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Jay Kim 2022. 4. 15. 05:50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잊지 못할 순간의 기억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기분 좋은 순간은 더욱 오래 간직하고 싶고, 더욱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제게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1987년 제가 불과 만 34세, 우리나이 35세였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파리바 은행 서울지점에서 제게 운전기사가 딸린 차량을 제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국내에서 제작 판매되는 차량 가운데 비교적 고급이라고 할 수 있는 대우 자동차의 로얄 프린스 승용차였습니다. (프린스 1500 광고 영상 참조) 그 전에는 저는 포니 2 승용차를 자가운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 평생에 처음으로 제가 근무하는 회사에서 제공해 주는 자동차를 운전기사와 함께 무상으로 제공받게 된 것입니다. 회사에서 차량이 제공되자 저는 그동안 타고 다니던 포니 2를 정리하였습니다.

회사차를 타기 시작하였던 그해 연말에 대학 총동창회의 송년 모임이 있었습니다. 서울 시내에 있는 호텔에서 저녁 식사와 송년 행사를 갖는 모임이었습니다. 행사가 모두 끝나고 대부분의 동기 친구들은 주차장으로 향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몇 안 되는 일부 재벌급 부유층 자제들과 함께 호텔 현관으로 나가서 제 차를 호출하였습니다. 그런 저의 모습을 보고 일부 동기 친구들은 부러운 눈길을 보내며, “너 기사 있어?”라고 묻기도 하였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전용 기사가 있는 차량을 타고 다닌다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지위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저는 괜히 우쭐한 기분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저희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의 대물림도 아니고, 떳떳치 못한 부를 축적한 것도 아니며, 제가 당당히 일하여 얻어낸 보상으로 차량과 기사가 주어진 것이기에 조금도 남부끄러울 일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 주머니에서 한 푼의 돈도 들이지 않고 법인 차량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마냥 기뻤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기쁜 일, 기억에 남을 일들이 있었지만 회사에서 제 전용 차량을 기사까지 함께 제공받았던 그때는 잊지 못할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물론 제게도 잊고 싶은 기억도 있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3. 12. 27. 참조) 또는 저도 모르게 기억에서 잊혀진 사건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 기억에 남아 있는 일들은 대체로 제게 몹시 기쁜 일 또는 몹시 슬픈 일 등 어느 정도 충격이 느껴졌던 일들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부터 50년도 더 된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 가운데에는, 교내 축구 대회도 있습니다. 저희 반이 그 대회에서 승승장구하여 결승전까지 진출하였으나 결승전에서 득점 없이 비기는 바람에 승부차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우리 반 골키퍼였는데, 불행히도 승부차기를 하나도 막지 못하고 세 골을 다 먹었습니다. 그러나 상대팀 골키퍼는 승부차기 하나를 막아냈습니다. 우리 반은 아쉽게 준우승에 머무르고 말았습니다. 그날 제가 승부차기를 하나도 막지 못한 것이 우리 반 친구들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면목이 없어 5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그날의 사건들이 생생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더구나 상대 팀 골키퍼는 한 골을 막아냈는데 저만 한 골도 막지 못하여 더욱 아쉬움이 더하였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기억은 특이하게 갑자기 살아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1988 ~ 1989년쯤의 일입니다. 저는 그 당시 안양에 살고 있었고, 아침 출근길에는 제가 직접 운전을 하였습니다. 동작대교를 건너 서빙고역 앞에서 좌회전을 하여 이태원 방향으로 차를 운전해 가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서빙고역 앞에서 신호대기에 걸려서 좌회전 차선에 서서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제 좌측 차선에서 유턴을 하려고 기다리던 차의 운전석에 앉아 있던 사람이 저를 보더니 오른쪽 앞 창문을 내리며 저희 선친의 함자를 대면서 물었습니다. “혹시 전에 아이멕 전자에 계시던 김 석 사장님 아세요?” 저는 깜짝 놀라서 “예, 저희 아버지신데요…”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아 예 외모가 똑같이 닮으셔서요. 저 그때 쎄드릭(Cedric, *주: 일본 닛산 자동차에서 제작한 세단으로 저희 선친께서 타시던 차였습니다.) 운전하던 이 XX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신호가 바뀌어 더 이상 이야기는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신호 대기 중에 우연히 옆 차에 있던 저를 보고 저희 선친과 외모가 똑같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옛날의 기억이 살아났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운전기사가 기억하는 아이멕 전자 주식회사는 저희 선친께서 제가 중학교 때인 1968년에 설립하셔서 약 4~5년간 운영하셨던 회사입니다. 그 당시 집적회로(IC, Integrated Circuit)를 생산하여 해외로 수출하던 사업이었습니다. 구로 공단에 공장이 있었고, 국내의 저임금 생산직 여직원들이 하루 종일 금을 녹여 회로의 선을 연결하는 작업을 하여 집적회로를 만들던 회사였습니다. 초창기에는 상당히 영업이 잘 되었으나, 유사한 사업모델을 가진 경쟁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수익성이 떨어지기 시작하여 짧은 시간에 사업모델이 소멸하였던 비즈니스입니다. 제가 기억하고 있는 아이멕 전자 주식회사는 그 이름이 International Micro Electronics Company의 머리글자를 딴 IMEC이었다는 정도가 남아 있습니다.

