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와 방송

이장춘 2009. 6. 13. 04:41

 

  

 

 6.25전쟁 18일간의 대전 중앙방송국 ( 2 )

 
 
6월 28알부터 시작된 대전방송국의
중앙방송역할은 7월15일 대구방송국이 이어
받을때까지 18일간이었다.  이 18일간의 일을 그때의
대전방송과장이던 유병은은 1998년에 발행된 방송야사와
 2004년에 발행된 대전방송 60년사에 기록 해 놓았다.
이글을 간추려 그때의 일을 알아본다.
 
중앙방송국에서 대전에 제일먼저 도착한

방송인은 6월 28일에 온 노창성국장이었다.  이때는

 이미 정부가 수원을 거쳐 대전까지 밀려 와 있을 때였다. 

유병은으로부터 그동안의 상황을 보고 받은 노창성 중앙국장은

지금 당장 이철원 공보처장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라는 것이

었다. 나는 그를 따라 충청남도 서무과장실로  달려갔다.

때마침 도청에서는 임시국무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노창성 중앙방송국장이 왔다는 

메모를 적어 들어 보냈다.

 
잠시 후 이철원 공보처장이 복도로 나왔는데
 두 사람은 서로 얼싸안고 큰 소리로 울어대는 것이었다.
이울음은 서울을 공산 괴뢰군에게 빼앗기고 대전까지  쫓겨 내려온

서러움이 아니었나 싶다. 7월 3일 민재호 방송과장이 VUNC로

떠나게 되었다. 그때 일을 유병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급히 떠나게 된 민재호 나나운서가
메모지를 보여주며 작별인사를 했다. 메모지에는
주일 대표부 한국은행 도쿄 출장소장에게 보내는 재무장관
최순주의 친필 메모 지시 공문이었다. 내용은 민재호 아나운서의
 일본 채재중의 경비를 적당히 지출하시오. 였다.  참으로
 기상천외한 희귀한 메모였다고 생각되었다.
 
---중       략--- 
 
나의 관사는 마치 피난민 수용소와
흡사했고 사회는 극도로혼란하여 갖은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7월 7일 2시 30분쯤으로 기억되는 미명에 이종훈

선배가 내가 자고 있는 방에 들어와 여보 유과장 빨리 일어나 피난을

 떠납시다.  벌써 다 떠났소. 빨리 빨리 서두르시오. 고함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을 깬 나는우선 방송국으로 뛰어갔다. 나가보니 숙직당번 

기술원과 아나운서만이 무슨 영문인지 몰라 궁금해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사태를 판단하기 매우 어려웠다.
 
내가 자고 있는 침실까지 들어와 피난을
떠나야 산다고 고함을 치던 고등학교 선배 이종훈마저
 행방이 묘연해 더욱 망망했다. 서울에서 피난 온 노창성 국장

 이하 많은 방송국 직원들은 이미 피난길에 오른 듯

아무도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눈앞이 캄캄하여 엉엉 대성통곡하며
울었다. 그날 새벽에는 마치 장맛비와 같은 비가 억세게
 내렸다. 나는 소위 대전방송국의 책임자란 직분을 생각하며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눈물만 흘리고 숙직자들과 우리는 어디로

어떻게  피난을 기느냐.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하여 중앙방송국

에서 온 직원들은 단 한사람도 안보이니 매우 의심스럽고

걱정스러운 심정으로 우왕좌왕 하였다.
 
새벽 4시경 이선근 대령이 지프를
타고 홍천중위및 최학수 등을 대동하고 와서
대전방송국의 현황을 물었다. 이선근 정훈국장은
 권총을 빼 들고 노기에 찬 어조로 이놈들 모두 파면이다.
라는 거친 말을 연발 하면서 극도로 흥분 해 있었다. 때마침
대전방송국 청사 인근에 민간인 몇 명이 대전방송국으로
 뛰어와 지금 대전 형무소에서 반란이 일어나 죄수들이
 옥문을 부수고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라고 외쳤다.
 
대전 형무소는 직선거리로 150미터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이선근 대령은 형무소를 향해 권총을
무수히 난사했다.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전시라
방송국은 국방부 정훈국장의 지휘 하에  있었다.
정훈국장은 4시 30분경 나를 부르더니 5시부터
정규방송을 시작합시다. 라고 지시했다.
 
송신기에 전원스위치를 넣었지만
웬일인지 전원스위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중앙방송국 직원들이 퓨즈를 모두 빼서 적이 와서
방송 할 수 없도록 마당에 버리고 간 것이다. 억수같이
퍼붓는 비를 맞으며 퓨즈를 주어 마른 수건으로 닦아 제자리에

 끼웠다.  아침방송을 무사히 시작 할 수 있었고 이선근 정훈국장의

유언비어에현혹되지 말라는 특별담화로 그날 방송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방송국을 떠났던 방송인들이  다시 돌아왔다. 새벽에

 대전 일부지역에 퍼진 유언비어로 이런 불상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다시 안정을 되찾아 7월 15일 아침방송까지 무사히 끝냈는데
 아침 9시 반경 홍천중위에게 하달 된 작전명령 에 의하면
 지금 당장 대전에서 철수하여 대구방송국으로
남하 하라는 요지의 명령이었다.
 
작전명령중 방송기계는 괴뢰군이
사용치 못하도록 파괴 한다는 것이었다.
홍천 중위를 선두로 직원들이 힘을 합쳐 진공관을
 모조리 파괴하고 트랜스 호머는 도 끼로 찍어
못 쓰게 만들고 뿔뿔이 해어져 제각기
 남하의 길을 떠났다.
 
대전방송국에서 대구로 떠나기위해
 
최후 마무리를 한 그때 쓴 그얘기가 박경환님의
 
피난일기에 기록되어 있기에 올립니다.
 
 
 
 
 

 

 

그때 대전방송국장은 이범구였지만
 부임하면서 서울 집에 올라가 돌아오지 못해서
 사실상 대전방송국장을 한적은 없고 유병은이

 그 역할을  하다가 피난길에 올랐다.

 

공산군이 금강교인근에까지 오고 전선이 위험해지면서

대전에서 방송국과 정부는 대구로 떠났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아내의 노래 백설희, 심연옥-1.w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