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1~2013

Jay Kim 2012. 1. 25. 10:07

금요일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제 주위에 친지 선배분들과 함께 커피를 마신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난 한 주일도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우선 유럽의 재정 위기는 끝도 없이 계속되고, 여기저기서 나름대로 해법을 제시하고, 독일과 프랑스가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나서기도 해보고, 그런 와중에 이태리의 국가 신용 등급은 하향 조정되고, 미국의 거대 은행 3 곳- Citi, Bank of America, Wells Fargo-의 신용 등급도 하향 조정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뉴스들이 나올 때마다 주식 시장은 그에 따라 요동을 치는 한 주일이었습니다. 어제 뉴욕 주식 시장은 390포인트가 넘게 하락하였고, 장중 한 때는 하락폭이 500포인트를 넘어 가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뉴스들 속에서 지난 주 금요일부터는 스위스의 최대 은행인 UBS, London에서 31살의 젊은 트레이더 한 사람이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엊그제 싱가폴에서 열린 이 은행의 이사회에서는 CEO 오스왈드 그뤼벨이 리스크 관리와 컴플라이언스에 관련된 심각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여야만 하였다고 합니다. UBS의 최대 주주는 지분율 6.6%의 싱가폴 GIC (Government Investment Corp. 투자청)이고, 또 UBS가 스폰서하는 F-1 레이싱 경기가 마침 싱가폴에서 곧 열릴 예정이어서, 이런 저런 연유로 이사회가 싱가폴에서 열렸다고 합니다. 이번에 적발된 불법 거래를 여러 주요 신문에서는 "Rogue Trader"라는 표현을 써 가며 보도 하였습니다.

오늘은 그래서 "Rogue Trader"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말에 심심풀이로 읽으시기에는 조금 어두운 토픽이기는 합니다만, 금융 분야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씩은 들여다 보아야 할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첨부 파일 참조)

저는 이 사건을 정리하면서 문득 26~7년 전 제가 미국 Bank of America 본점 (당시에는 San Francisco에 있었습니다)에서 근무할 때 저의 보스이자 스승이셨던 Dr. Townsend Walker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 분의 말씀에 따르면 리스크 관리의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이 직접 거래 하나하나를 들추어 보는 것이라고, 그러나 현대의 은행에서는 거래 건수가 너무 많아 그러지 못하는 것이 또 하나의 리스크라고 하셨습니다. Dr. Townsend Walker는 미국 Stanford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셨고, 그의 전공 분야는 현금 흐름 감독 (cash flow control) 과 리스크 관리 (risk management)입니다. 그 분은 경험 많은 전문가가 직접 눈으로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리스크 관리라고 늘 말씀하셨고 저보고도 가능한 대로 모든 거래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도록 노력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Rogue Trader"에 대한 글을 정리하면서 다시금 스승이신 Dr. Townsend Walker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 사건을 종합 정리한 CNN 리포트: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Rogue Trader

