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물

이장춘 2008. 7. 5. 03:42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마이크를 잡은 지도 벌써 3년째로 접어드는

서울 중앙방송국의 꾀꼬리 --강영숙 아나운서-- 꼬리치마를

입을 자격(?)을 당당히 획득한 후로 처음 맞이하는 새해에 양단으로

아래 위를 쭉 뽑고 인사하는 모습은 마치 꾀꼬리가 꽃밭에 앉은 것처럼

황홀한 그것이었다. 전임프로 “꾀돌이 문답”시간에 어린이와의 대화에서

들려주는 간지러울 정도의 따스하고 달콤함과, 대북방송이나 뉴스해설에서

들려주는 가슴이 서늘해 질 정도의 차고 날카로움은 그녀가 함께 지닌

아나운서의 기교이기 전에 날 때부터 가진 성격인 것 같기도 하다.

더욱이 머리의 회전율도 남달리 빨라서 약간의 “미스”도

재 빨리 카버 할 수 있는 기지를 가진 그녀에게는 재와

색을 겸비한 규수라는 이외의 다른 형용사를

부칠 도리가 없을 것 같다.

 

 

아나운서 강영숙 그때 그얘기와 예절교육 / 예지원장
 

 

위 글이 1958년 1월호 방송지에 실린지
54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27살의 젊은시절!
그 아름답던 목소리를 방송 전파에 실려보내면서 뭇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선망의 대상이었던 강영숙아나운서는 아나운서가

결혼을 하면 은퇴를 하던 시절이었지만 강영숙 아나운서는 예외였습니다.

1957년 방송의 최고 책임자 오재경공보실장 (장관이라고 불렀음)의 주선으로

같은 방송국 한영섭기자와 결혼을 하고 3형제를 기르면서도 1954년에 시작된 아나운서

 생활은 1970년대 말까지 KBS와 MBC에서 여성 아나운서로서는 최초로 MBC아나운서 실장을

했고 방송국 국장을 했으며 1964년 동경 올림픽 중계방송석에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여류

방송인 클럽 회장을 맡았던 강영숙 아나운서는 박정희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절실한 뜻을 받들어 1974년 예지원을 창설한 이래 40년을 이어 오면서 35만의

회원을 대상으로 예절교육을 실시해서 이나라 예절의 근본을 확립했습

니다.  82세가 된 그때의 강영숙 아나운서는 지금도  여러

방면에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고 계십니다.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숙명여자대학교
국어 국문학과를 다니던중 6.25전쟁이 일어나고 부산

피난길에서도  방송국에서 방송을 했지만 공개 채용시험이 없어 

정식 아나운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없던 터에 KBS가 부산에서 서울로

돌아오고 자리가 잡히면서 1954년, 아나운서 공개 모집이 있었습니다. 임택근,

강찬선님 등 부산에서 아나운서를 공모한 후 오랜만에 서울에서 뽑는 아나운서

시험이라 경쟁이 치열했지만 천성적으로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니고

태어난 강영숙님은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해서 이로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했습니다.

 

 

 

 

그때는 여성 아나운서가 없던 시절이라

그 활동영억은 넓었습니다. 그 시절에 새로 편성된

 누가 누가 잘하나. 무엇일까요 등 어린이 공개방송 둥 중요한

 프로그램이 강영숙 아나운서의 몫이었습니다.  중앙방송국에서

여성 아나운서의 역할이 차츰 늘어나면서 청주방송국의 김인숙 아나운서,

이리방송국의 윤영중 아나운서, 부산방송국의 장금자 아나운서 등이 중앙방송국으로

 옮겨왔고 강영숙 아나운서는 국내방송은 물론 대북방송이나 뉴스, 시사평론 등 다 방면에

걸쳐 영역을 넓혀 갔습니다. 위 아래 사진은 1950년 중반 네사람의 여성 아나운서가

 근무 할때의 사진으로  위는 정동방송국 현관에서 왼쪽부터 강영숙, KY(성명미상),

장금자, 윤영중, 김인숙 아나운서가 함께 한 사진이고 아래는 노정팔

 방송과장님과 왼쪽 두번째부터 김인숙, 장금자, 강영숙,

윤영중 아나운서가 함께 한 사진입니다.

