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7-2019

Jay Kim 2019. 12. 20. 10:28



지난 주에는 우리나라 기업계에서 커다란 인물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먼저 지난 주 월요일 9일에는 대우 그룹의 창업자 김우중 전 회장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관련기사: hankyung.com_2019/12/10_김우중  대우회장 별세) 그리고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지난 토요일 14일에는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관련기사: donga.com_2019/12/14_구자경 명예회장 별세)


대부분 돌아가신 분에 대하여서는 후한 평가를 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래서인지 김우중 회장과 관련된 기사에서는 미처 다 이루지 못한 세계 경영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루었고, 구자경 명예 회장에 관하여서는 LG의 글로벌 전략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좀 더 냉정히 바라본다면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다른 면이 있어 보입니다.


김우중 회장은 세계 경영의 기치를 걸고 전세계 시장에 메이드 인 코리아를 들고 구석구석을 누빈 대단한 코리아 세일즈 맨이었습니다. 물론 월급장이로 시작하여 대기업 집단의 총수가 되었다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그의 노력과 실력은 감히 흉내 내지 못할 것으로 높이 사야 합니다. 일각에서는 그는 천부적인 세일즈 맨이었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술은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으면서 대인 관계에서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원만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왔다고 합니다. 김우중 회장이 마음 먹고 접근하였던 사람 가운데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의 대인 관계나 처신술에 대하여서는 존경심이 우러나게 됩니다.


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군사정권 아래에서 정경유착의 고리를 이용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는 것이 가장 먼저 꼽힙니다. 그 당시 최고 권력자가 그에 대한 평가를 하는 내용을 보면 이러한 사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박정희, ' 사람 밖에 없다'  김우중대우 그룹 회사 가운데 김우중 회장의 손으로 설립된 회사는 그룹의 모회사라고 할 수 있는 대우실업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계열사, 그룹사들이 정부의 부실기업 정리와 연계 되어 대우 그룹에 편입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주식회사의 형태를 갖추고는 있으나 개인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일부 우량 기업은 정부의 중재로 상당 부분의 지분을 김우중 회장 개인 또는 대우 그룹 계열사에 넘기기도 하였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금융기관의 차입에 절대적으로 자금원(資金源)을 의존하고 있던 기업들에게는 정부의 창구 지도로 금융 지원을 중단하게 되면 꼼짝 없이 부도의 위기에 몰리게 되었고, 정부의 창구 지도를 따라 지분을 특정 기업집단에게 넘김으로서 기업의 부도를 피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대우 그룹에 인수된 대부분의 기업들이 금융 지원이 중단되면서 어려움을 겪다가 대우 그룹에 편입된 다음 금융 지원을 다시 받아 회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금융을 전문으로 하였던 저와 같은 사람의 눈에는 김우중 회장의 기업 경영은 매우 커다란 리스크 부담을 안고 가는 방식이었습니다. 그 당시 김우중 회장과 대우 그룹 기업들이 가장 활발하게 이용한 금융 방식은 수출금융이었습니다. 수출 입국을 모토로 수출 드라이브를 걸었던 그 때의 정부 방침으로는 수출을 위한 금융 지원은 거의 절대적이고 무한정 지원해 주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수출 금융을 통하여 조달한 재원으로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을 대우 그룹은 거리낌 없이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금융의 관점에서는 수출 지원 금융은 단기 금융이고 기업 인수는 장기 재원을 필요로 하는 거래입니다. 단기 자금 조달과 장기 자금 운용을 이렇게 어긋나게 하는 것은 매우 리스크가 큰 자금 관리입니다. 더구나 수출 금융을 기업 인수에 사용하는 것은 본래의 금융 목적에서 벗어나는 자금의 이용입니다. 아마도 지금과 같은 금융 환경에서 이러한 방식의 자금 조달과 운용을 한다면 금융기관은 즉시 수출 금융 지원을 중단하게 될 것입니다. 어쨋든 그 당시에는 이러한 방식이 통용 되었고, 김우중 회장은 경영의 귀재로 평가 받으며 대우 그룹은 기업 인수를 통한 성장을 계속하여 재계 2~3 위를 다투는 거대 기업 집단으로 성장하기 까지 하였습니다.


그에 반하면 구자경 명예회장은 구인회 LG 그룹 창업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요즈음 식으로 이야기하면 금수저인 셈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교편을 잡다가 부친의 요청으로 LG 그룹의 모회사 가운데 하나인 락희 화학에 근무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가 그의 부친에 이어서 2대 회장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LG 그룹의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기업에 등장하는 과정부터 김우중 회장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의 나이 70에 자신의 아들인 고() 구본무 회장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 줍니다. 사회적으로나 건강상으로나 경영면에서 아무런 문제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나 아들에게 물려준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전무후무한 사례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내세웠던 '인화' (人和)라는 것이 무엇인지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고, 아무런 탈 없이 경영권 승계를 이루어낸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가 경영 수완에서 뒤쳐졌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의 별세를 알리는 기사를 보면 그가 회장으로 취임하던 당시의 LG 그룹 매출은 260억 원이었고, 25년 후 그가 회장에서 물러날 당시의 그룹 매출은 38조 원이었다고 합니다. 1,460 배의 매출 신장이 있었습니다. 이는 25년 동안 매년 33%의 매출 신장을 끊임 없이 계속하여야 이룰 수 있는 실적입니다. 그가 LG그룹을 이끌면서 이러한 매출 신장을 이루었다는 것은 대단한 실적입니다. 더욱이 LG 그룹은 정경유착이라는 의혹과는 항상 가장 멀리 있었습니다. 정치권과의 관계를 통하여 어떠한 이익을 취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정경유착의 피해자라는 인식이 더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8. 5. 25 참조)


우리나라 기업계에서의 큰 별이 두 분 졌습니다. 연말이 다가오는데 더욱 아쉬움이 남습니다. 두 분 모두 1970년 대 우리나라 경제가 도약하던 시기에 갖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기업을 키우고 우리나라 경제를 발전시켰던 분들입니다. 그런 훌륭한 분들에 이어서 우리나라 기업을 더욱 발전 시킬 훌륭한 인재들이 계속 나오게 되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