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 남산시절

이장춘 2009. 5. 9. 10:56

 

 

 

 

TV방송을 처음 시작하던 그때 그 얘기(6)

 

 

초기 TV방송망과 수상기 보급실상 -

 

HLKZ가 문을 열던 1956년만해도

세계에서 15번째의 텔레비전 방송을 하는

나라였지만 KBS가 TV방송을 시작할 때는 70개국이

 TV방송을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HLKZ초기 3,000대이던

 수상기가 그동안 AFKN에서 방송을 계속했어도 수상기는 별로

늘어나지 않아 KBS가 TV방송을 시작 할 때 8,000대에 불과했다. 

 방송을 해도 수상기가 없으면 의미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는

긴급히 20,000대의 수상기를 수입하기로 하고 신청을 받은

 결과 순식간에 신청이 들어와 1차로 1962년 1월에 들여오고

 2차로 6월말부터 8월말에 걸쳐 배부가 끝나 그 무렵

 우리나라의 수상기는 30,000대 정도였다.

 

 

TV구입 신청하기 위해 모여든 정동방송 연주소 

  

 

1960년대 중반까지는 수상기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다. 시청권이 서울일원에 머무르고

수상기 값이 쌀 70가마니 이상을 주어야 하는 상황에서

 수상기의 보급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60년대 중반이 지나면서부터였다.

 

1964년 말 동양TV가 문을 열고

1966년부터 국산 금성 TV가 생산되면서

이 무렵부터 지역에 TV중계소가 설치되어 시청권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수상기는 전국으로 팔려 나갔다.

때맞추어 월남에 군대가 파견되고 파월장병들은 한두 대의

수상기 티켓을 가져오는 것은 기본이었다.

 

 

 

 

  

 방송망 확장상황  

 

1966. 6. 20  천안 흑성산 CH6 100W

1966. 7. 27   김천 금오산 CH2 300W

1966. 8. 17   전주 미륵산 CH6 600W

1966. 8. 20   대전 식장산 CH4  1KW

1966. 8. 26   광주 무등산  CH3 30W

 1967. 11. 21 춘천 용문산 CH3 500W

1967. 12. 30 부산 봉래산  CH5 500W

1969.  5. 7  대구 범어동   CH7  2KW

1969.  5. 9   마산 불모산   CH8 500W

1969. 12. 24  안동 학가산 CH9 500W

1969. 12. 31 남산 출력증강 CH9

2KW->12.5KW 

 이때는 마이크로웨이브가 없던 때라

중계소간의 링크로 중계가 이루어져 서울에서

 가까운 곳부터 차례로 중계소가 설치되었고 방송국

관할이나 행정구역도 생각하기가 힘들었다.

 

TV수상기는 1967년까지 7만대가

보급 되었고 이후 보급 속도는 빨라졌다.

 

TV수상기 연도별 보급상황

 

1968년 118,262대

1969년 223,692대

1970년 379,564대

1971년 616,392대

 1972년 905,363대

 

 

 

1969년부터 MBC-TV가 문을열어

TV 3국 시대를 맞게 되고 1970년대 들어

TBC의 아씨에 이어 KBS의 여로가 선풍적이 인기를

끌면서 TV수상기는 보급이 급속히 이루어져 KBS가 공사로

 발족하던 때에 백만 대에 이르렀고 1980년대가 되면서 600만대

시대가 되었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수상기의 증가와 함께

라디오방송과 영화는 뒤로 가고 TV가 전면에 나서면서

 TV3국시대의 경쟁은 더욱더 가열되었다.

 

 

 

KBS본사 당시 기술 정책개발국장이던 송재극님과

 전주방송총국 기술국장 김영송님이 모악산 송신소

 직원들과 함께한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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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리랑 - 장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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