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7-2019

Jay Kim 2019. 11. 8. 07:16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는 평등, 공정, 정의라는 단어들을 자주 사용합니다. 2년 여 전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라는 문귀가 있었습니다. (관련기사: hani.co.kr_2017/5/10_문대통령) 그 취임사에 있던 말들이 최근에 이르러서 자주 인용되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조금은 시니컬(cynical, 냉소적인)한 용도로, 또는 초심을 다잡는 의미로도 사용합니다.


정치적인 구호로는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움이 그럴 듯 하게 들립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구호일 뿐 결코 도달할 수 없는 하나의 이상향(理想鄕, Utopia)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두 다 압니다. 이룰 수 없는 구호도 정치적인 목적으로는 그럴 듯 하게, 당장에라도 이루어 낼 듯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의 눈에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울 수는 없습니다. 각 개인의 이해 관계, 선호도에 따라 각기 다르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말을 제가 기억하기에 처음 들었던 것은 제가 5~6 살 정도 되었을 때입니다. 이 말을 제게 해 주신 분을 저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정충량 선생님이십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정충량 참조) 정충량 선생님은 제 모친과 이화여전 동기동창이셔서 제가 어렸을 때에는 저희 집에 자주 놀러 오셨습니다. 그 당시 저희 모친과 이화여전 동기동창분들 가운데에는 세 분의 여성운동가가 계셨는데 손인실 여사(금요일 모닝커피 2018. 8. 24. 참조)와 조경희 선생님 (한국민족분화대백과-조경희 참조), 그리고 정충량 선생님- 이렇게 세 분이 계셨습니다. 그 중에 정충량 선생님께서는 신문의 논설위원을 일찍이 역임하시면서 말씀을 조리 있게 잘 하셨고 어린 저를 앞에 앉혀 놓고 여러 가지 말씀을 많이 해 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정충량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킬 수도 없고 모든 사람을 다 행복하게 만들 수도 없다. 예를 들어 나는 왼손잡이인데 이 세상에는 왼손잡이를 위한 시계가 없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시계 태엽을 감으면서 매우 불편함을 느낀다. 매일 아침 하루를 시작하면서 왜 왼손잡이를 위한 시계를 만들지 않는지 불만을 가지게 된단다.

(*: 당시에는 자동 태엽이 아닌 매일 하루에 한 번씩 태엽을 감아주는 손목 시계가 대세였습니다)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매일 아침 일어나서 시계 태엽을 감는데 시계 태엽이 오른손잡이가 사용하기에 편하도록 만들어져 있어서 왼손잡이가 태엽을 감으려면 오른손으로 감던가 왼손으로 태엽을 반대 방향으로 돌려 감아야 했던 것입니다. 어린 저는 그 당시에 정충량 선생님이 왼손잡이인 것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세상에 왼손잡이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오른손잡이여서 알지 못하는 왼손잡이의 불편함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고, 온전히 공평할 수도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정충량 선생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어린 저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가르침이었다면, 제가 조금 나이가 들어서 발견한 사건은 공평함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사건은 제가 1978년 첫 직장인 Bank of America 서울 지점에 입사하여 불과 6 개월 쯤 후에 노조 부위원장으로 선출되면서 알게 된 사건입니다. 직장 경험도 일천한데 갑자기 노조 간부가 되고 나니 과거에는 노조 활동을 어떻게 하였는지 알아 두는 것이 좋을 듯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나간 파일들을 뒤져 Bank of America 서울 지점의 노조 활동 기록들을 꼼꼼히 훑어 보았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1974~5 년에 매우 큰 사건이 있었던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사건은 이러하였습니다:


