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Jay Kim 2022. 3. 25. 05:56

1990년대 초에 세계적으로 크게 힛트하였던 노래 가운데 ‘Tears in Heaven’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Tears in heaven_unplugged 참조) 이 노래의 처음 시작은;

Would you know my name? (네가 내 이름을 알까?)

If I saw you in heaven (만약 내가 천국에서 너를 만나게 된다면)

이라고 시작합니다. 이 노래는 Eric Clapton이 작사 작곡하였습니다. (Will Jennings라는 음악가와 공동작곡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이 노래는 Eric Clapton이 자신의 아들에게 바치는 노래입니다. 그의 아들 이름은 코너(Conor)입니다. 몇 년 살아 보지도 못하고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코너는 출생부터 순탄치 않았습니다. 코너의 부모를 살펴 보면, 아버지는 Eric Clapton입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로리 델 산토(Lory Del Santo)라는 이태리 출신의 모델입니다. 그런데 로리 델 산토는 Eric Clapton의 부인이 아닙니다. 로리 델 산토가 코너를 임신하고 출산할 당시 Eric Clapton의 부인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의 부인은 비틀즈의 멤버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의 부인이었던 패티 보이드 (Pattie Boyd)였습니다.) 코너는 혼외자이며 사생아였습니다. 그런데 코너는 채 만 5살도 되기 전에 그의 어머니와 함께 미국 뉴욕의 맨하탄에 있는 어머니의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그만 53층 아파트 창문에서 떨어져 죽고 맙니다. 그 날 Eric Clapton은 그의 아들 코너를 데리고 점심을 함께 먹기로 약속한 날이었습니다. 코너를 데리러 가려고 준비하는 중에 코너의 어머니로부터 전화로 사고 소식을 듣습니다. 그는 코너가 고층 빌딩에서 떨어져 즉사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떨어져 죽은 아이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현장을 피하여 지나쳤다고 합니다. 훗날 Eric Clapton이 TV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그 순간 Eric Clapton은 엄청난 죄책감과 미안함 때문에 그 자리에 모여 있는 사람들 앞에서 사고를 당한 어린아이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코너가 태어나기 전의 Eric Clapton은 방탕한 여성편력과 각종 약물, 알콜 중독 등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공연을 하였고,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약에 취하여, 또는 술에 취하여 흐느적거리며 공연을 하였었습니다. 관중들은 그러한 그의 모습에 더욱 열광하는 듯하였습니다. 그 당시 그는 많은 여성들과 문란한 생활을 이어 갔으며, 그의 고백에 따르면 그는 어떤 여자와도 맨 정신, 맑은 정신으로 잠자리를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의 아들 코너도 자신의 부인이 아닌 여성과 혼외 정사를 통하여 태어났고, 그때의 혼외 정사도 분명히 맨 정신이 아닌 술과 마약에 찌든 상태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출생부터 술과 마약에 찌든 아버지의 혼외 정사를 통하여 태어나 엄마 손에 키워지다가 어린 나이에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코너의 죽음은 Eric Clapton에게 크나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코너가 사망한 1991년 이후 Eric Clapton은 상당히 정상적인 사람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의 아들을 기억하며 만든 노래 Tears in Heaven이 대대적으로 힛트하면서 코너의 슬픈 일생이 크게 조명되었고, Eric Clapton은 맑은 정신으로 공연을 하였습니다. 그의 아들이 죽음을 통하여 아버지를 바꾸어 놓았던 것입니다. 코너의 스토리가 알려지면서 Tears in Heaven 노래는 더더욱 크게 힛트하였고, 원래 ‘Rush”라는 영화의 삽입곡으로 쓰였지만, 영화 삽입곡보다도 Eric Clapton 아들의 노래로 더 많이 알려졌습니다.

정상인의 생활을 하기 시작한 Eric Clapton은 뒷날 자신보다 22살 어린 새로운 부인과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1998년 Crossroad Centre라는 약물, 알콜 중독자의 재활 쎈터를 설립합니다. 그리고 이 쎈터를 위한 자선 공연도 여러 번 하였습니다. 특히 2013년의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의 자선 공연은 이틀에 걸쳐 이루어졌고 대성공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겪었던 약물 중독, 알콜 중독의 폐해를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스스로 경험하였기에 더욱 이 일에 성의를 보였습니다. 그는 약물 중독 치료 쎈터에 두 번 입소하였던 경험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약물 중독이 심하였고, 나중에는 약물과 알콜을 혼용하는 복합 중독이 되었었습니다. 2번의 치료 쎈터 입소 후 1988년 경부터는 약물과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들 코너가 태어난 이후 언제부터인가 술과 약물을 끊었던 것입니다. 그의 아들이 사망한 1991년에는 Eric Clapton은 이미 약물과 알콜로부터 자유로워진 다음이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그의 아들을 생각하며 더욱 슬픈 마음으로 Tears in Heaven을 불렀습니다.

