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

이장춘 2009. 8. 17. 05:56

 

 

 

 

 

 
 
 방송 외길인생 이인관선생님(1)
 
 
이 인관선생님은 1937년에 방송계에
발을 들여놓으신 후 KBS의 기술 이사직을
마치실 때까지 잠시  체신부에  다녀오신 기간을
제외 하고는 방송기술에 헌신 하신분입니다.
2007년 2월 23일 세상을 뜨실때까지  여러
활동을 하신 방송 외길인생 선생님은
 오직 방송만을 위해서 사셨습니다. 
 

 

 

 

 
님은 1937년 조선방송협회
방송기술계에 입문 하신이래.  해방 전에는
이리방송국,  평양방송국, 청진방송국등을 두루 돌아

다니셨습니다. 그 무렵 방송망 확장계획에 따라 지방의

이런 방송국들이 건설. 개국되던 때라 새로 시설하는데도 힘을

기울이셨고 초기 방송의 기초를 닦는데도 힘을 기울이셨습니다. 

해방전에 계시던 곳의 추억이 잊혀지시지않는다는 얘기를 자주 하셨고

 북한에 있던 방송국을들릴 수 없었지만 이리방송국을 기회될 때마다 들리셨

답니다. 이리방송국을 전주로 옮기고 송신소로 남아 있을때는 물론  송신소마져

옮기고 건물만 남아 있을 때도 이곳을 지나시는 길이면 그 건물을 꼭 들려 옛날을

되돌보셨습니다.그 맛좋던 백도 얘기며, 잘 갖추어진 방송국장실 얘기, 인심좋았던

주변람들의  얘기를 곁들이면서.......  해방이 되고 일본 사람들이 물러가면서

대출력 연희송신소의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연희송신소는 당시 일본의

대륙침략 야심을 품고 일본 도꾜에 있는 JOAK와 함께 동양 제일의

출력 50Kw송시기를  설치해서 방송 했지만  일본인들이 가면서  

이것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해 놓았기 때문에  이의 복구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셨습니다.1945년 12월 25일

부터 송신기는 복구 되었습니다.

 
 6.25가 일어나던때는 체신부에 계셨고
 서울함락시 피난길에 오르지 못 하셨던 님은
 그 기간중에도 연희송신소 시설을 돌보셨다고 하셨습니다.
1.4후퇴로 부산에 가셨지만 부산, 대구,마산, 부산을 제외한
전국의 방송이 잿더미가 되었는지라전세가 호전 되면서 기술진을

진두지휘 하시어 전국의 파괴된방송 시설 복구에 불철주야 힘을 기울

이셨습니다.   폐허된 잿더미 위에 새로히 방송시설을 세운다는 것이

더군다나 장비를 비롯한 제반 여건이 여의치 못한 상황속에서

무엇보다도 빠른 복구가 요구 되었던 방송시설이기에

고충 또한 더 크셨을 것입니다.
 
그 복구가 어느정도 끝날 무렵 1953년
공보처 직제가 개편되어  방송관리국이 발족되고
기감자리가 새로 마련되면서 이때부터 오랫동안 기감 자리에

계셨습니다. (한덕봉 기감 이후  6.25.를 겪으면서기감자리는 없었습니다)

  1956년 노창성 방송관리국장이 세상을 뜨시면서 방송관리국장 자리가 공석이

되었을 때그 자리를 제의 받으셨지만 기술인으로 남으시겠다는 생각으로

사양 하셨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 자리를 맡으셨으면 60년대

 초에그만 두셨어야 되었지 않을까. 합니다)

 

 

 

 

 
기감 자리가 한 자리 밖에 없었으니
부처를 옮기시기 전에는 다른 자리로 옮길
자리도없었던 터라 여기에 오랫동안 계셨습니다.
 방송 기술 정책을 비롯한 모든 방송 기술 지휘를 하신
샘이고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대출력의 남양,  소래,  김제,
당진송신소 등을  비롯해서  국내는 물론   전세게를 향한 라디오

전파망을 구성해서 전파 약소국에서 전파 강국으로 발돋움 한것이 님의

 방송기술 총수시절에 이루워졌습니다,  남산방송촌, 여의도 방송종합청사,

 남산 종합방송 타워가 다 그시절에 건설되었고  TV방송을 실현, 전국에 걸친

TV방송의 중계망의 건설 지역 TV방송의 실시등이 모두 님이 방송기술 책임자로

 있던 시절에 이루워졌습니다.  1960년에는 제3회 방송문화상 기술상을, 같은 해에  

홍조 소성훈장을  받으셨습니다.1971년에는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하셨습니다. 

