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이장춘 2011. 10. 27. 23:33

 

 

 

1950년대로부터 70년대까지를 살아오신

분들은 임택근, 전영우, 이광재, 박종세 아나운서의

그때 그 목소리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합니다. 네 분 다 KBS에서

 출발하신 분들이지만 1960년대 민영방송이 출현하면서 각 방송사의

 대표아나운서로 때로는 협력자로 또 때로는 불꽃 튀는 치열한 경쟁의

 대열에서 아나운서 전성시대를 이끌어 오신 분들입니다. 그 시대에

방송국의 아나운서는 연예인이 아니어도 연예인을 능가하는

 대중적인 인기가 있었고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DBS 동아방송의 얼굴, 전영우 아나운서

http://blog.daum.net/jc21th/17780362

 

이광재 아나운서,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http://blog.daum.net/jc21th/17780853

 

5. 16 새벽 첫 방송 박종세 아나운서

http://blog.daum.net/jc21th/17780461

 

 

임택근, 전영우, 이광재, 박종세, 1960년대 방송 4사 대표 아나운서

  

 

 아나운서를 하고 싶어도 천성적으로 타고난

목소리가 있어야 했기에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감사원장을 지내신 한승헌님이 이리방송국 아나운서 시험에 응시

했다가 최세훈 아나운서에게 밀려 부득이 법관으로 살아오신 것을 두고

 기회 되실 때마다 그 얘기를 하시는 것을 보아도 그 시절 아나운서

위상을 짐작함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 네 분의

 경우는 특출한 면면이 있었습니다.

 

이분들 가운데 세분은 대학교 재학 중,

학생을 아나운서로 등용하지 않는 방송국의 규칙에도

불구하고 대학생 신분으로 아나운서를 하신 분들입니다. 임시직이나

촉탁 등으로 규정을 피해 나갔습니다. 아나운서로 채용되고도 상당기간

 훈련을 쌓아야 뉴스나 공개방송, 스포츠 중계방송을 할 수 있었지만

이분들은 2년 안에 그 과정을 다 겪고 중요 프로그램에

 모두 참여했습니다.

 

 

 

 

부산 피난시절 1951년 방송국 아나운서가 된

임택근이 서울로 돌아와 1955년 동화백화점 (지금의 신세계

 백화점)에서 처음 공개방송 노래자랑을 시작했을 때 노래자랑 사회를

보기 시작하면서 공개방송에서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스포츠

중계방송 등 다방면에 걸쳐 두각을 나타내던 임택근 아나운서가

1956년 선배 장기범 아나운서와 함께 호주 멜본 올림픽을

중계방송 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이 무렵 1954년 대학생이던 전영우 아나운서가

 방송국에 들어와 부드럽고 정확한 음성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끌면서 뉴스 등 방송프로그램에 임하던 중 1961년 KBS

TV가 발족하면서 TV방송에 임했고 선배 황우겸 아나운서 뒤를 이어

아나운서실을 포함한 제작책임을 맡았습니다. 전영우 아나운서는

 1963년 DBS 동아방송국이 설립되면서 동아방송의

 아나운서실장이 되었습니다.

 

 

 

 

이광재 아나운서와 박종세 아나운서가

방송국에 들어온 것은 1956년이었습니다. 입사

 2년이 된 새내기 이광재 아나운서는 이례적으로 스포츠

중계방송 석에 앉았고 그로부터 야구를 제외한 중요

스포츠 중계방송은 대부분 임택근, 이광재

아나운서의 몫이 되었습니다.

 

 

 

 

 이광재 아나운서와 동기 박종세 아나운서가

야구 중계방송을 시작한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습니다.

윤길구, 황우겸 아나운서로 이어오던 야구 중계방송이 박종세

 아나운서에게 이어져 야구중계방송 전담 아나운서가 되었습니다.

1961년 5. 16 첫 방송이라면 떠오르는 사람이 박종세 아나운서

입니다. 5월 15일 밤 숙직차례였던 박종세 아나운서는 그날도

야구중계방송을 하고 돌아와 피곤한 몸으로 숙직에 

임하던 중 5. 16 첫 새벽을 맞아 그날의

방송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임택근 아나운서는 1960년

로마 올림픽이 열렸을 때 이광재 아나운서,

김성배 엔지니어와 함께 대한민국 올림픽 중계방송 팀이

되어 중계방송에 임했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청취자들의 마음을 파고들면서 때로는 환호를 올리고

또 때로는 마음상해 하면서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하나 된 마음으로 중계방송을 들었습니다.

 1959년부터 2년간 미국 VOA에 파견되었던 장기범 아나운서가

돌아오면서 방송과장에 취임하고 이어서 강익수 아나운서가

파견된후 임택근 아나운서는 명실 공히 아나운서실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아나운서실을 이끌면서

 스스로 방송 현업에도 임했습니다.

 

 

 

.

 

 1964년 RSB 라디오서울이 발족하면서

 사정이 어려워진 MBC가 임택근 아나운서에게 

송부장을 제의하면서 임택근은 그때로부터 MBC의

 방송부장이 었고 1년후 이사를 거쳐 또 상무가 되었습

니다. 그때만 해도 방송이나 경영 등 다 방면에 걸쳐

 어렵기만 하던 MBC의 기틀을 바로잡기 위

있는 힘을 다 기울였습니다.

 

MBC는 1960년대 중반부터 튼튼한 기반이 확보되고

 1969년부터 TV방송을 했습니다. 임택근 아나운서는 MBC와 함께

 활동했고 1980년 격동기에 전무로 잠시 사장 직무대행을 하다가 방송국을

 물러났습니다. 임택근 아나운서가 MBC로 옮기면서 이광재 아나운서가 KBS

아나운서실장이 되었습니다. 이로서 KBS출신 임택근아나운서는 MBC를 대표하는 

아나운서가 되었고 전영우 아나운서는 동아방송을 대표하는 아나운서가 되었습니다.

 1964년 12월 DTV동양방송이 문을 열면서 박종세 아나운서가 동양방송 텔레비전의

 아나운서 실장이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국, 민영 방송 4사의 얼굴 임택근,

전영우, 이광재, 박종세 아나운서는 경쟁과 협력을 하면서

아나운서 전성시대를 이끌어 욌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영문자 주소를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임재범, 손지창의 아버지 임택근 아나운서와 부인

http://blog.daum.net/jc21th/17780822

 

DBS 동아방송의 얼굴, 전영우 아나운서

http://blog.daum.net/jc21th/17780362

 

이광재 아나운서,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http://blog.daum.net/jc21th/17780853

 

 5. 16 새벽 첫 방송 박종세 아나운서

http://blog.daum.net/jc21th/17780461

 

 

 

 

1961년 1월 16일자 TV방송을 처음 시작 하던 때 동아일보에 난 기사 한편을 참고가 되실까 해서 옮겼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이광재 올림픽 배경.mp3

 

- 첨부파일

이광재 올림픽 배경.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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