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방송

이장춘 2010. 3. 9. 04:01

 

 

 

 
방송 할머니 복혜숙님의 시험방송 출연 체험기
 

복혜숙님은 우리나라 방송극에

 최초로 출연한 성우였습니다. 그때는 성우라는

말이나 드라마라는 말도 없이 무대극을 방송에 맞도록

꾸며 방송을 하면 그것이 바로 방송극이었습니다. 연극인이고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배우이기도 했던 복혜숙님은 시험방송

때부터 방송에 출연해서 일생을 방송과 함께 하셨습니다

 
 
 
지금 듣고 계시는 노래는
복혜숙님이 직접 부르신 "그대 그립다"
째즈곡입니다.   복혜숙님 노래와 동아방송국에서
전영우 아나운서님의  사회로 진행된 유쾌한 응접실,  맨트를
 믹사했읍니다. 이해 해 주셨으면 합니다.   복혜숙님은 방송극이나
영화에 출연하신 외에도 노래도 부르시고 레코드사도 경영하시고
 때로는 뜨게질이나  다방을 경영하면서 생활을 이어 가셨습니다.
복혜숙님에 관한 예기는 다른곳에 있어서  오늘은 시험방송을
하던때 복혜숙님이 체험한 얘기를 올립니다.  방송초기를
 이해 하시는데 도움이 되실 줄 압니다.
 

 

복혜숙님 관련글 보기 (아래 영문자 클릭)
 

 

 

방송할머니 복혜숙님!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배우, 성우

http://blog.daum.net/jc21th/17780442

 

복혜숙 회고록, 최초의 영화배우, 최초의 방송성우, 방송할머니

http://blog.daum.net/jc21th/17781195

방송 할머니 복혜숙님의 시험방송 출연 체험기

http://blog.daum.net/jc21th/17780391

 

강남달, 이정숙이 부른 1927년 낙화유수! 최초의 영화 주제곡

http://blog.daum.net/jc21th/17780586

 

 

 

 

 

 

시험방송 출연 체험기
 
 처음으로 시험방송을 할 당시
조선극우회의 변기종, 권일청 두 분이
시험방송에 같이 출현했었다. 그때는 방송극이라는
명칭도 없었고 총독부 체신국 뒤에 방을 하나 빌어서
방음장치로는 포장을 한 겹 쳤을 뿐인 스튜디오? 에서
 별로 효과도구라는 것도 없이 방송극을 방송했다.
 
 그땐 담당 아나운서가 연출도 겸했는데
최승일 씨로 기억한다. 각본은 무대극(단막) "새벽종"
이라는 것을 했다.  마이크를 넓은 방 한 가운데 세워놓고
 한쪽만을 사용했다.  때문에 한 사람이 말하면 다른 사람은
옆이나 뒤에서 고개를 내밀고 말을 해야만 했다.
 
원근도 모르고 그저 말이 제대로 나가지
않을까. 해서 똑바로 가운데를 보고 발성했다.
그런데 마이크를 가운데를 보기가 무서워서 다른곳을
 쳐다보면서 했더니 그게 오히려 거리감 효과가 났다.
내 배역은 12살 난 소녀 부랑아로 새벽종이 울리기도 전에
문전마다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뒤지는 역이고 새벽에
리어카를 끌고 벌이에 나가다가 모두 먹는
아저씨가  변기종씨의 배역이었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무대면을
일일이 설명했는데 모주 냄비가 어떻게 있고
 사발은 어디 놓이고 낮은 편 대문 옆에는 쓰레기통이
있다는 식의 설명을 해 놓고 방송을 시작 했다.
 
그런데 마이크 앞에 서 보니 커다란 거미가
메달린것 같아 꺼림칙해서 외면을 하고 했던 것이다.
또 자신이 없어서 떨리는 목소리가 나왔는데 방송을 끝내고 보니
그 떨리는 목소리가 감정표현에 아주 좋았다는 칭찬을 받았다.
그때 연예시간은 방송극이 일주일 또는 2주일에 한번 있었고
모두 노래, 가사, 민요, 아악, 국악, 창극조가 많았다.
 
방송극을 한다 했지만 별로 효과나
거리감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대사의 감정에만 힘썼다.
그 뒤 정동방송국이 되면서야 효과도구를 들여오고 여러 가지로
 발전 향상 된 것이 다.  낭독물로는 각본 낭독이라는
 것을 안종화씨가 했다.
 
그 다음에 최승일씨 제안으로 소설낭독을 했는데
입체적이었다. 혼자서 해설 어머니역, 아버지, 누이, 동생역을
목소리를 달리하녀 읽었다. 어떤 때는 일곱, 여덟 가지  목소리를
 내야 했던 적도 있었다, 그 때는 15분짜리가 없고  30분이었는데
그래도 어려운 줄도 모르고 기운차게 신 바람나게 하다가
삭제된 것까지 go 넘기고 경찰서에 붙들려가서
혼이 나고 시말서를 쓴 적도 있었다.
 
 
  
시험방송때 방송하는 모습의 사진입니다.
 

1981년 5월 13일자 동아일보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복혜숙 육성.mp3

- 첨부파일

복혜숙 육성.mp3  
   
복 혜숙 여사님을 여기서 뵙게 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1960년 초 같이 영화 촬영 다니던 추억이 떠오르게 합니다. 이 장춘 선배님 !
절박했던 우리시대의 삶이 소리없이 잊혀지고 사라지는 가운데 이 장춘 선배님의 열정으로 흘러간 추억을 더듬고 되새기는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어 주시는 그 열정에 찬사를 올림니다. 억조창생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밝혀줄 역사의 산 증인이 되어 거룩하고 아름답게 남아 천년 세월이 흘러 가더래도 모진 풍상이 휘몰아 치더라도 춘하추동 이 장춘 선배님의 방송이 메아리치며 우리들의 역사를 증언하며 변함없이 지키며 소리없이 말하여라 ! 해와 달과 목숨을 같이하며 변함없이 역사를 전하면서 역사를 지키어라 ! 미주 방송인협회 총무국장 양 방수(Paul Bang Soo Yang)근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