방송문화상은 당시 우수한 방송인을  길러내기 위해 1958년부터 1968년까지

11회를  이어 오다가  한국방송 대상이 제정 되면서 폐지 되었습니다.

 

 


 

 
 
이인관 선생님 약력
 

 

 

1914년 5월    4일 평남 강서 출생
1937년 3월     동경전기학교 고등공업과 졸업

1937년 4월     조선방송협회 기술부 입사

1945년 9월     서울방송국 연희송신소장

1948년 8월     체신부 무선기술과장

1950년           공보처 방송국 송신과장

1953년 8월     공보처 방송관리국 기술담당관(기감-부이사관)

1960년 1월     홍조 소성훈장
1960년 8월     제3회 방송문화상 수상
1968년 7월     중앙방송국 기술부장 (부이사관)
1973년 3월     한국방송공사 이사 (기술총국장 겸임)
1979년 2월     방송계에서 물러남
1991년 2월     KBS 사우회 회장 (4년역임)

2007년 2월     23일 세벽 타계

 

 
  

 

 
 
 필자와의 인연
 

 

제가 1964년 어느 날 공보부
관리과에 볼 일이있어서  들린 적이 있습니다. 
중앙청 서편에 가건물처럼 세워진 건물의 2층 왼쪽
 복도를 따라 거니노라면 오른쪽이   관리과 인데
 왼쪽 방에서 근엄한 분이 나오시기에 물었더니
저분이 기감님이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방송기술에서는 제일 높으신 분이고
국가 공무원  기술직 부이사관 급이라고 얘기
 해주더군요.님의 만남은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인사나
얘기는 없었고 그 후 1968년7월 25일 중앙방속국 통합되고
 기술부가 새로 생기면서한기선님이 기감으로 가시고
 이인관님이 기술 부장이되시면서  종종
 뵈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후 다시 한기선님과 이인관님은
자리를 바꾸셨고공사가 되면서 방송관리국에
기감자리는 없어지고 이인관님이 KBS의기술이사 가 되셔서
 기술 총국장을 맡으셨습니다. 이인관님과 한기선님은 거의
동시대에 방송기술에입문하셔서  한덕봉님 이후
50년대부터 70년대에걸쳐 방송기술을 이끌어
오신분이라고 할 있습니다.
 
  

1967년 춘천방송국 10Kw 출력증강 준공식
위사진의 왼쪽분은 당시 사농송신소장 윤성호님이고
이인관님 곁에 계시는 분은 홍종철 장관 입니다.
 

 

1958년 기술인들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1 한기선, 2 이종훈, 3 이인관, 4 이현철, 5 박명희,

6 임시현, 7 노익중, 8 오신팔, 9 정유언, 10 전창식, 11 김성열,

12 윤은상 13 박경환 14 박능상, 15 정경순, 16 김성배, 17 박준병,

18 윤각노, 19 이성근 20 이중집님입니다.

 

 

 1937년 방송국에 들어와

1953년 국가공무원 부이사관, 기감이 되어
 1979년 한국방송공사 이사직을 떠날때까지 길고
긴세월 명실공히 방송기술의 총수로 방송과 함께 살아온
 외길인생이었다. 일제강점기 시설확장, 6.25 전란후의 시설복구, 
60년대, 70년대의 방송망확장, 방송 기계 장비의 현대화, 
광석라디오 시대로부터 디지털시대에 진입하기까지
 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곳은 없었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산유화 -  조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