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체육

이장춘 2009. 11. 28. 20:35

 

 

 

 

최초의 올림픽 출전과 중계방송  

 

태극기를 앞세우고 감격의 첫 올림픽에

출전 한 1948년 영국런던 제 14회 올림픽!

전(前) 대회 배르린에서의 마라톤재패의 꿈을 안고

배르린대회 마라톤 영웅 손기정선수를 단장으로 67명의

선수단이 런던 올림픽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이때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올릭픽

중계방송을 했습니다.

 


 

1936년 독일 배르린 제11회 올림픽에서

손기정, 남승룡 두 선수가 마라톤을 제패 한 이래
제 2차 세계대전으로12년만에 열린대회였고 그 동안에

우리는 해방을 맞아 대한민국 이름으로 태극기를

앞세운 최초의 올림픽 참가였습니다.

 

올림픽참가 여부를 결정하는

1947년 6월 19일의 IOC총회에 참여하려던

체육회 부회장  전경무님이  여행중 사망하는등

우여곡절끝에 1947년 6월 20일 KOREA 국명으로

가입명칭을 K. O. C로 참여하기로해서

정식승인받았습니다.

 

아직 정부도 수립되기전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선수단을 구성하고 여비 마련을 위해

 거국적인 모금 운동을 벌리는등  국민적인 성원으로

67명의 선수단을 파견해서  대형 태극그를  앞세우고

당당히 입장, 신생 한국의 탄생과 스포츠한국의

얼굴을 자랑했습니다.

 

이때의 성적은 세계적인 기록 보유자

서윤복선수의 마라톤 기록이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또 한사람의 마라톤 기대주  최윤칠이  계속 1위로

달리다가   종착점 1마일을 남겨놓고  뜻하지 않던 다리에 쥐가

일어나 좌절 되었지만 (뒷편에 방우회 정항구이사의 추억담이 있음)

우리나라는 동메달 2개,  4위 두명, 6위 1명의 전적을 올려

우리의 얼굴을 세게에 알렸습니다.

 



사상 첫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역도 미들급에 출전한 김성집선수는

360Kg을 들어 감경의 동매달을 따 냈습니다.

김선수는 런던 하늘 높이 태극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권투 프라이급에 출전한 한수안선수는

2차전에서 유럽 챔피언 프랑스 선수를 물리치고

준준 결승에서 네덜란드 선수를 K.O로 이탈리아

 멘디넬 선수와 격들했습니다. 

 

멘디넬 선수는 세차례나 파울을 번하는등 

시종 열세에 몰렸으나 판정은 오히려 그에게 돌아가

  관중들의 새찬 비난과 우리나라 임원들의

항의를 받았습니다.

 

 

 

 KBS는 민제호 아나운서가  
현장에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중계방송을 했습니다. 재정이 어렵던

시절이라 한사람의 아나운서를 파견하는데도 어려움을

 겪던때고 또 파건된 아나운서도 한사람이 여러일을

해야 했기에 미리 현장에 가서 준비를

해야 하던 때입니다. 

 

그때는 BBC협조하에 인도를 거쳐 단파로

하루에 30분 방송할 계획 이었지만 상태가 나쁠
때에는 방송을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국제전화를

 통해서 중계방송을 하던때라 회선은 체신부에서 구성했지만

방송국으로서는 불편이 많았고 방송상태도 지금으로서는

들을 수도 없을만큼 불량한 것이었지만 그때는

방송상태가 좋다, 나쁘다를 얘기 할때가

 아니었습니다. 

 

그것도 들을 수 있었던것이

큰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상전 벽해라더니 세상이 너무 낳이

 변했고 살기 좋아졌습니다.

 

 

 

방우회(한국방송인 동우회) 정항구이사님의 추억담

 

열 네살이던 나는 경복중학교

입학시험에 합격, 9월 입학을 앞두고 있을때였다. 

처음 들어보는 올림픽 방송인데다가 서윤복선수의 마라톤

우승의 기대가 고조 되어있었고 때마침 경복중학교  최윤칠 선수가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하고 있을때여서 관심이 많아 그때의

중계방송을 들었다. 현지에서는 낮 12시에 출발한다는

 마라톤이었지만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밤 9시부터

 시작되었다. 멀리 떨어진 시차 때문이었다. 

 

 방송 상태가 아주 좋질 않아서

방송을 듣기가 불편했지만 워낙 관심이

많았던지라 온 정신을 다 쏟아 그 중계방송을 들었다.  

그때는 서윤복선수가 미국 보스톤 마라톤에서 우승을 한 뒤라

모두 서선수에게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기대를 걸었지만

실제 경기에서는 서선수가 다소 처지기 시작했고

경복중학교  최윤칠선수가 앞서 나갔다.

 

최윤칠선수는 전 코스를 마지막까지 앞서면서

잘 달리고 있어서 우승이 눈앞에 보이던 때 갑자기 다리에

쥐가 일어나 결국 기권하고 말았다. 어린 마음에 한없이 애석했다.

최윤칠선수는그때 경복중학교 6학년 재학생으로 새상을 놀라게했다.

그때  중학생 신분으로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는  최윤칠선수와

이화 여자중학교  박봉식선수가  투원반 선수로 출전했다.

첫 동매달을 딴 김성집선수는 휘준중학교 선생님으로

휘문중학교에서는 큰 경사가 나 모두가

즐거워했던  모습이 생각난다.

 

몇달이 지나서 단성사에서 런던 올림픽 영화를

한다기에 단성사를 찾았다. 영화 제목, 세기의 제전이라는

 이름으로 상영된 그 영화는 처음본 올림픽장면에 처음본 칼라

영화여서(사상 차음으로 만든 칼라 기록영화였음) 지금도

그때의 영상이 머리속에 생생하다.

 

개막식과 패막식장면, 최윤칠선수의

앞서가던 장면, 서윤복선수의 힘들어 하던 장면과

베르린 올림픽의 영웅 손기정 선수단장이 서윤복선수를

뒤 따르며 응원하던 일등 모두가 생생하게 머리속을

 스쳐간다.  그때 본 영화를 글로 표현하기가 어렵지만

휘황찬란한 장면들을 칼라로 촬영한 그 영화에

온 정신을 빼았겼는데 그 때 그 영화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방우회 춘하추동방송
 
 
 

 

 

- 첨부파일

이광재 올림픽 배경.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