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7-2019

Jay Kim 2019. 11. 29. 06:04

일 주일 전 지난 주 금요일은 우리가 흔히 YS 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김영삼 대통령의 4 주기였다고 합니다. 그 날 문희상 국회의장이 추도사를 발표한 것이 인터넷에 실렸습니다. (관련기사: 국회 뉴스_2019/11/22_김영삼 대통령 4주기 추도사) 추도사에서는 대체로 돌아가신 분의 과() 보다는 공()을 이야기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래서인지 김영삼 대통령에 관련된 여러 가지 긍정적인 묘사가 이어졌습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표현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바로 '담대한 결단력과 전광석화 같았던 추진력으로~' 라는말이었습니다. 그 분의 '담대함' '추진력'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었던 사실입니다.


담대(膽大)하다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 보면 '겁이 없고 배짱이 두둑하다' 라는 설명이 나옵니다. 한자를 살펴 보면. 쓸개 담 자와 클 대 자를 씁니다. 쓸개가 크면 겁이 없고 배짱이 두둑해지는 것인지는 모르나, 한자만 보면 쓸개가 크다는 표현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담대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제가 아는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경남고등학교 한참 후배인 아구선수 최동원 투수입니다. 두 사람은 30년 이상 나이 차이가 납니다. (김영삼 대통령 1927년생, 최동원 선수 1958년생) 그러나 세상을 떠난 것은 최동원 선수가 4년 먼저인 2011년이고 김영삼 대통령은 2015년입니다.


최동원 선수는 저에게는 대학 후배입니다. 그리고 그가 대학교에서 투수로서 활약할 때 그와 함께 배터리를 이루었던 선수가 박해종 선수입니다. 박해종 선수는 나이는 저보다 한 살 위이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실업팀 중소기업은행에서 운동을 하다가 육군 경리단 소속 선수로 뛰었고, 제대 후 다시 대학에 입학하여 늦깎이 신입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이는 6 년 차이가 나지만 최동원 선수와 박해종 선수는 대학 입학 동기였습니다.


나이는 많지만 경험 많고 국가 대표 선수까지 지냈던 선배가 포수로 앉아서 리드해 주다 보니 최동원 선수가 많은 것을 배우고 노련한 포수의 덕을 보았다고 최동원 선수 자신의 입으로도 인정하였습니다.


최동원 선수와 박해종 선수가 대학 선수로 한창 날리던 시절에 제가 들은 이야기입니다. 박해종 선수와 이야기를 하던 중 그가 언뜻 "동원이는 정말 담대한 선수야." 라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담대하다는 말은 문어체(文語體)라면 몰라도 이야기할 때에는 흔히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어서 조금 어색하게 들리기도 하여 왜 그런지 이유를 물었습니다. 박해종 선수가 알려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최동원 선수가 2 스트라이트 노 볼 상태에서 안 쪽 코너로 예리하게 스트라이크를 찔렀고, 박해종 선수도 볼을 받으면서 삼진을 잡았다고 직감하였습니다. 그런데 심판이 그만 볼을 선언하였습니다. 대학 야구 수준에서는 심판의 권위가 하늘 같아서 박해종 선수는 감히 어필을 하지 못하고 그냥 고개만 떨구고 공을 최동원 선수에게 돌려 줬습니다. 볼 카운트가 여유 있고 심판이 안 쪽 공을 스트라이크로 잡아주지 않는 듯 하여 다음 공을 바깥쪽으로 빼라는 사인을 냈습니다. 최동원 선수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다른 사인을 요구하였습니다. 한 두 번 사인을 고쳐 냈는데도 모두 고개를 저어, 할 수 없이 볼 판정을 받았던 안 쪽으로 다시 공을 던지라고 사인을 냈습니다. 최동원 선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와인드 업하고 공을 던졌습니다. 박해종 선수는 머리가 쭈삣 설 정도로 전율을 느꼈습니다. 방금 전 볼 판정을 받았던 공과 너무나도 똑같은 코스로 공이 들어 왔던 것입니다. 이번에는 심판도 어쩔 수 없이 스트라이크를 선언하여 타자를 삼진으로 잡았습니다.


최동원 선수는 심판이 판정을 잘 못하면 다시 똑같은 코스로 공을 던져서 심판에게 무언의 항의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투수가 방금 전에 던졌던 공과 똑같은 코스로 공을 던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아무리 똑같은 곳으로 던지려 하여도 조금씩 빗나가기 십상이고, 공이 날아가는 궤적은 조금씩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박해종 선수도 국가대표로 까지 선발되어 포수를 보면서 수 많은 훌륭한 투수들의 공을 받아 보았지만 최동원 선수 같은 투수는 정말로 지극히 드물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심판이 스트라이크를 잡아주지 않는 코스에 다시 똑같이 던진다는 것이 보통 담대한 선수가 아니면 엄두를 못 낸다는 것입니다.


경기를 마치고 박해종 선수가 최동원 선수에게 물었답니다. "아까 심판이 스트라이크를 잡아 주지 않는 코스로 다시 던질 때 혹시 심판이 또 스트라이크를 안 잡아 주거나, 아니면 타자가 그 공을 받아 치면 어쩌려고 똑같은 코스로 던졌니?" 그러자 최동원 선수의 대답이 걸작이었답니다. "형님, 타자는 그 코스는 스트라이크가 아니라고 믿을 겁니다. 심판이 방금 볼이라고 판정했으니까요. 그런데 제대로 된 심판이면 제가 다시 던져서 똑같은 코스로 들어오는 공을 자세히 보면 이게 스트라이크로구나 하는 것을 발견할 겁니다." 아마도 이런 뱃짱이 있는 사람이 담대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해종 선수는 최동원 선수를 '담대한' 선수라고 칭찬하였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담대함은 금융실명제 시행에서 정점을 찍었습니다. 아마 김영삼 대통령 자신도 그 당시의 정치자금을 가명(假名) 또는 차명(借名) 계좌를 이용하여 관리하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광석화와 같이 하룻 밤 사이에 금융실명제를 밀어 부친 것은 그의 담대함의 극치였습니다. (관련기사: 매경_1993/8/13_금융실명제 전격 실시) 과연 그와 같은 담대한 조치가 없었더라면 우리나라에서 금융실명제가 가능하였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습니다. 그 때까지만 하여도 가명, 차명 계좌를 이용하는 것이 다반사였고, 금융 거래의 투명성은 전혀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언감생심(焉敢生心) 차명이나 가명으로 금융 거래를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 상황이 1993년의 금융실명제 전격 단행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공과(功過)는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그의 과() IMF 사태라 불리는 경제위기를 자초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한 제재를 미온적으로 미루면서 오늘날과 같은 북한의 핵 위협의 단초를 제공하였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관련기사: 1994/5/31_북한핵_ 미온적 대응)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니면 할 수 없었던, 그리고 그가 해낸 가장 커다란 공()을 꼽으라고 한다면 군대내의 파벌 제거와 금융실명제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의도하였건 또는 아니건 간에 금융실명제의 단행은 우리나라 금융 역사에 길이 남을 대통령의 담대한 결단이 이루어낸 금융시스템의 한 단계 도약과 발전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금융은 정치적인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그러나 금융실명제와 같이 기존의 제도에 대한 급격한 변화는 정치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담대한 결단력과 전광석화 같은 추진력'이야 말로 우리나라 금융을 위하여서는 매우 고무적인 역사의 한 페이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