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물

이장춘 2009. 4. 4. 06:18

 

 

 

 

위 사진은 1934년 말에 특집방송을

 

 

끝내고  찍은 제 2 방송과원들의 사진입니다.
모두 1932년에 들어오신 분들입니다. 제2방송과장님이
김정진님으로 바뀐 뒤였는데 이 사진에는 안 계시고
앞줄 왼쪽부터 이혜구, 박충근님, 한사람 건너는
이석훈, 최아지, 이하윤님, 뒷줄 오른쪽부터
두 번째 남정준님, 세 번째 김문경님입니다.

 

 


 

 

  경성방송국 초기 방송인들 ( 1 )

 

 

 



초기 방송인들로 노창성, 이옥경님을 제외하고는

 

30년대에 들어오신 분들이고 이 가운데서 이혜구, 남정준님은
해방될때까지 계셨습니다. 노창성님은 단파수신사건때
그만두셨다가  1949년 11월에 다시 오셔서 1956년
방송관리국장을 하시다가 세상을 뜨셨습니다. 
 
1927년 JODK가 방송을 개시할 무렵
 엔지니어 두 분 계셨는데 한분은 일본유학에서
돌아와  방송국 설립과 관련된 시험방송에 임했던
노창성님이고또 한분은 한덕봉님으로 님은 '사단법인
 경성방송국' 건설계획시 세계일주 항해를 여러

 

차례 한 1급 무선통신사였습니다.  

 


노 창 성 님  과 
  한  덕  봉 님

 


송·수신기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또 외국어에도 능통하여 한국방송 건설에 한덕봉님을
 영입(迎入)하기로 된 것이었습니다. 1950년 6.25가
 일어날 때까지 기술 쪽에서 일을 보시다가  6.25때
 납북 당하신 후 소식을 모릅니다.

1890년대 분이라고 하니 살아 계시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한덕봉님에 대해서는 따로
얘기 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서 여기서는 줄이겠습니다.
기술쪽에서 얘기를 들어보면   한덕봉님에 대해서는
 아시는 회원님이 종종 계시지만 노창성님에 대한
얘기는 생소한 것으로 받아 들여 졌습니다.

 


1949년 ITU참석기념(앞줄중앙)사진으로 앞줄 왼쪽부터

 

 권태웅, 이관희, 한덕봉, 정효근, 박노연,  뒷줄 왼쪽부터 민재호,
 신경석, 이규일, 권한섭, 송영호, 하기영, 김도현,
민병설 님이 차례로 앚으셨습니다.

노창성님은 초창기 엔지니어 이었다고는
 하지만 1930년대부터사업부장, 함흥방송국장을 거쳐
 제2방송부장, 중앙방송국장, 방송관리국장을 지내셔서
 사실상 기술쪽에서 멀어지셨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 해 보았습니다.


편성에는 최승일 님이 계셨는데

 방송부의 서무도 같이 보셨던 것 같습니다.
서무라면 지금의 행정을 머리에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은데 옛날의 서무는 달랐습니다. 방송현업의 서무는
 그 부서의 제반 일을 챙겼습니다. 공사되기 전 까지만 해도
프로그램의 편성이나 기획, 진행, 그리고
그 부서의 살림을 맡아서 했습니다.

최승일님도 방송부에서 제작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일을 하셨던것 같습니다. 시험방송 시절부터 
연극인으로 방송출연 하셨던 복혜숙님이 써 놓으신 글을 보면
시험 방송시 연극에 출연했을 때 연출이 최승일님이었던
 것으로 기억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혜구님이나 이하윤님이 방송국에
 들어오시기 전 까지는 편성에 최승일 님 밖에
안계셨으므로 우리말 방송은 그 역할이
크셨을 것으로 보여 집니다.


방송 초창기에 노창성님의 부인
이옥경님과  최승일님의 부인 마현경님
두분의 여자아나운서가 계셨습니다. 최승일님은
 1937년 방송국을 떠나시고 그 후임으로 이서구님이
오셨습니다. 방송초기에 근무하셨던 김영팔 아나운서는
 최승일님과 뜻을 같이 하는 동지였고 소설. 희곡을
쓰신 문학가이고 사외운동가 였습니다.1930년대
중반 신경방송국으로 가셨습니다.
 
 1930년 무렵 남자분으로 방태환님이
잠시 계시다가  물러나시고 1931년에 34대1의
경쟁을 뚫고 공개채용으로 들어오신 분이 
박충근님이었습니다. 

 



방송초기 주조정실용 스피커, 1927년

제2방송실시를 앞두고 1932년 
 이혜구님,

 

이하윤님, 김문경님, 최아지님, 윤태림님이 들어오셨고
곧이어 김준호, 정문택님, 이석훈님이 들어오셨습니다.이혜구님은
들어오실 때는 아나운서로 들어오셨지만 곧 프로그램을 맡게 되셔서
 연예 오락 프로그램을  오랬 동안 하셨습니다. 이하윤님은 교양 프로를
하셨는데 3년후 그만 두셨습니다. 이때 들어오신 분은 이혜구님만
제외하고는 모두 30년대에 방송국을 떠나셨습니다.
 

정동연주소 정문 앞에서의 직원들 (1932년 10월)
앞줄 오른쪽 부터 김문경, 최아지(최정석), 한사람건너
 윤백남 제2방송과장) 뒷줄 왼쪽 두번째 박충근, 한사람건너
 이하윤, 이혜구, 한사람건너 남정준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