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물

이장춘 2011. 1. 3. 22:03

 

 

 

방송인 고봉 정하룡 선배님을 기리며

 

 

古峰(정 선배님 호)의 큰 얼굴!

선배님의 떠나신 자리가 너무 허전합니다.

늘 미소 짓는 위트 넘치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고

호탕한 웃음소리, 구수한 유머가 귀에 들려오는 듯합니다.

한학에 조예가 깊으셨던 선배님이 액자나 병풍에 쓰인

글을 만나 깊이 음미하면서 감상에 잠기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몹시도 불편하셨을 췌장암 말기에도

 병실을 찾으시는 분들에게 평소처럼 미소 지으며

편안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보시다시피 나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프지도 않고 편안해요. 순창 복분자 술 안 가져왔어요?”

이렇게 시작된 얘기는 2시간이 넘어 병실을 나올 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자주 병실을 찾으시던

친지 분에게 손 내밀며 “미안해” 라는 말 한마디,

그 한마디 속에 모든 함축적인 뜻을 남기시고

 이틀 후에 세상을 뜨셨습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선배님의 말씀만

믿고 있었는데 그렇게 빨리 가실 줄은 몰랐습니다.

1960년부터 공보부에서 출판, 영화 업무 등을 담당하시던

선배님이 1972년 KBS중앙방송국으로 옮겨 사회교육부장, 제주

방송국장, 광주방송국장, 심의실장을 역임하셨고 퇴직 후에는

 KBS사우회와 문공회에서 탐석활동의 주축이 되었던

 7석회 회원으로 오랜 기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탐석위원회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KBS 사우회 탐석 날이면 수집된 수석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품평회를 가졌습니다. 구수한

언변으로 해학과 유머, 위트가 넘쳐흐르는 수석의 철학(?)이

담긴 품평을 하시는 동안 주위를 가득 메운 회원들은

 웃으며 생각하며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술을 한잔 들이켜야 얘기가 더 재미있어진다고

 복분자 술 한 잔 따르라던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3월 어느 날 

선배님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살면서 내가 이장춘씨에게 혹시라도

실수한 적은 없는지?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은 없는지? 그런 것 있으면

 다 잊어버리고 아름다웠던 추억만 간직하고 살라고 전화했어요.”

 

선배님이 저에게 실수한 적 없고

마음 아프게 한 적도 없었건만 왜 그때 그 전화를

하셨는지요. 이제야 어렴풋이 짐작할 듯합니다. 비록 앞으로

선배님의 모습을 못 볼지라도 아름다웠던 추억을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1970년대 광주방송국장 시절부터 시작된

수석활동은 세상을 뜨시기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위는 1989년 문공회 소석전 기념 사진이고 아래는

님의 애석 몇점을 골랐습니다.

 

 

 

 

 

 

 

 

 

 

2005년 KBS사우회 서병주 회장님을 비롯해서 많은 회원님들이 강능방송국을 찾았을때의 정하룡님입니다,

 

 

 

가족과 함께 한 사진입니다. 님은 아들만 3형제를 두셨습니다.

 

 

방우회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모잘트의 리퀘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