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음악 백년

이장춘 2011. 2. 27. 14:40
 
 

 

 방송과 가요 50년, 반세기 (1) / 정동방송시절 6.25까지 
 

 

1927년 이땅에서 방송이 출현할 무렵 
새로운 형태의 가요가 탄생해서 윤심덕의 사의찬미
이정숙의 강남달,  이 애리수의 황성옛터 등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1933년 4월 26일 우리말 방송 채널이 새로 발족한 후
전쟁이 격화 되기전 1930년대 말까지 가요 전성시대를  이루어 방송에서

많은 노래들이 전파를 탔습니다. 여성들의 활동이 제약을 받던 때로부터

변화가 오던 시절이어서 여성들의 노래도 많이 불려지기 시작하던 때 였고

1928년부터 국내에 일본의 빅터레코드, 콜롬비아레코드를 비롯해서

여러 레코드 회사가 들어왔습니다. 1933년까지 폴리돌 레코드,

오케레코드, 태평레코드, 돔보레코드, 시에론레코드

등이 국내에서 활동했습니다.

 

그 레코드사들이 새로운 가수의 발굴,

신곡 제작과 판매에 열을 올리기시작하던 때에

경성방송국의 우리말 전담 채녈이 독립해서1933년  4월

26일부터 제2방송이 새로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일본어와 우리방송이

 한 채녈에서 방송되면서 어려움을 겪던 때와는 달리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면서

 방송시간도 대폭 늘어나고 방송시간의 제약에서도 벗어났습니다. 국악이 많이

 편성되었어도 창가라고 불리던 동요나 유행가, 가곡을 방송하는 횟수나

 시간이 늘었습니다. 이중방송이 실시되던 4월 29일의 특집방송표에서

보여준 국악, 유행가, 동요, 드라마등 다양성은 앞으로 있을

방송의 방향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시절에 방송과 인연을 맺었던 작곡가나 가수는 

박시춘, 손목인, 김용환, 전수린, 전기현, 이면상, 이재호 등과

강홍식, 전옥, 강석연, 채규엽, 등을 비롯해서 혜성같이 나타났던 가수

왕수복, 선우일선, 고복수, 이난영, 김용환, 남인수, 김해송, 최남용, 황금심,

이인권, 김복희, 이화자, 박향림, 김안라, 박재홍, 김연실, 백년설,

신 카나리아, 김영춘, 백난아, 장세정, 등이었습니다.

 

 

 

 

1934년 1월 8일 경성 관현악단의 반주로

왕수복의 노래가 전 일본을 대상으로 중계방송 되었고

은해  4월 26일 이중방송 개시 1주년을 맞아 조화악단의 반주로

강홍식, 전옥으 노래를 전일본에  중계방송 되었습니다.그해 11월에는

김추월이 신가요 마의태자를 전 일본에 중계하는 등 우리의 방송가요도

 창 민요와 함께 일본에까지 자주 중계하는 등활기를 더해갔습니다. 1935년

에는 JODK에서 모집한 신민요 당선가요를 이난영이 불러 전일본에 중계하는

 제2방송에서 가요방송에 쏟는 노력도 더 해 갔습니다.  (1977년판 한국

방송사 P81와 조선일보 참조)  그당시 방송출연은 출연자의 인기와

 직결되었고 레코드 판매에도 직접적인 영향이 있어서

레코드사나 가수들이 방송전파를 타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이던 때였습니다. 

 

 

 

청취료 한달에 2원(뒤에1원으로 됨).

앞, 뒤면 두곡의 노래가 들어있는 SP레코드

한 장에 1원 50전 쌀 한가마니에 7원정도 하던 시절

이었다니 그 값을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지만 좋은 노래가

 들어있는 레코드는 잘 팔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때는 이름 있던

 작곡가들이 방송국 가요 반주를 하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오랜 기간 가요계에서 활동하셨던 고 황문평선생님의

 글 한 토막을 인용합니다.

 

1933년 4월 29일 (토요일) “2중방송 축하 특별방송”

프로그램을 보면 저녁 8시 45분 유행가 방송이 있었다. 노래는

당시 연극무대의 인기배우 겸 30년대 레코딩 가수였던 강석연 (姜石燕)인데 

 노래  반주 악단  멤버가  아주 이색적이다. 바이올린 전수린, 크라리넷 김교성,

기타 백견, 드럼 문호월이었다. 강석연의 노래   “꼭각시 설움”  등  네 곡을 

 15분 동안 반주한 이 4인조 악단 멤버들은 당대의 가요 작곡가들이었던

 것이다.  황문평님의 글에서 인용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가요 전성기도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서 막을 내렸습니다.

방송은 전쟁을 위한 내용으로 바뀌고 가요는 위축되었으며
작곡가나 가수는 전쟁수행에 필요한 노래를 부르도록 강요당하면서
가수중에는 공개석상에서 노래부르는 것을 그만두신 분도 계시지만 
노래를 계속하신분들은 그 노래들이 일본의 전쟁목적 수행에
 이용되었다고 해서 뒷날 친일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황문평선생님 글을 인용합니다.
 

 1941년 말 일제의 태평양전쟁 소용돌이

속에서는 나가 가와 (中川榮三)라는 엉터리 음악

지휘자가 방송국에서 판을 치고 있었다. 인기가수 백년설이

아들의 혈서라는 노래 (반도출신 지원병이 전지에서 싸우다가

백골로 돌아와 호국신사에 뭍이겠다는 충성성의 각오를

노래하는 것) 노래를 방송하기 위해 매일 밤 방송국에

출근하기도 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황문평님의 글에서 인용했습니다.

 

 

 

 

 

1945년 해방되면서 귀국선,

역마차, 가거라 삼팔선, 고향만리 등

기쁨과 축제의 노래가 길거리마다 울려 퍼지는

가운데 방송국에는 가요를 방송하는 프로그램이 늘어나

일제강점기부터 활동하시던 작곡가들이나 가수들은 본격적인

활동을 했습니다. 방송국이라고는 KBS밖에 없던 시절에 KBS는

방송국에서 노래를 부를 전속가수를 선발해서송민도, 원방현,

이예성, 김백희, 옥두옥, 이계운, 금사향 등 뒷날

이름을 날리던 전속가수를 배출했습니다.

 

 

 

이시절, 노래 가사는  

방송국 문예계에 속해있던 방송작가

김영수,  유호,  이익, 영화감독 김화랑님

등이 많이 쓰셨습니다.

 

 

이 무렵 신라의 달밤등으로 이름을 크게

떨친 현인씨의 등장과  일제강점기부터 노래를 불러

 국민의  사랑을 받아오던 왕수복, 선우일선, 이난영, 남인수,

 채규엽, 고복수, 김해송, 황금심, 박향림, 박단마, 신카나리아,

장세정, 김연실, 반야월, (진방남), 백년설, 감정구, 

 박재홍님등 해방으로부터 6.25를 전후한

 이름있던 가수들이었습니다.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KBS 전속가수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http://blog.daum.net/jc21th/17781073

 

방송과 가요 50년, 반세기 (1) / 정동방송시절 6.25까지

http://blog.daum.net/jc21th/17780726

 

방송과 가요 50년, 반세기 (2) / 6.25에서 남산방송시절 까지  

http://blog.daum.net/jc21th/17780727

 

방송과 가요 50년, 반세기 (3) 종합편

 http://blog.daum.net/jc21th/17780728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