 

 

 

 

1958년 연말에 중앙방송국 아나운서들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그때 같이 들어온 전영우, 최계환님 등
뒷날 이름을 날리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때는 아나운서
특히 여자 아나운서의 숫자가 적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늘

라디오나 벽에 걸린 스피카를 들으면서 생활 하던 때라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일상적으로 들려욌고 따라서 아나운서는 국민의 친절한

벗이었습니다. 다정다감한 강영숙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한층 더

친근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인천 창녕 국민학교 현지 공개방송

 

 

뉴스나 노래자랑, 음악방송, 주부시간,

 대북방송 등 각 프로그램마다 그 성격과 분위기에

맞출 있는 재능을 발휘해서 여러 프로그램에서 님의 목소리는 

들려왔습니다. 강영숙 아나운서에게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한계는 없었

습니다. 아나운서 30년을 하는 동안 그 수많은 프로그램을 해 왔지만 그 중에서

 제일 마음 닿는 프로그램을 꼽아 보시라고 했더니 어린이 공개방송 "누가 누가 잘하나"

라고 하셨습니다. 1954년에 편성된 어린이 공개방송은 강영숙 아나운서와 함께 탄생했다고

 할 만큼 강영숙 아나운서로서는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지금도 TV에서 방송되는 어린이 공개

방송 "누가 누가 잘하나" 프로그램에는 "Since 1954" 라고 큰 글자가 쓰여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1954년부터 이어왔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때 강영숙 아나운서가

1954년 입사하면서 첫 프로그램 사회를 보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때는

어른들도 어린이 프로그램을 많이 들을 때였습니다.

 

 

 

 

강영숙 아나운서가 mbc로 옮긴것은

mbc개국 무렵이었습니다. mbc에서도 방송국

일에, 가정 일에 눈 코 뜰사이 없이 바쁜생활을 했지만

 1960년대 중반 KBS TV에서 누가 누가 잘하나 르로그램이

 새로 편성되면서 그 프로그램을 좀 더 잘 제작 해 보려는 송병현

담당 PD의 오청에 선뜻 응해서 그 프로그램을 상당기간 사회를

보았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어린이 공개방송에 애정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누가 누가 잘하나 최초의 사회 아나운서 강영숙님이 누가 누가 잘하나

참여 어린이들과 어머니와 함께 한 사진입니다,

 

 

1970년대 까지만 해도 여자 아나운서가
평생 직업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여자

아나운서는 결혼을 하면 현업에서 물러나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있을 때 강영숙을 방송에서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한 오재경 장관은

강영숙님에게 결혼을 주선했습니다. 결혼상대는 경무대를 비롯해서 정부부처를

출입하면서 KBS 보도방송의 중심적 역할를 하던 내신부장 한영섭기였습니다.

결혼한 뒤 아이 둘 가질 때까지는 방송국에 근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획기적인 일로 둘은 결혼 후에도 같이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횬 3. 4년 지나면서 아이들도 탄생하고 가정일도 바빠 더 이상

아나운서 생활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님은 방송국을

 떠나기로 하고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KBS에서 스스로 사직서를 냈다고

뜻대로 가정으로 돌아 갈 수가 없었습니다.

새로 발족한 MBC가 그 절호의 기회를 잡아 강영숙님을

 MBC로 끌어 들였기 때문입니다. 강영숙 아나운서는 그때

 아나운서를 하라는 타고난 운명으로 생각하고 MBC로 향했다고

하셨습니다. 친정 KBS에서 같이 활동했던 동기 아나운서이자

MBC 아나운서 실장이 된 최계환 아나운서를 비롯해서 

여러 동료 아나운서를 다시 만났습니다.

 

 

 

 

1964년에는 선배 임택근 아나운서가

방송책임자로 와서 함께 일하게 되었고 후배

최세훈 아나운서도 왔습니다. MBC 개국 아나운서로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여기서 대한민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1964년 도오꾜오 올림픽의 중게방송석에서 마이크를

 들었고 최초로 여성 아나운서 실장을 했습니다. 아나운서실장

재직중이던 1973년 국장급 해설위원이 되었습니다.

 

 

 

 

해설위원직은 다른 일을 할수도 있는 직책이어서
예지원이 이때 준비되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나
육영수여사가 나라의 근간을 튼튼히 하려면 예절 바른 나라가
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지도자로 부터 전국민이 예의를 지킬 수
있도로 해야 된다고 생각 했습니다. 강영숙님은 청와대와
얘기를 나누면서 예지원을 창설했습니다.

 

 

 

 

 

 

 

당시의 김종필 국무총리 부인 박영옥여사를

비롯해서 장, 차관 부인들, 고급 공무원, 국회의원,

군 장성부인, 지도층 인사들 부인들이 모두 이 예지원을

 다녀갔고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다녀 갔습니다, 1964년

도오꾜오 올림픽때 일본 아나운서로 강영숙님과 함께 중계방송을

 고노 기요코 (小野 淸子)여사는 뒷날 중의원 의원이 되어

그의 남편과 함께 예지원에서 한국식 예절 교육을

받고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지원을 거쳐간 사람은 40년간 35만명에

달하고 또 그사람들이 이곳 저곳에서 얘절 교육을

실시하는 경우가 많아서 예지원의 예절교육은 전 국민속으로

 파고 들었습니다. 에지원을 다녀 가신 분 외에도, 방송을 통해서,

현장교육과 실습을 통해서 실시한 예절 교육은 알게, 모르게 전

국민의 예절에 관한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살자긍심을 갖고 그것을 생활화시키면서