저 스스로 저의 기억력에 감탄하였던 적도 있었습니다. 1992년의 일이었습니다. 그 해 봄에 유럽 출장길에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 들렸고 그곳에서 고객사의 현지 주재원인 D와 조우하였습니다. 서울에서부터 서로를 잘 알고 있었기에 D는 저를 반가이 맞아 주었고 금요일 오후에 시간을 내어 저를 데리고 로렐라이 언덕에도 데리고 갔었습니다. 그리고 약 3 개월 후 저는 저의 아내를 데리고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여행을 갔습니다. 그 곳에서 차를 렌트하여 저의 부인을 데리고 로렐라이 언덕을 찾아갔습니다. 그날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서 D에게 로렐라이 언덕을 찾아갔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D는 단 한번 가본 곳을 어떻게 다시 찾아갔느냐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길눈 밝은 것과 기억력에 감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너무도 당연히 여기면서 현재의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지난 주말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현지 언론들이 양적긴축(量的緊縮, quantitative tightening)에 대하여 보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관련기사: The Fed prepares for quantitative tightening_Economist.com_4/9/2022) 미국의 중앙은행이 양적긴축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일입니다. 지난 10여 년간은 양적팽창(量的膨脹, quantitative easing)에 익숙하였었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3. 6. 28. 참조) 지난 2019년 미국의 FED가 그동안 양적팽창으로 늘어난 시장의 유동성을 일부 회수하려는 일종의 양적긴축을 시도하려는 시기에 코로나 팬데믹이 덮치면서 경제가 어려워졌고,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실물경제에 엄청난 양의 유동성을 다시 공급하였습니다. 잠시 양적긴축을 하려는 순간 제대로 긴축을 해보지도 못하고 오히려 더 많은 양의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하였던 것입니다. 위의 The Economist 기사에 따르면 팬데믹 기간에 FED는 재정증권 3.3조 달러, 모기지 담보부 채권 1.3조 달러 등 총 4조 6천억 달러에 달하는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이렇게 어마어마한 양의 유동성이 시장에 공급되었다는 것은 이미 모든 사람들에게 다 알려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머지않아 그동안 공급되었던 유동성을 회수할 것이라는 추측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안일하게 넘치는 유동성과 양적팽창에만 익숙해져 있다 보니 양적긴축에 대한 준비를 게을리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양적팽창이 지속되어 왔다는 기억은 분명히 있으나 그에 대한 인지는 조금씩 흐려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가 언론에 양적긴축에 관한 보도가 나오자 갑자기 그동안 양적완화가 계속되었으니 양적긴축을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번쩍 든 것으로 보입니다. 너무나 당연시하며 일상으로 여기고 지내다가, ‘맞아 과도한 유동성이 시장에 공급되어 왔으니 이제는 그 유동성을 거두어들여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영어 속담에, “The shortest pencil is longer than the longest memory.”라는 말이 있습니다. 직역하면 ‘아무리 짧은 연필도 가장 길다는 기억보다 더 길다’입니다. 즉, 아무리 짧은 몽당연필로라도 기록을 하여 놓는 것이 아무리 좋은 기억력으로 기억하는 것보다 낫다는 의미입니다. 너무 일상에 젖어 들어 잊고 지내기보다는 항상 기록하고 깨어 있으면서 시장의 움직임을 예측할 필요가 있습니다. 때로는 기억이 정확하지도 않고 하루하루 생활 속에 무심히 잊혀지기도 합니다. 그동안 양적팽창에만 젖어서 지내왔습니다. 이제 양적긴축이 일어나는 순간입니다. 양적팽창이 지속되어 왔다는 것을 잊지 않고 기록하고 있었다면 양적긴축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긴장감을 늦추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양적팽창에 젖어서 지내온 시장이 이제는 양적긴축에 적응하도록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나면 지금의 양적긴축이 기억에 남을 순간이 될 것입니다.

 “The shortest pencil is longer than the longest memory.”
아뭏든 당신의 기억력은 대단해요.
산호세를 거쳐서 지금 플러턴에 와 있어요.
월말께는 뉴욕으로 이동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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