영어로 “rogue trader” 라는 말을 한국 말로 무엇이라고 번역하여야 할까? 사전적 번역에충실하려면 아마도 “무법자 거래원”이라 하여야겠으나 좀더 피부에 와 닿는 표현을 빌자면 “사기꾼 트레이더” 혹은 “불법 거래 트레이더”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릴 듯하다. 이 단어를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한 사람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불법적인 혹은 미승인, 허가 받지 않은 거래 (unauthorized transactions)로 큰 금액의 손실을 끼쳐 결국 자신이 일하던 금융기관의 문을 닫게 만들었던 니콜라스 리슨 (Nicholas Leeson)이다. 리슨은 자신이 저지른 죄- 불법 거래-로 인하여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1996년에 자신의 불법 거래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하였고 그 책의 제목이 “Rogue Trader” 이다. 리슨이 문을 닫게 만든 은행은 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던 영국의 인베스트먼트 뱅크 베어링 브라더스였다. 당시 리슨은 싱가폴에서 베어링의 Chief Trader 겸 리스크 관리자로 1 2역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가 트레이딩과 리스크 관리, 두 가지를 함께 책임지고 있었다는 것은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후에 밝혀진 사실이고, 이를 허용하였던 베어링으로서는 시장에서 직접 트레이딩을 하는 일과 트레이딩의 결과 발생하는 리스크를 관리하는 일을 한 사람에게 맡겼다는 것은 리스크 관리의 ABC도 모르는 한심한 조치였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당시에 약관 28세에 불과한 젊고 패기 있는 트레이더였으며, 영국에서 (무슨 이유인지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브로커 라이선스가 발급되지 않자 베어링은 그를 싱가폴로 보냈고 그는 싱가폴에 있는 베어링의 트레이딩 데스크에서 근무하였다. 그가 베어링에게 입힌 손실 금액은 8.27억 파운드 (US$ 1 4)였다. 이 금액이 결코 작은 액수는 아니였으나 이만한 금액에 사건이 터진 지 3일만에 베어링이 문을 닫게 되리라고는 그 당시 아무도 미처 상상하지 못하였다.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그는 상당히 능력 있는 트레이더로 인정 받아서 매년 적지 않은 금액의 보너스를 받았었다. 그러나 그의 실적은 상당 부분 부풀려져 있었으며 손실이 나는 거래는 유령 계좌 (dummy account)에 숨기고 있었다. 그에게 결정적인 손실을 안긴 사건은 1995 1 17일 일본의 코베 대지진이었다. 지진이 일어나기 전 그가 주로 거래를 많이 하였던 일본의 니케이 지수는 19,000이 넘어 있었고 리슨은 닛케이가 상승할 것을 기대하고 그에 대비한 포지션을 가졌었다. 그러나 지진 직후 니케이는 18,000 밑으로 빠졌고 리슨은 큰 금액의 손실을 입었다. 리슨은 당시 파생상품을 거래하고 있었고, 파생상품은 레버리지(leverage) 효과로 인해 손실이 발생할 때에 그 금액이 거래 원금보다도 커질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리스크 관리는 트레이더가 아닌 제 삼자에게 맡겨졌어야 하였으나 불행히도 리슨은 트레이딩과 리스크 관리를 혼자 하면서 손실 금액을 키워 나갔다. 시장이 급격히 하락하자 리슨은 이번에는 시장의 추가 하락에 대비한 포지션을 가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23 17,785로 저점을 찍은 니케이는 1월 말에 18,750까지 상승하면서 리슨에게 더 큰 손실을 추가하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을 견디다 못한 리슨은 2 23일 “Im sorry.” 라는 짤막한 메모 한 장을 사무실에 남겨 놓고 싱가폴을 떠났다. 그의 생일은 2 25일이고 그의 28번째 생일을 이틀 남겨 놓고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여야만 했다. 그는 싱가폴에서 6 6개월 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 1999년 대장암 발병으로 인한 병보석으로 출소하였다. 그는 지금 그의 (infamous) 지명도를 이용해 여러 곳에 강사로 불려 다니며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번째로 세상에 크게 알려진 Rogue Trader 2008년 프랑스의 초대형 은행 소시에떼 제네랄 (Société Générale) 4 9억 유로 (US$7 2)의 손실을 입힌 제롬 케비엘 (Jérôme Kerviel) 이다. 그는 당시 Arbitrage desk에서 근무하였다. Arbitrage desk라는 곳은 주로 파생상품과 파생상품의 기초 자산- 언더라잉 애셋 (underlying assets)-과의 미세한 시세 차이 혹은 시장 움직임의 괴리 등을 이용하여 이익을 내는 거래를 하는 곳으로 프랑스에서 대학을 나오고, 재무 경영 석사 학위를 가진 케비엘에게는 잘 어울리는 직책이었다. 게다가 케비엘은 처음 학교를 졸업하고 들어간 은행에서 오퍼레이션- 후선 부서-의 일을 하여 트레이딩의 기록과 결제 과정에 대하여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지식과 경험이 그로 하여금 손실이 나는 (불법) 거래들을 숨기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만들 수가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가 승인 받지 않은 불법 거래를 하여 손실을 입힌 사례들이 과거에도 몇 번 발각된 적이 있었으나 그 때마다 케비엘은 “실수에 의한 오류일 뿐”이며 실제로는 그러한 거래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며 즉시 거래를 취소하고 장부상의 손실을 없애는 방법으로 위기를 넘겨 왔었던 것이다. 그가 손실을 입힌 것이 드러나 은행으로부터 쫓겨날 당시에 그의 나이는 31세에 불과하였다. 그의 생일은 1 11일이고 그가 은행으로부터 쫓겨난 날은 1 24일 그의 생일로부터 불과 2주일도 되지 않을 때였다. 그는 소시에떼 제네랄과 지루한 법정 싸움 끝에 지난 2010 10월에 징역 5년에 집행유예 2년 그리고 미화 6 7억 달러의 배상을 판결 받았고 현재 항소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케비엘도 그의 (infamous) 유명세 덕분에 2010 5월에 책을 발간하여 적지 않은 인세를 챙기고 있다고 한다. 책의 제목은 “하락 장세: 트레이더의 회고” (L'engrenage: Mémoires d’un Trader)이다.

