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Jay Kim 2022. 5. 27. 05:53

지난 5월 15일 일요일자 뉴욕 타임즈 신문의 1면에는 맨 뒷면과 이어지는 사진으로 미국의 지도를 보여주면서 제목으로는 “ONE MILLION- a Nation’s Immeasurable Grief” 라고 써 놓았습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일백만명- 측량할 수 없는 한 나라의 슬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관련기사: One Million_nytimes.com_5/13/2022)

자세한 내용은 31페이지부터 38페이지까지 무려 8 페이지에 걸쳐서 이어진 기사였습니다. 시리즈로 이어지는 듯이 써나간 기사를 읽어 보면 여기에서 언급한 일백만이라는 숫자는 코비드 19으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입니다. 우리나라의 누적 사망자 숫자는 5월 15일 기준으로 2만 3천 7백여 명이었습니다. 미국의 인구는 우리나라보다 약 7배 많으므로 단순 비례 계산을 한다면 우리나라 수준의 인구당 사망자 숫자라면 미국은 16만 여명 남짓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1백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사망하였습니다. 인구당 사망자 숫자에서는 우리나라보다 미국이 월등히 많아 보입니다.

그런데 이 기사를 읽다 보면 조금은 울컥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사망자 1백만 명뿐 아니라 남겨진 그들의 친척, 친구들 수 백만 명이 슬픔에 잠겨 있다는 것입니다. 언론과 보건 당국에서는 사망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과 주변 사람들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고 그저 통계상으로 사망자가 늘어가는 것을 카운트 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이러한 현상을 저도 똑같이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20. 3. 13. 참조) 인터넷판 기사에는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육성으로 전해집니다. 2020년 4월 11일에 요리와 재즈를 좋아하던 남편을 잃은, 그 당시 90세였던 여인의 육성도 전해집니다. 그들은 68년간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 왔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잘 가라는 이별의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남편의 마지막 순간에 모여서 지켜봐 주지도 못하였고, 황망히 화장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밖에도 여러 사람들의 케이스를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물론 1백만 명 모두를 한 사람 한 사람 다 일생을 돌아보듯이 기사를 쓰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이 기사에서는 비교적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자들로부터 감염을 염려하여 의료당국이 사망하는 환자의 마지막을 가족들이 지켜볼 수 있도록 해 주지 않았다는 것을 섭섭해 합니다. 방역의 기준으로 보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전염병에 걸려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 옆에 아무나 다가가게 되면 전염병의 감염이 우려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면으로 보면 이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사람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마지막으로 보지도 못하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외롭게 세상을 하직하는 모습은 듣는 것만으로도 눈물을 자아내게 슬픈 이야기입니다.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물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내 자신이 전염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었을 때에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아무도 보지 못하고 혼자 덩그라니 격리된 공간에서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한다면 어떠할 것인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배우자, 자녀, 손자녀, 친구들에 둘러 쌓여 마지막 숨을 거둔다면 그래도 행복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순간을 가져 보지도 못하고 쓸쓸히 숨을 거둔다면 너무나 슬플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언을 할 기회 조차도 갖지 못한다면, 유언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는 또 하나의 슬픔이 될 것입니다. 자신의 아들이 어렸을 때에 회초리로 그의 종아리를 때린 것이 평생 동안 마음에 짐이 되어 죽기 전에 꼭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사람이 그런 말을 할 기회 조차 가져보지 못하고 세상을 마감한다면 몹시 슬픈 일입니다. 부인에게 1 카라트 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주고 싶었는데 돈을 모아 저축을 하고 나면 다이아몬드의 값이 올라, 계속 오르기만 하는 다이아몬드 값을 쫓아 저축을 계속하다가 종내는 아직도 사주지 못하였노라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하는 노인이 그 말을 해 주지 못하고 떠난다면 너무도 가슴 아픈 일입니다.

위의 기사 가운데 2020년 5월 14일에 자신의 어머니를 코비드 19로 인하여 잃어버린 한 여자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Carmen Nitsche는 자신의 어머니와 불과 수 마일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았다고 합니다. 어머니와 가까이에 살면서 자주 만나서 식사도 함께 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녀의 어머니가 코비드 19에 걸리고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는 순간에 그녀는 어머니의 손도 잡아 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또 2021년 8월 16일 남편을 잃은 Katherine Brooks는 그의 남편이 세상을 떠날 때 그녀의 딸은 불과 4 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남편은 아빠가 되기를 그렇게 원했었는데 불과 4 개월 밖에는 아빠가 되어 보지 못하였고, 그나마 그의 딸을 품에 제대로 안아 본 날은 며칠 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어차피 예기치 못한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전염병이 창궐하면 전염병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사람으로서의 존엄성과 품위는 지키고 싶어 합니다. 그러한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하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번 코비드 19를 겪으면서 인류 전체에 주어진 과제이기도 합니다. 몹쓸 전염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인간의 품위를 유지하면서 가족과 친지들에게 마지막 작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강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기사의 내용으로는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만 계속될 뿐 해결 방법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전염병에 가난한 부류의 사람들이 더 취약하다는 연구도 있었습니다. (관련기사: 왜 가난한 사람들은 더 많은 질병에 걸릴까?_lifein.news_2022/5/16) 반드시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야만 더 위생적이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력이 건강과 위생에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실제로 과거에 불황을 겪게 되면 사람들이 아파도 병원에 잘 가지 않는다는 통계도 있었습니다. (관련기사: "경기 불황의 징후,아파도 병원에 안가_heraldcorp.com_2015.2.16.)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병원에도 가지 않으려 하면 건강 문제에 취약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노년이 오기 전에 노후 경제력에 대한 대비를 잘 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6. 5. 13. 참조) 여유롭게 살기 위한 노후대비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면 건강 문제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돈이 세상의 모든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돈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매우 중요한 일부분입니다. 경제력을 유지하기 위한 노후대비는 반드시 하여야 합니다.

모두 안타까운 이야기죠
한국에도 애틋한 사연이 곳곳에 널려 있어요.
그나마 면회도 마치 재소자처럼 유리창 밖에서
서로 손바닥만 대었다가
임종했다고 사후 통보를 받는 등...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