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우회·독립운동

이장춘 2009. 9. 14. 03:35

 

 

 

  
 여기는 중국에 있는 중경방송국입니다.
 
 조선 임시정부 한국어 방송입니다.
 
 
 
 동포여러분 ! 전사 여러분 !
 
더욱 분발 하시어 항일 투쟁에 앞장서
 
독립 투쟁에 더욱 분발 합시다.
 
 
 중경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단파방송  
 

 

 
1937년 중일 전쟁으로 중국정부가
전선따라 임시수도를 옮기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여러곳을 거쳐   1940년 9월 중경에
도착했습니다. 임시정부는 이곳에서 중경
국제방송국을  통해 그해 11월부터
방송을   실시했습니다.
 
 광복군창설 직후인 1940년 11월
총사령부 참모 김학규 장군이 국내외 동포들을
대상으로 광복군 창설을 알리고 향후 당면한  일들에
대해  방송했으며,  세계정세와 전황, 임시정부
활동상과 정책 등을 알려 나갔습니다.
 
1943년 임시정부에 선전부를 두고
더 가 열찬 방송을 했으며 1944년 4월 2일부터
중국국민당 중앙선전부 대적선전위원회와 합작해서
정기적 방송활동을 펼쳤습니다.
 
 

 

 
 
한국어 방송은 매주 3일 (월. 수. 금)
김구 선생님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원들의
육성으로 정부의 존재와 전쟁 상황 등을  직접 알리고
항일의식을 고취시키며 투쟁 방향을  제시하는 활동을
벌였습니다. 국내에서 이 방송을 처음 들으신 분은
경성방송국 기술부에 근무하시던 성기석님으로
 1941년 이른 여름부터 이 방송을 들으셨고
뒤이어 방송국의 다른 직원들도
 방송을 들었습니다.
 
미국의 소리방송에서
우리말 방송을 실시하기 1년여 전부터
중경방송을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기석님이
방송을 들었을 때는  오후 네 시부터 30분간이었고
 조금 있다가 계절이 바뀌면서 6시 반으로 옮겼다고
하셨습니다.  중경은 우리나라와  한 시간의
시차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매주 목요일 1회를 방송했지만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6시 30분부터 방송을 했고
차츰방송 횟수가 늘어났습니다.  김구 주석을  비롯한
 독립투사들이   직접 출연해서   듣는  이로 하여금 피를
끓게 했고 아나운서로는 신기언님과 정명님이
번갈아 가면서 방송을 하셨습니다.
 

 

신기언님에 관한 1935년 2월 3일자 동아일보 기사 내용입니다.
 
 신기언아나운서는 중국에서 정치대학을
 졸업하고 임시정부에 들어가 김구주석을 도우면서
방송을 하셨고 해방된 뒤 입법의원을 지내셨습니다.
정명 아나운서는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영해서
 임시정부에 들어가 방송을 하셨고 해방 후
 미국으로 가셨습니다.
 

양우조님과 최선화 부부입니다.

 

 
항일 단파방송 연락운동에서
큰 역할을 하셨던 양제현님의 삼촌,
양우조님과  부인 최선화님도 방송을 했고
  양우조님은 중국과 미국을  드나들며
독립운동에 열을 올린 알아주는
독립 애국 지사였습니다.
 
 최선화님은  김규식 박사 부인  
김순애님이 이끌던   애국부인회 총무부장을
 지내면서 최소정이라는  이름으로 방송을 했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으셨습니다.
 
 
 
 

 

 
성기석님이 들으셨던 중경방송에서
 김규식 박사의 방송내용 한 토막입니다.
 
“여기는 중경 임시수도에 있는
 
중경방송국입니다.조선 임시정부 우리말
 
방송시간입니다. 각 전선에서용전분투하시는
 
 독립군 여러분 ! 그리고 고국의 동포여러분 ! 날로
 
결렬해지는 전쟁에 독립군은 전위부대로서  장개석
 
 주석께서는 우리 임시정부 김구 주석에게
 
치하하시고적극 지원 해 주실 것을
 
 약속 했습니다.
 
 
중경방송은  일본 침략군의  패전이
 가까웠음을 노골적으로 예고 주었으며
 우리조선이 머지않아 독립하게  되리라는
명확한 예고방송을  해 주었습니다.
 
 
“ 동포여러분 ! 전사 여러분 !
 
더욱 분발 하시어 항일 투쟁에 앞장서
 
독립 투쟁에 더욱 분발 합시다.”
 
 
중경 우리말 방송요원 신기언님의
 반복된 방송 맨트 가운데 그 말이 있었습니다.
이남용님이나 성기석님이 그 방송을 들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국내 독립 운동가들에게
 전달했다고 했습니다.
 
 
 

 
그때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하시던 분들도
그런 얘기가 독립운동에 큰 도움이 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시대에 근무하시던 방송인 가운데 “나는 그런 방송 못 들었다고
 말씀하신 분이 계십니다.  방송인이라고 그 방송 다 들으셨겠습니까?
방송이라는 것은 한사람이 들어도 그것이 전해지고 전해져 대단한
파괴력을 갖는 것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대 공산권 심리전
방송을 하면서 얻은 결과입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