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방송

이장춘 2010. 2. 16. 13:28

 

 

 

 

  

실록 DBS 동아 방송 18년사 ( 2 ) 방송인물 편 

 

동아일보사가 정부로부터
 방송국설립 가 허가를 받은것은 1961년
1월 16일이었습니다.민주당정부가 들어서서
첫 방송국설립 가 허가로동아일보가 4.19때 독재에
 항거 했다는데 대한  보답이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있어 5.16이 일어나면서 다소 어려움이 있었고 또 가허가
 과정부터 우여곡절이 있어서 설립이 지연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동아방송 보다 늦게 가 허가를 받은 MBC가 앞서 나가기 사작
하면서 동아방송도 개국을 서둘렀습니다.  동아 방송국이 허가를 받을 때
동아일보 사장님은  최두선이고  김상만 전무가 주축이 되어 방송국설립에
임했습니다. 초기에는 이언진 공무부장이 주축이 되어 방송시설이나
송신소건설에  힘을 기울였고  전문 방송기술인  신광우님과
 정관영, 이창섭님이 실무 일을 수행했습니다.
 
 초기 자문에 응하던 최창봉님이
동아방송사원으로 임명된것은  1963년 1월
 25일로 방송국 차장겸 방송부장을 맡은 최창봉님은
 HLKZ 개국과 MBC, KBS-TV를 개국하는데 공헌 하신분으로
 방송준비는이때부터 활기를 띠었습니다. 기술책임 신광우님은
 원래 KBS에  근무하셨던 분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TV방송 HLKZ창설
기술부장으로 계시다가 HLKZ가 어려워지면서 한국전자 공업주식회사를 
경영하시던중 동아방송국 시설 준비 과정부터 힘을 기울이셨습니다.  
기술부 편제가 마련되고 기술부 총책임자로 신광우, 기술과 책임자로
정관영, 송신소 책임자로 이창섭이 임뎡된것은 1962년 11월
이고 이때부터 기술과 이정규, 이인재, 박장규, 심완구,
 송신소에   이명득,  전하도,  강성주 등이
 밤낮없이 공사를 추진했습니다.
 
최창봉부장이 임명되면서 본격화된
방송준비는 방송인원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었
습니다. 보도는 동아일보와 함께 했기에 동아일보
 자체에서 충당할 수가 있었지만 다른 방송 간부는 주로
KBS등 다른 방송사에 있던분들로 선정되었습니다.  편성
과장 이윤하님이나 음악과장 조갑준(조백봉)님,아나운서실장
전영우님, 제작과장 조동화님이 선발된것은 2월 11일
이고 뉴스실장으로 문화부 차장이던 고재언님이
임명된것은  3월 1일 이었습니다.
 
 
 
최창봉님은 이때의 인선과정을
자서전 "방송과 나"에서 자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중 한부문을 옮깁니다.
 
방송은 어떤 면에서 일종의 트릭과 같은
 테크니컬한 면이 있어 이 트릭을 아는 전문방송인이
 필요한것은 사실이지만 기술보다도 민족관이라든가 언론관을
형성하는 넓은 시야의 지성과 인격에 큰 비중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방송에서는 최소한의 스텝만을 고른다는 전제하에
 신문, 잡지 그밖에 문화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선의 폭을 넓혔습니다.
 
최창봉님은 전적으로 최창봉님의
책임하에  방송인을 선발해서 결재를 맡아
시행한것으로 다음에 안 일이지만 사장실에는
400여통의 이력서가 들어와 있었지만 인원이
선발될때 까지는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때 제작진의 조직자였던
최창봉님은 "동아 방송인의 적성" 이라는
말과    "최창봉 사단의 새로운 등장"
이라는 평판을 낳기도 했습니다.
 
동아방송의 초창기 방송진을 보면
 
방송국장 김상기

 
 
 
 
국 차장 최창봉,  기술 담당(촉탁) 신광우
 
 
 
방송부 부장 최창봉(국 차장 겸임)
 
편성과장 이윤하
 
 윤병일, 김영효, 정준기,이병호
 , 홍의연,방용규, 박재권,  8분,
 
제작과장 조동화 
 
조부성, , 임영웅, 허승진, 심재훈,
변현규  김종삼, 노승병, 김아(雅). 김은숙,
준사원,  안평선, 사상완, 
 
음악과장 조갑준 
 
임석규, 이상만, 김영준, 윤남경, 최동욱,
강춘희, 윤남경 준사원 민동옥
 
뉴스실장 고재언 
 
박정하(차장), 이정석, 배종우,
이석열, 정영복, 홍선주. 노상국, 서병현,
 노창용, 박미정, 윤명중, 서행식견습 이승, 최종철,
윤기병, 노승주, 박인섭, 김일수, 박창래, 김지자

 
 
 
기술책임 신광우
 
기술과장  정관영
 
이정규(차장), 최종호, 장길태, 이인재,
정영철, 박장규, 전하도, 심완구
 
개봉송신소장 이창섭 
 
이명득, 박현순, 강성주  견습 : 이매근, 김영소
 
 

 

 

 

아나운서는  전문성에 비추어
기존방송국의 경력사원 중  KBS아나운서들을
  대거 영입했습니다. 개국 때 부터 마지막까지 아나운서
책임을 맡았던  전영우님의 글을 인용하겠습니다.  
 
