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음악 백년

이장춘 2009. 9. 23. 14:43

 '


심연옥의 동영상 한편 올렸습니다.

동영상을 계속 보시려면 음악을 끄셔요,

 

  


 




노래 한강!  6.25 한국전쟁으로 태어난

최병호 작사, 작곡, 한강! 대한민국 사람들이면

 노래가 모두 귀에 익었습니다. 이 노래의 작사, 작곡자

 최병호님은 문학인도 음악가도 아닌 뜻밖에도 방송국에서

근무하던  방송 기술자로  6.25때  해상 이동방송에도 참여하고,

대구방송국 10Kw출력증강에도 앞장섰습니다. 한강을 건너 남으로,

남으로 밀리면서 시상과 음률이 머리에 스쳐갔고 그것을

입으로 흥얼거리며 오선지에 옮긴 것이 한강이라는

불후의 명작이 되었습니다.



노래 한강과 최병호 그리고 심연옥 

 

 최병호! 그분이 필자의 방송국선배라는 것은

 알았지만 아주 가까이 계시는 그분이라는 것은 미처

몰랐습니다. 원로방송인들의 모임 방우회에서도 만나지만

그분이 그분이라는 것은 몰랐습니다. 방우회 선배님들도 

그분이 그 유명한 한강 노래를 써서 작곡한 주인공임을  

모르시는가. 봅니다. 평소에 자기 자랑을 하지

않는 특유한 성격 때문일 것입니다.

 

필자는 KBS사우회 일을 하면서

어린시절 대구방송국과 깊은 인연을 맺었던

KBS사우회 서병주 회장으로부터 최병호 선배가

 6.25전쟁 중 대구방송국에서 한강이라는 시를 쓰고

곡을 부쳐 대구에서 노래를 불러 화재가 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최병호선배가 바로 곁에 계시는

그 분인  줄은 몰랐습니다.

 

3년 넘는 세월이 흐르고 나서

이용실선배로부터 한강을 작사, 작곡한

 최병호선배를 만난다는 얘기를 들었고. 박경환

선배로부터 그분이 방우회 회원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최병호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말씀 하시기를 꺼려하는 듯했으나 얘기가

나오니 친절히 얘기 해 주셨습니다.

 

 

 

 

피난길에 그때의 심정을 글로 옮기고

곡을 붙였어요. 그때 한참 이름을 날리던 가수이자

 레코드를 제작하던 분이 찾아와 그 곡을 노래로 부르고  레코드에

넣어 시판했으면 한다고 허락 해 달라고 해요. 그래서 첫 레코드가

나왔는데 그 가수가 부른 노래가 내 마음에 와 닿지를 않아요.

그러던 중 500W로 방송하던 대구방송국을 10Kw로 증설

하기로 해서 본인이 공사 건축책임을 맡았어요. 

 1952년 가을이었습니다.

 

이때 만난가수가 대구 문화극장에

기거하면서 공연활동을 하던 심연옥 이었어요.

그때 심연옥의 인기가 대단했고 심연옥의 음색이나

스타일이 그 곡과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그때부터

대구방송국과 협조해서 노래를 충분히 연습하고

대구 문화극장에서 공연을 가졌습니다.

 

놀라운 환호성이 울려 퍼졌고 이로부터

 노래 한강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20대 중반의 일이었고 6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자세한 것은 다음에 만나서 얘기 하지요.  여기까지가

 전화로 최병호 선배에게 들은 얘기입니다.

 

최병호님은 2011년 1월 1일 발행

문공회보 통권 50호 특집호에서 내가 작사

작곡한 "한강"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다음 글을

올리셨습니다.  전문을 옮깁니다.

 

지난날 서을 근교에 있는 뚝섬 유원지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넓은 백사장에 수양버들,

버드나무등 많은 수목으로 운치가 있었습니다.

그곳은 여름부터 가을까지 수영인파와 노릿배

타기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간혹 땟목이 유유히 흘러가는 것을

볼때면 낭만적인 기분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초유의 비극이

시작되었고 1951년 1. 4후퇴 때는 아름다운 서울 정든

서울을 버리고 떠나야 했습니다.  한강 인도교가 끊겼기

때문에 결빙된 마포강을 건너는 피난행열이 장사진을

이루었습니다.  저는 다행히도 서울  방송국 소속

공무원으로서 한강교 폭파전에 정부에서

 마련한 마지막 열차를 타고 부산에

갈 수가 있었습니다.