현대인들에게 행동규범과 가치기준을 제시하고,

실천 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방송국 일이 끝나면 가정일만 하면서
살 수 있을 줄 알았던 강영숙님은 80을 넘긴
지금까지 공인으로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요즈음의
여자 아나운서들의 의상도 그래서는 안된다고 기회 될때마다
주의를 주지만 이미 변해 버린 세상은 말이 잘 먹히지 않는다고 아쉬워

하십니다. 예지원일 외에도 원로 방송인들의 모임인 방우회 (한국 방송인

동우회) 활동을 비롯해서 활동영역은 넓어 여기서 일일이 열거 하기는 어렵

습니다. 하신 일들이 많은 것처럼 수상 경력도 많아 1968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을 비롯해서, 문교부 장관상, 국무총리상, 대통령상, 국민훈장

동백장 등을 받으셨습니다. 저서로는 1959년 아나운서 초년기에

 발행된 아나운서의 벗을 비롯해서, 정감있는 여성,

 교양인의 해외여행 등이 있습니다.

 

아나운서 30년, 예지원 40년. 세아들을 낳고

기르며 산 지난날의 세월은 인생을 다 바쳐 살아온

세월이었고, 어렵고 힘들었지만 보람있는 삶을 이어온

인생 역정이었음을 강조 하십니다. 가정에서 아이 기르고

집안 돌보는것이 여성 본연의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실천하려 했어도 사정은 그렇지를 못해서 밤, 낮

쉴사이 없이 살아온 인생길이었습니다.

 

 

강영숙님 관련 동영상 한편 올렸습니다,

 

 

 

 

 

  

 

 

 

 

 

 


6대 독자 한씨 집안에서 3형재를 낳아 훌륭한 아들들로 키웠습니다.
사진은 큰 아들 한기원이 어렸을때 보건사회부에서 실시한 우량아 선발대회에서
우량아로 뽑히던 때의 사진입니다. 한기원씨는 일본 와세다 대학을 나온
올해 50을 바라본 중년이 되었습니다. 

 

 

 

 

 KBS-TV 주부시간에 서예의 대가들과 함께 출연하신 강영숙님입니다.(오른쪽)

왼쪽분은 이학님, 한글 궁체로 이름 있는 분이고, 국무총리를 지낸 진의종님의부인이기도

합니다. 그 다음분은 이철영님으로 연예인 서유석님의 어머니입니다.

 

 

봄의 아나운서실 강영숙 아나운서가 아직 KBS에

 근무하던 1962년 1월 16일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 한토막

입니다. 강영숙 아나운서 사진에 박종세, 윤석춘, 김현수, 윤영중,

강찬선 아나운서등 그때 아나운서들의 얘기를 엮었군요.

 

   
 

 

   

 

 

   

 

 

 

    

      

방송통신위원회 출범 1주년을

기념하는 2009,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받는 깅영숙님 

 


2010년 12월 제19회 대한민국 무궁화대상

시상식에서 장한 어머니 상을 받는 예지원 강영숙 원장님

 

 

 

1960년 남녀 가수대항 가요전 모습으로 남자팀 응원단장

전영우아나운서와 여자팀 응원단장 강영숙 아나운서입니다.

 

 

왼쪽부터 이혜옥, 강영숙, 문복순, 윤영중 아나운서입니다.

 

위진록 선생님이 만난 원로방송인들과 함께 한

1950년대 아나운서 강영숙, 윤영중, 문복순 아나운서가

함깨 한 사진으로 이날 참석 한 분은 번호따라 1. 이혜옥, 2.황인우,

3.임택근, 4.강영숙, 5.박민정, 6.윤영중, 7.문복순, 8.황우겸, 9.위진록,

10.한영섭, 11.전영우 12.홍기욱님입니다. 이날 사진은 아나운서 클럽

이형균님이 촬영해 주셨는데 이 사진에서 빠져 밑에 올렸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미국땅에서 추석을 앞두고 한상권입니다 에 출연 목소리들으니 옛날 시절이 새롭네요
부디 건강 하시기을 기원해요
jangklee@yahoo.co.kr
강영숙 아나운서는 제가 초등학교 시절 어린이 방송 누가누가 잘하나..
사회를 보시던 분입니다.목소리가 기막혀 방송국을 기웃거렸던 어린이였지요
어른이 되어서는 가정과교사로 예지원에서 예절교육을 철저히 받고 학생들에게
예법을 가르친 기억이 납니다..기품있고, 멋진 분이지요, 그리운 분입니다
오로지 라디오에 온마음을 쏱으며 지내던 시절입니다, 그 시대 최고의 지성들이지요
모두 멋진 분들로 기억합니다..
반갑습니다.
강영숙 아나운서가 담당하셨던
프로그램중에서 누가 누가 잘하나 프로그램이
제일 기억에 남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자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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