2011 9월 들어 최근 신문에 다시 “Rogue Trader”라는 단어가 헤드 라인을 차지하였다. 아프리카 가나 출신 31살의 크웨쿠 아도볼리 (Kweku Adoboli)라는 스위스 최대의 은행 유비에스 (UBS: Union Bank of Switzerland) 런던에서 근무하던 트레이더가 rogue trader의 반열에 끼였다. 그는 UN에서 일하였던 아버지를 둔 덕분에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할 수 있었고 일찍이 영국으로 유학하여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퀘이커교가 운영하는 연간 납입금이 미화 4 1천 달러에 이르는 사립 중고등학교를 나올 수 있었다. 영국의 노팅햄 대학에서 e-커머스와 디지털 비즈니스를 전공하여 2003년 우수한 성적으로(with honor) 졸업하고 런던의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트렌디한 거주지역인 스피털필즈 (Spitalfields)의 스튜디오 아파트에서 주당 1천 파운드 (US$ 1 6)씩 지급하며 비교적 높은 수준의 생활을 즐기는 전형적인 젊은 뱅커(Banker)였다. 그는 지난 3년간 불법 거래를 숨겨 약 2십억 달러에 이르는 손실을 은행에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속해 있던 부서는 델타 원 데스크 (Delta one Desk) 였다. ‘델타’라는 용어는 가치의 한계 변동을 의미하는 용어로서 시장에서 가격이 미세한 움직임에 따른 유관 파생상품의 가치 변화를 이용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트레이딩을 하는 곳이다.

유비에스가 아도볼리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 어딘가 언프로페셔널(unprofessional) 해 보인다. 유비에스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3년간 US$ 2십억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하도록 이 은행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처음 이 사건을 발견한 것은 2011 9 14일 목요일 오후이고, 이 때에 리스크 관리 부서에서 아도볼리와 인터뷰를 한 후 순순히 그를 퇴근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나서 심도 있는 자체 조사를 더 하게 되자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9 15일 금요일 새벽 1시에 런던 경시청에 부정 포지션을 이용한 사기범으로 (fraud by abuse of position) 신고하여 새벽 3 30분에 잠자고 있는 아도볼리를 연행하기에 이르렀다. 아도볼리는 변호사를 선임하였고, 그가 선임한 변호사는 1995년 니콜라스 리슨의 변론을 맡았었던 런던의 법무법인 Kingsley Napley .

앞으로 아도볼리의 사건이 어떻게 진행될 지는 알 수 없으나 머지 않은 장래에 아도볼리도 또 한 권의 책을 쓰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그리고 그가 쓴 책이 잘 팔리게 되면 우리는 또 다시 4번째 Rogue Trader의 출현을 보게 되는 것이나 아닐끼 우려하는 바이다. 그 전에 보다 강화된 리스크 관리와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준법 감시)가 이루어질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