 

당시 부산방송국은 지방 방송국 기능으로

천도후 중앙방송국 역할을 하게 되었고 저는 방송국

뒷 마당에 판자집을 마련하여 피난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런 저런 생각들이 끊이지 않았고 그 와중에

추억속의 아름다운 서울을 자주 떠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무렵 1952년 제가 직접 작사 작곡한

"한강" 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서울에서 피난온

방송국 전속 가수들에게 "한강"곡을 주어 방송 출연을

시켜 보았지만 가수들이 그 곡을 적절히 소화하지 못하여

고민 하였습니다. 그 무렵 저는 대구 문화극장에서 방송 실연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어느날 우연히 심연옥(당시 가협 가수

문화극장에 기거) 을 만나 방송 실연 공연에 출연시키자

(1953년) 예상했던 대로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반주는 공군 경음악단)그때부터 한강은

 심연옥이 부르게 되었습니다.

 

대중가요 한강은 발표된지 57년이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 해주고

애창 해 주셔서 저로서는 감사 할 따름입니다. "한강"은

요즈음에도 공중파로 늘 방송되며 노래방에서도 많이 애창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한강곡을 담은 CD, TAPE, DVD등이

많이 발매되고 있습니다. 대중가요 한강을 사랑 해 주시는

국민 여러분과 관계기관 담당자분들께 매우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난해 3월 23일부터

5월 23일가지 서울시 청계천 문화관

전시실에서 개최된 "서울을 노래하다. 서울

대중가요 기획전" 은 나뿐만 아니라 서울을

사랑하는 모든 국민들에게 감명을 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전시회를 개최 해 주신

관계자들에게 충심으로 사의를

표해 마지 않습니다.

 

  

관련 글 보기 영문자 클릭

 

 

심연옥 아내의 노래, 김백희 안해의 노래, K.B.C (한국방송문화협회)

http://blog.daum.net/jc21th/17781368

 

백년설(이창민) 육성으로 듣는 노래 나그네 설움(설음)에 얽힌 사연

http://blog.daum.net/jc21th/17782103

 

대지의 항구, 김영수 (남해림) 작사, 이재호작곡, 노래 백년설

http://blog.daum.net/jc21th/17781028

 

일제강점기 가수 백년설과 고향소식

http://blog.daum.net/jc21th/17780667

 

노래 한강과 최병호, 심연옥

http://blog.daum.net/jc21th/17780130

 

 

 

심연옥님이 kbs경음아단의 반주애 맞추어 열창하는 모습입니다.  백년설님과 부부가수였습니다.

 

 

 

심연옥 한강 대사.wma

 

 


- 첨부파일

심연옥 한강 대사.wma  
   





비 소리

들어도 들어도 그 소리

비 내리는 소리

희망없어도 주룩주룩 쏟아지는 소리

욕망도 갖추지 않은 비 소리

내가 슬픈이유를 아는 비 소리입니다



평생들어 싫증이나도

어쩔 수 없이 듣고 살던 소리

사는동안 듣기 싫어도

듣고 들었던 삶의 소리처럼..

마치

그대와 나처럼 운명의 짐 지듯

비 소리를 듣고 있네



간간히 들리는

그대음성 같지는 않지만

궂은비소리엔 사랑이 깃들어있네

나도 모르게 쏟아지는 소리

언젠가는...그쳐주겠지?

내 사랑 잊은지 오래처럼...





