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물

이장춘 2007. 11. 13. 21:09

 
 
 
 전영우 아나운서, 제 17회 천원학술상 수상 현장   
 

사단법인 천원 오천석기념회

(회장 정원식 전 국무총리)가 주는 2007년도

(제17회) 천원(天園)교육상 시상식이 11월 12일 

사학연금 회관에서  있었습니다. 

 

 

1954년부터 30년에 걸쳐 KBS아나운서로
1960년대 동아방송국의 얼굴 아나운서실장으로
또 1980년대의 통합방송사 KBS의 아나운서실장으로
시청자와 친근해진 전영우 아나운서 !  그 전영우님이
30 여년간의 방송생활과,   24년간의 학문적 연구가
결실을 맺어 학술 연구부문상을  수상했습니다.
 
 
 천원교육상은 광복 후 문교부 장관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근간을 마련하신
 천원 오천석(吳天錫·1901~1987) 박사를 기리는 상으로
이날 시상식에서는 교육실천 부문에 이효자(李孝子) 국립
특수교육원 원장님도 (전 서울농학교 교장)함께
상을 받았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1953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한 전영우님은  KBS가 부산에서 서울로 돌아오고 
서울에서 본격적인 방송을 시작하면서 아나운서를 공개
채용할때 21살의 젊은나이로 아나운서시험에 응시해서
 어려운 관문을 뚫고 아나운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나운서 생활을 하면서 서울대학교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한것이 오늘의
상을 타게된 기초였습니다.
 
 
KBS에 근무하는동안 비밀의 문이나,
주말유람선등 주요공개 방송의 사회를 맡고
각종 현장 중계방송에 남다른 재질을 보여 주었습니다.
주요방송시간대의 뉴스를 맡아 청취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방송관이 되어서는 TV방송의 제작계장으로서 관리자의
역할을 하시다가 1963년 동아방송으로 옮겨
역사적인 동아방송 서막을 올렸습니다.
 
 
그 시대에 방송의 꽃인 아나운서로서
또 그 책임자로서 아나운서실장, 아나운서부장,
아나운서담당부국장등을 지내시면서 방송국의
대표 뉴스가 되었던 낮 12시 뉴스나 아침 출퇴근
전후시간대에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알려주는
뉴스전망대에서 그의 부드럽고 차분한 음성에 
 호소력이 곁들인 방송은 많은사람들의
마음을 끌었습니다. 
 
 
KBS아나운서시절 인기프로그램
재치문답등에서 샇은 역량은 동아방송 아나운서실장으로
계시면서동아방송의 최장수 프로그램이었던 "유쾨한 응접실"을 비롯한
주요공개방송에서 각종 중계방송을 통해서 청취자들의 벗이 되면서
동아방송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으셨습니다.
 
1980년 방송 통폐합이 이루워져 다시
친정집으로 돌아 와서는 1984년 방송국을
떠나실때까지 KBS 아나운서실장을 
지내셨습니다.  
 
 
방송에 힘을 기울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학문적 기반을 싸아 가는데도
개을리 하지 않아서 1967년에는 중앙대학교에서
국어 국문학 박사 학위를 받으셨고 빙송국을
떠나시면서 대학의 강단에 스셨습니다.
(1989년에는 성신여자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셨음)
   
  수원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로부터 시작해서 교학처장, 학생처장,
홍보처장, 산학교육원 원장, 인문대학 학장을 
지내셨고 지금은 대우교수로 계십니다.
 
 
이밖에 한국 화법 초대 회장과
한국 아나운서 크럽 회장을 지내셨고 
지금은 원로방송인 모임인 한국방송인 동우회
(방우회) 부회장이시면서  KBS사우회 회원 이시기도
합니다. 전영우님은 30년간아나우서의 길을 걸어 오셨고
학자가 되어서는 후학을 길렀습니다. 지금도 건강한
모습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오늘의 천원 교육상 학술상 수상을 
축하드리고 건강하신가운데 하시는 일들이 
뜻데로 이루워 지심을 기원합니다. 님이 1954년
아나운서 생활로 시작된 삶을 이어 오면서 한일도
많으시고, 훈장이나 상도 많이 받으셨으며
많은  저서도 남기셨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오천석 박사(1901~1987)는

교육학자이며, 호는 천원(天園)으로 평안남도

 강서출생으로 목사 오기선(基善)의 아들입니다. 소학교에서

신학문을 익혔으며, 소년기에 일본에 침탈당하는 비운을 체험하면서

조국애를 키우고 교육을 통한 실력배양에 힘쓰셨습니다.

