련 인적 자원은 이러한 업무를 수행할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등등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냥 어느 통화로 부채를 일으키는 것이 좋은지, 그리고 책임은 묻지 않겠으니 무료그냥답해 달라는 요구였습니다. 정말 곤란한 경우입니다. 제게 책임을 묻고 안 묻고를 떠나서 행여 제가 권하였던 통화로 부채를 일으켰다가 그 회사가 감당을 못 하거나, 관리를 잘 못하거나, 또는 먼 훗날 기회손실이라도 발생하면 저는 얼마나 무지, 무능하고, 무책임한 사람이 될까요? 이럴 때에 해 줄 수 있는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아무 통화로나 빌리라고 해.”

 

16~7 년쯤 전 제가 이 비즈니스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수임하였던 일은 해외의 대형 공장을 매입하는 데에 따른 파이낸싱 프로젝트였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여러 인맥, 네트워크를 동원하여 여러 개의 대안을 검토하였고 그 가운데에서 가장 가격이 유리한 방법을 권하였습니다. 저는 제안서를 제출하고 그 회사로부터 답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제가 제시한 파이낸싱 방법은 리스였고 저는 미국 리스회사를 이미 접촉하여서 상당히 좋은 조건과 이자율을 확보한 상태였습니다. 보름 이상을 기다려도 답은 오지 않았고,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그 회사에 연락을 취하였습니다. 그 때 돌아온 답은 저의 제안서에 있는 대로 파이낸싱을 하지 않기로 하였으니 저는 이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라는 것이고 또 자연스럽게 컨설팅 수수료는 지불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통화를 하고 약 한 두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우연히 그 회사 사람들과 다시 만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저는 큰 충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 회사는 한국의 시중 은행 자회사인 한국의 리스회사로부터 파이낸싱을 하였던 것입니다. 비록 제가 작업한 회사는 아니더라도 리스 파이낸싱이라는 아이디어는 제가 제안하였던 것인데 저의 아이디어만 이용하고서 제게 컨설팅 수수료는 지급하지 않으려고 제가 확보한 미국 리스회사의 가격보다 안 좋은 조건으로 국내 리스회사와 거래를 하였던 것입니다. 제게는 정말로 충격적이고 저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었습니다.

 

이 밖에도 그 동안 겪었던 일들을 나열하자면 많은 이야기가 더 있겠으나 그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제가 처음 비즈니스를 시작하였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비즈니스 환경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좋아졌고, 또 오늘도 하루하루 조금씩 좋아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다 할 기록에 남을 만한 대단한 업적을 남기지도 못하였고 남 달리 훌륭한 컨설팅 비즈니스맨이 되지도 못 하였지만, 그래도 제가 걸어 온 길을 뒷날에 저의 후배들이 걸어가면서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앞선 선배들이 닦아 놓은 길을 가는 것을 편하고 즐겁게 느낀다면 제게는 더 없는 커다란 보람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