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 남산시절

이장춘 2010. 2. 5. 00:45

 

 

 

재치문답 그때 그 목소리와 그 얘기/ 시회 장기범 아나운서 

 

 

1960년대 70년대를 살아온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 유무러스하고 재치로

사람들을 웃기면서 줄겁게 해 주던 재치문답을

기억하십니다. 그때의 목소리에 그 얘기를 되살려 봅니다. 

지금  들려오는 목소리는  1962년에 있은  재치문답

입니다. 플레이어가 설치된 PC에서는

지동으로 들립니다.

 

 

 

  

퀴즈프로그램은 토크 프로그램으로

해방후 1947년 스무고개로부터 시작되어

구성도  다양하고 내 용도  재미가  있으면서도

유익한 프로그램이어서 오랜기간   인기를  누려오던  

프로그램입니다. 1961년 2월 프로그램 개편으로 등장한

재치문답은 그때 인기 절정이던 장기범  아나운서가 

   미국 VOA에서  돌아와 이 프로그램을  맡으면서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켰습니다.

 

1주일에 한번식 일요일 저녁 8시대

또는 7시대의 골든아워에 사람들을 라디오

앞에  모으던 이 프로그램이 1970년대까지 이어

오면서 출연자나  담당 PD,담당 아나운서도 많이 바뀌

었지만 인기는 계속되었습니다. 박종민 PD로 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김찬수, 이상익, 박인채. 이근배, 김수웅등

배트랑급 프로듀서가  심혈을 기울였고,  사회자도 

장기범 아나운서를 비롯해서  전영우, 최세훈, 

최두헌, 이공순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시대의 재치와 유모어를

자랑하던 분들이 출연 해 주셨습니다. 

이분들은 대한민국 어디를 가던지 예우받는 

인기인 이었습니다.  문제안, 안희섭, 엄익채,  한국남,

윤길숙, 이경희, 강소천, 이연숙, 오혜령,  정연희, 정희경,

정광모, 신동헌, 민병근,백동현, 윤영춘, 오현주, 왕수련, 박근자

 등, 이름있는 분들이 돌아가면서 출연해 주셔서 아직도 그 음성이

 들려 오는듯한 분들입니다. 문제안님은 1947년 스무고개를

창안한  프로듀서이고  출연자로 1970년대 후반까지

재치문답에서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 내용도 날이 가면서 바뀌어서

처음에는 우문현답, 천문만답, 재치문답

공통점이나 상이점찾기, 정의 내리기, 형용사풀이,

삼원문답, 전화문답, 시조놀이등으로 구성하다가 단문짓기,

 전화놀이, 3요소 찾기 유모어 놀이, 노래 대화등 여러 아이디어가

 적용되었습니다. 1964년부터 시행된 풍월놀이, 비밀의 주인공 잦기등이

 추가 되었으며  70년대 들어서는 촌극, 시조짓기, 화제의 인물 찾아

 맞히기가수의 노래등으로 였어졌습니다. 처음 재치박사라고

불리던 패널은 1960대 후반에 이르러 단골

손님이라고 불렸습니다. 

 

 

좌측에서부터 고흥복,  장기범 방송과장

 그리고 안희섭씨(당시 한국일보 만화만평주간)  

 

 

 

 

 

 

바람부는 세상 블로그에 재치문답에 관한

추억의 글이 있어 옮겼습니다.

 

http://blog.daum.net/rivermtn/1011353

 

 

대중영상매체가 널리 보급되면서 세인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져 간 라디오… 이젠 세월에 떠밀려 주변에서 쉽게

 구경하기조차 힘든 무용지물에 가까운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한 때는 우리의 어려운 생활에 마음의 휴식과 여유를 제공해 주었던 정말

애지중지하던 생활필수품이었다. 덩치가 작은 녀석들은 자신보다 더 무거운

 건전지를 등에 업고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다니기도 했고, 큰 녀석들은 방 한쪽에서

먼지를 폭삭 덮어쓰며 늘 제 자리를 지키곤 했지만, 온 국민에게 날마다 풍성한 소식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콸콸 뿜어내던 보물 같은 존재였다. 동족상잔의 참화와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던 60년대 시절엔 저녁시간이 되면 가가호호 식구들이 라디오 앞에 모여

앉아 전파를 타고 들려오는 라디오프로에 함께 귀를 기울이는 일이 많았다. 당시

범국민적인 인기를 얻었던 프로들이 참으로 많았지만, 긴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내 기억에 온전히 남아있는 대중의 인기프로는 

아마도 최모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재치문답’과 이 광재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가족프로인 ‘백만인의

퀴즈’를 빼 놓을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재치박사라 불려 지던 당시

내노라 하던 명사들이 함께 출연하여 재치있는

재담과 풍성하고 여유가 넘치는 해학을 선사하던 ‘재치문답'은

궁핍하여 먹고 사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던 국민들이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도록 웃음을 선사해주던 최고의 인기프로였기에 이 프로를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은 드물 것이라 생각된다. 경쾌한 클라리넷폴카에 이어 “전국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재치문답 시간이 돌아왔읍니다” 라는 사회자의 오프닝 멘트와

함께 시작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바깥 날씨가 제법 추워지면, 식구들은 너나

 할 것없이 아랫목에 둘러앉아 당시 인기절정을 구가하던 한국남, 엄익채,

안의섭, 양주동, 이 서구, 이 경희, 정희경등의 여러 재치박사들이

늘어놓던 재치만점의 재담에 마음껏 웃던 일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느껴진다.

