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와 방송

이장춘 2009. 6. 11. 18:07

 

 

 
 6.25전쟁 18일간의 대전 중앙방송국 ( 1 )
 
 
   서울 중앙방송국은 28일새벽부터
공산군의 수중에 들어가고 서울 중앙방송국이
더이상 방송을 할 수 없게 된것을 안 도오꾜오의 UN군

총사령부는 NHK방송 두 채녈중 한채널을 한국전쟁을 위해서

사용하기로 하면서  VUNC 방송을 시작했고 대한민국

중앙방송국의 역할은  대전방송국이 이어받았다.

 
출력 500W의 보잘것 없던 대전방송국이
 28일부터 중앙방송국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공산군에게  점령당한  50Kw  서울방송에 비하면 

너무도 초라한 것이었지만  이것마저도  감당키 어려운

 때였다. 대전빙송국이 중앙방송국역할을 한 것은

1950년 7월 14일까지  18일간이었다.  

 

 

 

   노창성 중앙 방송국장이  서무과장 

김창조를 대동하고 대전에 도착한것은 6월

28일이고  민재호 방송과장은 6월 29일에욌다. 27일,

여의도 비행장에 취재 갔던 홍양보 아나운서가 방송국으로

 돌아 갈 수없어 피난길에 올라 대전으로 돌아온것도

 또 이종훈, 이성실도 이 무렵에 왔다.

 
춘천에서 근무하던 김유선 아나운서가
합류한것은 조금 뒤의 일이디.  빙송기술인들은
비교적 많은사람들이 피난길에 올라 충분한 인원이
확보  되었지만  마이크 앞에 설 수있는 사람은 부족했다.   

급한대로 이리방송국에 있던 박영선 아나운서를 이곳에 차출

했다. 이런 가운데 민재호 방송과장이 급히 VUNC에 파견

되어 그곳에서 방송을 하게되었다. 그때는 대전방송보다

 VUNC에서 방송을내 보내는것이 효과적이고 

더 중요시 되었다.  
 
 박경환님
 
외부와의 소식이 모두 두절되었을때
정부는 외부에서 들려오는 방송에 해외정보를
의존 랄 수밖에 없어서 방송국에서는 해외방송이나
 평양방송등을 듣고 이를 분석해서 국무회의에
보고하는 임무까지 맡았다.
 
그때 그일을 직접수행했던 박경환님의 글을 옮긴다. 
 
일개 방송국 기술자가 VOA와 NHK
그리고  북괴방송을 청취하고 결과를 보고
하여야만 국무회의가 열릴 수 있었다면 그게
소린가 하고누구나 의아해 할 것입니다. 그러나 1950년
 6.25전쟁이 터지고 아군이 후퇴를 거듭하던 무렵 대전에
 있는 충남도청 회의실에서 국무회의가 열리고
있었을 때는 분명 그러 했습니다.
 
그러니까 6월 28일 새벽 서울중앙방송국이
방송을 중단하고 당시 국방부 정훈국 보도과에서
파견 나와 있던 홍천대위의 인솔 하에 한강대교를 건넜던
우리 몇몇 기술자들은 한강이 폭파되면서부터  각자
해산 상태로 남으로 남으로 밀려 내려 왔습니다.
 
 대전방송국에 닿은 것이  6월 30일 우리가
대전방송국에 닿자마자 그곳의 유병은과장은
새로운 임무를 부과해 주었습니다.
 
VOA와 NHK 그리고 평양방송을 듣고
전황을 상세하게 보고하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왕종현씨와 김성배씨 그리고 저는 곧 청취하기에 적합한
방을 골라 그 앞에 출입금지 구역이라는 팻말을 붙였지요.
그리고 쉴 새 없이 그 방송을 청취하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한 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북괴의
성급한 보도 내용이었어요.
 
가령 VOA와 NHK 방송에서는
경기도 평택지역에서 국군과 인민군이
교전중이라고 보도하면 그 때 이미 평양방송국에서는
 해방시켰다고(함락) 떠들어 대는 것입니다.  평양방송국에서
 평택을 해방시켰다고 떠들어 대고  VOA와 NHK 에서는
교전중이라고 보도하면 우리가 전황 판단 할 때는
 인민군이 경기도 평택지방 까지 밀고 내려
왔다고 파악하는 것이었어요.
 
아무튼 우리가 그러한 방식에 의하여
 전황을 상세하게 분석하고 그 결과를 충남도청
 회의실로 가져가야만 그것으로 전황판단의  자료로 삼아
그날의  국무회의가 열리는 실정이었지요.  이미 국무위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하더라도 우리가 전황분석 결과를 보고하지
않으면 국무회의는  마냥 지연되는 형편이었으니까요. 결국
그러한 방식에 의하여 국무회의가열린 것은 7월 14일
우리가 대전방송국에서철수 할 때까지
 계속 되었던 것입니다.
 
대전에서의 중앙방송은 18일간이라는
 비록 짧은기간이엇지만 아수라장이 전쟁 상황속에서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다음회에 계속하겠습니다.
박경환님은 현재 방우회 회원입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