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물

이장춘 2009. 10. 29. 01:12

 

 

 

 

 
 
우리나라 최초의 중앙방송국장 이혜구님 ( 1 )
 

선생님은 한일합방 한해 전 1909년

1월 10일 서울에서 태어나 올해 연세 101세

(2009년)로 예술원회원이시고 사단법인 방우회

회원이시기도 합니다.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근처

명문집안의 자녀로 태어나 경성고등보통학교

부속 보통학교를 다녔습니다.

 

 

중학교는 지금의 경기고등학교인

경성제일공립고등 보통학교를 다녔는데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바이올린개인교습을받았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관현악단에서 비올라 연주자로 활약했습니다.  1931년 법문학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그 이듬해인 1932년 경성방송국(JODK) 아나운서

공개 채용시험에합격해서 방송인으로서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이때는

일본어 중심의 제 1 방송만 할 때였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호응도가 낮아

청취자 수가 적었고 그러다보니 청취료를받아서 운영하던 방송국은

경영이 어려웠습니다.그 경영의 어려움을 타개하기위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들을 수있는 방송채널을 따로 만들어 제2방송을

하기로 하고 필요한 인원을 증원힐때 1차로1932년

 3월에 들어오셨습니다.

 

 

 


이어서 국문학계에서 이름있던
이하윤님이 들어오시고  우리말방송을 전담 할
제2방송과장으로 윤백남님이 오셨습니다.  최아지, 김문경
두 여자아나운서가들어온 것도 이 무렵이었습니다. 1933년
 4월 26일 연희 송신소가 문을 열면서 제2방송을 실시하고
이혜구님은  연예분야를, 이하윤님은

교양분야를 맡았습니다.


제2방송의 우리말 방송을

실시하자  청취자가 늘어나게 되고
 1935년부터는 지역방송국을 확장 해나가자
기구도 확대 되어서 1939년 제2방송부를  신설하기로
 했습니다.  제2방송부는 우리말방송 전담부서로 생각 했지만
순탄치 않아 제2방송 물망에 오르던,    심우섭 제2방송과장이
물러나고 새 직제에 따라 제2방송부 편성과장을 맡게된
이혜구님이 잠시 제2방송부장 대리를 하셨습니다.
 얼마 후 함흥 방송국장이셨던  노창성님이 
제2방송부장으로 오시면서 이혜구님은
편성과장을 계속 이어 가셨습니다.
 

때마침 1942년 말부터 세상을
떠들썩하게한 단파수신 독립운동으로 많은
방송인들이 투옥되고 물러나게되었으며 마침내
제2방송부가 없어져 방송부만 남게 되고 방송부안에
제1보도과와 제2보도과를 두게 되자 이혜구님은  
제2보도과장을 맡으십니다.

해방될때까지 직제나 명칭의
변화는 있었지만  이혜구님은 계속
방송의 중심을 이어오셨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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