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와 방송

이장춘 2009. 6. 15. 05:43

 

 

 
 
 6.25 피난 대구 중앙방송국
 
 
금강전선이 무너질 위험에 처하면서
중앙방송국을 대구로 옮긴것은  7월 15일이다.
한국방송사는 대구에서 2일간의 중앙방송을  한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여러가지 상황으로 볼때 8월 중순까지는
대구에서 방송 했슴을 알 수있다.   필자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8월 초까지 피난 중앙방송과 함께한 박경환님의  피난일기장을
정독했다. 그  일기장 어디에도 8월 초까지는 부산에서 중앙방송을
 한 흔적은 없고 대구방송에 관한 얘기만 있다. 그때 대구방송
 얘기를 종합해서 다시 정리 해 보기로 한다.
 
이때는 정부와 군 수뇌부가  대구에
머무르고 있었고  방송은 정규방송이  아니라  
VOA나 VUNC를 중계하면서 주로 군에서 제공하는 
뉴스를  전하거나 군가, 행진곡등을 방송하던 때였다.
  콜싸인도 공보처 00방송국으로 되어 있었다. 중앙방송국
이라는 지역 명칭이 들어간 때가 아니어서 중앙방송국이
어디랄것도 없지만  부산과  대구를  연결한 직통회선을  
통해서 서로간에 방송을 주고 받으면서 방송을
했어도 그 중심은 대구에 있었던 것이다.
 

대전 방송시절에도 서울에서 내려간

방송인들가운데 김성배님은 7월 4일부터 대구에서

근무했다고 하고 춘천에서 간 전성병 아나운서는 대구에

내려갔을때 여러곳에서 온 방송인들과 만났다고 했다. 대구에

우리 방송인이 상당기간 머물렀음을 의미한다. 박경환님은 8월

6일에 부산 문화극장에서 열린 UN한국위원회 방송차 갔다가

거기서 제주뱡송국 설립에 참여하라는 지시를 받은것이

8월 7일이라고 했다. 그때는 대구에서

중앙방송을 했다는 것이다.

 

 

정부도 8월 18일까지 대구에 머물렀던

기록이 있다.  1.4후퇴로 임시수도를 부산에 옮겼던

때와는 달리 이때는  수도가   어디라고 할것도 없이 밀려

내려가던 때라 방송도 한동안 대구나 부산에서 상황 보아가며

방송을 하던때라고 할 수있다,   따라서  어느곳에서  몇일간의

 중앙방송을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할지라도  8월 중순까지는

대구에서 방송을 한것은 확실하고 또 1.4후퇴로 부산에 왔을때도

대구가 군사의 중심지였고 부산방송국이 비좁았던 터라

대구방송국도 중앙방송에 활용되었을 수 있습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KBS사우회
회장을 역임하셨던 서병주님은 6.25때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선친 서희택님이 대국방송국 방송과장으로
근무하실 때라 방송국과 밀접한 관련하에 방송국을 드나들며
  지냈던 그때의 일중에 지금도 남은 기억들이 많다면서 
상당기간 대구에서 중앙방송을 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하셨습니다.
 

  

작가 김영수님이 대구방송국에서 단막극을

쓰고 부인 조금자님이 스튜디오에서 어린이 노래지도

하면서 방송하는 것을 보았고 한강이라는 노래가 대구에서

작사 작곡되어 불려 졌다고 하셨습니다. 자세한 얘기를

글로 써서 보내 오셨기에 원문을 옮깁니다.

 

 

  다음은 서병주님의 글 입니다.
 
 
 
 
 60년전의 기억을 더듬어 보겠습니다.
 
 
 먼저 아버님에 관한 기억입니다.
 6. 25직전 국장급 인사에서 아버님께서 청주

방송국장으로 내정이 되셨지만 가시지 않은것으로 압니다.

"나를 청주국장으로 가라고 했지만 나는 안간다고 했다."는  말씀만

들었을 뿐입니다.  625가 발생하자 얼마후 함흥방송국장이셨던  김천택님등이

대구국으로 찾아 오셨던 사실도 기억납니다. 적은 낙동강 및 포항과 영천지역

 전투가 격렬해져 마지막 사투를하고 있을 때 어느날 명령으로 (강제로)

부산으로 가야한다고 군용차인 " 쓰리쿼터"에 간단한 짐을 싫고

 

그리고 당시에 국방부 정훈국에서

파견된 분들은 홍 천 대위 (수복 후 방송관리국장을

역임하심)와 박석환 대위 그리고 최학수 상사(전 KBS 보도국차장

역임)등이 활동하셨고 저는 어리고 겁이 없던 터라 특히 최학수님을

많이 따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미국 군인들과 함께였습니다.

최초 얼마간 미군들은 식사를 자동차로 날라와 부페식으로

먹는 것을 본 기억도 납니다. 방송은 주로 뉴스

부스에서 검열받은 내용이었지요.

