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이장춘 2010. 3. 7. 06:19

 

 

 
최초 민영방송의 시도 1924년 조선일보 시험방송

 


 

1924년 총독부에서 우리나라에

 

방송국을 설립하려고 추진 할 때는 방송국을

 

어떤 형태로 새울 것인가에 대해서 결정되지 않아서

 

신문사를 비롯한 뜻있는 분들이 방송국을 세우려는 생각을

가지고 방송국 설립을 추진했습니다. 이 가운데서도 조선일보사는

 

총독부 시험방송이 있던 그달 12월 17일과 18일, 19일 3일동안

 대대적인 시험방송을 실시함으로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그 뒤에도 각 지역에서  시험방송을 실시해서

방송에 관한 관심을 고취 시켰습니다.

 

 

 

 

경성부 水標町 지금의 수표동에

자리 잡고 있던 조선일보 사장실에 홑이불로

방음장치를 하고 마이크를 설치해서 방송실을

꾸미고 그곳에서 3일간에 걸쳐 하루에

세 번씩 시험방송을 했습니다.

 

 

관철동에 있는 우미관

( 관철동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음) 과

소공동 경성공회당 (조선호텔 앞 전에 상공회의소가

있던 곳) 두 곳에 수신기를 설치하고 이곳에서

신문독자들이 방송을 듣도록 했습니다.

 

 

 

입장권은 신문 제호 밑에 넣어서

그 입장권을띠어 가지고 오도록 했고

이렇게 함으로서 시문독자를늘리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도록 했습니다.

 

1924년 12월 18일 경성공회당의 방송청취상황

 

방송진행은 그 해에 조선일보에

갓 들어온 우리나라 최초의 여기자 최은희님이

 맡았고 조선일보 사장 이상재님의 인사말로 시적되었습

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기자 최은희님은 여성으로서는

방송에 최초로 음성을 실었고 이상재 조선일보 사장님은

 민간인으로는 최초로 하신분이 되셨습니다.

 

 

 

이상재 사장님의 인사말에

이어 당대의 명창 이동백님의 판소리에

송만갑님의 해금, 양금 홍난파님의 바이어린 연주등의

순서로 진행되면서 경성공회당과 우미관에 초대된

수천의 독자들은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조선일보사의 공개 시험방송은

서울뿐만 아니라 수원, 인천, 개성 등 전국

주요도시에서 거의 다 실시되어 수많은 국민들이

신비스러운 라디오 방송에 매혹되었으며

수신기를갖고자 하는 욕구를 한층

더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러한 라디오 시험방송은

동아일보 등에서도 실시했고 방송국을

설치하겠다고 나선 단체나 개인이 모두 11곳에

이르렀지만 사단법인 비영리 단체로 한다는 총독부의

방송정책에 따라 결국 경성방송국으로 일원화되어

1927년 2월 16일을 기해서 경성방송국이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시험방송을 위해서 조선일보사에 설치된 나무로 된  안테나입니다,
 

 관철동에 있는 극장 우미관으로
이곳에서시험방송을 청취한 관중들은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소공동에 있는 경성공회당에서도
시험방송을 청취 했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왕수복 아리랑.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