 

약간의 긴장감과 더불어 재치박사들의

뛰어난 순발력과 구수한 입담에 넋을 잃고 몰입

하다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를 지경이었다.

어른들의 차원 높은 재담을 알아듣고 이해하기에는 아직도

어렸던 동생은 재치박사님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들보다 가끔씩

재치문답을 함께 듣던 형들과 누나들의 까르륵 웃는 소리에

 덩달아 일부러 소리내어 웃곤 하던 기억도 떠올라

슬그머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즉흥 삼행시, 즉석 표어짓기,

동요 바꿔 부르기, 단어 정의 내리기,

 맞춤식 통화 등등 다양한 코너들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지만, 이 라디오 방송프로가 당시 만인에게 오랫동안

인기를 누리며 장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이 프로의 백미라

할 수 있는“A를 B라고 푼다” 라는 식의 문답 코너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A와 B는 현실적인 논리로는 서로간에 아무런 상관관계를 찾아낼 수 없는

 별도의 객체들 임에도 불구, 어찌된 셈인지 재치박사들의 재치있는 말솜씨만

거치게 되면 요술방망이처럼 둔갑하여 A와 B는 아주 그럴 듯하게 매칭되곤

 했다. A가 무엇인지 시청자들에게만 살짝 알려주고선, 재치박사들에게

엉뚱한 B를 말하게끔 한 다음, 왜 A를 B라고 푼다고 했는지

대답을 듣는 식이었다. 순간적인 재치를 발휘하여 A를

자신이 말한 B와 그럴싸하게 연관지어 아슬아슬

 위기를 넘기거나 폭소를 자아내는 코너가

국민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었다.

 

 이따금, 논리가 궁할 때는 억지논리로

어물쩍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재치박사들이

기발하고 재치있는 즉석 명답을 찾아낼 적에는 방송국을

찾은 관람객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가령,

“(라디오)는 수도꼭지라 푼다”고 말한 다음, 대답은 “왜냐하면,

틀면 나오니까…” 하는 식의 재치있고 유머가 넘치는 코너였다. 왜

 저렇게 풀었을까 하고 미리 예상을 해 보는 일도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 가끔,일반인들의 예상을 완전히 비켜가는 기상천외의

기발한 답들을 찾아낼 때면 일제히 폭소를

터뜨리면서 무릎을 치기도 했다.

 

이제 라디오도 재치문답도 그 재미있었던

 라디오 프로들도 모두 세월의 뒤안 길로 밀려나

 기억의 강 저편을 넘나드는 아련한 추억이 되고 말았지만,

 그 당시로서는 세인들의 곁을 지키며 세상이 메말라지지 않도록

힘을 실어 주었기에 그 궁핍하고 강퍅했던 삶의 건널목들을 어렵사리

건널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비록 생활은 어려웠지만, 그래도 밝고

넉넉한 웃음과 마음의 여유가 남아 있었던 그 시절이었기에

 이 나마도 아름답게 추억하는 것은 아닐른지...

 

세상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당시보다 모든 것이 윤택해지고 편리해졌지만

 마음은 왜 오히려 전보다 궁색해지고 허전해지며

답답해 지는 것인지… 모자랐어도 모자란 줄 모르고,

불편했어도 불편한 줄 모르고 살면서 꿈을 키우고

 마음의 여유가 넉넉히 남아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어느 가을 날,

 

 

추억의 오솔길에서...

 

 

 

 

오늘의 사진은 그때 담당엔지니어

고흥복님이  제공 해 주셨고 녹음물은 당당PD

이상익님이  제공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1966년4월 진해군항제 현장 "재치문답” 공개방송에서

앞줄 좌측부터 한국남, 안의섭, 고흥복 (담당 엔지니어, 사진 제공)

장기범 방송과장 뒷줄왼쪽부터 진해유지주민과 진해기지사령관 그리고

그옆이 오혜령씨, 이연숙씨.......아래는  1967년6월 “재치문답”공개방송

(청주대학에서..... )으로 이때의 프로듀서에 김찬수님에 사회자는 최두헌

아나운서입니다.출연진과 마을 유지분들이 함께한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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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 아나운서 사회로 듣는 1962년의 재치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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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훈 아나운서 사회로 듣는 1962년의 재치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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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헌 아나운서 목소리로 듣는 1960년대 재치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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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치문답 그때 그 목소리와 그 얘기/ 시회 장기범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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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어린이 날 특집드라마 강소천, 윤석중, 한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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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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