 

그 외에는 유엔총사령부 방송과

미국의 소리 방송을 중계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24인치 짜리 큰 레코드 (발로 밟아도

깨지지 않음; 한 면이 1시간 분량)를 걸어 놓고 교향곡은 작곡

작사자가 표시 되어 있어 제대로 소개 했으나, 경음악곡은

어떤 것은 제목을 번역하기가 애매모호해 생각나는대로

"아가씨와 함께" "새벽을 걸으며"등 적당하게 부쳐

방송하기도 했다는 아나운서(김영자; 여)들의

실토를 여러번 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의 방송은 모두 동시 녹음

되었는데 이 녹음 장치나 일부 방송장비 및

상당 수량의 레코드 등미군에서 긴급 지원 되었던

것으로 미군들이 철수 할 때는 레코드 바늘 하나

 남기지 않고 완전히 가져갔다는 후일담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김영수님이 원고를 쓰시고 배역들이
 원고를 받아 자기 부분을 각자 나누어 써서
 연습하는 광경을 분명히 보았으며 그리고 단막극
방송에는 그 원고의 내용은 "단막 드라마"
(당시에는 생발송)와 "스팟 드라마"
정도 였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리고 이 때 활동한 배역중에 유일하게
문정숙(여)(나중에 알고 보니 영화배우였음)님이
 유일하게 기억이 납니다. 또한 김영수 선생님의 부인이신
조금자 여사님 옆에는 세 따님이 있었는데 이들과 함께한
어린이 노래는 "예쁜 손으로 비진 그 떡을 예쁜 손으로 구워..."
 시작됐는데 지금도 어디에선가 불리워 지고 있을 것
입니다.  제목은 모르겠습니다.
 
부산에 간 저희는 자갈치시장이 가까운
보수동에 있는 큰 고모님 댁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지냈으며 늦가을 날씨에 추럭(육발이; GMC)을 타고(짐처럼 타고)
다소 추운 날씨에 군용 담요를 뒤집어 쓰고 대구에 도착한 일도 생생

 합니다.  아버님께서는 그 뒤에 국장으로 승진하셨는데 그 시기와

날짜는 모르겠으나 오재경 장관 때까지 근무하시다

퇴직하신것은 틀림 없습니다.  

 
 
 한강 노래는 피난방송시절
방송국 직원이신 최병호님, 작사 작곡의
노래를 심연옥이 부른 노래여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심연옥은 6.25전후 이름을 날리던 가수로 백년설의 부인이기도 합니다.

대구에 피난와서 이 노레를 불렀습니다.  여기 나오는 버들 가지는 한강에서

보았던 버들가지가 아니고 당시 대구방송국에는 사진의 건물 왼편 차도

건너에 조그만 연못이 있었고 그 연못가에 수양버드 나무가 있었는데  

이 모습과 한강의 피난행렬을 상상한 가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연못에서 저는 국민학교 때부터 스케이트를

즐겼던 추억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다음은 한강 작사 작곡자인
최병호님과 오랜기간 같이 근무하셨던
이용실님의 글입니다.  한강 노래 작사자가
손로원이라는 얘기도 있다고 했더니 글을 보내오셔서
이 글을 올리면서 최병호 작사, 작곡으로
수정 했습니다.
 
 
 이 글중 노래 "한강" 의 작사자,
작곡자는 최병호 씨가 맞습니다.  최병호씨는
저와 방송관리국 시설과에서 음향 기사로 같이
근무한 분인데, 본인에게서 여러번 분명히 들었습니다.
재작년에 만난적이 있는데 이 노래 덕에 매달 용돈이
들어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최병호씨는 비교적
착실했고 음악과 예술에 기질이 있고 말은
진실한 분 입니다.  참고 하시지요. 
 
 2009년 6월 15일
 
남한산성 기슭에서 이용실 보냄.  
 
 

 

 
 
 
 
 
   한        강  
 
 작사, 작곡  :  최병호,   노래 :   심연옥 
최병호님은 6.25해상방송에도 참여하셨고
방송관리국 시설과에 오래 근무 하셨습니다.
  
 
한많~은 강~가~에 늘어진 버들~가지는
어젯~밤~ 이슬비에 목메어 우는구~나
떠나~간 그옛일은 언제나 오~나
기나~긴 한강~줄기 끊임없이 흐~른~다
 
흐르~는 한~강~물 한없이 흐르~건마는
 목메~인~ 물소리는 오늘도 우는구~나
가슴~에 쌓인한을 그누가 아~나
구백~리 변두~리를 쉬임없이 흐~른~다

 

 

 임시 대구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연설을 듣기위해

시민들이 모여들고있다. 1950년 7월 30일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오랜만에 들러 잠시 머물며 귀한 자료 감상하고 모셔가며 더위 식히고 가면서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강건하심을 염원합니다
국내 기온이 몹시 무덥다고 들었습니다.
건강하심을 기원합니다.
선생님께 그저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제가 9살인가 10살 때, 단칸방에서 다섯자식들이 다 자는동안 밥상을 앞에 놓고 다음날 나갈 방송극을 쓰시던
아버님, 김영수, 모습이 아련하게 선생님 글을 일고 떠오릅니다. 이런 기록을 남겨 주시는 선생님께 머리 숙여 다시 감사 드립니다.
김영수, 둘째 딸, 김유미 드림
그동안 궁금했습니다.
건강하신지요.
늘 잊지 않고 있습니다.
보내주신 책도 시간 나면 또 읽고 또 읽고 합니다.

"예쁜 손으로 비진 그 떡을 예쁜 손으로 구워..."
그 노래가 기억 나신지요.
늘 행운이 같이 하심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