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우회·독립운동

이장춘 2009. 1. 8. 07:35

 

 

 
 
 
 정동 첫 방송터와 유허비 
 
1927년 2월 16일 오후 한 시!
JODK첫 전파가 발사 되던 곳 정동 1번지 !
그 마루턱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던 그때 정동 방송국은
 숱한 화재를 뿌리면서 방송역사에 첫걸음을 내 딛었던 곳!
이곳이 KBS전신인 JODK이었습니다.
 
이곳 정동은 방송이 비교적 잘 퍼져 나갈 수 있는
부지 중 에서 구하기 쉬운 부지로 이왕직에서 가지고 있던 땅
 190평을 임대받아 지은 건물이었습니다. 이 정동일대의 옛 지명은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정능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태조
이성계의 계비 강씨의 묘를 이곳으로 정하고 그
 묘 이름을 정릉이라고 한데서 유래 됐습니다.
 

 
노정팔선행님  1945년
정동방송국을 처음 찾으셨을 때 일을  
글로 써 놓으셔서 옮깁니다. 
 
 방송국은 정동 1번지의 마루턱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철탑이 우뚝 서 있어 눈에는 잘 띠나
 정작 찾아 가자면 미로를 해매듯 찾기 힘이 들었다.
 
태평로 경성 부민관 뒤에서 보면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아
 철탑 밑으로 가까이 다가가 보니 김영청 피부 비뇨과 의원에서
 길이 막혔다.  돌아나와 덕수굼 돌담길을 돌아 법원 앞길을 올라다
보니 어딘가 잘 못 온 것 같아 다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사실은 그길로 올라와 영국 대사관 뒤를 돌면 되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신문로 쪽으로 발길을 다시 옮겨야 했다.
 신문로에서 경기여자 고등학교와 덕수초등학교 사이를 지나
구세군 본영을 바라모며 덕수궁쪽으로 가다보면 좌측에
경성 방송국이란 현판이 보였다.
 
그러나 골목길이 그리 넓지 않아 지나치기 쉬웠다.
덕수궁 돌담길을 끼고 올라가면 방송국 스튜디오가 나타난다.
회색 벽돌을 쌓아올린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되었으나 나중에
한층 더 올려 연습실과 악기 창고 등으로 사용 했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길거리에는 물론 덕수초등학교를 들어서 보아도
이곳이 우리나라에서 첫 방송을 했다는 표시를
찾기는 쉽지가 않았습니다.
 


계단 위 저 높은곳이 바로 방송국이 있던 곳이고
밑의 계단이 있는 곳은 2차대전중 방공호를 만들어
비상 방송 시설을 해 놓은 곳이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러니 방공호터는 계단 뒷면에 있을 수 있겠으나
방송 터는 갈기갈기 찢겨 덕수초등학교, 조선일보 문화 센타.
또는 음식점 등으로 변신해서 그 비가 서있지 않다면
방송과는 아무 관련없는 터로 변해 버렸습니다.





이나라 방송을 지켜오신 방송인들의 모임
방우회는  이곳이 첫 방송터임을 알리는 유허비를 세우고
해마다 이곳을 찾아 그 날을 되돌아보곤 합니다.
 
다음은 2006년 원로방송인들이
유허비를 찾았을때의 얘기입니다.
 
 
 
오늘 5월 27일 오전 11시 비가 오는 날에도
 많은 회원님들이 이곳을 찾으셨습니다.
 

 

 


한영섭 방우회장님이 얘기를 하시고 계십니다.

 

방송기자 1호 문제안 선생님이 재직당시의 회고담을 들려주고 계십니다.


방송역사가이신 유병은선생님이 방송초기 회고담을 들려주고 계십니다
 

 
방우회 모임에는 KBS사우회 회원님을
비롯해서 오랫동안 방송현장을 지켜 오신 회원님들께서
참여 하시고 계십니다. 면면을 보시면 다 아실 수 있는
분들이시므로 그 모습을 설명 없이 올리겠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