 
1963년 연초 KBS에서
9명의 아나운서가 대거 DBS로 옮겨오자
중앙일간지 H가 아나운서 기근제하의 기사를 실었다.
당시 방송인의 숫자가 얼마 안되는 형편에서 9명의 이동사실은
 기사감이 된것이다.  전영우, 이규영, 한경희, 김주환,  김인권,
성선경, 최귀영, 홍기욱, 김남호, 등이다.  동년 3월 부산
MBC에서 윤미자가 합류하게 된다.
 
10명 기존 아나운서에 제1기 신인을
모집했다.  우제근, 원창호, 천재영, 김동건, 이화영,
한순옥, 최충자, 신선자 등 8명이다. 개국초 모두 18명의
 아나운서로 현업에 들어가 방송에 임했다.  그리고
이후 67명의 아나운서가 입사해 각기 그들
나름대로 동아방송에 기여했다.
 
개국때부터 1980년 11월 30일까지
줄곧 동아 마이크를 지킨사람은 전영우,

이규영, 김주환, 김인권, 우제근, 원창호, 천재영, 

이화영,  최송자, 신선자 등 6명이다.

 

전영우님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전영우님은 그 시대에 방송의 꽃인
 아나운서로서또 그 책임자로서 아나운서실장,
아나운서부장, 아나운서담당 부국장등을 지내시면서
방송국의 대표 뉴스가 되었던 낮 12시 뉴스나 아침
출퇴근 전후시간대에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알려주는
뉴스전망대에서 그의 부드럽고 차분한 음성에 
 호소력이 곁들인 방송은 많은사람들의
마음을 끌었습니다.

 

 
 
3월 9일에는 제1기 성우 수습생
전형을 실시해서 응모자 1825명가운데
45명이 선발되었습니다.
 
 
 
1963년 동아방송의 성우를
처음으로 선발하셨던 최창봉님선생님이
그로부터 47년이 지나 2010년 1월 26일 자서전을
 출판 하는 자리에서 그때의 예비성우 장미자. 김수희가
원로성우가 되어 최창봉 선생님께 꽃다발을 증정하는
 장면입니다. 꽃 다발을 모두 사양했지만 이 두분의
 꽃 다발만 받았습니다.  장미자, 김수희님을 비롯,
 사미자, 전원주, 박정자, 박웅님등이
지금도 활동 하십니다.
 
 
 
 3월 12일에는 수습 아나운서 312명이
응모해서 8명을  뽑았으며 24일에는 수습기자
응모자 42명 가운데 8명을 선발했습니다.
 

 

   DBS  목소리의 주인공들의 모습 
 
뒷줄 왼쪽부터 민중기, 원예종, 우재근, 최귀영,
한순옥, 맹경원,최문정, 김유진, 앞줄 왼쪽부터 김주환,
김인권, 김규영, 윤미자.김남호, 전영우, 한경희, 최충자, 신선자,
이화영, 앉아있는분 유영옥, 천재영, 원창호님등의
모습이 보입니다. 
 

앞줄 왼쪽부터 박승열, 윤활식, 박재권, 이문양, 이윤하,
안평선, 허욱, 손유진님뒷줄 왼쪽부터 윤병일 한분건너 이광,
김학천, 홍기욱, 정창기, 김두곤, 장한성, 한분건너 배종우,
한분건너 조부성, 이병주님입니다.
 
 
동아방송국 옥상에서 불타기전의
시민회관(세종문화회관)을 배경으로했습니다.
왼쪽부터 노승병, 박재권,  최창봉, 이남경, 이윤하,
정준기님,   동아방송 초창기 사진입니다.
촬영한지 40년이 훨씬 지났네요
 
 
 
 
 
 4월 15일에는 음악과 소속으로
노명석을 지휘자로 한 23명의 전속안단과
홍연택을 지휘자로 한 14명의 전속 합창단이 
구성되었습니다.  4월 20일에는 제작과 소속으로
40명의 전속 어린이 노래회가 구성되었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 방송.
 
 
 

 

 

사가 63.4.25.mp3

 

 

-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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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워요. 자주놀러올께요.
한순옥 아나운서 조카입니다.

개국때부터 1980년 11월 30일까지
줄곧 동아 마이크를 지킨사람은 전영우, 이규영,
김주환, 김인권, 우제근, 원창호, 천재영, 김동건,
이화영, 한순옥, 최송자, 신선자 등 8명이다.

라고 하셨는데, 고모님은 외교관인 고모부를 따라서 일본에서 1970년대 중반부터 말까지 계셨습니다.
그후 KBS FM에 서 아침프로를 맡으셨지요.
전영우님의 말을 인용한 것인데
김동건, 한순옥 아나운서의 경우는 착오가 있는듯 해서
수정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