Eric Clapton 자신도 어려서부터 불우한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16살에 Eric Clapton을 낳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캐나다 국적의 군인이었으며 영국에 근무할 당시 잠시 사귀었던 여인이 Eric Clapton의 어머니였습니다. Eric Clapton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 Eric Clapton-이 태어나기도 전에 독일로 전출되어 영국을 떠났고, 그 이후 다시는 영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Eric Clapton의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 때 재혼하였고, Eric Clapton은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어려서는 자신의 할머니가 자기 어머니인 줄로 알고 자랐다고 합니다. 그의 성(姓)인 Clapton도 원래는 그의 할머니의 첫 남편의 성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할머니가 자기의 어머니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Eric Clapton의 어린 시절도 이렇듯 정상적이지 못한 생활이었었고, 그의 아들 코너조차도 출생부터 파란만장하게 태어나 채 다섯 살을 살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Eric Clapton 자신의 출생도, 또 일찍 죽은 아들 코너의 출생도 굴곡진 운명으로만 보입니다. 그런 아들과 5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이 세상을 떠나 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자기 아들이 자신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인지를 묻는 것으로 노래를 시작합니다. 그 노래가 Tears in Heaven입니다. 코너의 삶은 짧기도 하지만 그가 살아 있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아버지와 떨어져 살았습니다. 그가 죽는 날도 모처럼 아버지와 함께 점심을 먹기로 하였으나 그나마도 사고로 떨어져 죽는 바람에 아버지를 만나 보지도 못하였습니다.

1998년에 오픈한 Crossroad Centre를 설립할 때에 Eric Clapton의 지분은 1/3이었고, 나머지 2/3를 투자한 곳은 미국 네바다 주의 트랜지셔널 병원 (Transitional Hospitals)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미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초기의 Crossroad Centre는 Eric Clapton의 음악적인 명성에 힘 입어 널리 알려졌습니다. 초기의 운영에 어려움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Eric Clapton의 자선 공연과 자선공연의 수익을 전액 Crossroad Centre에 기부하면서 그의 노블리스 오블리쥬(noblesse oblige)에 경의를 포하는 사람이 늘어났습니다. 서양 문화 사회에서는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비록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사람들도 일말의 속죄를 위하여서라도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실행합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2. 1. 27. 참조) Eric Clapton의 경우 아들을 잃는 아픔 이후 개과천선(改過遷善)하였고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실행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들을 잃는 순간 갑자기 하늘이 열리며 그에게 눈부신 광명이 비춰진 것은 아니지만, 아들을 잃은 사건으로 인하여 그에게 변화가 있었음은 그 스스로도 인정하였습니다.

아픔을 겪으면서 성장하고 변화하는 것은 개인뿐이 아닙니다. 무리한 비교일 수 있으나 1997년 소위 IMF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나라 금융기관들도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비록 수익성이 떨어지고, 자본이 잠식당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 어려움을 겪으면서 우리나라의 금융기관도 변화하고 성장하였습니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금융기관도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실행하며 금융기관의 격을 높여나가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IMF 경제 위기 속에서 당시로서는 초유의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통하여 금융기관을 떠난 많은 직원들 덕분(?)에 우리나라의 많은 금융기관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금융기관들이 스스로 능력이 좋아서 실적을 올리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고, 어려울 때 희생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금융기관을 떠난 직원들은 노블리스(귀족)는 아니었지만 스스로 희생하면서 일종의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살아남은 금융기관들이 그 당시 떠난 직원들을 위한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그들을 나중에라도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미안하였다고, 당신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말해 주면 좋을 것입니다.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고마움을 표하면 좋을 것입니다. Eric Clapton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을 향하여 ‘천국에서 다시 만나면 네가 내 이름을 알겠느냐?’ (Would you know my name, if I saw you in heaven?)라고 아쉬움을 노래하였지만, 우리나라의 금융기관들은 1997년 스스로 직장을 떠난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고마움을 표현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느 알콜중독 기수와 그의 혼외아들
이야기를 풀어 나가다가
외환위기때 당신덕분에 이렇게 살아 남았다고
결말을 짓네요.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