 

1919년 일본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등부를 졸업하고 도미하여 코넬대학(1925)․

노스웨스턴대학(1927)․콜럼비아대학(1931)에서

교육학으로 학사․석사․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32년부터 4년간 보성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강의․강연․논문 등으로 한국민족교육발전을 위해

 힘쓰다가 일제 탄압으로 중국으로 가셨습니다.

 

광복과 함께 귀국하여 교육활동을 재개,

미군정청 문교부 차장․부장(1945~1948)을 역임하면서

 일제에 빼앗겼던 한국교육을 민주주의 초석 위에 재정립하는 일에

주도적인 구실을 하였다. 특히, 교육계 원로들로 구성된 교육위원회를

조직해서 홍익인간의 교육목적 설정, 6 ․ 3 ․ 3 ․ 4제의 기간학제 제정,

국립서울대학교 창설 등을 주도하였고, 민주주의와 아동존중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새 교육운동을 추진하셨습니다.

 

이후 대한교육연합회장(1950),

한국교육학회장(1955~1960),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장(1955~1960)을 역임하셨고 1960년 제2공화국

민주당정권 때 문교부장관을 역임하셨습니다.

 

이때 교육대학 신설, 향토학교 운동,

교과서 개편 등을 통하여 교육민주화를 추진하다

 5․16군사정변 발발 1개월 전에 퇴임하셨습니다. 이후

주멕시코대사(1964~1967), 학술원 회원(1977~1987),

경희대학교․상명여자대학교․덕성여자대학교 이사를 역임

하셨고, 청주대학과 코넬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교원이요, 교육행정가요,

교유철학자로서 우리나라 민주교육에 기초를

다졌습니다.  민주주의의 양태 지주인 평등과 자유의

실현을 위하여 87년의 온 생애를 이 나라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하여 새로운 씨앗을 뿌린 분입니다.

 

선생님의 저서로는 《민주주의 교육의 건설》․

《민족중흥과 교육》․《발전한국의 교육이념》․《스승》 등

다수가 있으며, 《오천석교육사상문집》 전 10권이 간행되었습니다.

그 중 《스승》은 15만부가 매진되는 초베스트셀러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전영우님이 천원교육상을 받던날 최창봉, 조동화, 김영효, 안평선님등 옛날 같이 게시던

분들이  축하 해 주셨습니다. 그동안 성함을 몰라 궁금했던 왼쪽에서 두번째 분 동아방송 초기

음악 프로듀서 민동옥님입니다. 이사진을 촬영한 날로부터 8년의 세월이 지나 오늘 (2015년 5월

19일) 뜻깊은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 만남으로 부터 이 사진을 기역 해 냈습니다. 늘 궁금해 했던

이 사진의 주인공 지금부터 춘하추동방송과 깊은 인연속에 함께 해 나갈 것입니다. 아래

사진은 위 분들과 오른쪽 조부성님이 함게 했습니다, 우늘의 음향은 전영우 아나운서

육성과 전영우 작사 사랑의 계절을 길옥윤이 작곡 패티 킴이 부릅니다.

 

 

 

 

 

전영우작사 사랑의 계절.mp3

 



 

 

 

유쾌한 응접실,어릴때 재미잇게 들었습니다 복혜숙님 극작가 이서구님,인간국보 1호 양주동 님의 구수한 입담이 그립습니다~~
기-인시간동안 감사히 잘 듣고읽어보면서 마치 내가 격었던 추억처럼 향수를 누렸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이 그리웠습니다.지금도 라디오로 듣던 재치문답 이광제아나운가 진행하던
백만인의 퀴즈 이광제아나운서 임택근아나운서의 중계방송 광복20년과 구민이승만역
오정한성우가 출현한 김삿갓북한방기 등등 많은 것들이 기억이 납니다.
그시절이 그립군요. 이제는 그 방송소리들 또 듣기 어렵겠지요.

말씀 하신 르로그램의 상징적인 목소리는
제 블로그 여기 저기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자주 오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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