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Jay Kim 2022. 6. 17. 06:16

우리말에 ‘잡’(雜)이라는 말은 대체로 대상물을 낮추거나 비하할 때에 사용하는 말입니다. 사전을 찾아 보면;

1.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여러 가지가 뒤섞인’ 또는 ‘자질구레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2.     (비하의 뜻을 가지는 몇몇 명사 앞에 붙어) ‘막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한자 ‘雜’은 ‘섞일 잡’으로서 순수한 것이 아닌 섞인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잡’에 대하여 이렇게 열심히 설명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잡곡’(雜穀)이라는 말을 설명하기 위하여서입니다. 잡곡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쌀 이외의 모든 곡식. 보리, 밀, 콩, 팥, 옥수수, 기장, 조 따위를 통틀어 이른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쌀을 제외한 모든 곡식은 ‘잡곡’이며, 잡곡은 여러 가지가 뒤섞인 자질구레한, 막된 곡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강한 표현을 사용한다면, 쌀 이외의 곡식은 모두 하찮은 자질구레한 곡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말의 이러한 단어의 쓰임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쌀은 순수하고 중요한 곡식이고, 쌀 이외의 모든 곡식은 하찮은 ‘잡곡’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머릿속에 배어 있는 쌀에 대한 중요성과 쌀 이외의 모든 곡식을 ‘잡곡’이라 부르는 개념에 비추어 보면, 우리나라의 농업이 쌀 생산 중심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입니다. 순수하고 중요한 쌀을 생산하는 것은 중요한 농업이라 할 수 있고, 쌀 이외의 잡곡을 재배하는 것은 제대로 된 농업이라고 대접받기 힘든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나라 농업에서 쌀의 생산을 중요시하다 보니 농업 생산은 쌀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2021년 우리나라 쌀 생산량은 388만 톤입니다. (출처: 통계청 KOSIS) 쌀의 생산량은 매년 조금씩 변동이 있기는 하나 대체로 자급의 수준을 넘어서 수요를 충분히 충족시키고도 남습니다. 그 반면 우리나라에서 쌀 다음으로 소비량이 많은 밀의 경우에는 2021년 수입량이 250만 톤이며 국내 생산량은 2만 5천 톤에 불과합니다. 밀의 국내 생산량은 전체 수요의 1%에 불과하며 99%는 수입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의 생산은 그다지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추상적으로는 쌀 다음으로 우리가 가장 많이 떠올리는 곡식은 보리입니다. 보리의 생산량은 지난해 12만 9천 톤에 불과합니다. 쌀 생산량 388만 톤, 밀 수입량 250만 톤에 비교하면 보리의 생산량은 매우 미미합니다. 보리는 전혀 주식(主食)의 영역에 접근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리보다는 오히려 밀의 소비량이 월등히 많고, 빵, 국수, 과자 등의 소비가 늘어나면서 밀의 소비량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밀의 생산량은 전체 수요의 1 % 에도 채 미치지 못합니다. 밀 수요의 99%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주장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식량 안보(食糧 安保)입니다. 비상사태에 대비하여 안보 차원에서 식량을 확보하여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주식인 쌀은 식량 안보의 개념으로 충분히 확보가 가능하지만, 쌀 다음으로 많이 소비되는 밀은 99%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식량 안보의 개념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상황입니다. 진정한 식량 안보의 개념을 충족시키려면, 가장 수요가 큰 쌀은 물론, 두 번째로 수요가 많은 밀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양의 밀을 확보하여야 할 것입니다.

식량 안보의 개념을 도입한다면 각종 주요 원자재와 상품을 미리 확보하여야 합니다. 연료 안보를 위하여서는 기름을 확보하여야 할 터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불행히도 원유가 전혀 생산되지 않습니다. 원유는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연료 안보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인 것입니다.

원재료 안보의 예를 보면, 10여 년 전 중국이 일본에 희토류의 수출을 전면 중단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관련기사: 中 희토류 日수출 중단-자원무기화 압박?_mt.co.kr_2010. 9. 23.) 그야말로 자원 안보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평화 상태에서 상대 국가에게 결정적인 한 방을 먹일 수 있는 것이 자원을 이용한 보복입니다. 이 당시 일본은 즉시 중국과의 갈등을 봉합하고 경제적인 피해를 줄였습니다.