H는 입사 2년차 대졸 사원이었고 노조 위원장에 선출 되었습니다. 그 해 임금 협상에서 사용자측과 35%의 임금 인상을 타결하였습니다. 그 해 정부 발표 인플레이션이 약 30% 수준이었고 임금을 물가상승 보전과 생산성 향상에 대한 보상을 포함하여 결정하였던 것입니다. 당시의 노조원은 약 70 ~ 80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성원이 입사 1~3년차 대졸 사원이 약 2/3 였고, 근속년수가 10년이 넘는 고졸 출신의 직원이 나머지 1/3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분위기는 대졸 여직원들은 결혼을 하고 나면 직장을 그만 두었고, 남자 대졸 직원들은 입사 3~4년 차가 되면 과장 진급을 하면서 노조에서 탈퇴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진급에서 누락한 오래 된 고졸 남자 직원과 근속년수가 얼마 되지 않는 대졸 사원으로 노조가 구성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 때 노조 위원장인 H는 전체 노조원의 임금 인상분을 균등하게 인원수로 나누어 같은 금액의 임금을 인상하자고 제의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연간 인플레이션이 30% 수준이다 보니 매년 임금인상은 30% 전후가 되었습니다. 매년 30% 정도의 임금 인상을 10 여 년 누적해 온 고졸 직원과 2~3년 누적한 대졸 직원의 임금 격차는 상당히 컸습니다. 비록 대졸 직원들의 초봉이 더 높았다고는 하지만 오래 된 직원들의 연봉이 훨씬 높았습니다. 간단히 계산해 보면, (1+ 30%)¹º = 13.8 이고, (1+30%)³ = 2.2 입니다. 예를 들어 고졸 사원의 10 년 전 초봉이 10 만원이었다면 10년 후인 당시에는 138만 원이 되어 있었을 것이고, 3 년 전 초봉이 30 만 원이었던 대졸 사원의 3 년 후 당시 월급은 66만 원이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138 만원의 고졸 직원들은 인원수에서 1/3 이고, 66 만원의 대졸 직원 숫자는 2/3를 차지하니 이들 전체의 평균 (138 X 1/3 + 66 X 2/3)= 90 이 되어 평균 90 만 원이 됩니다. 그 해 35%의 임금 인상이 타결 되었으므로 고졸 사원들은 평균적으로 138 만원의 35% 48 3천 원의 인상을 기대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졸 사원의 인상분은 66만 원의 35%  23 1천원이 됩니다. 이 것을 노조 위원장인 H 가 모든 노조원의 평균 임금인 90만 원의 35% 31 5천 원을 모두에게 균등하게 나누어 줄 것을 제안한 것입니다. 전체 노조원의 2/3에 해당하는 대졸 사원들은 환호성을 올리며 찬성하는 반면 인원수로는 1/3 밖에 되지 않는 고졸 사원들은 필사적으로 이에 반대하였습니다. 이를 표로 보면:

 

 

현 임금 수준

35% 임금인상

31.5 균등액 인상

고졸 사원

138

186.3

169.5

대졸 사원

66

89.1

97.5

                                                                                  (단위: 만 원)



이로 인하여 노조는 내분을 겪게 되고 급기야는 고졸 사원들이 노조를 탈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노조가 와해 되기 직전까지 몰리게 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H는 사직서를 내고 은행을 떠났고 임금은 모든 노조원들에게 35% 정률로 인상되었습니다.


이 사건의 당사자인 H는 전 노조원들에게 공평하게 균등한 금액을 인상하는 것이 정의롭다고 주장하였고 오래된 고졸 사원들은 정율로 인상하는 것이 옳다고 강변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빈부격차와 빈익빈 부익부 문제로 많은 갈등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보다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예전보다 나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대단한 성공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가진 자들의 것을 빼앗아서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 나누어 준다거나, 가진 자들을 죄인시 하는 것은 매우 잘 못된 접근 방법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를 축적한 것이 죄가 될 수 없으며 경제 구조상 가진 사람들이 재산 증식에 유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금요일 모닝커피 2013. 3. 21. 에서 이야기하였던 내용을 일부 옮겨 봅니다;


뉴욕에서 국제연합(UN)의 빈곤 퇴치와 관련된 위원회의 위원 한 분이 하는 세미나를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휴식 시간에 인사를 하며 저는 한국에서 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분은 ‘한국은 양극화(bi-polarization 혹은 dual-polarization)라는 이름으로 빈곤의 문제를 부자의 문제와 함께 해결하려는 특이한 나라’ 라는 것이었습니다. 빈곤의 문제는 빈곤에 대한 대책으로 접근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자들의 문제는 부자들이 스스로 해결할 능력과 재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부자들이 더 부유해지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그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키워나가는 것은 막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지지 못한 자들이 더 가난해지는 것은 문제입니다. 가난을 방지하고 그들을 가난에서 구해내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언제나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자본주의도 결코 완전한 제도는 아닙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여러 경제 제도 가운데 상대적으로 합리적일 뿐입니다.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움은 이루지 못할 꿈입니다. 그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하되, 자본주의의 기본이 훼손되는 일은 없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