메라니/글






ㅎㅎㅎㅎ 마음을담아놓고 갑니다 하염없이 쏟아지는비소리는 인생과같은의미로 밤이새도록 쏟아지더니 한강수처럼 흐르고 떠났습니다
고맙습니다.
싸이월드에 옮기겠습니다.
저도 한강이란 노래의 내력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많았는데 이제야 선생님 덕분에 의문점이 좀 풀리는 것 같습니다. 작사.작곡자가 최병호씨로 되어 있어서 "아주까리 등불" 을 부르신 최병호선생님인줄 알고 열심히 찾아 봤는데 별다른 연관성을 찾을 수 없었는데 동명이인이셨다는 것을 이제야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그런데 제가 또 찾아 보니 1952년 발표된 후로 약2년후 쯤 대구에서 손로원씨가 개사하여 재 취입을 하셨다고 하여 여기 저기 찾아 봤는데 저 위에 게시해 주신 가사가 손로원씨가 개사한 가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최초의 2절은(1절은 똑 같음) "나루의 뱃사공, 흥겨운 그 옛노래는, 지금은 어디 갔소. 물새만 우는 구나.외로운 나그네는 어데로 갔나. 못잊을 한강수야 옛꿈 싣고 흐른다"라 인것 같고 이것이 최병호선생님이 작사하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지금 올려 주신 노래도 이 가사로 부르고 있습니다. 저도 여기 저기서 찾아 보았기 때문에 꼭 이것이 맞다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실 손로원씨는 명예만 빌려 주셨을뿐 이 노래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저작권협회에 그리 등록이 되어 있다고 최병호님께 얘기를 들었습니다.
전적으로 최병호님 작사입니다.
한글로 보면,가수 최병호님과,<한강(55/심연옥)>을 작사/작곡한 최병호님과 혼동이 되고 있으나,가수 崔丙浩,방송인 崔炳虎님과는 전혀 다른 분입니다.
운수남자님 고맙습니다.
1948년에 KBC레코드에서 처음 발매된 <漢江>은,崔炳虎作詞/作曲의 작품인데,沈蓮玉님이 불렀읍니다.1955년에 도미도레코에서 재발매된 이 노래는,孫鷺顯(본명;孫露源)作詞로 바뀌었는데,이 노래는,6.25 전쟁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고 생각됩니다.이 노래를 만드신 崔炳虎님은,2015년 1월 20일에 타계하셨으며,가수 崔丙浩님은 1994년 2월 21일에 돌아가셔서,2009년 9월 2일에 열린 방송의 날 행사에 참석하신 崔炳虎님과는 전혀 다른 분입니다.
손로원씨가 이 가사를 작사하거나 개산한것이 아니라 최병호님의 노래입니다.
한때 손로원님이 작사햇다는 예기가 있었고 공식적으로 그렇게 발표된절이 있었지만 최병호님의 노레로 판명이 났습니다.
손로원작사라고한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지만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하세요.선생님의 덕분에 한강의 작사가에 관한 의문이 많이 풀렸습니다. 그런데 왜 손로원씨가 작곡했다고 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확실히 말씀을 않해주시니 계속 의문이 남습니다.이 부분에 대해서 아시는 내용이 있으시면 역사적인 기록을 남기신다는 의미에서라도 알려 주시면 어떨까합니다.옛 가요를 보면 정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내용들이 많아 여러 설들이 난무한 것들이 많습니다. 이런것들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밝혀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드리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자료, 고맙습니다.
스크랩해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히 잘 듣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사연깊은 노래들...
귀중하고 소중한 자료,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자주 오셔요
그런데 왜 메일로 스크래을 하시나요.
블로그나 카페 스크랩이 더 좋으실 텐데요.
훌륭하십니다. 1(~)64번 까지 단슴에 시간 가는줄 모르고 보고 들었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 드립니다. 건강 하시고 행복 하십시오. (떡실신) (굽신)
즐거운 시간 되셔요.
인터넷검색중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좋은노래잘 감상하고갑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옛 노래듣고 자료들을 보니 마치 내가 겪은 옛 추억처럼
향수가 넘치고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지금도 라디오로 들었던 목소리들 생생히 기억납니다.
지금은 다시 들어 볼수 없는 소리들이지요 이 자료를들 통해서
대리만족 할 수밖에 없겠지요. 감사히 잘 보고 듣고 옮겨갔습니다.
가급적이면 그때의 목소리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최병호 선배,,,문공부 시설과 건축담당 책임자였기에 그 옛날 자주 대했던 산베,,, 본 작사 작곡자라는 사실 최근의 일이지만 그옛날 개적으로 느낀 성격 ?
이런 시상? 소양을 갖일수 있는 선배 였다고 생각해 봄니다 그렇니까 1950년대 후반?,,, 단둘이 다방에가서 시상에 젖어 본 경험 있어요
오래전에 시상을 알으셨군요.
그런데 그때 이 노래 작사 작곡하셨다는 얘기는 못 들으셨나요.
아무래도 요즘 건강이 옛날깥지 않으신가 봅니다.
먼길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최병호 선배,,,문공부 시설과 건축담당 책임자였기에 그 옛날 자주 대했던 산베,,, 본 작사 작곡자라는 사실 최근의 일이지만 그옛날 개적으로 느낀 성격 ?
이런 시상? 소양을 갖일수 있는 선배 였다고 생각해 봄니다 그렇니까 1950년대 후반?,,, 단둘이 다방에가서 시상에 젖어 본 경험 있어요
벽산 형님께서도
옛날부터 잘 아셨군요.
최병호선배님이 건강이 안 좋으시데요.
건강 하셔야 할 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