식량 안보라던가 원재료 확보 등의 개념은 100% 확보할 수만 있다면 매우 바람직한 개념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모든 주요 원재료라던가 식량, 연로 등을 미리 확보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식량 안보라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경우 쌀만 100% 확보하고 있을 뿐 그 밖의 먹거리는 안보를 논할 만큼 사전에 충분한 양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쌀 다음으로 제2의 소비량을 보이는 밀은 99%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바탕으로 하여 어떻게 하는 것이 식량 안보라던가 원재료 안보, 연료 안보를 조금이라도 충족시킬 수 있을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유 수입선 국가를 보면, 사우디 아라비야 31%, 쿠웨이트 15%, 미국 14%, 아랍 에미레이트 9%, 이라크 8%, 카타르 5%, 기타 18%로 중동 국가로부터 수입하는 양이 상당히 많습니다. 특히나 중동지역은 인종, 종교,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지역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연료 안보는 매우 취약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원유의 도입 주체는 정유회사들입니다. 우리나라의 정유회사들은 세계의 원유 공급 시장에서 선물, 현물 시장을 통하여 가격을 안정시키는 노력을 하고 세계 원유 시장의 주요 공급원인 메이저(major)들과의 거래를 통하여 물량을 확보합니다. 이러한 원유 확보는 평상시에는 기업 차원에서 이루어집니다. 오일 쇼크 등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정부가 나서서 외교 루트를 통하여 안정적인 원유의 공급을 확보하는 노력을 하기도 합니다.

식량 안보의 경우를 보면, 쌀 생산량은 이미 수요를 초과하는 충분한 생산량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쌀에 뒤이어 제2위의 소비량을 보이는 밀은 그 수입량의 48%는 미국에서, 42%는 호주에서, 그리고 나머지 9%는 캐나다에서 수입하고 있습니다. 주요 수입선 국가가 모두 우리나라의 안보 우방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들입니다.

그러나 식량 안보 차원에서 우리나라 농업의 구조를 살펴보면 매우 취약한 부분이 많이 노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농업 생산은 매우 영세한 개인 영농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농 기업은 존재하지 않고 개인 농업 종사자들이 소규모의 논에서 쌀을 경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업으로 하는 채소, 잡곡류의 농사를 영위하는데, 해마다 경작하는 곡물과 채소가 바뀌면서 때론 특정 농산물이 과잉 생산으로 가격이 폭락하기도 하고, 때론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하여 품귀 현상을 빚기도 합니다. 이러한 공급의 불안정을 막으려면 영농 대기업을 육성하여 계획적인 경작으로 적절한 양의 공급과 가격 안정을 도모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나라의 영농 시장에 대기업의 진출은 죄악시되고 있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_2018. 1. 26. 참조)

진정한 식량 안보를 원한다면 지금과 같이 고령의 개인 영농 사업자들에게 우리나라의 농업을 맡길 것이 아니라 대규모의 영농 기업으로 하여금 과학적인 영농을 치밀한 계획 아래에서 영위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고령의 농지 소유자들은 영농 기업에 소작을 의뢰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영농기업이 더 높은 생산성으로 수확량을 올릴 수 있을 것이고, 그에 따라 농지 소유자는 더 많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영농기업은 지역에 따라 특화 농물을 대규모로 경작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이룩할 수 있고, 지역별로 특화된 작물을 보관, 유통할 수 있게 되어 분배 과정도 크게 개선될 수 있을 것입니다. 99%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밀도 토양의 성격과 지형에 맞추어 국내에서의 생산령을 늘릴 수 있을 것입니다. 식량 안보와 농업 생산성을 향상하기 위하여서는 영농 기업을 적극 권장하여야 합니다.

한 발짝 더 나아가, 국내 영농 기업이 주변 국가로 진출하여 각 지역에 맞는 특화된 농작물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생산하여 주변 국가의 농업 생산성도 높이고 식량 안보의 차원에서 농산물을 확보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전 세계적으로 농산물 가격이 상승하면서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의 공포가 번지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27개국, 곡물 수출 중단...애그플레이션 악화일로_chosun.com_2022. 6. 9) 식량 안보를 지키려고 한다면 더 이상 나이 든 개인 영농 사업자들에게 우리나라의 농업을 맡기기보다는 이제는 영농 대기업을 키워서 보다 효과적이고 생산성 높은 농업으로 발전해 나가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잡곡이라고 부르는 밀이 우리나라 국민들이 소비하는 곡물 가운데 쌀 다음으로 많은 제2의 곡식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밀 소비량의 99%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식량 안보를 주장합니다.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서는 영농 대기업이 자리 잡게 되도록 각종 규제와 제도를 과감히 뜯어 고쳐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대형 영농기업이 과학적인 계획 영농을 하면서 식량 안보의 걱정을 덜어주는 농업 선진국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지당한 말씀이지만, 그 이면에 농민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과 농협 회원, 그리고 농협 임원간의 이해관계가 카르텔 이상으로 얽혀 있어서 감히 누구도 풀어냞수가 없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